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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비바람이 몰아친 서울 광화문 네거리 교보빌딩 앞 횡단보도. 군복을 입고 흰 가면을 쓴 조완철(36·남·북 디자이너)씨가 왕복 10차선 도로 중앙에 놓인 인도에 벌렁 누웠다. 조씨 뒤로는 6명의 평화활동가와 일반 시민들이 '故(고) 윤장호 당신을 추모합니다'라는 카드를 들고 섰다.

지난달 27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폭탄테러로 희생된 고 윤장호 하사를 추모하고 한국군의 즉각 철군을 촉구하는 평화시위였다. 이들은 27세의 젊은 나이에 숨진 윤 하사를 기리는 의미에서 약 27분 동안 '피스몹 시위'를 진행했다.

피스몹이란 익명의 사람들이 짧은 시간에 특정 장소에 모여 행동을 벌이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플래시몹(Flash Mob)'과 반전을 상징하는 평화(Peace)를 합성한 단어다. 플래시몹처럼 한 장소에서, 정해진 한 가지 행동을 하지만 피스몹은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평화활동가·시민 등 20여명 '피스몹 시위'... 언제까지 죽음으로 내몰 건가

@BRI@조씨는 3개의 공으로 '저글링'(공 따위의 물건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재주를 부리는 공중묘기)도 해보였다. 사람의 목숨은 저글링을 하듯 쉽게 던지거나 떨어뜨려도 되는,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퍼포먼스였다.

또 한 무리의 활동가·시민 20여명은 '진정한 애도는 철군뿐', '우리는 더 이상의 죽음을 원치 않습니다' 등의 문구가 쓰인 카드를 들고 횡단보도를 왕복, 행진했다.

이들은 지난달 28일에도 서울 광화문 미 대사관에서 '죽음의 저글링, 파병을 멈춰라', '검은 리본의 피스몹'을 진행했다. '파병을 멈춰라' 등의 문구가 쓰인 검은 천을 몸 전체에 길게 두르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2일 시위는 '검은 리본의 피스몹 : 추모의 신호등, 신호등 평화 행동'이었다.

연이은 피스몹 시위의 주체는 특정 단체가 아니다. 평화활동가, 시민단체 간사 등이 주축이 됐지만 대학원생, 책방주인부터 래퍼까지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이뤄진 행사였다.

임영신씨 등 평화활동가 외에도 미리 참여의사를 밝힌 일반 시민, 인도네시아·필리핀 등지에서 온 아시아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지나가는 일반 시민들까지 즉석에서 피스몹 시위의 일원이 됐다.

'죽음의 저글링'을 선보인 조씨는 "고 김선일씨와 윤 하사의 죽음 등 소중한 젊은이의 생명에 대해 시민들이 갈수록 무관심해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면서 시위 참가 동기를 밝혔다.

이어 "평화는 생명의 희생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행동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라면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의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지금 당장 돌아와야 한다, 우리 전쟁도 아니고 국익을 위한 것도, 평화 행동도 아니다"라고 성토했다.

소나무출판사 직원 이혜영(34)씨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시위에 참가했다. 이씨는 "고 윤 하사를 추도하고, 젊은 생명의 죽음을 본 시민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묻고 싶어 거리에 나섰다"면서 "젊은이를 죽음에 내모는 일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리핀 시민단체 활동가, "윤 하사 죽음은 미국 '못생긴 얼굴'의 상징"

▲ 고 윤 하사를 추모하는 필리핀인 제시카 소터씨.
ⓒ 안윤학
성공회대에서 진행된 '인터아시아NGO'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각국 학생 12명도 피스몹에 참여했다. 이들은 한국 시민단체 관계자의 연락을 받고 현장을 찾았다.

제시카 소터(필리핀)씨는 "(반전에 대한) 연대의식을 보여주고 계속되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점령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기 위해 왔다"고 전했다.

이어 "미국이 벌이는 전쟁 때문에 그들(파병 군인)은 더 희생당할 것"이라면서 "(윤 하사의 죽음은) 미국 불법점령의 '못생긴 얼굴'의 상징적인 일"이라고 비판했다.

피스몹을 벌인 활동가·시민들은 지난달 27일 윤 하사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이메일 등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들은 사건이 발생한 지 24시간 안에 비폭력 직접 행동에 나서는 '24시간 평화행동'을 벌이기로 합의하고 지난달 28일 첫 피스몹을 진행했다. 이들은 향후에도 행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죽음의 저글링, 파병을 멈춰라' 평화활동가·일반시민 20여명이 2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 횡단보도에서 '검은 리본의 피스몹, 추모의 신호등' 시위를 벌이며 지난 27일 아프가니스탄 폭탄테러로 희생된 고 윤장호 하사를 추모하고 있다. 이들은 "진정한 애도는 철군뿐"이라고 성토했다.
ⓒ 안윤학

▲ 군복을 입고 흰 마스크를 쓴 조완철씨가 인도에 벌렁 누웠다. 조씨는 "소중한 젊은이의 생명에 대해 시민들이 갈수록 무관심해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문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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