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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오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정기총회에 뒤늦게 도착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시선이 엇갈려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웃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같기도' 너무 재미있다."

KBS 2TV '개그콘서트'가 지난달 말부터 새롭게 선보인 코너 '같기도'에 대한 한 네티즌의 평가다.

'같기도'는 사부 김준호와 두 제자 홍인규, 이상구가 펼치는 일종의 개그 무술이다. "우리 같기도는 말이여. 춤을 이용한 절대 무공이여. 그렇지만 춤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같기도여."

가수 '비'의 댄스를 멋지게 선보이다가 통아저씨 춤으로 마무리 하면서 "비도 아니고 통 아저씨도 아닌 춤"을 추며 익살을 떤다. 한쪽 팔은 반팔, 한쪽 팔은 긴팔로 된 티셔츠를 입고 "이건 반팔도 아니고 긴팔도 아니여!"를 외치며 웨이브 춤을 추기도 한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애매모호함이 관객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현재 상황을 '같기도'에 비유한다면 너무 희화화한 것일까?

여권의 러브콜, 대선후보 조기등록... 단호한 손학규

▲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아들인 탤런트 윤태영(33)씨와 동료 배우 임유진(26)씨의 결혼식이 14일 오후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리는 가운데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결혼식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손학규 전 지사는 아직 한나라당 후보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권의 후보도 아니다. 손 전 지사의 정체성은 한나라당과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 불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최근 당내 후보 검증 공방이 손 전 지사에게 유리한 것도 아니고, 불리한 것도 아니다.

특히 손 전 지사의 지지율은 오른 것도 아니고, 추락한 것도 아니다. 손 전 지사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연초 8% 대까지 오르며 잔뜩 기대감을 낳았던 지지율이 설 연휴가 끝나면서 다시 주춤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는 검증 공방으로 지지율이 동반 하락했지만, 손 전 지사는 반사이익을 얻지 못했다. 양측의 이전투구로 인해 상대적으로 깨끗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손 전 지사가 대안후보로 부상할 가능성을 점쳤지만, 표심은 오히려 부동층으로 흘렀다.

이 와중에도 손 전 지사는 여전히 한나라당이 아닌 범여권 후보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통합신당을 추진하는 여권 인사들의 러브콜도 심상치 않다. '통합신당추진모임' 전략기획위원장인 전병헌 의원은 지난 20일 손 전 지사를 향해 "한나라당의 서자 자리를 박차고 나오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반면 한나라당으로서는 손 전 지사의 탈당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당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여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손 전 지사를 두고 일각에서는 "양날의 칼을 쥔 채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일종의 '같기도'인 셈이다.

급기야 한나라당은 '대선후보 조기 등록'이라는 비책을 들고 나왔다. 검증공방으로 어느 한 측이 당을 뛰쳐나갈 가능성이 높아지자, 일찌감치 대선 주자들을 당의 '울타리' 안에 가둬놓기 위해 강구된 방안이지만, 결과적으로 여권행이 계속 나도는 손 전 지사에게 '족쇄'를 채울 수 있게 됐다.

손 전 지사 캠프 내에서도 지난 연말까지 '탈당파'와 '잔류파'로 나뉘어 심각하게 설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연초에 입장이 정리됐다. 한 관계자는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탈당하는 순간 바로 죽는 길을 왜 선택하겠느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얘기가 최근 여의도 정가를 떠돌기도 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손학규 전 지사와 캠프내 참모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잔이 좀 돌다가, '더 이상 한나라당 내에서는 희망이 없다'는 탈당파와 '제 2의 이인제가 될 수 없다'는 잔류파간에 격론이 오갔다. 한참동안 이를 지켜보던 손 전 지사가 갑자기 폭탄주를 다섯 잔이나 연거푸 마신 뒤, 잔을 집어 던지면서 '이 놈들아, 내가 그렇게 더럽게 정치를 해왔냐? 어디서 그렇게 치사하게 정치를 배웠어? 탈당할 놈들은 여기서 나가!'라고 호통을 쳤다."

