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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상에서,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대화 속에서 <하얀 거탑>만큼 자주 메뉴에 올라오는 드라마도 없을 것이다. 정형화된 드라마 공식에서 벗어나, 이례적으로 치밀한 심리 묘사를 앞세웠으며, 젊은 스타들보다는 연기력을 중심으로 한 내실 있는 캐스팅이 확실하게 돋보이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중심을 법정 싸움이 차지하면서, '장준혁(김명민)'과 '최도영(이선균)'의 대결구도는 이제 정점에 다다른 것 같다. 하지만 언뜻 생각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의사의 정도와 상식을 대변하는 선한 이미지의 최도영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욕을 불태우는 장준혁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어떻게 된 일일까?

장준혁과 최도영, '선봉장'과 '이론가'의 차이

▲ 최도영(이선균)과 장준혁(김명민), 그들을 바라보는 누리꾼의 열띈 논쟁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
ⓒ iMBC
장준혁은 졸업 후 바로 임상으로 진출해, 간담도계암 및 췌장이식 수술의 최고실력자로 부상한 외과의 '선봉장'이다. 반면에, 최도영은 기초의학의 병리학을 공부했지만, 병에 걸려 죽어가는 환자를 자기 손으로 치유하고 싶다는 결심과 함께, 그제야 임상으로 진출했으며, 임상과 연구를 병행하는 캐릭터다. 그는 '연구자' 혹은 '이론가'에 가까운 캐릭터다.

두 의사의 이런 차이는 환자를 바라보는 저마다 다른 시선에도 영향을 주는데, 그와 관련해서는 일본판 <하얀 거탑>에서 더욱 직설적으로 부각된다. 장준혁(일본판에서는 자이젠 고로, 식도암 전문)은 원래부터 환자보다는 수술로 질병을 정복하는 희열을 느끼는 것에 집착하던 캐릭터였다.

원래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장준혁은 일선 외과에서 수많은 환자들의 수술을 집도했고, 이런 경험은 그의 의식에도 큰 영향을 준 것이다. 수술까지 불가능할 정도로 질병이 진행된 환자라면, 차라리 퇴원시키는 것이 더 낫다. 그 시간에 치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장되는 다른 환자에게 신경을 기울이는 것이 낫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반면에 최도영은 당연히 정반대로 그려진다. <하얀 거탑>의 시청자는 드라마의 초반 부분에서 소아암 환자 '진주'에 세심한 신경을 기울이다가, 진주가 끝내 눈을 감자 눈물을 흘리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일본판 <하얀 거탑>에서도 최도영(사토미 슈지)의 캐릭터는 보다 직설적으로 다뤄지는데, 한 사람의 환자라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의사의 사명이라고 믿는다.

'진주'와의 애틋한 이야기는 최도영의 선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지만, 한편으로는 그에게 비난(?)이 집중되는 잠재적인 계기로도 작용한다. 어린 아이가 끝내 눈을 감는다는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병원에 환자가 '진주'밖에 없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이야기다. 의사로서 환자의 죽음을 바라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가깝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에 집착하면, 어떻게 그 많은 죽음을 지켜보며 의사를 할 수 있겠냐는 이야기다.

<하얀 거탑>은 애초부터 장준혁을 중심에 배치해 그려나가고 있으며 병원을 매개로, 현실 세계의 권력과 그 메커니즘을 그려가는 드라마다. 출세욕이 강한 캐릭터가 어떻게 출세를 쟁취하며, 어떻게 몰락하는지 그리는 작품인 것이다.

천사표 의사를 중심으로 한 작품은 만화, 영화, 드라마 등에 걸쳐 폭넓게 존재해왔지만, <하얀 거탑>은 분명한 선악이 아닌, '출세'를 관점으로 인간의 변화무쌍한 내면과 심리적인 공방전을 다루는 드라마다. 그런 긴장감 넘치는 작품에서, '천사표 캐릭터'는 시쳇말로 분위기 깨는 캐릭터에 가깝다.

장준혁, 서민의 정치적 야망을 대리한다

▲ 장준혁과 장인 민충식(정한용)은 장인과 사위의 관계보다, 정치적 야망과 명예를 매개로 한 부자지간에 가깝다. 아버지의 아낌없는 지원 아래, 아들이 아버지의 한을 풀려는 이야기도 성립된다.
ⓒ iMBC
두 캐릭터의 입장 차이를 설명하는 데에 또 하나의 중요한 설정은, 두 캐릭터의 '출신 성분'이다. 최도영은 의사 집안의 '도련님'이며, 장준혁은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어렵게 의사가 된 입지전적인 캐릭터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제 막 권력의 중심부에 진입한 '출세형 아웃사이더'다.

