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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의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은 스스로 깨달음을 구해서 부처가 되라는 것이며, 그 당시 불교의 조직과 인물의 구성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수행하는 제자인 아라한들과 일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가르침을 따르는 일부 재가신자들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제자들은 많아지고 사원이 생겨나는 등 가르침의 내용과 다른 삶의 양식이 전개되었습니다.

석가모니 열반 후 시간이 지날수록 스승의 가르침에 대하여 해석을 달리하는 제자들에 의하여 여러 부파(部派)가 생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종교나 사상들과의 직간접적 교류를 통해 그들의 신들도 받아들이게 됩니다. 물론 초기 불교에서부터 받아들인 신들도 있습니다. 아무튼 불교에서 수용한 여러 신들은 대체로 인도의 고유한 신들로써 이들을 신들의 무리라는 뜻으로 신중(神衆)이라 부릅니다.

석가모니 사후 한참 뒤에 만들어진 <법화경>을 보면 불교가 인도의 여러 신을 받아들인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이 경전을 보면 석가모니께서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을 할 때 많은 보살들과 함께 무수한 신들이 무리를 지어 모여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신들은 석가모니의 설법을 듣고 크게 감화를 받아 불법을 찬탄하고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화엄경>에도 마찬가지로 여러 신중(神衆)이 등장하여 부처의 깨달음의 세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신중의 역할은 주로 부처와 불교를 지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탑, 부도, 석등, 경전 등에 신중을 새겨서 보호하는 역할을 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절의 입구에 금강문이나 천왕문에 금강역사와 사천왕을 모셔두고 절을 수호하는 역할을 맡기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표현하고 있는 신중들의 모습은 아주 다양한데 부드럽고 인자한 모습, 화를 내는 모습, 우락부락한 근육의 상반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 얇고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있거나 장수들이 입는 갑옷을 입은 신중도 있습니다. 사람의 모습이 기본이지만 온갖 동물의 머리에 인간의 몸, 심지어 몸 전체가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신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신중들 중 주로 불교예술에 등장하는 인물로는 사천왕, 금강역사, 팔부신중과 12지신 등이 있습니다. 사천왕과 금강역사에 대해서는 간단하지만 천왕문과 금강문에서 이야기를 했으니 여기서는 팔부신중과 12지신을 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팔부신중(八部神衆)

고대 인도의 신화에 나오는 여덟 종류의 신들을 불교에서 받아들여 이들을 팔부신중이라 합니다. 그들의 이름은 하늘(天), 용(龍),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입니다. 이들은 주로 석탑의 상층 기단에 나타나고 있으며 이름은 정확하지만 실제 이들을 함께 표현된 모습은 제각각이어서 누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습니다.

팔부신중의 첫째인 하늘(天)은 불교의 우주관에서 간단하게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을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은 6가지 모습으로 태어나는데 그 중의 하나가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는 그 하늘을 주재하는 신이 있는데 특히 불교에서 중요하게 여긴 신은 사천왕천과 범천(梵天, Brahman)과 제석천(帝釋天, Indra)인데 이미 한 번 정도는 언급한 적이 있어 생략하겠습니다.

아수라(asura)는 신(神)을 뜻하는 수라(sura)에 부정을 뜻하는 접두사 아(a)가 붙어서 신에 대항하는 악마 또는 나쁜 신이란 뜻입니다. 불교에서 바라보는 아수라는 원래 착한 존재였는데 자신의 딸을 농락한 제석천에 불만을 품고 하늘나라를 공격하는 포악한 성격의 존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신화에 따르면 수라와 아수라는 원래 배다른 형제로 착하고 정직하며 성실했는데 아수라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가 많아지자 점차 거만해지고 자만심이 늘어 수라와 싸움을 펼칩니다. 아수라보다 힘이 약한 수라는 비슈누 신에게 요청하여 죽지 않는 약을 구하지만 다시 아수라가 이 약을 뺏어 가버립니다. 결국 비슈누의 도움으로 불사(不死)를 얻은 수라가 승리하여 아수라는 동굴, 산, 바다 속 깊이 도망가 거기서 산다고 합니다.

아수라는 악마로서 제거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선과 악을 함께 가지고 있는 존재인지라 호국선신(護國善神)의 하나로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 착했던 아수라가 인도 문화권에서 악으로 변하고 다시 불교로 들어오면서 선으로 자기 변신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팔부신중의 하나로 등장하는 아수라는 3개의 얼굴과 6개의 팔을 가지고 있으며 세 쌍의 손 가운데 하나는 합장을 하고 있으며 다른 둘은 각각 수정(水晶)과 도장(刀杖)을 든 모습이라고 합니다.

▲ 보물제133호 화엄사서오층석탑 기단부 내 아수라상
ⓒ 김성후
용은 동양과 서양에 모두 존재하며 불교에도 용과 관련한 독특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절에 있는 건물의 공포나 닫집, 단청 등에도 용이 있으며, 종, 이수, 귀부, 탱화 등에도 용이 있습니다. 팔상도의 한 장면인 ‘비람강생상’에는 석가모니가 태어날 때 용왕 난다와 우파난다가 하늘에서 따뜻하고 시원한 물을 뿜어주어 그의 몸을 씻겨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인도 신화에 의하면 용은 뱀처럼 생긴 무리들의 왕입니다. 용은 지하세계인 파탈라(patala)에 살고 있는데 파탈라의 맨 아래층에 모든 용 위에 군림하는 아난타(Ananta)라는 용왕이 살고 있습니다.

