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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를 끌어온 한미FTA 협상이 결국 타결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한미FTA 협상 타결내용을 각 분야별, 쟁점별로 진단할 예정입니다. 첫번째 진단대상은 '개성공단'입니다. 이와 관련 이해영 한신대 교수가 글을 보내와 싣습니다. <편집자주>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은 정말 부시의 선물일까 2007년 1월 24일, 개성공단 정배수장 공사 현장에서 바라본 개성공단의 모습.
ⓒ 오마이뉴스 김태경

한미FTA가 타결되었다. 타결의 수준 또한 기존 예측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중 한가지 매우 흥미로운 합의내용이 들어 있다. 바로 개성공단이다.

필자 또한 경제규모로 볼 때 미미한 개성공단의 원산지 인정 정도는 부시 미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선물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긴 했지만, 미 의회의 반발을 감안하면 그 가능성이 아주 높지는 않다고 보았다.

설사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미 의회, 즉 북한인권을 내세운 민주당과 김정일의 통치자금 운운하는 공화당의 동의를 얻기는 매우 힘들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도 얼핏 놀라운, 높은 수준의 합의안을 도출하였다. 간략히 요약해 보자. 아래는 외통부의 국회보고자료에서 추린 내용이다.

1. 개성공단관련, 역외가공지역(OPZ) 지정을 통한 특혜관세 부여를 원칙적으로 인정
2. 양국간 '한반도역외가공지역 위원회"에서 일정 기준(*)하에 OPZ를 지정할 수 있는 별도 부속서 채택(* 한반도 비핵화 진전, 남북한 관계에 미치는 영향, 환경기준, 노동기준 및 관행 등)
3. 협정발효 후 동 위원회의 심사결정을 통해 개성공단 또는 여타 지역을 OPZ로 선정 가능


그런데 가만히 다가가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생기는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부분 치명적인 것들이다.

개성공단 합의, 번지수 없는 전세계약서

첫째, 단적으로 말해 협정문에 '개성공단'이라는 표현이 들어있는가. 혹 있다면 협정문 본문인지, 부속서인지, 비공개 부속합의서(side letter)인지가 궁금하다. 주의에 탐문하니 없다고 한다.

이 정황을 정부는 "개성공단이라는 표현을 삽입하지 않고도 그에 상응하는 효과를 거둘 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조항이 더욱 의미있다'는 그런 조로 설명한단다.

허나 한미FTA는 조약이고 국가간의 계약이다. 계약서에 계약의 대상을 명기하지 않는 것은 예컨대 전세계약서에 번지수를 기입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개성공단이 양국간 초민감품목가운데 하나이고 '하이폴리티컬'한 사안이라 손치더라도, 협정문을 구성하는 비공개 부속합의서에 조차 이것이 명기되지 않았다면 개성공단의 미래 법적 지위와 관련 새로운 불확실성만 키운 셈이다.

▲ 개성공단 내 의류제조업체인 신원 공장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북한 여성 노동자.
ⓒ 오마이뉴스 김태경
둘째, '악마는 디테일(세부사항)에 숨어 있다'. 한미FTA 협상 결과 우리가 챙겼다고 함부로 주장되는 것들 안에는 상당한 '악마'가 숨어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표적으로 개성공단을 비롯해 자동차 부문에서 우리의 비관세장벽 양보안, 미국이 금융세이프가드 수용을 대가로 요구한 조건을 들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라도 협정문은 조속히 공개되어야 한다.

개성공단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반도역외가공지역위원회의 요건으로 합의문은 '노동기준 및 관행'을 들고 있다. 십중팔구 미 민주당을 의식한 기준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북한은 스스로를 공산주의 사회, 즉 계급없는 사회로 이해한다. 그래서 자본가가 있을리 만무하고 착취가 있을 수도 없다. 그래서 파업도 없다.

한미FTA 협정문의 다른 부분 즉 노동챕터에서 민주당의 요구를 강하게 반영하여 '국제노동기준 준수 의무'가 인용되고 있다고 할 때, 여기서 말하는 노동기준이란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을 의미한다고 보면된다. 그 기준의 핵심이 노동3권이고 특히 단체행동권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자본가의 존재를 전제하고 이에 맞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국제기준을 정한 것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계급없는 사회'인 북한에서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적어도 체제 교체를 상정하지 않고서 말이다.