장준혁은 "결혼도 정치"라는 생각을 가진 캐릭터다. 의사로서 업적은 쌓지 못했어도 큰 부를 거머쥔 장인을 선택해 그의 돈과 인맥을 유감없이 활용하는 정치적 감각을 가진 캐릭터다. 일본판에서는 그의 장인도 대단히 노회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자이젠 고로가 와인 바의 마담과 내연의 관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탓하기보다 오히려 그 내연의 관계를 은유해 '거래'에 대한 뼈있는 강의까지 한다.

장준혁과 그의 장인은, 장인과 사위의 관계라기보다 정치적인 아버지와 아들에 가깝다. 아버지는 인맥과 자금을 아낌없이 후원해주는 대신에, 아들은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정치적인 야망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

두 '부자지간'은 권력과 명예라는 확고한 공통의 목표가 있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과장(혹은 정교수) 자리를 얻기 위해 질주한다. 지나쳐 보이는가? 남성 독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단 한번이라도 이런 상상을 하지 않은 남성, 과연 얼마나 될까? 부러워하지 않은 남성, 과연 얼마나 될까?

장준혁의 '서민성'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도 애틋하게 그려진다. 그의 어머니는 현실적인 현명함이 뭔지 잘 알고 있다. 아들의 성공을 기원하지만, 아들의 성공에 '폐를 끼치지 않도록' 아들의 주변에는 가급적 나타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의사라는 화려한 직업을 갖고, 성공가도를 달리는 아들의 주변 사람들에게 '초라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장준혁도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어머니 댁 앞까지 찾아갔음에도 어머니를 만나지 않고, 전화 속의 목소리만으로 잠깐의 위안을 얻는 장면이 있었다. 장준혁의 인간다움이 유일하게 드러났던 장면이었으며, 그 마음은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장준혁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얻게 되고, 비열한 수단마저도 지지를 얻게 되는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힘과 권력의 역학을 마주하게 된다. 하다못해 학창시절만 해도 얼마나 많은 '범생이'와 '일진'이 있었던가? 그런데 군대와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나와 보니, 학교에서의 역학 관계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현실의 권력은 차원이 다르다. 좌절을 겪고 눈물을 흘리지만, 이 역학 관계를 제대로 헤쳐나간 사회인은 많지 않다.

그런데 저 장준혁은 너무나도 거침없이 장벽을 뚫고 마침내 과장(정교수)의 자리를 쟁취한다. 야망이 있는 남성이라면, 수단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를 떠나 심정적인 지지부터 떠올린다. 게다가 <하얀 거탑>이 어떤 드라마던가?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를 모두 털어버린 획기적인 작품이다. 지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시청자들은 <하얀 거탑>을 의학 드라마가 아니라, 어느 남성의 야망쟁취 드라마로 보는 것이다. 장준혁을 옹호하는 목소리는 그래서 많은 것이다. 정치판을 한 번 돌아보라.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 건설회사의 평사원으로 입사해 단 12년 만에 사장이 된 어느 대선주자는 현재 차기 대선주자 중에 '검증'과 '의혹'의 여파 속에서도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권력에 대한, 그리고 야망에 대한 한국 남성의 의식을 알 수 있는 장면 중 하나다. 게다가 장준혁은 '아랫사람'을 다루는 처세까지 능숙한 완벽한 정치인이다. 그런 장준혁을 선호하는 남성의 시선에, 부유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아무데나 나서 오지랖을 자랑하는' 식으로 그려지는 이윤진은 당연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는 캐릭터인 것이다.

<하얀 거탑>의 결말은 어떻게 그려질까?

▲ 장준혁은 불륜까지 '쿨하게' 한다. 불륜을 매개로 수많은 눈물과 콧물을 흘렸던 드라마를 봐온 남성 네티즌으로서는 대단히 신선한 설정이다.
ⓒ iMBC
<하얀 거탑>은 권선징악이라는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라, 야망의 흥망성쇠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킨 작품이다. 일본판 원작에서도 그렇다. 자이젠 고로는 비극을 맞이하지만, 그 비극은 너무나도 드라마틱하게 처리된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라는 다소 염세적인 메시지로 읽힐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히 현실적이다. 야망의 질주, 그 다양한 끝 중에 하나를 감동적으로 그려나갔다.

우리 버전으로 각색된 <하얀 거탑>은 그 결말을 놓고 고심에 들어갔다고 한다. 상당수의 누리꾼들은 "한국 드라마의 공식을 따랐다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뻔한 해피엔딩을 경계하겠다는 뜻이다.

10여 년 전에, 인기연속극 <첫사랑>에서 원래는 '죽기로 예정된' 주인공이 시청자들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살아났던 적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시청자들의 의식도 많이 발전했다는 의미로 봐도 된다. 현실과 이전투구의 극치를 보여준 <하얀 거탑>, 필자 역시 그 뻔한 공식과도 같은 결말은 결코 보고 싶지 않다. 한 인간의 처연한 권력투쟁기와 '드라마 연속극의 공식'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 블로그에도 실린 글입니다.


태그:#하얀거탑, #장준혁, #최도영, #이윤진, #자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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