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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23일자 신문.

오늘 <한겨레>는 같은 지면에서 대한민국의 너무 다른 두 학교 풍경을 전하고 있다. 근면을 강조해 등교시간을 앞당겨 '지각대장'을 양산해 참다못한 교사가 인권위원회에 학교의 월권적 지각 기준을 시정해달라는 진정을 냈다는 성남 분당의 한 중학교 이야기와 학생들이 직접 담임선생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충암고등학교 이야기다.

'지각대장'을 양산하고 있다는 분당 한 중학교 이야기('지각대장 구제해주오' - 김기성기자)는 이렇다. 이 학교의 무단지각 횟수가 2004학년도에는 336차례에 그쳤지만 2005학년도에는 1773회로 5.3배나 늘었고, 2006년도에는 무려 3573회로 폭증했다. 2006년 한 해만 전교생 1200여명이 세 차례씩 무단 지각을 한 셈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2005년도부터 학생들에게 근면의식을 심어준다며 8시 50분이던 등교시간을 20분 앞당긴 것이다. 지역 내 다른 중학교들이 수업시작 시간인 8시 50분이나 9시를 넘긴 학생만 지각 처리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들의 불만이 컸고, 참교육학부모회 등에서 수차례 민원을 냈지만 학교 쪽이 꿈쩍도 하지 않자 이 지역 전교조 소속 교사가 인권위원회와 교육인적자원부에 '재량권을 넘어선 무단지각 처리에서 학생들을 구제해 달라'고 진정을 냈다. 그러나 교장 선생님은 여전히 꿋꿋하다. 학생들에게 근면함을 가르치기 위해 등교시간을 앞당겼고, 학급별로 불규칙한 출석 점검을 "일률적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일 뿐"이라는 소신을 굽히고 있지 않다고 한다.

<한겨레>의 이 중학교 관련 기사 바로 옆('원하는 담임선생님 선택하세요'- 이종규기자)에는 전혀 딴 세상이 펼쳐진다. 충암고의 새로운 실험을 전하고 있다(이 소식은 <국민일보>가 1면 머리기사로 비중 있게 보도했으며, <세계일보>도 <연합뉴스>의 기사를 받아 실었다).

충암고는 올해 들어온 신입생들에게 학급 담임을 직접 선택하도록 하는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다.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담임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학교 홈페이지에 1학년 담임을 맡을 선생님들의 프로필과 학급운영방침을 올려두고 학생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담임을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국민일보> 보도(충암고 '학급담임 선택제' 신선한 교육실험 - 하윤해 기자)에 따르면 1학년 담임교사 20분 가운데 12명은 지원자로 정원을 채웠고, 8분은 미달이었다고 한다. 특히 두 분의 교사는 1분 안에 접수가 마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학교 측은 물론 이런 사실을 교사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자칫 인기투표처럼 비칠 수 있으며, 교사의 사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배려한 조치였다. 김창록 교장은 "반응을 보고 2, 3학년으로도 확대할 방침"이라고 한다.

교육계 반응은 엇갈린다. "학생들의 교육효과가 높아지고 교사들 간에 선의의 경쟁이 벌어지는 등 학교 현장의 변화를 몰고 올 획기적인 실험(국민일보)"이라는 서울시교육청의 평가가 있는 반면 "마치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매하듯 학생이 교사를 선택하는 것은 인성교육 등 교육의 근본을 도외시한 매우 도박적인 발상(국민일보)"이라는 한만중 전교조 정책실장이나 "입시위주의 왜곡된 교육현실에서는 담임 선택의 기준이 학생을 좋은 대학에 몇 명 보냈느냐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전인교육 등 교육자로서 소신 있게 교육을 펼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한겨레)"는 한재갑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의 반응처럼 부정적 평가도 있다.

▲ 서울 충암고등학교 홈페이지.

담임 선택제... 교육계의 엇갈린 반응들

여러분의 생각은? 충암고등학교 교사 분들은 또 어떤 생각들일까 궁금했다. 이번 담임선택제의 실무를 맡았던 배준후 선생님은 이런 답변으로 대신했다.

"저희도 처음에는 국, 영, 수 담임선생님들한테 몰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어요. 학생들이나 학부모들 모두 나름의 기준을 갖고 선택한 것 같았고, 반별 성적 분포도 예상 외로 고르게 나타났어요."

남자 담임을 선호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있는가 하면 담임 선생님들이 제시한 학급운영방침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따져 선택한 학생들이 많았고, 교과목은 그다지 큰 변수가 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물론 자신의 프로필이 공개되고 '아이들과 학부모의 선택'에 직면해야 했던 1학년 담임 선생님들로서는 부담이 없지는 않았지만, 사전에 이해와 양해를 구하는 설득 과정이 있었다고 한다.

사족 한마디. 충암고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 선생님들이 어떻게 학생들에게 자신을 소개했을까 궁금해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먼저 눈에 띄는 팝업 창이 하나 있었다(1학년 담임들의 프로필과 학급운영 방침은 아이디와 패스워드가 없으면 볼 수가 없어 학교에 따로 부탁해 구했다). 교복 공동구매 희망조사 결과를 알리는 것이었다. 교복 공동구매 희망자가 "전체 788명중 155명(19.92%)이어서 50% 이상 공동구매 희망시 추진하기로 했던 당초 기준에 미달해 이번에는 개별 구매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알리고 "하복 착용 시부터는 더 많이 조사하고, 더욱 꼼꼼하게 학생들에게 접근해 빈틈없도록 준비하겠다"는 양해 말도 있었다.

충암고 홈페이지(http://www.cham.hs.kr)에는 학습동아리 등 학생활동과 사이버교무실, 학습 진학지도, 학교운영위원회 소식 등을 알리는 학부모 코너와 퇴직교사 코너 까지 '학교공동체'를 아우르는 세심한 배려와 노력을 읽어볼 수 있었다. 이번에 고등학교에 들어간 내 아이의 학교도 이런 학교였으면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희망은 아닐 것이다.

태그:#백병규의 미디어워치, #백병규, #미디어워치, #조간신문 리뷰, #담임선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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