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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필상 고려대 총장 논문 표절 의혹과 관련 지난 2일 서울 안암동 캠퍼스에서 열린 고려대 교수의회.
ⓒ 오마이뉴스 권우성
참 <조선일보>다운 발상이다. 고려대학교 이필상 총장의 논문 표절 문제를 둘러싼 갈등양상이 "이러고도 총장 직선제 계속 고집할 건가"(2월 5일자 사설)라는 주장으로 확대되는 것을 보면 상상력이 참 풍부한 신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구성원들의 뜻에 따라 한 집단의 리더를 선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핵심 사상이다. 더구나 지성인을 가르치는 교수집단이라면 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대통령을 국민이 뽑듯이, 대학교를 이끌어나갈 총장을 교수들이 선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BRI@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이필상 총장의 논문 표절 의혹이다. 당연히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중대한 사안이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이필상 총장은 지난해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의 논문표절 및 중복게재 논란 당시, 기독교계 주간지 <연합공보>(8월 16일자)에 실은 칼럼에서 논문표절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며 엄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자신의 주장에 비추어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문제의 본질에 해당하는 사안은 제쳐놓고 생뚱맞게도 총장직선제에 대해서 태클을 걸고 있다. 우리 대학의 문제가 '선거만능의 후진적 폐습 탓'이며, '교수들이 장바닥 민주주의라는 포퓰리즘에서 해방되지 않는 한 우리 대학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결론이 없는 <조선>의 사설

보통 신문의 사설은 서론·결론·본론의 거의 완결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학생들이 신문 사설로 논술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대부분 그 자체가 완벽한 논술문의 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설의 결론은 결론이 아니다. 그렇다면 총장직선제를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결론이 없다.

아마도 <조선일보> 스스로 결론을 내리기는 상당히 낯뜨겁지 않았을까? 흡사 2002년 대통령선거 당일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라는 사설에서 결론을 내리지 않고 할 말을 다 한 것처럼, 이번 사설에서도 스스로 결론을 내리지 않았지만 아마도 대학 총장은 재단이 임명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조선일보>가 이런 식의 사설을 쓰는 것은 상당히 불온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언론의 사설이라는 입을 빌어 <조선일보> 방우영 명예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연세대학교 재단의 입장, 나아가 사학 재단의 입장에서 쓴 글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신문이 그간 재단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을 반대하고 전교조의 '교장선출 보직제'를 완강히 반대하면서 사학의 충실한 대변자 역할을 해왔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총장직선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총장을 직접선거로 뽑아도 여전히 재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데에 있으며, 사학에서는 재단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2006년 4월에 연세대학교 회의장에 등록금 인상에 항의하던 학생대표가 들어오자, 방우영 연세대 재단이사장이 "아니, 총장부터 우리 연세대학교 후배들한테 이렇게밖에 안 가르쳤어?"라고 정창영 총장에게 반말로 꾸지람을 날리고, 총장은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던 장면을 떠올려 보면 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조선>도 틈만 나면 북한을 민주화시키자며?

또한 정말 더한 문제는 이 신문이 언론이라는 영향력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민주주의적 가치를 깎아내리려 하는 데 있다.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러운 것이다. 서로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하고 비판하면서 사회가 발전하는 것이다. <조선일보>도 '권력에 대한 비판', 무지하게 좋아하지 않는가? 또 틈만 나면 북한을 민주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박정희 향수'나, '인혁당 사법살인 사건', '긴급조치 재판 논란', '일해공원 논란'도 다 민주주의적 가치가 왜곡되고 폄하됨으로써 나타나는 사회적 병폐라고 할 수 있다. 비민주주적 절차를 강제함으로써 나타나는 갈등, 혼란, 부작용, 후유증은 가히 측정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가치관의 혼란, 민주주의 기본 절차에 대한 논란을 부추기는 신문은 감히 공익을 내세우는 언론으로서 자격이 없다. 나는 구체적인 결론은 내리지 않겠다.

태그:#고려대, #총장, #이필상, #고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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