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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인 담론은 사라지고 좌파와 우파라는 말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문학평론가 이명원씨의 글을 통해 21세기의 새로운 지식담론을 펼쳐 보일 계획입니다. '이명원의 좌우지간(左右之間)'은 좌우 지식인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속살 깊은 이야기를 독자여러분께 전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 오마이뉴스 남소연

문학평론가이자 서울대 명예교수인 백낙청 교수를 찾아가는 길은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함께 차를 타고 가기로 했던 사진기자가 아침부터 교통사고가 났고, 택시를 잡았지만 기사가 파주 출판도시를 모른다고 했다. 하긴 나도 초행길이었다. 다른 택시에 올라 자유로를 거쳐 출판사 창비가 있는 파주 출판도시에 도착했다. 약속시간보다 이른 시각이었다.

2007년 3월 30일 금요일 오전 9시 40분의 일이다. 사실 그날은 서부지법에서 지루하게 진행되고 있는 내 교수지위확인 소송의 본안소송 결심공판이 있던 날이었다. 잊고 있었는데 나는 해직교수인 것이다. 공판은 변호사에게 위임했다. 그날 저녁에는 한 세미나에서 논문을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고, 그날 오후에는 한 영화주간지에 쓸 영화평을 쓰기 위해 시사회에도 가야 했다.

이런 분주함이 간혹 생을 공허하게 느끼게 하는 것은 사실인데, 적어도 2007년의 나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세상을 사유하기로 결심한 자라는 것을 상기했다. 해직교수의 비애에 빠질 시간도 없이, 나는 내 몸이 만들어낼 사유에 정직하자고 약속했다. 그 약속이 지켜질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비판했던 백낙청, 만나보고 싶었던 까닭

백낙청 교수와의 일정을 잡는 일은 어려웠다. 일단 서로의 일정을 일치시키기 어려웠다. 백 교수는 그는 6ㆍ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데, 3월 초에는 북측과의 회의로 중국에 다녀왔고, 귀국한 이후에는 가벼운 건강상의 이유로 만날 수가 없었다. 전업기자라면 나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스케줄을 앞당겨야 했겠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3월 초에 섭외한 것이 그달 말에야 만남을 이룰 수가 있었다.

백낙청 교수를 만나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가 문학평론가이면서도 오래전부터 한반도의 분단현실에 대한 이론화 작업과 실천 양면에서 매우 중요한 작업을 벌여왔으며, 특히 최근에는 '변혁적 중도주의'라는 입론을 지식사회에 제출했는가 하면, 이른바 진보논쟁으로 명명되는 논쟁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지식인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문학의 유력한 상징이 된 출판사와 잡지 창비의 상징적 존재이면서,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학평론가였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창비와 얼마간의 애증이 있다면 있는 축에 드는 사람이다. 이른바 '문학권력 논쟁'의 와중에 창비를 '진보 권위주의'로 비판한 바 있으며, 그런 가운데서도 백낙청 교수의 '지혜의 위계질서'라는 개념을 비판한 바가 있다.

그런 내가 백낙청 교수를 인터뷰하는 것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지만, 한국사회는 어쨌든 편협한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소설가 이문열씨를 '좌우지간'에서 만났더니, 언론계의 한 선배는 이명원의 젊음의 독기가 빠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글쎄, 논쟁 상대자가 굳이 서로를 회피할 필요가 있을까. 논쟁은 논쟁대로 치열하되,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는 오히려 존중하는 것이 더 성숙한 태도가 아닐까.

노무현 정부의 공과? 보수가 가장 좋아할 구도

백낙청 교수와의 인터뷰는 2시간여에 걸쳐 진행되었다. 장소는 파주에 있는 출판사 창비 4층의 집무실이었고, 오늘의 한반도 상황과 문학계의 상황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인터뷰를 재구성할까도 생각해보았지만, 논의한 내용의 넓은 범위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백낙청 교수의 주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점에서, 아래에 인터뷰의 전문을 수록하고, 논의의 핵심적인 사항은 별도의 기사로 요약하는 방식을 취하기로 했다.

인터뷰를 정리하고 나니, 백낙청 교수에 대해서 특히 문학권력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반론할 사항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다른 독립적 지면에서 개진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부기하지 않았다. 인터뷰 내용의 경우, 질문은 핵심적인 사항만을 요약했고, 백낙청 교수의 발언은 가감 없이 전문을 게재했다는 점도 알려드린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 최근에 범여권 대선후보 단일화를 위한 '원탁회의'를 주관하신다는 기사도 보았다. 오늘의 현실 속에서 문학지식인으로서 현실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정국이 요동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고언을 듣고 싶어 선생님을 찾아뵙게 되었다. 아무래도 노무현 정부의 집권 마지막 해이다 보니, 정부의 공과에 대한 평가가 증폭되고 있다. 보수진영은 물론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가혹한 평가와 논쟁이 불거져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여러 인터뷰에서 선생님께서는 노무현 정부를 일거에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 전 정부와의 관련 아래서의 공과를 논의해야 한다고 하셨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전면적인 부정을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이야기를 내가 한 것은 사실이다. 그 전에 한두 가지 해명을 하고 싶다. 아까 원탁회의를 말씀하셨는데, 그 발상은 개혁세력의 대동단결을 위해서 유력한 정치인들을 시민사회나 종교계에서 초청해 원탁회의를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주동자 또는 참여대상으로 내가 끼어 있다는 것은 완전한 오보이다. 실은 6ㆍ15 남측위원회 대변인실에서 보도자료를 내서, 그동안 신문에 나온 것은 오보이고 나는 6ㆍ15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한 현실정치에 직접 개입하는 어떤 모임도 주도하거나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을 언론기관에 돌렸다.

노무현 정권이 실패했느냐 아니냐 하는 점에서, 나는 실패한 것도 많고 무능한 점도 많다고 보지만, 진보논쟁이 그렇게 구도를 갖고가는 것은 잘못된 거라 생각한다. 그것은 보수진영에서 제일 좋아할 만한 구도를 설정해놓고 말려드는 꼴이다. 더 좀 넓은 시각에서 우리사회가 그동안 1987년 이후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그 시기를 분류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

노태우 정권을 빼고 민주개혁정부라 보는 것도 있고, 김영삼 정권까지도 빼고 김대중 정부 이래를 개혁세력 또는 민주세력 집권 10년이라 이야기하는 방식, 그리고 노무현 정부만을 따로 논의하는 방식도 있다. 그만큼 1987년 이후 민주화의 과정이 선명치 않고 복잡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본다. 노태우 정권은 군부출신의 대통령이 집권했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민주화시대에 안 넣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1987년 이후를 민주화가 된 시기라 한다면 엄연히 노태우 정권이 들어가게 된다. 또 실제로 노태우씨가 전두환씨와 같이 쿠데타를 했지만, 집권할 때는 1987년 이후의 민주화된 헌법에 따라 직선제를 통해서 집권했다. 그런 점도 모호한 상태다. 김영삼 정권은 스스로 문민정부라 지칭했듯이 우리 사회의 30년 넘은 군사정권을 청산한 최초의 정부라는 의미가 있다. 다만 민정당과 합친 민자당, 그 후의 신한국당 정권이라는 점에서 민주정권에 완전히 끼긴 그렇지만, 그렇다고 뗄 수도 없는 정권이다. 김대중 정권만 해도 DJP연합에 의해 집권한 정부고.

