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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5월 1일(현지시간) 워싱턴 웨스틴 그랜드 호텔에서 한미 양국간 민간차원의 포괄적 대화체인 '서울-워싱턴 포럼'이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도널드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 문정인 연세대 교수,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
ⓒ 연합뉴스
지난해 5월 1~2일 미국 워싱턴 D.C에 소재한 웨스턴 그랜드 호텔에 한ㆍ미 양국의 내로라하는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운집했다.

한미 양국간에 외교, 안보, 북핵, 남북관계, 경제통상 등 공동 관심사와 주요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민간 차원의 포괄적 대화체로 출범한 '제1차 서울-워싱턴 포럼'(대표 임동원 세종연구소 이사장)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제1회 서울-워싱턴포럼'에서 고농축의 '고'(高)에 해당하는 'H'가 사라진 까닭

세종연구소(소장 백종천, 현 청와대 안보실장)와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소장 스트로브 탈보트)의 공동주관으로 이틀 동안 열린 서울-워싱턴 포럼에서 단연 관심의 대상은 첫날 토론자 겸 오찬 연설자인 제임스 켈리(James Kelly)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겸 6자회담 수석대표와 둘째날 토론자 겸 오찬 연설자인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Hill) 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겸 6자회담 수석대표였다.

부시 1기 행정부(2001~2005년)에서 미국측 대북협상 대표였던 켈리는 며칠 전에 서울의 한 식당에서 겪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연설을 시작했다.

▲ 제임스 켈리 전 국무부 차관보는 2002년 10월 "북한이 HEUP를 갖고 있다고 시인했다"고 밝혀 제2차 북핵 위기를 몰고온 장본인이지만 그 이후 UEP로 용어를 바꿨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많은 한국인들이 붐비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우리 테이블의 식사가 끝나갈 무렵, 한 젊은이가 다가와 '당신이 누군지 안다'고 말했다. 나는 그 순간 '그래! 내 명성이 나를 앞지르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때 젊은이가 이렇게 말했다. 존 볼턴씨 아닌가요? (웃음) 내 생각에 존 볼턴은 한국에 기껏 서너 번쯤 다녀갔을 것이다. 나는 아마 100번 넘게 한국에 갔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때때로 낯익은 것보다는 강렬한 것이 더 회자된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계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원을 거쳐 부시 행정부의 국무부 차관(비확산 담당)이 된 볼턴은 '체니(부통령)가 파월(국무장관)을 감시하기 위해 보낸 자객'이라는 수군거림을 들을 만큼 네오콘(neocons)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켈리는 한국에서 '악명'이 높은 볼턴과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이미지의 자신을 빗댄 것이다.

켈리는 이날 오찬 연설에서 북한의 세 가지 핵 프로그램을 지적하며, 자신이 6자회담 미국측 협상대표 시절에 했던 말 그대로 미국의 목표는 당연히 북한에서 핵무기 프로그램을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방법으로 완전히 종결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첫째는 1990년대 초에 추출된 플루토늄인데 IAEA와의 갈등으로 1992년 및 1994년 위기(1차 북핵 위기-편집자주)의 원인이 되었다. 이 '올드 플루토늄'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으며 '무기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는 (미국의 중유공급 중단으로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재개한) 2003년 1월 이후 '사용후 폐연료봉'에서 새롭게 추출된 '뉴 플루토늄'이다. 셋째는 비밀 우라늄농축(covert uranium enrichment)으로, 우라늄을 무기용의 핵분열성 물질로 농축하는 원심분리기를 사용해 은밀하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적발이 어렵다."

켈리 "나는 전에도 'HEU'라고 하지 않았다"고 발뺌

▲ '서울-워싱턴포럼'의 켈리 오찬 연설 녹취록을 보면 그는 과거와 달리 HEU라는 용어를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대신에 'uranium enrichment'라고만 얘기했다.
ⓒ 오마이뉴스 김당
오찬에 이어 시작되는 제2회의(6자회담을 넘어)의 사회를 맡은 양성철 전 주미대사는 누구보다도 켈리의 연설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켈리가 2002년 10월 제2차 북핵 위기를 불러온 '문제의 세 번째 핵 프로그램'을 거론하면서 한번도 'HEU'(Highly Enriched Uranium, 고농축우라늄)나 'HEUP'(Highly Enriched Uranium Program,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켈리는 'HEU' 대신에 'covert uranium enrichment'이나 아예 'uranium enrichment'이라고 표현했다. 고농축의 '고'(高)에 해당하는 'H'자가 사라진 것이다.

