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번 6자회담에서 도출된 2.13 합의에 대해 코리아연구원이 정영철 현대사연구소 부소장의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의미있는 진전'이라는 제목의 글을 보내와 축약해 게재합니다. 원문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www.knsi.org)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주>
추운 겨울이 지나면 꽃피는 봄이 온다고 했던가?

지난 2월 13일 타결된 '2·13 합의'는 분명 봄이 오는 좋은 징조라 여길만하다. 이번의 '2·13 합의'는 '9·19 공동성명'에 담겨있는 말대 말, 그리고 행동 대 행동의 이행 단계에서 ' 동대 행동' 단계로 진입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간 언제든지 철회와 약속 번복 혹은 행동이 없는 말 공약(空約)을 벗어나 구체적인 행동을 합의한 것은 과거의 그 어떤 합의보다 무게감을 더해준다고 할 수 있다. 2·13 합의의 내용과 그간의 경과를 평가하면서 앞으로의 전망을 살펴보자.

북-미 양자대화의 무게감

이번의 '2·13 합의'는 내용적으로 지난 1월 북의 김계관 부상과 미국의 힐 차관보가 합의한 내용을 거의 그대로 담고 있다. 이번의 회담 기간 북의 입장을 대변했던 <조선신보>의 내용에 따르면, ▲금융제재의 30일 내 해제 ▲북의 핵동결(폐기)의 초기단계와 에너지 지원 등 초기단계의 60일 내 이행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 무역법 종결 등에 합의했다고 한다.

베를린 합의는 이미 6자 회담에서의 발표만을 남겨놓은 북미간 정치적 결단을 촉구하는 자리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북미간 정치적 결단은 이미 지난해부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정전협정 종료에 대한 서명용의 표명과 12월 2단계 5차 회담에서 미국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북에 전달되면서 북미간 정치적 결단과 합의의 과정은 뒤켠에서 진행 중이었다.

이를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조율하여 결정한 것이 1월 16∼18일에 열린 베를린 회담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6자회담은 북미 회담의 무게감을 확인하는 자리였고, 과거의 제네바 합의와 달리 강제력을 부과하는 회담이었다.

'2·13 합의'의 내용과 특징

이번의 '2·13 합의'는 여러 면에서 제네바 합의와 비교된다.

우선 행동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구체적인 행동이 합의문에 반영된 것부터 비교된다. 제네바 합의가 말대 말에 기초하여 규율되지 않은 행동을 이행하도록 하였다면, 이번의 합의는 말대 말의 공약을 넘어서 행동대 행동의 이행단계를 규정함으로써 6개 참가국 특히, 북과 미국이 쉽게 합의서를 어길 수 없도록 구조화하였다는 특징을 갖는다.

내용적으로 '2·13 합의'는 '양보를 통해 모두가 승자'가 되는 길을 선택하였다. 미국으로서는 자신들의 주 관심사인 북의 핵포기를 위한 초기단계에서 동결을 넘어서 폐쇄, 봉인 그리고 불능화까지의 성과를 얻은 반면 북은 에너지 지원과 북미관계 정상화에 이르는 길을 열어놓았다.

특히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양자대화를 워킹그룹의 설치에 합의함으로써 앞으로 북미간의 양자협상은 보다 더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초기 조치로서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 무역법의 60일 이내 종료를 위한 초기 회담의 의제가 설정됨으로써 북미관계 정상화를 구체적 로드맵의 일단이 마련된 것은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 제네바 합의가 장기간의 여정을 전제로 하여 작성된 것이라면 이번의 '2.13 합의'는 구체적인 시한을 정함으로써 목표에 이르는 길을 구체화하고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2.13 합의'의 최대 성과는 그간 북미간의 불신으로 인해 '누가 먼저'라는 추상적 주장 속에 파묻혀 버렸던 핵심 의제들이 망라되고, 단계적 신뢰조치들을 행동으로 못박음으로써 북미간 신뢰를 증진시켜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북과 미국의 합의 배경

예상을 뛰어넘는 '2·13 합의'가 가능했던 이유는 북과 미국의 모두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이라크 전 이후 중동사태와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이곳저곳에서의 반감과 도전 그리고 지난해 중간선거에서의 공화당의 패배, 그리고 북의 핵실험에 따른 압박 등이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더구나 북의 핵실험과 핵보유국 선언 및 이의 국제적인 묵인이 지속될 경우 NPT체제에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압박감이 북과의 협상을 추동했던 요인으로 들 수 있다.

반면, 북은 핵실험으로 자위적 억제력의 강화에는 일정하게 성과를 낳았지만 유엔의 제재와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 계속되는 금융제재로 인한 불편함과 고립감(금융제재에 따른 북의 피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평가와 심각하다는 평가로 엇갈린다. 그러나 최소한 금융제재로 인한 북의 불편함과 고립감은 실제적이었을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과 국제사회로부터 지원 감소로 인한 내부 경제 동력 마련의 어려움 등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북은 핵실험 이후 경제 강성대국 건설을 집중적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이는 올해의 신년사설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경제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경제자원의 확보가 중요한 시점에서 북과 미국의 이해관계는 어느 정도 빅딜의 접점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북과 미국의 이해관계의 접점이 '2·13 합의'까지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해관계가 지속될 경우 미국은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문제를 종료하고자 할 것이며, 북 역시 이러한 구조 속에서 북미관계 정상화까지의 되돌릴 수 없는 길을 만들어놓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러한 이해관계의 접점은 북미의 진정성이 아닌 정책적 이해관계로부터 도출된 것으로서 아직은 깨지기 쉬운 상태이며, 따라서 '불안한 동거'가 일정기간 지속될 가능성도 높은 것도 사실이다. 이 지점에서 6자회담 참가국들간 협력체제의 중요성이 있으며, 특히 남북관계의 진전이 보다 더 중요해지는 시점에 있다고 할 것이다.