물론 손 전 지사측은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며 전면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손 전 지사와 가까운 모 의원은 이 얘기를 전해주면서 "손 전 지사는 쉽게 탈당할 사람이 아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손 전 지사는 여권 후보 1순위로 거론되는 상황이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다. 그는 22일 불교방송 라디오 '조순용의 아침저널'에 출연, 여권의 러브콜에 대해 "제가 갖고 있는 본선경쟁력에 대한 평가"라며 "우리가 어떤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되겠나 하는 판단 기준에서 나온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2일 경기도 화성의 한 리조트에서 열린 경기지역 기초의원 연수회 입소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햇볕정책 계승론' 극약처방이 부메랑으로?

'한나라당 안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손 전 지사가 선택한 것은 양강(이명박-박근혜) 구도를 깨기 위한 차별화 행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계승, 발전" 발언이다. 당내 정체성, 이념 논쟁이 한창 진행되던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파급력은 더 컸다.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소신이라고 하지만 왜 그렇게 민감한 시점에 '햇볕정책' 카드를 꺼내 든 것일까?

당의 한 중진 의원은 "손학규 전 지사는 지지율 10%를 넘겨야 앞으로 탄력을 받을 수 있는데, 양강 구도가 계속된다면 당 내에서 그 만큼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없다"며 "결국 (고건 전 총리의 대선 출마 포기로) 무주공산이 된 호남쪽을 노리고 극약처방을 내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손 전 지사측 관계자는 "당시 북핵 문제 관련 '6자 회담' 전망이 밝다는 첩보를 미리 입수해 그동안 가지고 왔던 소신을 밝혔을 뿐 그런 계산은 없었다"면서도 "만일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호남보다는 수도권 40대를 의식했을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손 전 지사의 '햇볕정책' 카드가 지지율 상승 효과로 이어지기에 앞서 손 전 지사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햇볕정책 계승론'은 한나라당의 당론과 상반되는 것은 물론 당 정체성의 본질적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렸기 때문이다.

당내에서는 당장 "손 전 지사가 당의 좋은 후보인 만큼 당론도 함께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전여옥 최고위원), "당의 대선 후보가 열린우리당 정책을 뒤에서 지원하고 있으니 한나라당 후보로서 적합한지 모르겠다"(김용갑 의원) 등의 성토가 터져나왔다.

설 연휴 동안 칩거... 손학규의 선택은?

▲ 지난 1월 17일 한국불교종단협의회(회장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가 주관하는 신년하례법회에 참석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
ⓒ 오마이뉴스 권우성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설 연휴 내내 칩거에 들어갔다. 사전에 계획했던 '민심 투어'도 전면 취소한 이례적인 행보였다.

손 전 지사측은 "휴식을 취하면서 주변 인사들과 전화통화나 면담을 하며 지냈다"며 "언론에서 추측하는 그런(탈당) 고민을 하거나 당 밖의 인사를 만나러 다닌 것은 절대 아니다"고 설명했다. 손 전 지사도 "설이라 그냥 쉬었다. 가족과 함께 조용히 쉬면서, 늦잠도 자고 낮잠도 자고, 그동안에 있었던 일 정리도 하고, 앞으로 생각도 하고, 아주 좋은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칩거에서 돌아온 손 전 지사 앞에 놓여진 상황은 결코 여의치 않다. 검증 공방으로 인해 정국이 극도로 혼탁해 질수록 손 전 지사가 스스로 주도권을 잡아 갈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 핵심 측근은 "'이명박-박근혜'의 진흙탕 싸움에 우리가 끼어들 자리도 없고,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려고 해도 언론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며 "현재로서는 우리가 무엇을 주도할 상황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당에서 대선후보 조기 등록 방침에 따라 3월 말까지 후보 등록을 마치겠다고 한 것 역시 손학규 전 지사를 압박하고 있다. 후보 등록이 완료되면 더 이상의 여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현행 선거법상 당내 대선 경선후보로 등록하면 경선에 참여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탈당을 해 독자적으로 대권에 도전할 수 없게 된다.

물론 후보등록 마감 전까지 한 달 여의 시간이 남아 있다. 설 연휴가 끝나면서 다시 보폭을 넓히고 있는 손 전 지사이지만, 그의 고민은 이제 막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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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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