오찬장에서 양성철 전 대사는 마침 켈리의 옆자리였다. 켈리의 오찬 연설과 일문일답이 끝나자 양 대사는 켈리에게 "짐(제임스의 애칭), 왜 'HEU'라고 하지 않고 'H'를 뺐냐?"고 물었다. 그러자 켈리는 뜻밖에도 "나는 전에 'HEU'라고 하지 않았다"고 발뺌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증거'를 제시할 수는 없었다.

오찬 뒤에 양 대사는 "톰, 이 친구가 전에는 HEU라고 한 적이 없냐"고 토마스 허바드 전 주한 미국대사에게 물었다. 허바드 대사는 웃으며 "그는 HEU라고 했다"고 말했다. 양 대사는 불현듯 자신이 켈리에게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2002년 10월 제2차 북핵 위기를 몰고온 HEU 파동의 진원지인 제임스 켈리 전 미 국무성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당시 양성철 전 주미대사의 '카운터파트'였다. 양 대사와 켈리 차관보는 당시 워싱턴 D.C에서 매일 한 번씩 만나고 수시로 전화통화를 할 만큼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 양 대사는 당시의 착잡한 심경을 나중에 기자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동맹국(미국)과 카운터파트(켈리)에 대한 신뢰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미국 정부와 켈리가 제공한 정보를 철석같이 믿고서 가는 데마다 HEUP와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를 의미하는 미국의 북핵 문제 해결 원칙)를 외치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슬며시 HEU에서 'H'자가 사라진 것이다. H가 있고 없고는 천지(天地) 차이다."

켈리, 아미티지, 라이스도 HEU란 표현 수십번 사용

▲ 양성철 전 주미대사는 "켈리 등 미 국무부 당국자들이 어느 날 슬며시 HEU에서 'H'자를 떼어내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 오마이뉴스 김당
양 대사는 다시 켈리에게 "짐, 당신이 HEU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면 왜 내가 HEU라고 할 때 시정해주지 않았냐"고 따져 물었다. 당시에는 북핵 문제로 거의 매일 서로 의견 교환을 하는 상황이었는데도 왜 켈리는 물론 국무부에서 아무도 자신이 HEU라고 표현할 때 이를 시정해 주지 않았냐는 항의였다. 그러자 켈리는 몹시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I'm sorry'(미안하다)라고만 할 뿐 말꼬리를 얼버무렸다.

사실 켈리는 공식석상에서 HEU 혹은 HEUP라는 표현을 수십 번 사용했다. 켈리가 공식석상에서 HEU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한 것은 미국 정부가 2002년 10월 16일 '북한이 HEUP를 갖고 있다고 시인했다'고 미 국무부 대변인이 발표한지 두 달쯤 지난 그해 12월 11일 워싱턴의 우드로 윌슨 센터에서 한 연설에서였다.

그는 이 연설에서 HEU라는 용어를 6회 사용했는데, 이를테면 "내가 10월 3~5일 북한을 방문하고 있는 동안에, 고위 북한관료가 비밀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여름 우리는 북한이 1994년 제네바합의(Agreed Framework) 하에서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HEU 프로그램을 상당한 수준에서 추진하고 있다는 결정적 정보를 갖게 됐다."(…last summer we received conclusive information that North Korea was pursuing at a substantial level an HEU program to manufacture nuclear arms in spite of its commitment under the terms of the 1994 Agreed Framework.) (Remarks at the Woodrow Wilson Center, Washington, DC, December 11, 2002).