2단계 합의의 필요성

'2·13 합의'는 현존하는 핵프로그램으로 초기조치가 한정되어 있는 제한성이 있다. 북과 미국 모두 핵무기의 폐기까지 논의해야 하고,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현재의 초기단계는 핵무기까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또한, 북이 계속해서 주장했던 경수로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번의 합의가 말 그대로 초기조치에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공동성명의 제목부터가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로 되어있다. 앞으로 북의 핵무기까지 폐기의 대상으로 삼을 경우, 경수로 및 추가적인 지원과 북미관계 정상화의 완료까지를 묶는 중기 단계 혹은 중기-완료단계의 합의가 추가적으로 요구된다.

북은 핵무기 폐기까지의 협상을 2단계로 진행할 것을 이미 암시하였다. 즉, 지금 당장 이행할 수 있는 단계와 추가적으로 취해야 할 조치 그리고 이에 따른 보상 조치를 엮어놓는 것이었다.

지난달 북을 방문한 조엘 위트 전 제네바 군축회담 대표와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 소장은 북은 1단계로 '동결, 사찰-에너지지원, 제재 해제', 2단계로 '해체-경수로 제공'이라는 핵폐기안을 제시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의 초기조치의 이행 이후 핵무기 폐기는 결국 2단계 협상을 통해 경수로 제공 및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새로운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향후 중요한 합의의 내용은 불능화 조치와 경수로 제공, 핵무기 폐기와 북미관계 정상화가 중심이 될 것이다. '9·19 공동성명'에는 이 모든 내용들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2·13 합의'는 궁극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라는 모두가 동의하는 목표와 구체적으로는 북의 핵무기 폐기를 위한 첫 발걸음을 뗀 정도이다.

'2·13 합의' 이후의 일들

'2·13 합의'의 중요 합의 지점은 북의 핵 동결-폐쇄-봉인 그리고 불능화까지로 이어지는 행동 단계와 미국과 참가국들의 에너지 지원 및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양자대화와 몇 가지 조치로 집약된다.

먼저 북미간 대화는 이미 베를린에서 합의된 대로 테러지원국 및 적성국 무역법의 종료 및 이에 대한 일정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미 미국의 힐 대표는 김계관 대표의 뉴욕 초청을 공식적으로 밝혔고, 뉴욕과 평양을 오가는 협의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북미간 대화는 쌍방의 고위급 상호방문까지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반도 비핵화 및 동북아 평화, 안보 체제 구축에 대한 워킹 그룹은 단시일 내에 성과를 내고 이행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결국은 북미간 양자대화의 향방에 사실상 종속된다고 볼 수 있다. 북에 대한 경제·에너지 협력은 불능화 단계에까지 이행해야 할 과제가 마련되었기에 60일 이후의 상황에 대한 세심하게 조율된 조치가 요구된다. 여전히 살아있는 우리 정부의 200만 ㎾ 전력 지원도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북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양자회담은 일본 국내 여론과 아베 정권의 정치적 결단이 수반되지 않으면 무척이나 어려운 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러나 6자 회담에서 일본의 발언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단독으로 제재를 지속하거나 북과의 협상에서 제외되는 상황을 원치 않는 조건에서 일본의 반발은 어떤 식으로든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의 합의 과정에서 막바지에 북일간 대표접촉이 있었던 것은 긍정적인 신호로 여겨진다.

전망과 우리의 할 일

이번의 합의가 북의 '핵시설 불능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면, 불능화 이후의 조치들을 둘러싸고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북과 미국의 입장을 놓고 본다면 합의를 역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미 양자간 대화가 성패를 가르는 지점이라고 한다면, 양자간 대화가 계속 진행되도록 구조화한 결정은 험난한 여정을 헤쳐 갈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대응이다. 6자회담의 성과는 그간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로막았던 커다란 장애물이 하나 제거되었음을 의미한다. 남북관계는 지난해 북의 미사일 발사 실험 이후 쌀과 비료 지원의 중단과 당국간 회담의 중단으로 귀결되었다. 이후 이렇다 할 당국간 대화가 복원되지 못한 채로 민간차원의 동력만이 고군분투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우리 정부가 스스로 6자회담과 남북관계를 연계했던 것의 평가를 떠나 이제는 당국간 회담의 복원과 '되돌릴 수 없는 남북관계' 진전을 이루어내는 것이 중요해지는 시점이 되었다.

이미 남북 장관급 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이 진행되고 있다. 장관급 회담의 복원과 쌀·비료 지원의 재개 그리고 나아가서 정상회담까지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 남북관계를 가로막았던 두 가지 요인 즉, 북미관계의 불화와 국내 여론의 동향이 이번의 합의문을 통해 일정하게 완화될 것이다. 열려진 공간은 남북관계를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다행스럽게 북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우리 정부와 시민사회단체가 남북관계를 어느 정도까지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북미관계 개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번의 합의에서 우리 정부 대표단이 중요한 중재자 역할을 했던 것만큼 우리 정부의 보다 더 적극적인 자세와 입장이 요구된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