그래서 그런 복잡한 양상과 큰 그림을 우리가 염두에 두고 그 맥락 속에서 노무현 정부의 어떤 점을 평가하고 비판할 것인가 이렇게 나가야지, 그냥 덜렁 노무현 정권이 실패했다는 것이 맞느냐 틀리냐, 진보가 무능한 것 아니냐 이런 식으로 나가면 논의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 민주화의 역사 속에서 각각의 정권이 갖고 있는 특수성, 민주주의가 복잡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간다는 말씀인 것 같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노무현 정부가 갖고 있던 문제점에 대하여는 많은 견해가 제기되고 있는데, 반대로 선생님께서 꼽을 수 있는 노무현 정부의 업적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흔히 말하는 대로 노무현 정부에서 제왕적인 대통령 당 총재는 없어졌다. 정치 선거 같은 것이 비교적 투명해졌다는 점. 이런 것은 당연한 업적으로 꼽아야 한다. 남북관계에서는 서툰 점도 여러 가지 곡절도 있었지만 크게 봐서는 옳은 방향으로 밀고 나갔다. 최근에 이회창씨의 발언을 보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그가 집권했다면 어떠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또 과거사 문제가 참 논란이 많지만, 제주 4ㆍ3사건의 경우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해서 제주도민에게 사과했다거나, 인혁당 사건이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이 나왔다는 것, 이런 것이야말로 단순히 유족들에게 한정된 문제가 아니고,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전진이고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선진화되어가는 증거라고 본다. 나는 그런 것은 인정하면서 문제점을 지적해야 한다고 본다.

기본적인 관점에서 나는 남쪽에서 진행되는 역사건 북쪽에서 진행되는 역사건 한반도를 아우르는 분단체제라는 틀 안에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그동안 해왔다. 그러니까 노무현 정권의 한계 같은 것도 크게는 세계체제 자체가 부과하는 한계가 있고, 한반도의 분단체제의 일익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한계가 있고, 또 그런 것을 감안하고도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지지 않으면 안 될 그런 문제점이 있다는 점을 세심하게 구분해서 논의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최장집·손호철, 분단을 부수적 사실로 본다"

- 말씀을 듣다 보니, 진보진영의 논쟁구도의 설정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과 함께, 특히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관점에 '분단체제'에 대한 의식이 결락되어 있다는 비판도 생각난다. 가령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실패를 영미식의 정당 중심 체제, 프로세스가 확립되지 않은 한국사회의 문제를 든 것에 대해서도 이의제기를 하신 바 있는데.
"상당수의 진보적인 학자들이 어떤 면에서는 보수적인 논객이나 학자보다 분단문제를 외면하는 경향이 더 강한 것 같다. 쉽게 말해서 보수진영에서는 툭 하면 상대방을 친북좌파로 몬다. 그것은 늘 북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분단상황에 자기들 나름으로는 맞춰서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보진영에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학자들은 마치 이 사회가 분단과는 기본적으로는 특별한 관계가 없고, 분단이라는 것이 하나의 부수적인 사실로 있는 것처럼 그런 전제를 깔고, 분단 안 된 사회의 척도로 진보와 보수를 따지는 경향이 많다. 나는 최장집 교수도 그런 예의 하나라고 보고, 손호철 교수도 그런 경향이 강하고, 그런 분들이 많다고 본다.

그런데 분단체제라고 할 때는 그냥 분단을 의식한다는 것이 아니다.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남북 모두가 아주 다른 사회로 발전하면서도, 묘하게 공통성과 상호의존성이 있는 일종의 체계, 적어도 체제 비슷한 구조가 정착이 돼서 알게 모르게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뜻인데. 그런 각도에서 본다면 흔히 NL(민족해방)계라 하는, 민족자주를 중시하고 자주통일을 부르짖는 분들도 분단에 대한 의식은 첨예하지만 분단체제라는 인식은 부족하지 않나. 그래서 요즘 다시 옛날에 쓰던 NL, PD(민중민주)라는 말이 다시 나오는데, PD계열의 흐름을 이어받은 분들은 한국사회의 체제적인 성격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이 체제를 변혁하거나 전환시켜야 된다는 의지는 강한데 분단에 대한 의식은 미약한 것 같고, 이른바 NL계 사람들은 분단에 대한 의식은 첨예한데 이것이 분단체제, 남북을 아우르는 분단체제라는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그런 분들은 분단체제라는 용어를 쓰더라도 남쪽의 반공체제라거나 극우 보수체제에 국한해서 쓰는 경향이 있다.

사실은 이것을 처음 지적한 것은 1980년대 말이었다. 6월항쟁 이후에 6월을 보는 세 가지 시각을 이야기했다. 당시의 NL적 시각, PD적 시각, 그리고 중도개혁(BD)의 시각이 각기 지니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면서, 새롭게 분단체제 극복을 위해서 결합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요즘 와서 그런 생각이 절실하고 더러 다른 분들의 입에서도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우선 남북연합부터 해놓고 보자"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최근 선생님의 견해 가운데, 2000년의 6ㆍ15를 기점으로 분단체제가 해체기이자 통일시대로 이행한다는 주장이 발견된다. 이 부분에서도 소위 말하는 PD계열의 지식인은 분단체제라는 개념의 설정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고, 분단환원론에 고착된 게 아닌가 하는 비판도 있다. 이에 비해 이른바 온건개혁(BD) 세력, 예를 들면 고종석 선생 같은 경우는 1단계 통일의 형식이 느슨한 국가연합의 형태이자 시민주도형 통일이라 하는데, 과연 그런 통일이 북의 성격상 가능할 것인가는 의문도 제기된다.
"우선 PD계열 분들이 분단체제를 이야기할 때마다 분단환원론이라는 반론을 이야기하는 게 흔한데, 그것은 바로 이분들이 체제에 대한 관심은 있으나, 분단에 대한 인식은 부족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분단체제라는 것이 완결된 체제고 그것이 우리 사회의 현상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최종심급 또는 기준이라고 주장하면 분단환원론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지만, 나는 분단체제론 자체가 자본주의 근대 세계체제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하나의 양태로 말하는 것이니, 그것이 분단환원론이라는 비판은 가당치 않다. 어쨌든 체제에 대한 관심과 분단현실에 대한 인식을 결합했으면 하는 주문을 하고 싶다.