▲ 보물제11호 통도사 동종 포뢰
ⓒ 김성후
중국에서는 용왕에겐 아홉 아들이 있는데 각자의 특성에 맞추어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합니다. 비희라는 용왕의 아들은 무거운 것을 들기 좋아해서 돌비석 기단에 조각되고, 높은 곳을 좋아해서 전각의 지붕이나 비석의 이수에 장식되는 이문, 소리가 우렁차서 범종의 용뉴에 새겨지는 포뢰, 힘이 있어 옥문에 주로 장식되는 폐안, 놀고먹는 것을 좋아해서 식기나 반상기에 새겨지는 도철, 물을 좋아해서 다리의 기둥에 새겨지는 공하, 살생을 좋아해서 칼의 콧등이나 손잡이에 새겨지는 애자, 부처님을 좋아해서 불대좌나 용좌에 새겨지는 산예가 있고 마지막으로 나비나 나방처럼 생겨서 방문의 문고리 등에 새겨지는 초도가 있습니다.

야차는 아리안족의 신이 아니라 인도 고유의 토착신이라고 합니다. 야차는 남성신이라고 하며 여성신인 약쉬는 땅의 신이자 나무의 신이라고 합니다. 야차는 온화한 모습과 흉악한 모습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흉악한 성격의 야차는 사람을 죽이고 먹으며 또한 아주 빨리 달린다고 합니다. 온화한 성격의 야차는 사람들에게 풍요와 결실, 부귀와 재보를 가져다준다고 합니다.

인도의 토착신이었던 야차는 불교를 지켜주는 수호신의 임무를 맡게 됩니다. 인도에서 슝가왕조의 푸샤미트라(Pusyamitra)가 왕이 된 후 불탑(佛塔)을 파괴하려 하자 탑을 지키고 있던 야차는 다른 야차들과 함께 왕을 물리쳤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특히 야차를 탑의 보호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탑을 보호하는 야차의 모습은 보통 양손을 가슴에 대고 새의 부리에 보관을 쓰거나 머리 위에 불꽃 무늬를 하고 입에 염주를 문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건달바는 인드라신을 모시는 뛰어난 악사로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여 신들을 기쁘게 한다고 합니다. 그는 술이나 고기를 먹지 않고 다만 향을 찾아다닐 뿐이어서 심향(尋香)이라고 불립니다. 그런 까닭에 그가 사는 곳은 히말라야의 카일라사 호수 북쪽에 있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여러 가지 향기를 뿜어내는 향취산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 수용한 건달바는 사천왕의 하나인 지국천왕의 권속으로서 동쪽을 지키는 신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불교에 들어온 건달바의 중요한 역할은 긴나라(Kimnara)와 더불어 제석천을 받들고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의 신이자 비천(飛天)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전하는 건달바의 형상은 사자관을 쓰고 현악기를 뜯고 있는 모습이 많습니다.

금시조는 인도신화에서 비슈누 신을 태우고 하늘을 나는 거대한 새인데 특히 용을 잡아먹는 새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금시조의 모습은 머리에 화관을 쓰고 있으며, 얼굴 형태는 독수리의 부리를 하고 있으며, 용을 씹어 먹거나 용을 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양 귀에 날개를 단 듯한 모습도 있는데 사람 얼굴과 비슷하지만 독수리라는 인상을 짙게 풍깁니다.

긴나라는 건달바와 함께 음악으로 즐거움을 선사하는 악사입니다. 건달바는 사람의 몸을 지니고 있는데 반해 긴나라는 인간이 아닌 아름다운 소리를 지닌 새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름답게 노래하고 춤추는 새를 신격화하여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몸을 가진 존재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긴나라의 모습은 사람에 가까우며 머리에 뿔이 하나 있는 형상이나 사람의 이마 위에 새의 얼굴이 하늘 방향으로 향하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긴나라는 이런 모양과 특징을 가진 다수의 무리를 지칭하며 불교에 들어와서는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신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 영암사지 금당 소맷돌에 새겨진 가릉빈가
ⓒ 김성후
우리나라에서는 긴나라의 한 종류인 가릉빈가(迦陵頻伽, Kalavinka)를 많이 조성하였답니다.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몸을 한 가릉빈가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울며, 춤을 잘 춘다고 하여 묘음조(妙音鳥) 또는 미음조(美音鳥)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 가릉빈가는 예배의 대상은 아니지만 다양한 장식용으로 널리 사용되었답니다.

마후라가는 크다는 뜻의 마하(maha)와 기어 다니는 것을 뜻하는 우라가(uraga)가 합쳐진 말로 뱀이나 용의 종류를 지칭합니다. 인도신화에서는 건달바, 긴나라와 함께 음악의 신이었는데 불교에 수용되어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신중이 되었습니다. 마후라가의 모습은 사람의 몸에 뱀의 머리를 하고 있으며 신중탱화에서는 머리에 사관(蛇冠)을 쓴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조각상으로 묘사할 경우 한 손에 뱀을 잡고 사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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