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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이6일 국회에서 열린 한미FTA 체결특별위원회 회의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에게 교육시장 추가개방을 주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제2의 개방"(문화일보 4월 2일 1면 머리기사 제목)
"제3의 개국"(중앙일보 4월 3일자 1면 머리기사 제목)
"신 개방시대"(세계일보 4월 3일자 1면 머리기사 제목)


주요 언론들이 우리가 전혀 몰랐던 놀라운 사실을 일깨워줬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는 조선말 대원군의 쇄국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제서야 드디어 '개방'이라니.

차이를 이해하자면 '제2의 개방'은 한미FTA가 19세기 말 개국 이후 120여년만의 또 다른 개국이라는 것이고, 여기에 1960년대의 수출 주도형 경제로의 전환을 삽입한 것이 '제3의 개국론'이다.

일단 비틀고 가자. 첫 번째 개국(개방)은 서구열강들에 의한 타율적 강제였다. '준비되지 않은' 개방의 결과로 조선왕조라는 나라가 사라졌다.

박정희 시대의 수출 주도형 경제가 개국이라고? 해방 전에도 무역을 했고 해방 이후에도 우리는 무역을 했다. 수출 품목과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만 1960년대의 개방형 경제는 자유로운 '무역'을 얘기하는 것이지, 법과 제도를 포함한 모든 사회적 경제적 시스템의 개방을 의미하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만일 그랬더라면 어떻게 3선 개헌, 유신독재, 사채동결, 관치금융, 정경유착, 유치산업 보호, 중공업진흥 정책, 외환국가독점, 국토개발계획, 경제기획원 주도의 경제개발계획, 중앙은행의 정부 종속 등이 가능했겠는가?

'준비되지 않은 개방'의 결과 때문에 사라졌다

이런 방식으로의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와 분류는 이념편향적인 이들에 의한 역사의 자의적 해석, 과잉 해석, 더 나아가 왜곡의 혐의까지 의심케 한다. 이런 방식의 해석과 이해는 상품에서 서비스, 투자, 소송에 이르기까지 높은 수준의 '포괄적' 성격을 띠고 있는 미국식 FTA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문득 이런 의심도 든다. 우리 사회 일부의 퇴행적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발독재 시대에 대한 향수와도 상관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이는 박정희의 후광과 이미지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특정 대선 후보들을 간접지원 하기 위한 음모론과도 연결된다. 어느새 그토록 저주받던 노무현 대통령이 구국의 지도자, 결단의 지도자로 찬양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갑자기 박정희 수준의 시대적 지도자로 등극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특별한 말이 없다. 예전 같으면 국정브리핑에서 양 모 비서관이 실컷 꾸짖었을 텐데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조선일보와 반대로만 하면 된다던 수많은 이들은 어디로 갔나? 선생님은 어디로 가셨나? 교수님은 어디에 계신가? 왜 일부 언론의 역사왜곡과 정치적 편향, 그리고 자의적 악용을 애써 눈감고 있는가? 그리고 지지도 두 자리 수 상승에 봄날 낮잠을 즐기고 있는가? 노 대통령의 용안(?)에 박정희 대통령의 검은 선글라스를 씌우는 데도 왜 가만히 있는가?

그렇다면 한미 FTA를 '제3의 개국', 아니 '개국'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맞는 말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미국과 무역이나 투자를 주고 받은 일이 없다. 우리는 북한과 같은 완전 자급자족 경제체제를 갖고 있었다. 2003년 미국 케이토(KATO) 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제개방도는 조사 대상 123개국 가운데 26위였다. 일본과 노르웨이와 같은 수치이다. 한편, 우리의 대외의존도는 70%이다. 국내 GDP의 70%가 무역에서 발생하는 대단한 나라이다. 도시국가를 제외하고는 이런 나라가 없다. 대외의존도만 놓고 비교해보더라도 OECD 평균은 50%이고, 일본은 22%, 미국이 20%에 불과하다.

미국이 한미 FTA를 두고 개방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타당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우리를 두고 개방이네 개국이네 한다. 미국 경제가 기침을 하면 우리 경제가 몸살을 한다고 비판을 하던 때가 언제인지 벌써 잊혀 간다. 내수시장을 키워서 대외의존도를 줄이는 안정된 경제구조를 갖는 것이 우리 경제구조의 대표적 난제였다. 그런데 무역으로 먹고사는 국가이기 때문에 더 무역을 늘리자고 한다. 그래서 한미FTA는 진정한 의미의 또 다른 개방이자 개국이라고 홍보한다. 멈추는 순간 넘어지고 마는 브레이크 없는 오토바이처럼 무역을 향한 가속질주만이 우리를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한미FTA를 찬양한다.

▲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한미FTA 무효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벌인 뒤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폐쇄적 경제구조?... 우리의 경제개방도는 세계 26위

다시 강조한다. 폐쇄적 구조의 자급자족 경제를 꿈꾸는 이는 아무도 없다. 적정한 개방, 공정한 개방, 바람직한 개방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도리어 박정희 시대의 금융정책과 산업정책과 선택과 집중의 개방전략이 혼합이 갖는 긍정적 측면이 반대론자들의 좌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반대론자라는 말조차도 부끄럽고 부담스럽다. 한미 FTA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협상의 불공정성, 협상단의 무능함을 지적했을 뿐이고, 준비 없는 개방과 정말로 한우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이런 방식의 대책을 문제 삼았을 뿐이다.

필자는 도리어 다른 역사적 사건과 한미FTA를 연계시켜 교훈으로 삼고자 한다. 김옥균 등이 추구했던 갑신정변이 왜 실패했는가에 대한 이이화 선생의 설명이다. "첫째, 역량의 결집이 부족하고 민중의 동력을 활용하지 못했다. 둘째, 정변 주체 인사들이 일본세력을 지원으로 삼고 국왕을 등에 업고 일을 도모한 점을 들 수 있다. 셋째, 기득권 세력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넷째, 준비과정이 소홀했다."

물론 셋째 항목은 현 상황과는 정반대이다. 현재의 한미FTA는 실질적으로 한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주도하는 측면이 강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갑신정변의 실패 원인에서 조금이나마 역사의 교훈을 찾아낼 수 있다. 더이상 제2의 개방이네, 제3의 개국이네 하는 과도한 언술이 자제되기를 기대한다.

태그:#한미FTA, #언론,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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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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