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한국 언론들은 18일,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사건의 용의자가 한국인임을 1면 머리기사로 일제히 보도했다.
ⓒ AP·연합뉴스 이진만

충격적인 버지니아텍(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을 벌인 '조승희'씨는 누구인가?

<중앙일보>는 '한인 1.5세'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한국 교포학생', <한겨레>는 '재미동포 학생'이라고 했다. <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한국일보> 등 다른 신문들은 '한국인' 혹은 '한국학생'이라고 했다.

조승희씨 정체성에 관한 한 <조선일보> <중앙일보>와 <한겨레>는 똑같이 '교포'라고 생각했다. '보수'와 '진보'가 이 대목에선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왜 조승희씨에 대한 신문의 신분 표기에 주목하는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신문들의 기본 생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정서적 반응의 속내를 읽어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 이 대목에서 의견 일치

마침 <한겨레>가 잘 정리해주고 있다. "조씨 지위 놓고 (한-미가) 미묘한 갈등을 보이고 있다"는 <한겨레> 기사(강태호·이제훈 기자)를 따라가 보자.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용의자'인 조승희 씨의 지위를 놓고 한국과 미국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일고 있다."

웬 갈등인가? 미국경찰과 주요 언론들이 조승희 씨를 '한국인' 혹은 '사우스 코리안', '코리안 내셔널'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리 되면 "한국인에 의한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이 되고 현지 동포들에게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조승희씨를 어떻게 불러야 하나? <한겨레>의 두 기자는 "엄밀히 말하면 그는 '대한민국 국적의 미국 영주권자"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조씨를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것과 '대한민국 국적의 미국 영주권자'라고 말하는 것에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미국 영주권을 가진 한국인(대한민국 국적 소유자)'과 '한국 국적의 미국 영주권자'가 서로 다른 걸까?

명백하게 차이가 있고, 다르다. <한겨레>의 그 다음 기사를 보자.

"그러나 그를 한국인으로 부르는 것은 한국 사회의 일반 인식이나, 전문연구자들이 중시하는 '당사자의 정체성 인식' 측면에서는 맞지 않는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한국인'과 '한국국적의 미 영주권자', 뭐가 다른가?

한국사회의 일반 인식부터 살펴보자.

"8살 때 미국으로 이민간 그의 경우 이민 1.5세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한국 사회에선 이런 이들을 국적과 무관하게 '재외동포'로 간주한다."

조승희 씨는 그래서 '한인 1.5세'(<중앙일보>) 혹은 '한국 교포학생'(<조선일보>)이 되거나 '재미 동포학생'(<한겨레>)이 됐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그를 한국인으로 부르는 것이 '한국 사회의 일반 인식'과 맞지 않는다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다시 <한겨레> 기사로 가보자. 충분한 설명이 나온다.

"그는 한국 국적이지만 헌법이 규정한 '국민의 4대 의무' 측면에서도 일반 한국인과 지위가 다르다. 납세 의무가 없고, 투표권도 없다."

바로 이거다. 그가 '한국인'이 될 수 없고 '교포' '동포'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런데, 이런 이유는 과연 합당한가?

<한겨레> 기자들의 '시대착오적' 발상

▲ 미국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 소재 버지니아공대(버지니아텍)에서 16일 32명이 숨지는 사상 최악의 교내 총격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전쟁 기념관앞에서 학생들이 촛불 집회를 위해 촛불에 불을 켜고 있다.
ⓒ AP 연합뉴스
우선 기사 내용 중 잘못된 부분부터 바로잡자.

투표권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거의 대부분은 말할 나위도 없고, 전후 혼란한 상황에서 선거를 치른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까지도 해외 영주권자에게도 '투표권'을 주고 있다.

그러니 이들 영주권자에게 투표권을 주고 있지 않은 대한민국 정부가 '이상한 국가'이지, 투표권이 없는 해외 영주권자가 '다르게' 대접받을 이유가 없다.

국민의 4대 의무 하면, 납세·국방·교육·근로의 의무를 말하는 것일 게다. 왜 <한겨레>가 이중 납세의 의무만 들었을까? 아예 해외 영주권자에게는 '국방'의 의무가 면제된다. 그러니 확실하게 '보통의 한국인'과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을 터인데, 왜 국방의 의무부터 사례로 안 들었을까?

일단 해외 영주권자라도 일정기간 이상 국내에 거주하거나 거주한 경우가 있으면 당연히 국방의 의무를 지게 되기 때문에 들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혹은 해외 영주권자로서 병역을 면제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병역의무'를 마치겠다고 부득부득 조국 땅을 찾는 '미련한 재외동포'들이 상당수 있어서 예로 들기가 어려웠나?

아니면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인 여성들은 병역 의무 대상이 아니어서 '보통의 한국인'과 비교하는 잣대로는 적합하지 않아서였을까?

미국식에 젖은 '보통 한국인'과 한국 국적의 미국 영주권자

어쨌든 <한겨레> 기자들이 '납세의 의무'를 예로 든 것은 '최악'이다.

납세의 의무는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소득이 발생한 곳'에서 납부하는 것을 '지구촌 표준'으로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이중과세 방지조약'이란 것을 세계화, 아니 국제화 시대 훨씬 이전부터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보통의 한국인'과 '해외 영주권자인 한국인'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다니 이런 시대착오적인 생각도 없다.

다음으로 전문연구자들이 중시한다는 '당사자의 정체성' 부분이다. <한겨레> 기사에는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이런 대목은 있다. "23살인 조씨는 20살 때 미국 국적(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미국적을 얻지 않았다."

미국 국적을 얻을 수 있었는데도 미국 국적을 얻지 않고, 한국 국적을 계속 갖고 있었다고 한다면 조씨의 '자기 정체성'은 도대체 무엇인가? 머리끝에서 발 끝까지 미국식에 젖어 있는 '보통의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겨레>의 이 기사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조 씨의 신분에 대한 '생각'은 국가가 과연 국민에게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범죄자도 '한국인'이다

아무리 흉악무도한 범죄 행각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국가는 그를 국민으로서 당연히 '대우'하는 게 맞다('대우'라는 표현을 너무 좋게만 보지는 마시라. 국민된 대접을 해주면 된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또 이들 신문들은 그 동안 '재미 동포'나 국내 거주 '외국인'들을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해주었던가?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외국 영주권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차별'하고 '분리'하려 하고 있는가? 하물며 진보적이라는 <한겨레> 까지도.

오히려 이들 한국인 2세들이 '정체성 문제'로 해외에서 얼마나 많은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지, 그런 그들에게 '조국'은, '국가'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해주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게 도리 아닐까.

다시 한 번 분명히 하자. 대한민국 국적의 해외 영주권자는 '한국인'이 아닌가?

미국영주권자이든, 일본 영주권자이든, 대만 영주권자이든, 러시아 영주권자이든, 남극영주권자이든, 북극영주권자이든, 아니 유인우주선 영주권자이든, 밤하늘에 덩실 떠오르는 달나라 영주권자이든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으면 '한국 국민'이다.

다시 한 번 묻자. 그런 그들을 "법적으로 국적은 '대한민국'이지만, 미국에서 산 사람 아니겠느냐는 뜻이 담겨 있다"고 정부의 공식발표(한국 국적의 미국 영주권자)를 설명하고 있는 한국 '외교부'와 그것을 그대로 받아적고 있는 '기자'들은 어느 나라 외교부고, 어느 나라 사람인가?

그들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태그:#백병규의 미디어워치, #백병규, #미디어워치, #조간신문 리뷰, #조승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