느슨한 국가연합이라도 형성되면 그것을 1단계 통일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나의 주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반론이 있다. 고종석씨의 주장은 그 중의 하나인데, 다른 반론은 이론상 국가연합과 연방의 차이란 연방은 연방국가가 하나 있고 그 밑에 지방정부가 있는 것이다. 만약에 남북연방이 구성된다면, 연방정부 산하에 북측을 통괄하는 지방정부와 남측을 통괄하는 지방정부가 있다는 것이 교과서적 의미의 연방이다. 그런데 가령 영연방도 연방이라고 한다면, 사실 그것은 아주 느슨한 형태의 국가연합이지 연방이 아니다.

어쨌든 통일이 안 된다는 것이, 아직 통일이 안 되었다는 것이 연합의 교과서적 골자인데, 그것을 통일이라 하는 것이 모순 아니냐 하는 것이 하나의 반론이다. 또 하나의 반론은 현실적으로는 국가연합이 가능하겠냐는 현실적 반론이 있다. 그리고 고종석씨가 주장하는 것은 시민참여형 통일이라는 것이 북의 현실에 비춰 가당치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나의 답변을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첫째, 느슨한 형태의 국가연합을 어떻게 통일로 보느냐. 이것은 가령 유럽연합을 통일유럽으로 보지 않는데, 남북의 국가연합은 그것보다 더 느슨한 형태가 될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이것은 유럽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다.

유럽은 통일된 국민국가들이 이제부터 조금씩 연합해가면서 무엇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를 서로 궁리, 탐색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의 국가로 오랫동안 여러 세기를 함께 살아왔던 민족이 강제로 분단되었다가 이제는 다시 합쳐야 한다는 대원칙에는 별 이견이 없는데, 언제 어떻게 하느냐 그렇게 하는 것이 너무 위험하지 않느냐 하는 등의 우려가 많기 때문에, 이걸 갑자기 하지 않고 우선 남북연합부터 해놓고 보자, 그 다음에 연방제로 갈지 안 갈지 그때 가서 결정해 보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유럽과는 전혀 다른 역사적 맥락에서 보자면 이를 1단계 통일로 보아도 무방하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가령 작년 북의 핵실험 이후 남북이 경색되는 과정에서는 상당 정도 그 말이 설득력을 가졌다. 그러나 나는 그 시점에서도 북이 핵실험을 하고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된다고 해서 분단체제가 다시 안정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북이 핵실험을 했다는 것 자체가 과거와 같은 안정된 대결국면으로 분단체제가 유지될 수 없다는 직접적인 증거다.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나 그나마 긴장이 완화되고 핵문제 해결의 일차적인 가닥은 잡힌 상태이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본다면 북미관계가 정상화되고 나면 남북 간의 느슨한 연합을 만드는 데 무슨 결정적인 장애는 없다. 우리가 얼마나 준비하느냐의 문제만이 남는 거지. 절대로 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는 사라지는 것이다.

시민참여형 문제는 이렇다. 시민이 참여하느냐 마느냐 하는 흑백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최대한으로 시민참여의 폭을 넓히자는 것이고 또 그럴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이것이 갑작스런 통일로 가지 않고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가면 시민참여의 폭이 자연히 생기게 마련이다. 더구나 남쪽의 경우는 그동안 시민사회의 역량이 많이 축적되어 있다. 이 맥락에서의 시민사회는 시장부문까지 포함한다. 그러니까 민간기업의 활력과 제어력이 대단하기 때문에 공간만 생기면 채울 수 있게 되어 있다.

북의 경우는 물론 다른데 우리 식의 참여나 투입이 없다고 해서 민간의 작용이 없다는 것은 역사를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이다. 진행하는 단계에 따라서 다른 형태로 되고 점점 더 폭이 넓어지리라고 본다. 현재 시점에서 북의 시민참여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고 해서 시민참여형 통일의 개념 자체가 부정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상대적으로 시민참여의 폭을 최대한 확대하자는 것이지 정부를 제쳐놓고 통일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남북 간의 시민참여가 대등하지 않고 대칭적이지 않다는 사실 역시 편안하게 생각하면 된다. 북에서 시민참여가 남쪽보다 부족하면 통일의 과정에서 한반도 남쪽 주민들의 참여폭이 넓어지는 것이고 결과가 이쪽에 더 영향이 커지는 것이다. 북쪽 주민들의 욕구가 더 잘 반영되려면 북쪽도 시민참여가 더 넓어져야 하는 길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된다."

"보수진영 문제제기 중 정당한 것은 솔직하게 인정해야"

- 목표에 있어서는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제기될 수 있는 의문은 북한사회의 특수성이라는 측면에서, 과연 우리 식의 시민사회가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도 든다.
"갑자기 한꺼번에 통일하겠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된다. 그러나 우선 남북교류를 하고 화해를 하고 민간들이 접근해가면서, 이런 노력이 어느 정도 축적되었을 때 그 시점에서 남북의 느슨한 연합을 만들고, 그 연합이라는 구조 안에서 더 긴밀하게 교류·협력·화해를 진행하다가 그 다음 단계에 대해서 합의한다면 뭐가 그리 큰 문제인가. 물론 아쉬움은 많다. 왜 북의 민간부문은 아직까지는 주로 당국을 통해서 말고는 직접적인 의사표현이 안되는가 하는 아쉬움은 많지만, 그렇다고 시민참여형 통일이 안 된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 보수 우파들은 북한체제의 성격을 항상 문제삼지 않는가.
"보수우파 그 가운데서도 극우파들은 북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남한주도의 통일을 생각하니까,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솔직하다고 본다. 그런데 그렇지는 않다고 스스로 설정해 놓고서 사실은 이유가 안 되는 이유를 대는 것은 지적인 나태라고 본다."

