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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를 끌어온 한미FTA 협상이 결국 타결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한미FTA 협상 타결내용을 각 분야별, 쟁점별로 진단할 예정입니다. 네번째 진단대상은 '재협상 가능성'입니다. <편집자주>
▲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2일 타결된 한미FTA(자유무역협정)를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가시질 않고 있다. 타결직후 내놓은 정부의 일방적인 '장밋빛' 홍보 속에 협상 결과에 대한 냉철한 손익 논란은 보기 어려울 정도다.

오히려 정부가 성과라고 말한 개성공단 한국산 인정문제부터 쇠고기 수입 재개 등에 대해 미국쪽의 다른 해석이 나오면서 논란은 커지고 있다. 게다가 이번 협상에 대해 미국 의회와 노동계 등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 정가에선 이미 한미FTA 협상안의 수정과 함께 한국과의 재협상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미국의 압박 강도에 따라 한미간 추가협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협정문 수정할 수 없다?... 미, 페루와 FTA 체결 후 재협상중

정부는 미국의 재협상 가능성에 대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협상 총책임자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미 의회가 추가 협상을 요구하면 응하지 않겠다고 이미 협상 당시에 못을 박았다"고 강조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도 최근 "미 의회가 무역촉진권한(TPA)을 통해 체결한 FTA를 수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미 의회는 협상 결과 전체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지만 수정은 할 수 없다"면서 재협상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재협상은 물론이고 협정문 수정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 미국은 페루와 FTA 협정을 체결하고도, 미국 의회의 비준 거부와 재협상 요구로 협정이 발효되지 않고 있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미국과 페루는 지난 2005년 12월 협상을 끝내고 2006년 3월 양국이 협정문에 공식 서명했다. 그해 6월 페루 의회 비준은 끝마쳤다. 하지만 아직도 미 의회는 비준을 하지 않고 있다.

특히 미 의회 하원 세입세출위원장인 찰스랑글을 비롯한 민주당에서 노동조항 변경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재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수잔 스왑 미국 무역대표부(USTR)대표가 이번 한미FTA 마지막 고위급 협상에 참석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대다수 전문가들은 '미 의회가 비준과정에서 협상 내용 수정은 못하고, 찬반만 표현할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작년 중간선거로 다수당이 된 미 의회는 정부간 합의안의 일부를 수정하겠다는 의사를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냉랭한 미 의회... 민주당 강경파, 노골적 수정 요구

▲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종훈 수석대표와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가 나란히 앉아 밝게 웃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 의회의 이같은 노골적인 수정 요구는 한미FTA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개성공단 한국산 인정을 둘러싼 논란을 비롯해, 쇠고기 전면 수입 개방과 FTA 비준을 연계시키고 있다.

미국 상원의 FTA담당 창구인 재무위원회 맥스 보커스위원장은 곧바로 "한미FTA 결과를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이어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를 완전히 풀지 않으면 FTA 동의는 없다"고 말했다.

보커스 위원장은 미국의 대표적인 쇠고기 수출지역인 몬타나주를 지역구로 두고 있다. 그의 주선으로 한미FTA 5차 협상이 몬타나주에서 열리기도 했다. 재무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커스 위원장은 오는 2008년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쇠고기 수입 재개를 어떤 식으로든 풀어야 할 상황에 있는 셈이다.

미시간 주 출신인 데비 스테비나우 상원의원도 "미국 노동자와 업계의 '나쁜 합의(bad deal)'"라고 지적했다. 그 역시 재무위 소속이다.