물론 그 이후에도 켈리는 HEU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켈리는 2003년 미 상원 청문회에서도 HEU라고 증언했으며, 북한의 HEU 인정이 통역상의 오류라는 논란이 일자 북한의 시인 과정을 비교적 소상하게 밝힌 2004년 2월 13일 연설에서도 HEU라고 강조했다. 켈리는 이 연설에서 "북한의 시인(acknowledgement)은 우리팀과 내가 북한 외무성의 2인자이자 김정일의 측근으로 알려진 강석주 제1부상과 가진 40분에 걸친 회담의 전과정에서 나왔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강석주의 언급은 그 자신의 통역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고, 그가 한 원래의 한국어 표현은 우리측의 경험 많은 전문 통역에 의해 검증되었다. 강이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highly enriched uranium program)의 존재를 시인했고, 만약 미국이 북한에 추가적인 혜택을 먼저 제공한다면 그것(HEUP)에 관한 우리(미국)의 관심사에 대해 기꺼이 협상할 의사가 있다고 말한 것은 우리팀 모두에게 매우 분명한 것이었다." (Remarks to The Research Conference - North Korea: Towards a New International Engagement Framework, Washington, DC, February 13, 2004)

▲ 2002년 8월 13일 촬영한 북한 영변 핵시설 위성사진.
ⓒ 연합뉴스

미국 "북한이 HEU 시인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증거는 없다"

비단 HEU라는 표현은 켈리만 사용한 것도 어니다. 그의 상관인 리차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도 자주 북한의 HEU를 언급했다.

아미티지는 2003년 2월 4일 미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서 "우리(미국 정부)는 북한이 적어도 2000년 2월부터 전면적인 HEU 생산 프로그램(a full-up production program of HEU)으로 가려는 의도를 갖고 있음을 알아냈다"고 증언했다. 또 라이스 국무장관은 2005년 7월 13일 아시아 순방중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실은 짐 켈리가 북미간의 관계 개선 가능성을 위한 과감한 제안(a bold proposal)을 제시하려는 계획을 갖고 처음으로 북한에 갔는데, 그 대신 (북이) HEU 프로그램을 시인하는 것을 찾아냈다."(On-The-Record Briefing Secretary of State Condoleezza Rice, July 13, 2005).

심지어 켈리는 2003년 3월 12일 미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서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생산은 아마 몇 년이 아니라, 몇 달 안에 가능하다"(production of highly enriched uranium is probably a matter of months, not years.)고까지 증언했다. 이와 같은 증언은 미 중앙정보국(CIA)이 정부와 의회에 보고한 "북한이 2005년이 되면 매년 2개 이상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우라늄 농축시설의 건설을 시작했다"는 정보 평가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켈리가 2002년 10월 평양을 다녀와 "놀랍게도 북한이 HEUP를 시인했다"며 HEU 문제를 극적으로 부각함으로써 조성된 제2차 북핵 위기 이후 4년만인 지난해 10월 9일, 정작 북한이 세계를 놀라게 한 핵실험 물질은 '놀랍게도' HEU가 아니라 사용후 핵연료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이었다. 문자로서의 HEU뿐만 아니라 HEU라는 핵물질 자체가 '증발'해 버린 셈이다.

실제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긴 어둠을 터널을 통과한 2ㆍ13 합의 직후 가진 브리핑에서 "북한의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현재의 정부 평가는 무엇인가. 실험실(R&D) 수준을 넘었다고 보나"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라이스 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HEU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말고는 더 이상 나갈 수가 없다. 알다시피 2002년 당시 차관보였던 짐 켈리가 북한에 그것에 대한 우려를 제시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한 북한의 시인이 있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에 대한 더 이상의 증거는 없다."

▲ 북핵 공동대처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19일 저녁 서울 한남동 외교통상부장관 관저에서 만난 한ㆍ미ㆍ일 외교장관들이 만찬에 앞서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반기문 전 외교통상부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아소 다로 일본외상.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정택용

국무부 "전반적 규모의 HEU 생산 프로그램" → "'실험실' 수준 넘지 않았다"

그러자 그 기자는 다시 "상황을 특정해 달라, 실험실(R&D) 수준을 넘어섰나"라고 물었고, 라이스는 "No, no"라고 부인했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연구개발 목적의 '실험실' 수준을 넘어서지 않았다면 '생산시설' 수준, 즉 핵무기 제조용의 HEUP는 없다는 얘기다. 북한의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국무부의 고위 책임자들의 발언이 '전반적 규모의 HEU 생산 프로그램'에서 '실험실(R&D) 수준을 넘어서지 않았다'는 쪽으로 슬며시 낮춰진 것이다.