- 그것이 비단 극단적인 극우세력만의 문제인가. 자유주의자들 역시 북한 체제의 성격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자유주의자뿐 아니라 더 급진적인 진보주의자들 역시 심한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지적 게으름을 보여주고 있다. 분단체제에 오랫동안 살다 보니 길들여져 분단체제를 자기 삶의 자연적인 조건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회과학이란 게 사회현실에 대한 피상적인, 관습적인 인식을 떨쳐버리고 본질적인 구조를 포착하는 게 사회과학의 목표 아닌가. 그런데 사회과학을 한다는 분들 자신이 발언 면에서는 그러면서도 정작 중요한 자신이 살고 있는 분단체제에 대해서는 인식이 없다는 게 이게 하나의 집단으로서는 분단체제의 위력, 그 정도의 자기재생산 능력을 가지고 그 속의 사람들을 길들이고 순치하는 힘을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이상은 이게 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북의 존재를 잊고 살려고 해도, 좋은 쪽에서는 자꾸 교류가 생기고 북과의 접촉이 증대하게 됨에 따라, 북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우리와는 다른 사회가 있고 그러면서도 원래는 우리와 하나였고, 당위적으로는 다시 합쳐야 하는 사회라는 것을 더는 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나쁜 쪽으로는 이쪽에서는 실패한 국가니까 제쳐놓고 우리끼리만 선진화할 수 없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북에서 고분고분 가만히 있는가. 핵무기도 만들고 미사일도 쏘고 계속 문제를 일으킨다. 왜냐하면 분단체제가 불안정해졌기 때문에 북에서도 뭔가 북미관계를 정상화하고 외국의 경제지원도 받고 하지 않으면, 과거의 냉전시대처럼 그런 것 없이 자신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니까 좋은 의미에서는 자꾸 교류, 접촉하면서 북을 의식해야 되고, 나쁜 의미에서는 이것이 안 풀리면 안 풀릴수록 한반도 전체가 불안해지고, 남쪽에서 주장하는 선진화나 경제발전, 이런 목표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다. 이제는 그런 것을 무시하고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 지적 게으름이라는 말씀이 인상적이다. 내부적 자기비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보수진영에서 주장하는 진보는 무능하다, 이런 식의 표현이 지금 대중적인 차원에서의 헤게모니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어떤가.
"이것은 보수진영 쪽에서 적극적으로 제기한 논의구도이다. 그런데 이렇게 문제를 설정해 놓고 보면 진보가 불리한 형국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그런 논의구도에 걸려들어 있는 면이 많다는 점에서는 무능하다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보수진영이나 또는 중도를 표방하더라도 실제로는 보수인사들의 무능에 대해서 더 예리하게 지적하면서 논의구도를 그렇게 끌고 간다면 담론투쟁에서 더 유리한 구도를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

하나는 보수진영의 문제제기 중에서 정당한 것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냥 보수니까 나쁘다 수구다, 이렇게 해서는 항상 반격을 받게 되고 대중적 설득력을 못 갖게 된다. 다른 하나의 요건은 소위 진보진영 자체의 약점에 대해서 오히려 보수진영보다 앞장서서 더 예리한 비판을 해야, 남들이 그런 약점을 포착해 놓고 의기양양해서 진보 전체가 무능한 듯이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인식 못하거나 그런 치부를 감추거나 얼버무리면서 나가다 보면 깨지게 마련이다."

"박정희 후유증, '끔찍하다'고만 해서는 치유 안 된다"

- 의제설정 자체가 잘못된 것인데, 거기에 진보진영이 휘말렸다. 또 보수진영이 제기한 주장 가운데 합리적인 것은 수용해야 한다. 이런 주장으로 들렸다.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그렇다면 박정희에 대한 선생님의 다소 긍정적인 견해와 변화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인가?
"변화랄 것은 없다. 나는 박정희 시대에 유신체제를 반대해서 나름대로 싸웠던 사람이고, 지금도 박정희 시대는 우리 역사에 끔찍한 시대고 다시는 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변화는 없다. 그런데 가령 대한민국주식회사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 CEO로서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서 충격을 받은 분들이 있다면, 하나는 내가 한 이야기를 직접 읽지 않고 보도를 통해서 보았기 때문일 것이고, 또 하나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단죄가 너무 단순화된 나머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여지조차 미처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글의 처음 시작은 이렇다. 여러 사람이 말한 대로 박정희의 CEO로서의 역할을 인정할 수 있지만, 어떻게 한 국가가 주식회사냐,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문필가로서 박정희에 대해서 쓴 그 글이 산문작품으로서는 괜찮은 작품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 그래서 내가 쓴 글을 읽지 않은 분들이 이런 질문을 물어보면 대답하기가 썩 내키지 않는다.

박정희 시대는 끔찍한 시대였다. 그리고 그런 시대에 대해서 향수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그 끔찍한 시대의 후유증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냥 끔찍하다고만 해서는 과거의 정신적인 외상이 치유가 안 된다. 정확하게 정황을 인식하고 정리해야 되는데, 그렇다면 그 끔찍한 시대에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동반하면서 우리 사회가 이룩한 엄청난 업적에 대해서 우선 인정해야 할 것이다.

박정희 시대에 이러저러한 경제적 성과가 있었기 때문에 그게 곧 박정희 혼자서 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렇지만 한 회사가 잘 된다는 것은 그 공장의 노동자들을 비롯해서 모두가 희생하고 열심히 했기 때문에 잘 된 것이지만, 실제로 회사를 굴려본 사람이나 유사한 일머리를 아는 사람은 그때 누가 나서서 하느냐에 따라서 그 성과가 많이 달라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박정희가 어떤 면에서 굉장히 유능한 CEO였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제기할 것은 대한민국이 어떻게 공장이나 회사일 수 있느냐? 이것은 다른 차원에서 볼 것이 많고 종합적으로 볼 때 이러저러한 점에서 평가할 것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그 시대는 우선 경제발전이란 측면에서 그건 지속불가능한 발전이었고, 실제로 그 체제는 지속되지 못했다는 것을 인식해야겠다. 또 그 시대에 이루어진 업적 중에는 노동자들의 희생만이 아니라 실제로는 민주화운동세력의 기여도 적지 않았다. 단순히 민주화 기여만이 아니라 경제성장이 그나마 이루어지게 하고 훗날의 새로운 단계를 준비하는 역할을 민주화운동세력이 했다는 자부심을 갖자는 것, 그런 자부심을 근거로 해서 박정희 시대에 대해서 인정할 건 인정하는 넉넉한 자세를 갖자는 취지였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그렇다면 역사인식론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까. 가령 1960년대의 경제발전에 대한 인식을 식민지 시기까지 소급하면 식민지 근대화론과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 있는 게 아닌가. 낙성대연구소의 연구나 뉴라이트의 근대화 인식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최근의 신문기사를 보니, 안병직 선생님이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 상호의존적 차원에서 한국자본주의의 이만한 현실을 만들었다는 시각도 제기하고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나?
"식민지 근대화론은 박정희 예찬론으로 드러난다. 안병직 교수의 주장이 그렇다. 나의 박정희론이 박정희 시대를 무조건 부정하고 욕하는 식으로 가지는 말하자는 주장에 한해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서 무조건 부정하고 욕하지 말자는 주장하고는 통한다. 그것은 나쁠 것 없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단순화가 문제지, 거기에 적시된 실증적인 사실을 전면적으로 부정해서는 제대로 된 역사의식에 도달할 수 없다.

