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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도, “아들 삼형제와 며느리를 병풍삼아 찰칵” 이 그림을 보면 왜 이렇게 웃음이 나오는지...
ⓒ 류해윤
앞서 '그림을 배운다는 게 대체 무엇인가'라는 기사를 통해, 화가 류장복과 칠순에 그림을 시작한 그의 아버지 류해윤의 2인전에 대해 소개해 드렸지요. 그리고 두 분은 저의 시아주버님과 시아버님이라고 말씀드렸고요.

어제(14일) 그 두 작가와의 대화 모임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오셔서 가운데 테이블이나 긴 의자에 앉아 정담을 나누거나, 주변에 서서 김밥, 포도주 등을 먹으며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벽면에는 아주버님의 철암(태백의 한 지역으로 유명한 탄광촌) 사생 작품들과 아버님의 금강산, 무릉도원, 농촌 등의 풍경 사진들이 전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자 불이 꺼지고 전시되지 않은 두 분의 더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었고, 아주버님이 작품을 보며 이런저런 설명을 하셨습니다. 관객들의 질문과 두 작가의 대답이 이어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두 분의 차이를 알게 됐습니다. 아주버님은 대상을 직접 본 상태에서 구상하며 그리지만, 아버님은 시공을 초월한 기억과 상상의 장면들로 머리 속에서 완전히 구성을 끝냈을 때 화폭에 옮긴다는 것이었습니다.

▲ 1월 14일 2인전 중 ‘작가와의 대화’ 모임에서 그림 설명을 하고 있는 류장복 화가
ⓒ 류장복

▲ ‘작가와의 대화’ 모임에서 마임극을 하고 있는 이정훈님
ⓒ 류장복
그 후 의자들을 가장자리로 치우고 조명을 낮춘 뒤 '세계에서 가장 키 큰 마이머'라는, 이정훈님의 재밌는 마임 공연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 이순님의 춤판을 통해 몸과 몸을 통한 표현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이 분들과 아주버님인 류장복님이 장르가 다른 예술가들과 관객이 함께 하는, 파격적인 총체극을 계획한다니 기대가 됩니다.

▲ ‘작가와의 대화’ 모임에서 춤을 추고 있는 이순님
ⓒ 류장복
참석자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합니다. 아주버님은 맨 마지막에 어머님께 한 말씀 부탁드렸습니다. 어머님이 나오셔서 깊이 고개 숙이며 짧은 한 마디를 두 번 말씀하시고 들어가셨습니다.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는 그 순간 "어머니, 수고하셨어요!"라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숫기 없는 저로서는 낯선 이들이 많은 자리에서 갑자기 튀는 소리를 내뱉을 자신은 없었습니다.

'딸 노릇'하는 남편, 그 점이 남편 매력

▲ 2006 우리집 옥상에 화초전(그림 쏙에 그림).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 전세금을 다 날릴 위기에서 극적으로 경매를 받았다. 이젠 세탁소 한 구석을 벗어나 옥상에서 아버님은 그림도 그리고 어머니는 화초를 가꿀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그림에서 당신은 크고 어머니는 작게 그려져 있다. 여기도 누렁이가 끼어 있네...
ⓒ 류해윤
행사가 끝나고 남편 동창 내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2차를 갔습니다. 누군가 어머님이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았는데, 고맙다는 말만 하셨다는 말을 합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어머니야말로 수고했다는 말을 들어야 할 분이기 때문에 다른 말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습니다.

"그건 정말 그렇다. 아버지가 옷가지 몇 개 다려놓고 '됐지?'하고 옥상 작업실로 올라가버리면, 엄마는 '그래. 가소'라고 말하며 올려 보내고는 옷을 다시 다 내려 바지 주름도 다시 잡고 하는 거야.

아버지는 그림에 몰입하면 그만인 분이지만, 엄마는 그럴 수가 없어. 엄마는 세탁 일에만 갇히지 않고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은 분이고 자존심이 강한 분이지만, 그 모든 것을 참고 감내하며 뒤에서 다 감당해 오신 분이지.”


세탁소를 하는 어머니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을 감내해왔다는 뜻입니다. 남편은 세 아들 중 어머니의 딸 노릇을 해왔다 할만하기에 이렇게 어머니를 이해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남편이 공사다망한 일로 격무에 시달리는 가운데도 어머니한테 다녀오고 종종 긴 전화로 어머님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상담 상대가 되어줄 때, 저는 남편의 건강이 걱정됩니다. 그만큼 남편에 대한 나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어 속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남편은 모두에게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보통 남자들에게는 없는, '딸 노릇'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감성과 능력, 맘씨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 점은 제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입이다.

남편을 두고 주변에서는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잘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들 합니다. 남편은 감성과 직관력이 뛰어난 사람인데, 그건 바로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과거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되었을 때나 형사들의 감시를 받을 때, 어머니는 형사들에게 조금도 꿀림 없이 그들을 감당해내고 많은 학생들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하기도 했답니다. 지금도 가끔 세상 돌아가는 일에 한 마디씩 하는 것을 들으면 그 통찰력에 깜짝깜짝 놀라게 됩니다.