그에 맞추어 정보평가에 대한 신뢰도도 슬며시 낮춰졌다. 국무부 대북교섭담당 대사를 지낸 조지프 디트라니(Joseph DeTrani) 국가정보국 북한 담당관은 2월 27일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이 HEU를 생산할 수 있는 수준의 장비를 구입하고 있다는 정보는 높은 수준의 신뢰도(high confidence)를 가진 것이었다"면서 "HEU 프로그램이 현재도 존재하는지에 대해선 중간수준의 신뢰도(mid-confidence level)를 갖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북한이 원심분리기 시설을 만들기 위한 물질과 장비를 획득했다는 정보와, 북한에 HEU 관련 기술 및 중고품 원심분리기를 제공했다는 압둘 카디르 칸 박사의 진술 등에 근거를 두고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중간수준의 신뢰도'라면 북한이 획득한 장비와 물질이 HEU 프로그램에 사용되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핵공학자인 강정민 미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연구원에 따르면, 북한이 수입했다는 고강도 알루미늄관은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에 사용될 수도 있지만 항공기 부품으로도 널리 사용된다. 미국의 이라크전쟁의 구실로 삼은 대량살상무기(WMD)와 연결지은 고강도 알루미늄 튜브 또한 원심분리기 제작용이 아니라 포탄의 탄피로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 핵시설을 수 차례 방문한 저명한 핵물리학자인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미 과학 및 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은 최근 "북한의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의 정보는 이라크 침공 명분으로 이용된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정보와 비슷한 수준에 있다"고 비판했다. 알루미늄 튜브에 대한 올브라이트의 보고서(2월 23일자)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북한의 HEU 프로그램에 대한 CIA 정보 공동체의 평가가 이라크의 WMD에 대한 잘못된 평가를 수행한 같은 시기에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HEUP에서 UEP로 바꾸자고 제안한 사람은 CIA 분석관 출신의 디트라니

▲ 국가정보 국장실 북한 담당관인 조지프 디트라니가 지난해 9월 27일 조선일보와 CSIS가 공동주최한 한미관계 세미나에서 북핵 및 미사일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02년 10월 켈리와 함께 방북했던 잭 프리처드 전 국무부 대북교섭담당 대사는 2005년 8월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시절에 HEU 문제를 이렇게 지적했다.

"우리가 예전처럼 매우 자주 듣지는 않지만, 이 시점에서 이성적으로 유심히 지켜봐야 하는 다른 이슈는 바로 고농축우라늄이다. 미 국무부는 이제 더 이상 그것을 'HEU'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바로 그 'highly'를 떼어내고 지금은 단지 우라늄농축(uranium enrichment)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HEU 관련 정보평가를 '중간수준의 신뢰도'로 낮춘 디트라니는 잭 프리처드 대사의 후임자였다. 2002년 10월 방북 대표단(8명)의 일원에 따르면, 나중에 국무부에서 용어를 HEUP에서 UEP로 바꾸자고 제안한 사람은 바로 2004년 1월 프리처드 후임으로 임명된 CIA 분석관 출신의 디트라니다.

이처럼 왜 'H'자를 떼어내고 용어를 바꾸었는지에 대한, 이 관계자의 해명은 "6자회담 분위기를 조성하고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디트라니의 제의로 HEUP에서 UEP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고 이것은 단지 기술적인(technical) 변경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하필이면 그 제안자가 CIA 분석관 출신인 디트라니라는 점이다. 이 노련한 분석관은 그때 이미 HEUP라는 용어 자체가 '너무 멀리 나간 정보왜곡'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용어의 변경을 꾀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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