문제는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식민지 수탈론, 식민지 시대에 전혀 근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당하기만 했다는 주장이나 둘 다 근대는 좋은 것이라는 주장을 깔고 있다. 그게 아니고 근대라는 것이 부득이 적응하고 살아야 할 현실이고, 또 근대 내에 좋은 면도 물론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것은 극복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고 한다면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근대적인 부정보다는 나 같은 사람의 태도가 더 적절한 반응이라고 본다. 이것을 당신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오해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거의 모든 진지하고 지적인 작업, 예술적인 작업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처신에 조심하고 발언 역시 가려가면서 해야 되지만, 어떤 이야기는 또 오해의 소지가 있더라도 해야 되는 것은 아닌가.

거듭 이야기하지만 나의 박정희 시대에 대한 글을 직접 읽어보면 그것이 박정희에 대한 긍정이라거나 식민지 근대화에 대한 긍정이 아니라는 점은 웬만한 독자는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창작자가 독자에게 자신의 작품을 직접 읽어달라는 소망과 같이 나도 여러 독자들이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변혁'은 분단체제의 변혁">

-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균형감각이 돋보이는 동시에 그 표현에 예기치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측면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표현 자체의 외연이 넓어지다 보니까, 독자의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오해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 부분과도 연결될 듯한데 '변혁적 중도주의'라는 것 역시 선생님께서 하나의 의제를 설정하신 건데, 이 역시 명료하게 정리되지는 않는 듯하다.
"나는 다른 사람의 중도론과 나의 변혁적 중도주의가 구별되는 게 내 변혁적 중도주의가 명료한 개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변혁이란 무엇인가? 나는 이것을 명시하고 있다. 물론 분단체제가 무엇이냐가 뚜렷하지 못하니까 명료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변혁이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변혁이나 삶의 변혁이 아니고, 한반도 중심으로 이야기할 때는 한반도 주민의 입장에서는 분단체제의 변혁이라는 것이다. 분단체제의 변혁은 단순한 통일이 아니고 남북이 지금보다 나은 사회를 한반도에 건설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나름으로는 책임있는 설명을 제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것을 중도주의라고 하는가. 한반도 분단체제의 변혁이 전쟁을 통해서는 안된다. 가령 전쟁을 통해서 해야 한다면 중도주의가 아니라, 반공 북진통일로 단결해야 할 것이다. 갑작스럽게 통일이 된다면 광범위한 중도세력보다는 튼튼한 주도세력이 있는 것이 더 낫다. 독일의 경우는 사태의 시발은 동독 민중들의 움직임에서 가능했지만, 그것을 끝내게 한 것은 콜 수상이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때의 통일은 동서독 민중의 광범위한 참여보다는 주도세력의 확고한 비전과 실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것이 남북한에서는 안 먹힌다.

그러니까 남한에서 먼저 민중혁명을 한 다음에 통일을 하면 된다는 노선도 나는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전쟁을 하지 않고도 북의 통일노선과 남쪽의 반미자주 통일 노선이 결합해서 미군을 철수시키고 통일한다는 주장도 비현실적이라고 본다. 그러다 보면 좌우의 양 극단의 주장을 배제하고, 또 좌에는 두 개의 극단적인 주장이 있는 셈인데, 중간에 있는 광범위한 세력이 통일 이전에 남쪽에서 할 수 있는 개혁은 개혁대로 추진하면서, 동시에 이러한 통체적인 개혁을 남북의 통합과정과 연계해서 차분차분 남북통합을 추진해 나갈 때 비로소 통일도 가능하고 한반도 전체의 선진사회 건설도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내가 말하는 변혁의 개념에 동의하면 답이 중도주의 밖에 없다. 이 개념이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명료하지 않지만, 분석해 보면 어느 정도 그 개념이 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상대적으로 다른 중도노선에 비해서는 명료해 보인다."

- 황석영 선생께서 최근 제기하고 있는 중도주의의 주장을 정치적 층위로 한정시킨다면, 선생님의 변혁적 중도주의와 어느 정도는 유사한 주장 아닌가?
"나는 황석영씨의 문제의식이 나하고 크게 다르다고 보지 않는다. 그런데 황 선생은 첫째 그가 이론가가 아니니까 변혁적 중도주의를 정리하진 않았다. 또 하나는 실행하는 방식에 있어 나하고 다르다. 그 스타일도 다르고. 나는 작가가 가령 금년의 대선 판국에 참여하는 건 나쁠 것 없다고 본다. 내 경우는 개인적으로 그러고 싶지 않은 면도 있고, 그럴 수 없는 공적인 처지랄까 이런 것이 있어 신중한 행보를 해야 하는데, 황 선생은 그런데 구애되는 것이 없다.

그런데 얼마나 현명하게 할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 이번에 손학규 전 지사가 탈당할 때 공개적인 지지를 보냈는데,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손학규씨를 대통령 감으로 지지해서가 아니고 불쏘시개가 되겠다면 잘한 일이다, 이렇게 지지한 것이니까 그것 자체가 큰 문제가 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선후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손아무개가 제일 좋다든가 또는 다른 누구가 제일 좋다든가 이렇게 지지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그때는 이것이 현명한가 아닌가를 따져보아야 한다."

"변혁적 중도주의가 못 선다면 또 한 번의 불행"

- 중도주의와 관련해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현명하고 튼튼한 중도세력이 결집되어야 한다면, 담론이 아닌 현실정치의 차원으로 이월시킨다면 어떤 식으로든 기존의 제도정당이 헤쳐 모여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흐름도 있는 것 같다. 동시에 박세일 교수가 제기하고 있는 공동체 자유주의의 성격이 선생님께서 제기하신 중도주의 안에 하나의 모델로서 형식을 갖출 수 있는 측면들도 있는 것 아닌가.
"내가 말하는 변혁적 중도주의가 어떤 정당이나 광범위한 정치세력에 의해 당장에 채택될 전망은 없다고 본다. 그 점에서 정치인들이 말하는 중도와 다르다. 정치인들이 중도를 말할 때는 정치적 대립이 있는 상태에서 자기 표뿐만 아니라 부동표까지 잡겠다는 의미에서 중도를 말하니까, 그것은 당장에 다수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다. 나는 변혁적 중도주의를 국민의 과반수가 이해해서 지지해 준다면 행복하겠지만, 그럴 전망을 보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변혁적 중도주의가 아니고는 우리 사회 내의 소모적 갈등이 정리될 길이 없다는 점에서 길게 보자면 다수세력 형성을 위한 기획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금년의 정치정세와 연결시킨다면 변혁적 중도주의가 국민들 간에 확산되는 데에 유리한 대선결과가 있고 불리한 대선결과가 있다는 것은 맞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는 유리한 결과를 위해서 각자 자기 나름으로 노력할 필요는 있다. 이것을 마치 이제는 태평성대가 와서 작가가 글만 쓰면 되지, 문인들은 글만 쓰면 되지 왜 나서서 정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느냐 하고 비판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박세일 교수의 '공동체 자유주의'는 분단체제 변혁을 핵심과제로 설정하지 않기 때문에 변혁적 중도주의와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통상적인 중도주의에 해당할지 여부도 그것이 과연 우리 사회의 신자유주의와 우경화세력을 실질적으로 견제하는 효과를 지닐지 아니면 이를 적당히 호도하는 역할로 끝날지 지켜볼 일이다"

