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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저는 영동(嶺東) 지방에서 건축업을 하며 살고 있는 50대 중반의 남자입니다. 집사람은 15년째 화장품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대학 1학년 때 휴학하고 군 복무를 하고 있고, 딸도 대학 4학년 때 휴학하고 서울에서 학원 '알바'를 하고 있지요.

@BRI@'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가난'이란 속담 아십니까?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탈출하는 이유가 공산정권의 숨 막히는 독재 때문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정치를 잘하고 못하고는 둘째고, 백성들은 배부르고 등 따스하면 됩니다.

서민들은 힘듭니다. 옛날부터 악한 사또는 고혈의 세금을 걷는 이로 묘사됐지요. 예를 들면, 탈세를 방지하겠다고 만든 부가가치세가 서민들에게 환급되지 않는 고정세로 굳었습니다.

게다가 물가도 비쌉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11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을 포함한 13개 주요 국가들 가운데 우리나라의 쇠고기, 돼지고기 가격이 가장 높다더군요(국제노동기구가 펴낸 '직업 임금 및 식료품 가격통계', 2005년 10월 기준). 뼈 없는 쇠고기 가격은 미국의 6배, 영국과 이탈리아의 5배를 넘는다고 합니다. 뼈 없는 돼지고기 가격도 브라질, 영국의 두 배 이상이고 일본보다도 높다고 합니다.

집사람이 장사를 하는 중앙통엔 지금 점포들이 한 집 건너 하나씩은 비어 있습니다. 인구 10만이 안 되는 소도시에 대형마트가 들어서 있고, 5일에 한 번씩 열리는 장도 유명무실하게 됐습니다. 장사가 안 돼서 점포를 내놔도 살 사람이 없지요.

"아빠 돈 없는데…." "그럼 은행 가서 빼면 되잖아…." 우리에게도 어린 딸이 이렇게 말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의 정치력 부재라고 생각한 적은 없나요

수출이 어떻고 민주주의가 어떻고 하지만, 서민들에게는 우이독경입니다. 부동산투기를 벌이는 '가진 자들' 부류에 포함돼 살고 있는 사람이 전체 국민의 몇 퍼센트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수백만명의 일용직 근로자들이 오늘도 인력소개소를 헤매고 있습니다.

저희도 자식 둘을 대학에 보냈습니다. 대학에 보내지 않으면 미래가 없기에 온갖 희생을 감수하고 보내야합니다. 자녀를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내려면 한 해에 2000만원이 들어갑니다. 집에서 다닐 수 있는 국립대학에 보내도 1000만원은 들어가지요.

출산율이 떨어진다고 정부에서 걱정합니다. 지자체에서는 보상금도 준다지요. 그렇지만 전 살인적인 교육비 때문에 자녀를 둘씩이나 둔 것을 후회한 적이 많았습니다.

저도 지난 대선에선 열렬한 '노빠'였습니다. 탄핵 때는 울분을 토했고요. 하지만 요즘 대통령님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조·중·동 때문에', '한나라당 때문에', '경제문제는 지난 정부의 유산'이라는 변명에 공감 가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님 자신의 정치력 부재에 있다고 생각해 보신 적은 없는지요?

불교에서는, 모든 것은 나 자신이 만들어낸다고 말합니다. 서민들이 당신을 열렬히 지지하고 성원했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지금까지 집권하셨습니까? 이유야 어찌됐건 서민들이 더욱더 살기 힘든 정치를 한 것은 사실이고, 절망에 빠진 그들을 정선의 강원랜드 카지노로, '바다이야기'로, 로또로 몰아대는 결과를 낳은 것도 사실이지요!

요즘은 옛날과 다릅니다. 환갑이 다 돼가는 저도 인터넷을 사용하고, 누가 옳고 그른지 스스로 판단하며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우리나라에선 강남이나 투기지역에 있는 아파트를 갖고 있는 자들이 정책을 입안하고 심의합니다. 저는 건축업을 하고 있어서 아파트를 짓는 데 들어가는 공사비 내역을 훤히 알고 있습니다. 시장원리에 맡긴다며 공사비를 밝히지 않고, 버블(거품)이 걷히면 경제공황이 올 거라는 논리로 원가공개를 거부하지만 기실 자기 부동산이 하락할까봐 걱정하는 거지요.

요즘 대선주자들이 지지율 때문에 웃고 우는 것을 보면 우습습니다. 가장 표가 많지만 침묵 할 수밖에 없는 서민들은 빅뱅 일 보 직전입니다.

대통령님, 당첨이 안 될 줄 뻔히 알면서 로또를 사는 참담한 심정을 겪어 보셨는지요?

태그:#노빠, #서민, #정치력 부재,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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