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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 소재 버지니아공대(버지니아텍)에서 16일 32명이 숨지는 사상 최악의 교내 총격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전쟁 기념관앞에서 학생들이 촛불 집회를 위해 촛불에 불을 켜고 있다.
ⓒ AP 연합뉴스

우선 아무런 이유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로 죽어간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너무 큰 충격이다. 어제 처음 사건이 나왔을 때 '저 놈의 미국, 또 총기 사고네. 어디 무서워서 살 수 있겠어?' 하며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것을 큰 위안으로 삼았다. 그런데 범인이 한국계라는 것이 알려진 다음, 나를 포함한 국민 대부분은 무언지 모를 충격에 휩싸였다. 왜일까?

한국땅에서 미국 사람에 의해 참사 벌어졌다면

물론 이성적으로 볼 때 범인이 한국계이건 중국계이건 '토종 미국인'이건, 그건 사건의 본질과는 상관이 없다. 이 사건의 핵심은 총기 소유를 허가하는 미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산물이다. 이걸 해결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런 일은 일어날 것이다. 미국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성적으로는 이렇게로만 정리가 되지 않는다. 한국 사람에 의해 많은 무고한 미국인이 죽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크나큰 충격이다.

"왜 한국사람인 걸 자꾸 강조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걸 자꾸 조장하는 건 매우 비이성적이며, 이로 인해 우리교민이나 유학생들에게 피해가 간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 2002년 마지막 밤 광화문에 미군장갑차에 숨진 효순·미선양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하지만 만약 이 사건이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미국사람에 의해 일어났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은 해볼 필요가 있다. '그 때 우리의 언론과 국민들은 특히 진보진영에서는 어떤 정치적 이슈를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말이다.

2002년 여중생 효순이와 미선이가 미군 장갑차에 숨졌을 때 많은 국민들은 슬퍼했고, 또 분노했다. 월드컵에 일부 묻히기는 했지만, 연속되는 촛불집회도 있었다. 특히 진보진영은 이를 미군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로, 반미감정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동의했다. 나도 일정 정도 동의했다.

물론 여기에는 불공정한 소파규정 때문에 많은 미군범죄자들을 우리 법정에 세우지 못하는 데 대한 분노가 있다. 그럼에도 어찌되었든 우린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을 단순한 '사고'가 아닌 '범죄'로 규정하고, 미군에 대한 그리고 미국에 대한 반대감정으로 끌어올렸고, 일부에서 그걸 더욱 자극했던 건 사실이다.

우리가 먼저 촛불을 들자

▲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 소재 버지니아 공대 캠퍼스내 예배당에서 16일 총기난사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두 여학생이 서로 포옹하며 위로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다시 이 사건으로 돌아와 우리 땅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우린 또 그 때와 같이 사건을 계속되는 촛불집회와 반미 감정으로 끌어올렸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일부 미국인들이 이번 사건으로 반한 감정을 갖는다든지 한국계를 부각시키는 것에 대해 무조건 비이성적이라고만 매도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번 일로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보고 싶다. 장갑차 사건 때처럼 우리 다시 촛불을 들 수 있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분노가 아닌 애도와 위로의 촛불을 들었으면 좋겠다. 슬픔에 잠겨있을 미국인들과 함께 슬픔을 나누고, 감성적이긴 하지만 범인과 같은 한국인이라는 원죄적 사실에 대해 용서도 구했으면 좋겠다.

만약 장갑차 사건 때 미국 내에서 희생자를 추모하고 용서를 구하는 집회가 있었다면, 우린 미국사회를 다르게 바라보지 않았을까? 그들이 못한 일을 우리가 하면 안될까?

우리 민족이 어떤 민족보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임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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