- 중도주의의 탄력성과 유연성은 거듭 인정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사만을 놓고 보아도 해방 직후의 여운형 노선이나 이승만 정권 시절의 조봉암 노선이나 중도주의 노선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중도는 양파 사이에서 배제될 운명에 있지 않았나?
"그게 20세기 역사의 불행이다. 그러나 20세기의 역사가 그러했다고 되풀이된다고 우리가 낙담하거나 패배주의적 의식에 빠질 필요가 없다고 본다. 해방 직후에 몽양 같은 분이 사실은 한쪽에서는 좌파라고 했지만 중도주의의 길을 모색했던 분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원래는 우파지만 중도주의로 기울었다가 암살당했다. 그런 중도주의적 노력이 좌절된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전쟁이란 엄청난 불행을 겪었다. 그것이 전쟁이 휴전하면서 분단체제가 고착되었기 때문에,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중도주의가 숨쉴 공간이 아주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1987년 이후에 나는 이것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흔들리다가 제자리로 돌아가느냐, 아니면 다시 굳어지고 마느냐 하는 의문의 여지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2000년 6ㆍ15 이후에는 흔들리는 정도를 넘어서 분단체제를 해체하고 새로운 역사의 단계로 가는 길이 열렸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못하면 엄청난 재앙이 닥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까지 왔다고 본다. 그래서 분단체제 해체기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 해체기로 보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통일이 된다는 낙관주의는 아니고, 이것은 제대로 된 남북통합을 이뤄내거나 크게 망하는 갈림길에 들어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과거와 같은 안정적 분단체제의 복원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다. 그래서 지금 역사가 1987년 이후로는 사실 과거(한말, 일제시대, 해방직후)에는 없었던 역사가 시작되었다. 또 그것이 2000년대 들어와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기 때문에, 이제는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여러 가지 선택이 다시 가능해진 상황이 되었다고 보고, 이것을 제대로 한다면 21세기에는 우리 한반도 주민들이 또 한민족이 20세기에 불가능했던 새로운 성취를 이루는 것이다. 이런 기회를 맞이해서도 변혁적 중도주의 노선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다면 21세기에는 또 한 번의 불행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생각이다."

"한국문학의 종언? 문학 떠난 현역 문인 못 봤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한국문학과 지식사회로 논의의 방향을 선회시켜 보면 지식인의 기능과 의미가 대중적 차원의 지식인에 대한 신뢰감, 발언이 가진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선생님 세대에 대한 대중적 기대는 여전히 높으나, 중진급 또는 소장지식인들이, 그러니까 현실과 세계를 폭넓게 읽으면서 패러다임을 만드는 지식인들의 출현이 힘들어진 시점인 것 같다. 대중들 역시 지식인의 발언에서 크게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것 같다. 작가로 축소시켜 본다면, 작가 역시 현실 속에서 유효하게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고 보는가?
"작가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지식인들이 과거처럼 아무런 전문성 없이 개입하기 어려워진 세상이다. 어떤 점에서 그것은 발전이겠다. 하지만 전문가만이 자기 전공분야에 대해서만 발언하는 세상은 그것도 끔찍한 세상이다. 자기 분야에서 충실하게 활동하고 실력을 쌓으면서도 또 전체에 대해서는 각자가 자기 나름으로 소신을 갖고 발언해야 할 것이다.

우리 문단에서 김지하 시인이나 황석영 작가, 나 자신, 그리고 선배 중에 고은 시인 등이 발언권을 확보한 것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였다. 70년대 이후, 길게 잡으면 60년대 이후다. 그리고 나서 그때 확보한 입지를, 자신의 문필활동을 계속하고 현실에 대한 진지한 사유를 계속하면서 발언해 온 사람은 그런 기능이 유지되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발언권이 약해졌다. 그런데 그 다음 세대로 내려가면 민주화운동 자체에서는 선배세대에 눌려 그만한 입지를 못 얻었다. 그때 민주화운동에 관여했던 사람은 그런 사람들대로, 또 당시에는 너무 젊어서 70년대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지 못한 이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자기 발언권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에 정말 전문가들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는 이슈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읽고 거기에 적절히 대응하는 사람에게 그런 기능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

나는 그것이 다른 나라에서는 몰라도 한국에서는 이런저런 세계적으로 흔히 공적지식인(public intellectual)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이 선진사회에서는 축소되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는 가능성이 풍부하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우리 시대의 과제가 분단체제의 변혁이고 이것은 시민참여형이라는 한반도 특유의 방식으로 남북통합이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전문가의 지식도 물론 들어가야겠지만 일반 시민으로서 특히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고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 동시에 공적인 인간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발언할 여지가 크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잘 활용하는 지식인들은 발언에 힘이 붙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아무래도 대중의 인정을 받기 어렵겠다."

- 근대문학이 갖고 있던 퍼블릭 미디어(public media)로서의 성격이 약화되고 있다. 동시에 문학의 공적인 현실개입능력이 소멸하여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가라타니 고진의 지적도 있다. 그런 와중에 선생님의 평론집을 읽어보면 오히려 한국문학이 할 일이 많고, 오히려 다양성이 확보되고 있다 하는 시선을 보여주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가라타니 고진은 개인적인 친분도 있는데 아주 훌륭한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그의 글은 가라타니 글 중에서 별로 잘 쓴 글이라 보기 어렵다. 더군다나 한국문학에 대한 진단은 본인도 인정하듯이 특별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얻어들었다는 얘기는 내가 보기엔 낭설을 잘못 들은 것이다. 그런 사람이 한국문학도 끝났다고 한마디 하니까 너도나도 가라타니를 들먹이는데, 나는 솔직히 비애를 느낀다. 우리가 이것밖에 안 되는가 하고.

