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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를 끌어온 한미FTA 협상이 결국 타결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한미FTA 협상 내용을 각 분야별, 쟁점별로 진단할 예정입니다. 첫번째 진단대상은 '개성공단'입니다. 이와 관련 송기호 변호사가 글을 보내와 싣습니다. <편집자주>
▲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중앙일보>와 열린우리당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을 '영웅'으로 부르는 사이, 미국은 세 가지 차원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에 대한 법적 검증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첫째, 미국 통상법에 따라 미국의 각 산업 분야별 위원회(advisory committee)가 협정문을 평가하는 중이다. 미국의 농업계·식품업계·영화업계·자동차업계·섬유업계 등 30여개가 넘는 이들 위원회 소속 700여명의 산업종사자들이 한미FTA 협정문을 검증하고 있다.

믿기 어렵거든 지금 미국 통상대표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미국-호주 FTA 사례를 보라. 이 FTA가 타결된 때가 2004년 2월 9일이었다. 당시에도 30일 동안의 미국 산업별 위원회의 검증이 있었다. 영세 소수 사업체 위원회도 그 중 하나다.

이 위원회가 검증보고서를 제출한 때가 바로 타결 후 30일간의 검증 기간이 끝난 2004년 3월 9일이었다. 이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미국-호주 FTA 협정문의 4.1조, 5.2조 등 약 10개 조문에 대해 수정을 요구했다.

미국의 산업 분야별 위원회의 검증이 최종 협정문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의 모든 산업계가 미국 통상법에 따라, 한미FTA 협정문을 제공받아 검증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 정부가 5월 중순에서야 협정문을 공개하겠다고 한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미국 산업계의 평가와 피드백 절차가 있다(나머지 2개의 법적 검증 절차, 곧 미국 통상법에 따라 미국 무역위원회(ITC)가 타결 후 180일간 진행하는 영향 평가 절차와 미국 의회의 상시적 협의 절차에 대해선 생략하기로 하자).

개성공단의 성공은 북미 관계 정상화가 열쇠

나는 지난해 10월 출판한 졸저 <한미 FTA의 마지노선>에서 한미FTA에 개성공단 조항을 포함하는 것이 한국의 본질적 이익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만일 미국이 개성공단 조항을 수용한다면 단단한 안전장치를 심어 놓을 것이고, 별도의 대가를 꼬박 챙길 것이라고 썼다. 이러한 종래의 입장에 서서 한미FTA의 이른바 개성공단 조항을 평가하고자 한다.

한국에게 개성공단의 성공 기준은 무엇일까? 우리가 개성공단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독자적 역량으로, 북한의 북한식 경제 개방 관리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개성공단은 북미의 대립과 긴장으로부터 최대한 독립되어, 남과 북이 독자적이며 지속적으로 협력하기 위한 장치이다.

처음부터 한미FTA는 개성공단의 중심 변수이지 않았다. 현재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시계, 일부 자동차 부품 등이 중동·러시아·유럽으로 수출되고 있으나, 대부분의 의류와 신발은 한국의 내수 시장이 흡수하고 있다.

지금 단계에서는 개성공단을 지금의 5만평에서 착실히 끌어올려 1단계 사업인 100만평 정도의 명실상부한 공단으로 안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과정은 북한과 미국 사이의 대립 혹은 타협과 관계없이 지속적이며 안정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결국 개성공단은 북미 수교 및 북한식 개방의 전면화 그 이전의 단계에서 북측에 북한식 개방 관리의 적응 기지를 제공함으로써, 한국이 독자적으로 북한식 개방을 지원하는 교두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개성공단의 성공은 북한과 미국이 수교하고 양국이 정상적 무역관계를 가질 때 이루어진다.

▲ 한미FTA 협상장인 서울 하얏트 호텔 앞에서 1일 오후 분신소식을 접한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이 다소 침울한 표정으로 촛불을 밝히고 있다. 사진은 1일 저녁 서울광장에서 열린 범국본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김근태 의원 지지자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미국은 1974년 통상법에서부터 북한과 같이 자국민의 자유로운 해외 이주를 허용하지 않은 비시장국가(nonmarket economy)에 대해서는 정상 교역 관계(normal trade relations)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상호간 통상 협정의 체결도 일체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나라의 제품에 대해서는 미국의 통합관세율표상의 특혜 관세율(FTA) 혹은 일반 관세율(WTO)보다 7배 내지 10배나 높은 차별적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칼럼 II 관세율'). 그럼으로써 사실상 미국 시장으로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물론 이러한 통상법상의 수단만이 봉쇄조치의 전부는 아니다). 미국 통상법은 이를 기본적 인권 보장이라는 명목으로 합리화하고 있다.

