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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서울신문> 백무현 화백은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을 풍자한 만평을 그렸다가 '죽음을 희화화'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제가 되었던 만평은 다른 내용으로 교체되었고, 백무현 화백은 공개사과를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서울신문> 만평은 게재 되지 않고 있다.

백무현 화백의 만평을 오랫동안 지켜 본 사람이라면, 이번 일로 인해 (임시라고는 하지만) 만평이 중단되는 것이 <서울신문>과 독자들에 얼마나 큰 손실인가 하는 것을 느끼고 있으리라.

아무튼 이번 만평을 두고 나온 청와대 홍보 수석의 '외교 문제 비화' 발언이나 타 언론의 호들갑, 누리꾼들의 감정적 반응이 도를 넘긴 했지만, 되레 그런 반응들이 신문의 시사만평 하나가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해도 너무하는 <동아일보> 만평 속 '성차별'

백무현 화백의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그는 만평 하나로 인해 게재 중단을 받았지만, 독자들에게 해악이 될 만평을 끊임없이 생산하면서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시사만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동아일보>의 이홍우 화백이 그 주인공이다.

그의 만평에서 드러나는 성차별적 요소는 이미 수차례 지적된 바 있다. 그의 만평에는 시사문제에 관심 많은 남편과 그 남편에게 늘 커피를 갖다 바치는 아내가 핵심 등장인물로 나온다. <동아일보> 독자들은 늘 반복되는 만평 속 그 모습을 남편과 아내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인식하게 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4월 한 달 동안 <동아일보> 만평에 묘사된 남편과 아내의 모습을 비교해 보자.

▲ 맨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4월3일자, 4월7일자, 4월4일자, 4월10일자 나대로 선생 중 일부. 시사문제에 관심이 많은 나대로 선생, 동료와 함께 시사를 논한다.
ⓒ 동아PDF
▲ 맨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4월9일자, 4월21일자, 4월19일자, 4월14일자 '나대로 선생' 중 일부. 나대로 선생의 다양한 활동상.
ⓒ 동아PDF
먼저 남편의 모습이다. 동료와 시국을 논하고, 신문과 방송, 심지어 점집에 가서도 정보를 얻고, 정부 부처를 방문하기도 하며, 때론 드러누워 쉬기도 한다.

반면 그의 아내는? 어김없이 커피를 갖다 바친다. 이 장면이 벌써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 <동아일보> 독자들의 무의식 속에 이 장면이 보편적인 가정의 일상적인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 몇 년째 아내는 커피를 갖다 바친다. 늘 동일한 장면에 대사만 바뀐다. 4월5일자(왼쪽), 4월6일자(오른쪽) '나대로 선생' 중 일부.
ⓒ 동아PDF
몇 번을 지적해도 고쳐지지 않는 이 그림을 다시 지적하는 것은 이런 성차별적인 장면의 반복 끝에 4월 24일자 만평과 같은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 호통치는 남편, 기 죽은 아내. 성차별의 강도가 세졌다. 4월24일자 '나대로 선생' 중 일부.
ⓒ 동아PDF
늘 갖다 바치는 커피를 받아먹기만 하던 남편이 무릎 꿇고 앉아 커피를 타고 있는 아내에게 버럭 화를 낸다. 화가 잔뜩 난 남편이 손가락질까지 해 가며 고함을 지르고, 아내는 기가 잔뜩 죽은 표정이다. 나중엔 어떤 상황에까지 치닫게 될 지 염려스럽다.

<동아>, 독자들 사고 저급하게 만들 셈인가

네 칸 만화에 시사문제를 발 빠르게 그려내기 위해 등장인물과 구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건 화백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 구도가 성차별적이며 버려야 할 구시대적 사고라고 한다면 폐기해야 마땅하다.

글보다 힘이 센 만화를 판매부수나 영향력 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신문에 매일 싣고 있다면 더 더욱 그러하다. 이홍우 화백의 만평이 수많은 <동아일보> 독자의 사고를 저급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백무현 화백의 만평을 두고 '죽음에 대한 희화화'라며 분노했던 누리꾼들은 <동아일보> 이홍우 화백이 수년간 이어온 성차별적 만평에 대해서도 분노해야 마땅할 것이다. 양성평등을 이루기 위해 출범한 여성부도 이홍우 화백의 만평에 내재된 그 성차별적 요소에 진작 주목하고 수정을 요구했어야 했다.

만화는 힘이 세다. 만화에 시사문제를 담은 시사만평의 영향력은 신문 전체를 뒤덮은 활자보다 더 클 수도 있다. 그렇기에 <동아일보> 이홍우 화백의 만평이 퍼트리고 있는 저 마초이즘을 바로 잡는 게 시급하다. <동아일보> 만평을 끌어 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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