그가 한국문학은 좀 버텨줄 줄 알았더니, 최근 들어보니 유수한 잡지의 편집자들이 한국문학을 다 떠났더라 하는데. 유수한 잡지의 편집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내가 아는 잡지 편집자 또는 현역문인 중에서도 최원식, 김명인, 백 아무개 등 하나도 문학을 떠난 사람이 없다. 그런 개인들의 거취를 떠나서 한국문학이 문제도 많지만, 문학의 종언이니 또는 더 좁혀서 가라타니가 말하는 근대문학의 종언이니 하는 주장은 가당치 않은 이야기라고 본다. 하나의 참고는 될 만하고, 일본문학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는 재미있다. 그러나 그 글을 보면 논리의 비약과 개념의 착종이 많다. 더구나 한국문학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안 맞는 이야기고. 그리고 문장 자체가 가라타니의 글 중에서도 가히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 그렇다면 선생께서는 한국문학이 여전히 건재하고, 감당해야 할 공적기능이 여전히 유효하고, 실제적으로 대중독자들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보나?
"대중독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아무래도 영화와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비하면 떨어진다. 문학의 기능이란 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대중독자에게 미치는 영향도 한국문학에서는 여전히 상당하다. 시집이 수천 부씩 팔리는 시인이 어디 한둘인가. 그중에는 더군다나 좋은 시집이 수천 부, 심지어는 수만 부 팔리기도 하지 않나. 이것은 일본이나 영미 측의 문인들이나 학자들이 보면 부러워서 죽는다. 그런 것만 봐도 한국판을 일본이나 서양 기준으로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어쨌든 힘있는 신인들도 계속 나오고 수십 년씩 활동을 계속하는 원로들도 건재하고. 구체적으로 어느 작품이 좋고 나쁘고를 이야기해야지, 근대문학이 끝났는가 안 끝났는가 하는 다른 사람의 별로 적절치 않은 구도설정에 맞춰서 논의하는 것은 의미 없다."

6ㆍ15시대 문학론이 제기된 사연

- 그러나 가라타니의 주장에서 하나의 단서를 얻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한국문학에 대한 선생님의 긍정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힘들다. 내 판단에는 기왕의 선배작가들이 갖고 있는 영향력과 효과는 인정하겠으나, 신인들의 등장, 또 그들의 작품들이 의제설정 기능은 없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창비 식의 독법, 예를 들면 6ㆍ15 문학론에 대한 논란도 있는 것 같다. 가령 <문학과사회>의 경우, 소설이나 문학의 공적인 의제설정 기능을 여전히 기대하는 것은 현실의 소설적 흐름에서 보았을 때는 빗나간 지적이라는 반론도 있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중견작가들의 활동력이 약화되었을 때, 그것을 대체할 만한 중간세대들이 독자들과의 관계 안에서 유력하게 기능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문학작품이 공적 의제를 설정하는 기능은 꼭 작가가 의도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의도와 무관하게 어떤 작품이 나오느냐에 일차적으로 달려 있다. 그것을 독서 대중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담론이 전개되는가가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비평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래서 작품에서 공적 의제가 작품에 함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없다 하면 약화되는 것이고. 작품에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은 공적 의제를 비평가가 억지로 설정하려 하면 그것은 결국은 반론에 부딪혀서 무너지게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가지 주제가 생각나지만 6ㆍ15시대의 문학, 그 문제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하자. 우리 집안 이야기지만 창비에서 6ㆍ15시대 문학이라는 주제를 내놓은 것은 내가 아니다. 나는 분단체제 해체기를 이야기했고, 물론 그 연장선상에서 6ㆍ15시대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창비라는 잡지 역시 6ㆍ15를 중심으로 문학 특집이 아닌 다른 특집을 하기도 했고. 그런데 이것을 문학에도 적용해 보자는 이야기를 한 편집위원이 제기했고, 그런데 정작 본인은 한발 빼버렸다. 그런데 순진한 한기욱 교수가 총대를 메고 나서서 창비 안팎으로 포화를 맞았다. 나는 한기욱 교수의 평론에 대한 내외부의 비판은 상당수 옳다고 본다.

그러니까 설혹 6ㆍ15시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문학작품에서 직접적인 반응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생산적이지 못하고, 자칫하면 어떤 것을 침소봉대하거나 작품을 왜곡해 해석할 수 있다는 지적은 대부분 타당하다고 본다. 그런데 그렇게 비판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으로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이 역시 곤란하다. 한기욱 교수의 그러한 문제제기, 또는 그런 식의 설정을 해본 문제의식에서 타당한 것은 뭔가, 또 나 자신이 과연 그런 타당한 면을 충분히 인지하고 의식하면서 작업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아까 사회과학계를 잠깐 이야기했지만, 어떤 분은 분단을 예리하게 의식하지만 분단체제에 대한 인식이 없고, 어떤 분은 체제에 대한 관심은 크지만 분단에 대한 의식은 없다. 그런데 이것은 상당수의 작가들에게도 이런 비판은 통한다고 본다. 특히 비평가들의 경우가 그렇다. 6ㆍ15시대의 문학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지금 무리가 따르지만 6ㆍ15시대를 한번 제대로 성찰하면서 비평작업을 할 필요는 없겠는가 하는 과제는 남아 있다고 본다.

그런데 한기욱씨의 경우 작품해석에서 더러 무리가 생긴 것도 있지만, 그런 것을 통해서 눈에 잘 안 띠는 면을 이끌어낸 좋은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문제는 6ㆍ15시대에 대한 인식이 철저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가령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한국사회를 시대구분할 때 IMF를 중요한 분기점으로 삼는데, 우리 남쪽 시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IMF가 크지만, 한반도 전체의 역사 흐름에서는 6ㆍ15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 자체는 맞는 이야기라고 본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적용되는 단위가 다르지 않나. IMF는 남한사회가 주로 해당단위가 되고, 6ㆍ15시대는 한반도 전체가 일차적인 해당단위가 되니,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6자회담 참가 당사국 모두가 관여된 동북아 정세도 해당범위에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 적용범위가 다르다 보면, 남한 내부의 문학과의 관계도 훨씬 더 우회적이고 성과가 나오더라도 장기적으로 나온다는 식으로 가야할 텐데, 그런 점에서 너무 단선적으로 간 것 같다.

1997년과 2000년대의 관계도 여기서 길게 논의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좀 더 정치하게 정밀하게 규명해 볼 문제라고 본다. 둘을 이거냐 저거냐 하고 양자택일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IMF와 2000년대, 그리고 1987년도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1997년과 2000년대는 상반되는 관계인가 아니면 오히려 연장선상에 있는가 아닌가 등에 대한 복잡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래서 6ㆍ15시대의 문학론의 경우는 나의 6ㆍ15시대론을 창비 편집진의 일부가 문학에 적용해 보려는 시도인데, 이에 대한 비판은 창비의 내부에도 있었고 밖에서도 있었지만 이게 끝난 이야기는 아니다는 점은 말씀드리고 있다."