<동아일보>는 7일치 신문에서 미국 의회의 소식통을 인용해, 쇠고기 수입 재개가 없을경우 상원 재무위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해당 관계자는 아예 한 발 더 나아가 미 의회의 FTA 부결처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워싱턴 정가의 냉랭한 분위기는 협정문을 가장 먼저 심의하게 될 하원의 세입세출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세입세출위원회 산하 무역소위원회 샌더래빈 위원장은 "심의 과정에서 협상안이 바뀌지 않는다면 비준을 거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민주당인 샌더래빈 위원장의 지역구는 자동차 3사의 본사가 모여 있는 디트로이트다. 그는 이미 작년 9월 3차협상을 앞두고 공개적으로 "한국 자동차 관련 비관세 장벽을 제거해야 하며, 협상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세입세출위원장인 찰스랑겔 의원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전통적인 민주당원으로 미국과 페루간 FTA의 노동조항 변경을 요구해, 재협상을 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지난 7일 자신의 책 출간기념회 자리에서 "(한미)FTA 내용 가운데 자동차와 쇠고기 조항이 관건이며, 미흡하다면 FTA 안을 의회가 수정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흡'이라는 조건을 달았지만, 협정문에 대한 수정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한미FTA 무효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을 벌인 뒤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 행정부, 내주께 재협상 요구할 듯

미국 의회의 분위기를 볼 때 한미FTA에 대한 추가 또는 재협상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과)는 "이미 한국정부와 미국은 FTA에 대해 사실상 재협상을 하고 있거나,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분야의 일시적 세이프가드(단기간의 자금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를 두고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이고, 개성공단 논란에 대해 김현종 본부장 스스로 미국과 5월중에 결판짓겠다고 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특히 미 민주당은 한미FTA 협상 막바지이던 지난달 27일 '새로운 무역정책(New Trade Policy)'을 발표했다. 민주당은 이 정책을 미 행정부가 정책으로 받아들이도록 공화당과 현재 협의를 진행 중이다.

공화당이 이를 받아들일 경우, 민주당은 한미FTA 비준에 앞서 새로운 정책에 따른 협정 수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노동과 환경 분야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현종 본부장도 최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재협상 가능성에 대해선 부정적이면서도, "노동 분야 등은 신경이 쓰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노동 분야에서 "FTA 상대국이 자국 노동법이 아닌 국제적 노동 기준을 따르도록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 노동환경 분야에서 분쟁이 생길경우 특별분쟁 해결절차가 아닌 통상적 분쟁해결절차에 강조하고 있다.

한미 FTA는 각각 자국의 법을 준수토록 돼 있고, 분쟁시 특별분쟁 해결절차를 따르도록 돼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재협상 대상이 될 수 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공화당의 미 행정부 입장에선 TPA를 갖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민주당쪽 요구를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미 의회의 부활절 휴회가 이번달 중순께 끝나면 (미 행정부의) 입장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미 행정부쪽에서 의회의 분위기와 입장을 들어 노동과 환경분야쪽의 추가협상을 해올 가능성도 있다"면서 "추가협상에 개성공단 등이 포함될 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전했다.

재협상- 불가인가, 적극활용인가

▲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왼쪽)과 롭 포트먼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지난해 2월 2일 워싱턴의 국회의사당에서 한미FTA 체결을 위한 공식 협상 개시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통상전문가들 사이에선 한미간 재협상보다는 협정문의 시행령 성격의 부속서를 위한 추가협상 가능성에 좀더 무게를 두고 있다. 이미 타결 직후 재협상 가능성을 일축한 정부 입장에서 다시 미국쪽 요구에 협상에 나서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동차와 쇠고기 등 초민감한 분야에 대한 재협상은 협상타결 자체를 뒤흔들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내용이어서, 한미 양쪽 모두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이준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미주팀장은 "최근 민주당 등 미 의회의 요구는 노동조항 강화 등을 둘러싸고 이미 체결된 협정문을 보완하기 위한 부속서를 추가 협상을 통해 덧붙이자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반대로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개성공단을 비롯해 쇠고기 문제와 자동차 등에 대해 한국정부 입장을 보다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쪽 시한에 쫓긴 졸속협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한미FTA. 타결되자마자 다시 워싱턴의 이해관계에 따라 재협상이 시작될 경우 협상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증폭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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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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