이 합의가 알려지자 말자 국회 통외통위 위원장 김원웅 의원은 개성공단을 가리켜 "한국기업의 자본과 북한의 노동자가 결합된 형태"라는 촌평을 한 바 있다. 그렇다면 OPZ내 북한 노동자들은 남한의 자본가를 대상으로 노동3권, 특히 단체행동권을 주장해야 할 것인가. 북한은 그렇다면 OPZ만을 위한 노동 특별법이라도 만들라는 말인가.

노동기준과 비핵화... '쌩뚱맞은' 조건들

셋째, 더욱 가관인 것은 한덕수 총리의 해석이다. 개성공단과 관련 한 총리는 "한반도를 우리의 영토로 한다는 헌법조항과 일치하는 개념을 집어넣었다"고 했다. 우리 헌법에 나오는 영토조항, 즉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를 인용한 것이다.

북한이 우리 '영토'라는 이 황당무개하고 냉전적인 사고가 남북한 화해협력를 강조하는 참여정부의 총리로서 아주 부적절한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런 생각은 그 자체로 매우 위험하다.

한미간 합의안에는 한반도역외가공지역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과 관련 "양국 공무원으로 구성, 협정발효 1년 후 개최"한다고 적시되어 있다. 한 총리의 말에 따르면 북한은 우리 헌법에 따라 우리 영토임에 분명한데, 왜 미국 공무원이 우리 영토내 사안과 관련된 위원회를 함께 운영해야 하는지 굳이 주권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생뚱맞기는 매일반이다.

▲ 계급없는 사회인 북한에서 국제노동기구의 노동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측면에서 한미FTA협상에서 개성공단 관련 합의는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 사진은 개성공단내 '좋은사람들' 공장에서 남녀 속옷을 만들고 있는 북측 노동자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넷째, 한반도OPZ와 관련 아무래도 가장 심각한 요건은 '한반도 비핵화'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6자회담에서 신물나게 보듯이, '비핵화'가 도대체 무엇인지 북한이 다르고 미국이 다르고, 또 우리가 다르다. 한 마디로 그 자체가 고도로 정치적인 사안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첫째,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 제기하는 '비핵지대화'개념은 그 범위에 있어 한반도 전역에서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내의 핵무기와 특히 미국의 핵우산 제공금지를 다 포함한다. 당연히 여기에는 미 핵항공모함이나 핵잠수함의 한반도 영해 기항도 금지해야 한다는 요구가 담겨있다. 반면 미국이 말하는 비핵화란 '북한의 모든 핵프로그램을 폐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그래서 이른바 핵폐기라 하더라도 그 함의는 전혀 다르다. 북한이 폐기대상으로 삼는 것은 '핵무기 및 핵무기 계획'인 반면, 미국은 '현존하는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 즉 이른바 평화적 핵이용까지를 다 포함하는 훨씬 광범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OPZ의 단서조항인 '한반도 비핵화'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확실한 한가지는 북한이 말하는 그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요구를 수용했으니 만큼 미국이 말하는 비핵화, 즉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의 철폐를 의미할 가능성이 높다.

만일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FTA정부가 그렇게 자랑하는 개성공단 합의는 사실 6자회담이후 조성된 북미간 긴장완화,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새로운 흐름에 스스로 역행하는, 그래서 그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그저 희망사항에 불과할지 모른다.

개성공단 이슈, 남북관계 발목을 잡을 수도

사실 개성공단 이슈는 노 대통령 스스로 언급했듯이, 범여권의 한축을 친FTA블록으로 분할 견인해 내는 정치적 효과를 지닌다. 나아가 북미긴장완화 국면에서 새로운 남북관계의 상징적 아이콘으로 개성을 배치하고, 혹 있을지 모르는 남북정상회담을 여기에 엮어 6자회담-개성-정상회담이라는 환상의 트라이앵글로 집권후반기를 화려하게 마무리짓는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상 북한의 체제교체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한반도OPZ의 전제조건들은 오히려 남북관계를 성격이 다른 한미관계에 과도하게 결박하고 미국의 대북, 대아시아 전략의 하위종속변수로 전락시켜 남북관계의 새로운 짐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즉 스스로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라면 개성공단은 한미FTA에서 차라리 빼는 것이 옳다.

덧붙이는 글 | 이해영 교수는 한신대 국제관계학부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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