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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조 한성대 교수.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가 돌아온다. 한때 그를 두고 '재벌의 저승사자', '재벌 저격수'라는 말까지 있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 작년 참여연대로부터 나와 경제개혁연대 소장을 맡고 있다.

지난 98년 제일은행 주총장에서 무려 6시간동안 소액주주로 경영진과 설전을 벌였던 그였다. 2004년 삼성전자 주총에선 윤종용 부회장과 안건 처리를 두고 논쟁을 벌이다 회사쪽과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다.

오는 16일 3년 만에 김 교수가 다시 대기업 주총장에 선다. 이번엔 두산중공업이다.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과 박용만 전 부회장 등 두산 총수일가의 경영 복귀에 반대하기 위해서다. 이유는 간단하다.

회삿돈을 횡령하고 분식회계 등 불법행위로 물러난 사람들이 아무런 반성도 없이 '책임경영' 운운하며 회사로 들어온다고 해서다.

주총에 앞서 지난 13일 그를 서울 성북구 한성대 교수동 연구실에서 만났다. 얼마 전에 감기에 걸려 몸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예전처럼 인터뷰 내내 또렷한 말로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내비쳤다.

우선 이번 이사선임이 대주주로서 책임경영과 글로벌 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두산쪽 입장을 이야기했다. 김 교수의 입가에 미소부터 그려진다. 어이없다는 표정과 함께. 그의 말을 들어보자.

"박 회장은 두산중공업 주식을 단 한주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룹 전체로 보면 3.24% 밖에 없는 사람이 어떻게 대주주인가. 차라리 전문경영인이라고 하면 모를까.(웃음) 과거의 불법행위에 대해 일정한 반성과 개선의지도 보이지 않고 곧바로 등기이사로 복귀하는 것이 책임경영인가."

그의 목소리는 조금씩 높아졌다. 박 회장이 지난달 사면복권 되자마자 "등기이사로서 떳떳하게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모두 틀린 이야기"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이들이 회사의 등기이사가 되는 것과 상관없이 현행법상으로 사실상 이사로서 권한을 행사하면 그만큼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불법 행위자들이 책임경영? 어불성설일 뿐"

ⓒ 오마이뉴스 권우성
"박용성, 박용만 부회장 등 두분이 등기이사가 아니라고 해서 두산그룹 경영에 대해 손을 놓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누가 있나. 그분들은 사실상 이사다. (기업의) 소유경영체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 회사에 손해를 끼친 불법행위자들이 반대로 '책임경영'을 내세우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뿐이다."

김 교수는 이어 "박용성, 박용만 등 박씨 형제가 1~2년 정도 시간을 두고 경영일선에 나섰다면 이렇게 반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사면복권 되자마자 한달도 채 안돼 등기이사로 복귀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또 이번에 안건으로 올라온 이성희 이사 후보와 박정규 사외이사 후보에 대해서는 비판의 날을 더 날카롭게 세웠다. 그는 "박씨 형제의 경영복귀도 문제지만 이들 두 이사 후보가 회사에 들어오는 것은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성희 이사 후보의 경우는 지난 두산산업개발 분식회계 당시 경리담당이사였던 인물. 그는 박씨 일가와 함께 공모해 분식을 저지른 혐의로 작년 징역 8월의 유죄를 선고 받았다. 김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오너일가의 지시에 따라 분식회계를 집행한 사람을 이번에 두산중공업 부사장으로 오게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영전인 셈이다. 이것을 보고 회사 경영진이나 임직원들이 무얼 느끼겠나. 오직 총수에게 충성하는 것이 내가 살길이고, 보상받는 길이라고 생각할 것 아닌가. 이같은 왜곡된 보상제도 아래에서 제대로 된 기업과 지배구조 개선이 있겠는가."

"총수에게 충성하는 게 살길이라는 나쁜 선례 남길 것"

박정규 사외이사겸 감사위원 후보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박 후보자는 국내최대 로펌인 김앤장 소속 변호사다. 김앤장은 작년 '두산 형제의 난'과 관련해 오너일가의 소송 대리를 맡았다. 한마디로 오너의 소송을 맡았던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가 독립성이 요구되는 사외이사로 온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두산중공업쪽에 과거에 김앤장으로부터 법률서비스를 받은 적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답을 하지 않았다"면서 "박 변호사가 (두산중공업) 사외이사가 되면 김앤장에 법률서비스를 안받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박 변호사 개인으로 보면 훌륭한 법조인이지만 독립성이 생명인 대기업의 사외이사로서 이번에 선임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잘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법적·제도적인 부분은 상당한 진전이 있었지만, 재벌 총수 자신의 인식과 기업내부의 불합리한 관행들은 여전히 제자리라고 비판했다.

"주총 참석해서 안건 부결시킨 적 없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자연스레 16일에 있을 주총에 대한 전망을 들어봤다. 현재의 지분구조상 경제개혁연대쪽에서 소액주주의 힘을 모은다고 하더라도 이들 이사 선임안을 부결시키기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냐고 물었다. 그도 인정했다. (현재 두산중공업 내부 지분율은 총수일가와 계열사 지분을 합하면 50.4%가 된다.)

김 교수는 "참여연대 시절부터 우리가 주총에 참석해서 안건을 부결시킨 적이 없다"면서 "다만 박정규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 선임 투표에서는 개인이든, 기관이든 의결권이 3%로 제한돼 있기 때문에 쉽진 않겠지만 표 대결을 해볼만도 하다"고 기대감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이어 두산중공업의 또 다른 주주들인 기관투자자들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물론 최근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이 이번 주총에서 대주주 일가의 이사선임에 반대입장을 낸 것에 대해선 "앞으로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에 중대한 계기가 마련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대로 두산중공업의 2대 주주이면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박씨 일가의 이사선임에 찬성한 것을 두고는 "여전히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관투자자들은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찬성한다'고 한다"면서 "(이사로서) 가장 기본인 준법의무도 이해 못하는 경영진에게 제대로 책임도 묻지 않는 것이 과연 투자자를 보호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오늘(13일) 산업은행 관계자를 만났는데 총수일가가 경영에 나서는 것이 주식가치를 제고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 국책은행이 국민연금과 같은 의결권 행사 지침하나 없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꼭 투자자 관점 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요소를 감안해서 판단해야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던데 허탈하더라."

김 교수는 마지막으로 "주총이 원만하게 끝났으면 좋겠다"면서도 "저쪽(두산중공업)에서 이런 경험이 전혀 없는데다 실무진에선 마치 보스에게 조금이라도 흠집이 나면 안된다는 일념으로 꽉 차 있어, 당일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3년 만에 다시 재벌 주총장에 서는 김상조 교수. 현재로선 두산 총수일가의 경영복귀를 막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한 재벌 총수 중심의 왜곡된 기업내부구조와 지배체제에 대한 문제를 다시 한번 드러내는 계기는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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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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