"창비는 문학권력? 문학사회학적 접근이 아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여전히 반(反)창비노선, 반민족문학 노선이 격렬한 측면이 있다. 리얼리즘 노선에 대한 마타도어 역시 끈질긴 면이 있다. 창비 편집진에서 기획을 해서 문제설정을 했을 텐데, 편집진들이 선생님의 큰 담론과는 다른 창발적 논의의 계발에서는 실패가 아닌가. 창비라는 시스템이 재생산의 측면에서는 다소는 실패하고 있는 측면에서 이러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6ㆍ15시대의 문학론 역시도 단순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선생님의 말씀처럼 중기적이고 장기적인 반향이 있을 때 논리적 검토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말씀하신 것은 매우 온건한 비판이고 온당한 지적이다. 사실은 이명원 교수 자신부터 더 근본적인 비판의식, '문학권력'에 대한 시각을 보여준 것 아닌가. 지금 말한 것도 문학권력화했기 때문에, 창비가 창조적인 재생산이 안 된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것도 같은데. 더 적나라한 표현을 한 사람이 있지 않나. 이 형도 그렇지 않나?"

- 제가 제기한 문제는 특정 집단과 개인의 환원론이 아니다. 구조에 대한 논의인데, 그 부분도 오해된 측면이 있다. <인물과사상>의 선생님 인터뷰도 읽었는데, 문학권력을 둘러싼 의제들도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물과사상>에서 문학권력론은 잠시 언급하고 넘어가면서, 한편으로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을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 문학권력 담론 자체에 대한 의문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에 권성우씨가 쓴 글을 보니까 그 대목을 딱 따서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비판을 했더라.

나는 문학권력 논의를 하기 전에 일반론을 이야기하고 싶다. 평론가가 꼭 문예비평만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문학사회학적인 글을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문학사회학적인 글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하나는 문학텍스트에 대한 문학사회적인 분석이 있다. 좁은 의미의 문학사회학이다. 그런 경우에는 그 텍스트에 대해서 문예비평가로서의 읽기가 기반이 돼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가령 최근에 다시 불거진 창비의 문학권력론에서는 박민규 소설이 초점이 되어 있는데. 내가 볼 때는 박민규 소설을 제대로 읽지 않고 그냥 여기저기서 작품의 어느 대목이나, 작품 바깥에서의 발언을 고지식하게 해석해서, 그런 소설가를 인정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하면서 그것을 문학권력론과 결부시키는 것인데. 어쨌든 박민규가 되었든 누구이든 텍스트에 대한 문학사회학적 분석은 그 텍스트에 대한 제대로 된 문예비평적 독해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 다음에는 텍스트보다는 문단사회나 출판현실, 독서계의 현실에 대한 사회학적인 분석이나 평가를 문학평론가가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것도 문학평론가가 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한데, 그 경우에는 문학텍스트가 일차적인 자료가 아니기 때문에, 보통 사회학자가 어떤 사회현실을 분석하려 할 때 일차자료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비평가도 최대한 해야 한다고 본다. 가령 창비의 구조에 대해서 말한다고 한다면, 이것을 창비의 밖에 있는 사람이 제대로 와서 실증적인 조사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어쨌든 당사자에 대한 인터뷰를 한다든가, 내부 구조에 대해서 알아볼 것을 알아본다든가 하는 게 일차자료다. 그게 아니고 이 경우에는 이차, 삼차자료에 해당하는 활자자료, 신문기사를 통해 하는 것은 문학사회학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창비의 문학권력에 대해서는 작품비평이 아니라 출판현실이나 창비의 내부사정이니 하는 이런 것에 대한 충분한 조사가 없는 단정이 들어있는 것 같다. 어쨌든 그것은 제대로 된 문학사회학적 접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제대로 된 실증과 분석으로, 창비 더 많은 논의했으면"

- 참고로 권성우 선생의 글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부산에서 <오늘의 문예비평>이라는 잡지가 나온다. 사실 내 나름으로는 상당한 애정을 가진 잡지다. 이번에 혁신호를 냈다기에 그래서 읽게 되었다. 어느 한 글은 박민규에 대한 권유리아씨의 비판적인 평론이었는데, 그것은 문학평론에 해당하는데 내가 보기엔 너무 고지식하게 접근한 것 같다. 박민규의 <핑퐁>의 끝에 가서 "세상을 언인스톨(uninstall)한다"는 것으로 결정을 하는데, 그것이 곧 지구를 부정하는 반지구적인 소설로 단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민규 소설의 경우는 그 텍스트의 결을 잘 따라서 읽는 게 중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권성우씨도 문제의식은 박민규나 황병승 같은 사람을 너무 띄워 주어 한국문학이 어디로 가느냐는 염려다. 권성우씨의 경우는 그것을 내가 박민규를 인정한 것을 갖고 창비의 문학권력론과 다시 연결시켰다. 거기에는 어쨌든 박민규에 대한 문학비평이 별로 없다. 그리고 본인이 그런 게 아주 없는 것이 아니고, 안 쓴 것이 아니고 그 판단은 권유리아씨와 대동소이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 경우에도 황종연씨와 대담을 하면서 몇몇 젊은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끝에 가서 박민규의 <카스테라>라는 단편집을 읽으면서 한국문학의 보람을 읽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유독 박민규만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인터뷰에서도 김애란과 김연수 이야기를 했고. 요즘 젊은 비평가들이 전 세대를 거론 안 하려고 하는데, 그 앞 세대의 작가 가운데서도 내가 높이 평가하는 작가들이 많고. 그것보다도 창비에 대해서 이런저런 판단을 많이 하는데, 그것은 문예비평이 아니고 사회학적 분석이다. 사회학적 분석을 하려면 제대로 자료조사와 분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권성우씨 개인의 문제이기보다는, 우리 평단에 문학보다 사회비평에 해당하는 글을 쓰는 비평가가 많은데, 그걸 제대로 해보자는 느낌이다."

- 이런 느낌도 있다. 나나 권성우 선생이나 텍스트에 즉해서 작업을 안 하는 것이 아닌데, 역시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속성이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미디어가 뉴스화에 필요한 논쟁적 주제의 글들만 노출시키는 측면이 있다. 개인적인 입장인데 사실 지금 단계에서는 기왕에 제기되었던 문학권력 논쟁이 정리되고 해소될 단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논의 자체가 모범답안 식의 순환논법을 노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순환논법이라면 해소되는 것이 맞지만, 그렇지 않고 제대로 된 실증과 분석에 입각한 논의라면 창비에 대해서도 더 많은 논의가 있었으면 한다. 왜냐하면 나 역시 동료들에 대한 불만이 있고, 동료들 역시 불만이 있을 텐데, 그것을 남이 분석해준다면 남의 코로 숨쉬는 것이 아닌가."

- 어쨌든 논쟁의 과정에서 창비를 제3자로 보고 있는 건데, 창비가 변화해가는 와중이고 비판했던 부분에 대한 창비 나름의 탄력적 적용의 느낌이 있다. 다만 창비가 갖고 있는 독법에 대해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개인적인 소회가 있다.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린다.

태그:#백낙청, #변혁적 중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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