이러한 통상법 체제 아래서 북한산 제품이 미국으로 정상적으로 수출되기 위해서는 미국 의회가 북한에게 정상 교역관계국 자격을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조차 미국으로부터 항구적 정상 교역관계국(PNTR)의 자격을 부여받은 때가 2000년 9월이었다. 중국이 WTO에 가입한 지 거의 1년 뒤의 일이었다.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위 정상교역관계국의 자격을 부여받을 때, 개성공단 제품이 북한산으로 취급되어야 할지, 한국산으로 취급되어야 할지는 일차적으로 북한 지도부가 북한식 개방전략에 따라 결정할 문제다.

북미 수교 이후 북한은 WTO에 가입할 것이고, 150여 회원국과 무역을 추진할 것이다. 이 때 북한지도부가 대외 통상 전략을 어떻게 짤 것인지, 미국 시장과 개성공단 그리고 한미 FTA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북한의 판단사항이 될 것이다.

정부, 한미FTA 협정문 신속히 공개해야

이제 한미FTA의 개성공단 조항으로 들어가보자. 정부가 개성공단 조항을 원문 그대로 밝히지 않아 매우 답답하지만, 정부의 보도자료에 의존하면 ▲한국과 미국이 FTA 발효 후 1년 안에 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는 것 ▲이 위원회에서 한반도 비핵화 진전과 노동기준 등 일정 요건을 북한이 충족할 경우 한국산 원산지 인정 지역을 지정할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알 수 있는 전부다.

그런데 여기서 한반도 비핵화 진전은 무슨 의미일까? 현재 비핵화는 통상 핵 폐기를 뜻하고 있다. 아시다시피 북한의 핵 폐기는 북한 체제 유지와 직결된 문제이며, 지금 북미 합의대로라면 북한이 핵을 폐기할 경우 북미 수교가 이루어질 것이고, 미국은 북한에게 정상교역국가의 자격을 부여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미국은 북한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에 더 이상 차별적 고율관세를 매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북한산 제품의 원산지를 북한으로 표시하여 미국에 수출할 수 있다. 그 상황에서는 개성공단의 의의와 위상이 지금의 모습과 전혀 다르게 될 것이다.

또 하나, 미국은 왜 개성공단 조항에 '노동기준 충족'이라는 조건을 달았을까? 통상 개성공단에서의 노동기준충족은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에게 대한 임금직접지불과 노동권 보장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는 북한식 개방의 성격과 체제의 본질을 좌우할 근본적 문제이다. 결코 한미FTA라는 하나의 통상협정을 지렛대로 삼아 북한을 흔들 사안이 아니다.

이렇게 미국은 한미FTA 개성공단 조항에 이와 같은 북한 체제와 관련된 근본적인 단서를 달아둠으로써, 북한 체제와 북한 미국 관계와 무관하게 한국이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개성공단 사업의 시대적 의의를 사실상 부인했다. 나아가 개성공단의 향방에 개입할 지렛대를 확보하였다. 아직 한미FTA의 개성공단 조항이 공개되지 않아 정확히 판단할 수 없지만, 이 조항은 북한 미국 수교 전 단계에서는 사실상 아무런 기능을 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영웅론이 아니다

▲ 28일 오전 개성공단내 '좋은사람들' 공장 구내식당에서 북측여성노동자들이 미역을 다듬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렇다면 한국은 왜 한미FTA에 한사코 위와 같은 개성공단조항을 두었을까? 나의 주관적 판단이지만, 그 용도는 '열린우리당 의원용'이다.

한나라당은 이 조항이 없더라도 한미FTA에 찬성할 것이므로, 결국 개성공단 조항은 열린우리당이 한미FTA에 동의할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을 영웅이라고 칭송한 것은 그 지도부의 입장에서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웅론이 아니다. 미국이 공짜로 개성공단 조항이라는 한국 국내용 조항을 협정문에 깔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먼저 한미FTA 협정문을 이해당사자와 전문가들에게 신속히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개성공단 조항 등 많은 쟁점에 대한 생산적 토론과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다.

미국은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로 가자면서, 왜 이런 것은 이다지도 악착스럽게 한사코 거부하는가?

덧붙이는 글 | 송기호 기자는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이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한·미 FTA 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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