그의 감성이 세상을 더 의미 있게 살도록 노력하게 만들어 왔고, 그래서 제게는 더욱 든든합니다. 제가 그에게 잘 설명하면 무엇이든 그가 이해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은, 그가 남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출중한 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에게 그런 감성과 직관력을 물려주고 계발해주신 어머님을 좋아하고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효부냐 하면 절대 그렇지는 못합니다. 만약 며느리로서 박수를 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곁에서 시부모를 모시는 형님(큰 동서)이라 할 것입니다. 어머니가 싫은 소리 안하고 하고 싶은 말은 편히 드릴 수 있게 받아주고 이해해주시는 편이라, 제가 어머니를 좋아하고 고마워하는 정도이지요.

얼핏 본 어머니 눈물 이야기, 한동안 코끝 찡해

▲ 2000.6.15 아버님의 그림에서 아버님은 그림을 그리거나 말을 타거나 하시고 어머니는 항상 일을 하고 계시다.
ⓒ 류해윤
어머니 얘기를 하다가 옆길로 새서 남세스럽게 남편 자랑을 해대고 제 얘기까지 갔습니다. 다시 어머니 얘기할게요. 어제 남편의 한 친구는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실 때, 어머니 얼굴에서 얼핏 비춰지는 눈물을 보았다고 합니다. 요즘 먼 곳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 저는 보지 못했는데, 친구 분의 그 이야기를 들으니 한참 동안 코끝이 찡했습니다.

어머님도 하고 싶은 일이 많으실 텐데, 아버님이 그림이란 세상을 찾으신 것처럼 어머니도 어머니의 세상을 찾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음식 솜씨 좋으시고 화초만 해도 얼마나 잘 키우는 분인지, 그 옛날 화장실만한 방에서 몇 식구가 복닥거리며 살 때도 난초 하나 얻으시면 그걸 몇 개로 불려 좁은 방 한 편을 차지하게 만드셨던 분입니다.

이제 어렵게 옥상이 있는 집 주인이 되어 작은 옥상에 많은 화분과 몇 가지 야채들을 키우고 계십니다. 하지만 어머님 볼 때마다 '어서 힘든 세탁소 일 놓고 진짜 텃밭을 일구며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드려야 하는데'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형편이 되는대로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고 싶은 저로서는 언젠가 터가 정해지면 어머님, 아버님이 저희 근처에 사시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시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버님의 그림마다 빠지지 않는 누렁이도 키우실 수 있도록 제가 유기견을 입양시켜 드릴 겁니다. 문제가 있다면 두 분이 40여년 세월을 꼬박 길음동 구석에서 사셨다는 점입니다. 이 곳에서 쌓은 동네 사람들과의 우정을 어느 정도 대신할 만큼 새로운 곳에서도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일 겁니다.

▲ 1999.11.26, 32년생 69세, 29년생 71세, 나들이 가시나보다...
ⓒ 류해윤
아버님!
만 8년 동안 500여점 가까운 다작을 하신 열정에 감탄하지만, 세탁소 일 접으실 때까지는 어머님 생각해서 작품 수를 좀 줄여주실 수 없을까요? 아버님이 간염 걸려서 다 죽게 되었을 때 아버님을 살려서 제2의 인생을 살게 하신 분이 어머니잖아요. 대신 여기저기 안 아픈 곳 없게 된 몸을 이끌고, 하루에도 수없이 다가구 주택의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늙은 아내의 다리를 하루에 한 번씩만이라도 주물러 주세요!

어머니!
굵직한 두 작가를 만드시느라 정말 수고하셨어요. 물론 어머니가 키우신 건 두 작가만이 아니지만요. 어제 행사에 고운 모습으로 오신 어머니께 꽃다발이라도 한 아름 안겨 드렸어야 하는데, 생각이 미처 거기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좋은 삶을 찾아야지요. 어머니도 그런 삶을 찾는 쪽으로 스스로 생각을 가져가 주세요. 어머니, 고맙습니다.

▲ 2002.12, 2003.4.28 삼방동 눈, 종이에 목탄 78.5x106(cm), 아들이 그린 겨울 풍경
ⓒ 류장복

▲ 2004.3.8 구정(설날), 종이에 아크릴릭, 수채 40.4 x80(cm) 아버지가 그린 겨울 풍경
ⓒ 류해윤

덧붙이는 글 | <류해윤, 류장복 회화展>이 1월 5일에서 18일까지 갤러리 쿤스트독(02-722-8897)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두 부자 작가의 그림들은 화가 류장복의 블로그 kr.blog.yahoo.com/ryujangbok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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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생명들과 더불어 평화로운 숨을…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모르고, 인권,생명,생태란 시대적 화두를 풀어갈 수 있는가? ♥ 좋아하는 문구 : 세상을 본다 = 다른 이들의 아픔을 느낀다/ 단순한 거짓말, 복잡한 진실/ 특이성을 생산해 배치와 관계망을 바꿔나가기/ 소수자되기는 성공주의와 승리주의의 해독제/ 더불어 숨쉬고 더불어 자라기/ 분자혁명.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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