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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 노조원들이 10일 오후 현대차 사옥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성과급을 둘러싼 현대차 노사 관계가 가파른 대결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비정규법안과 노사관계로드맵 등 굵직한 노동 관련 법안이 지난해 말 정기국회에서 통과되고 난 뒤 올해 초 첨예한 노동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런데 현대차 사태는 그런 예상을 깨고 말았다.

앞서 지난해 12월 28일 윤여철 사장이 노조를 방문해 "정치파업으로 2006년 하반기에 수정된 생산목표를 98%밖에 달성하지 못했으니 성과급 150% 중 100%만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그 뒤 현대차그룹 김동진 부회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비상경영과 임금동결을 해야하는 상황"이라 발언했다.

이어 올초 시무식에서 노조와 사측이 충돌하면서 사태가 급격하게 악화됐다. 시무식에서의 충돌이 노조에 대한 비난여론으로 나타나자 노조는 당혹해 하고 있다.

어수선한 선거 국면에서 터진 '현대차' 폭탄

@BRI@지금 노동계는 선거 국면으로 어수선하다. 1·2월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를 비롯해 금속노조, 현대차노조 등 주요 조직과 사업장은 선거 국면에 돌입했거나 앞두고 있다. 어떤 성향의 지도부가 들어설지가 주된 관심거리다.

이번 사태가 벌어지기 전 어수선하기는 현대차노조 또한 마찬가지였다. 작년 말 조기선거를 결정하면서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노조는 사측이 성과급 미지급을 들고 나올 것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금속연맹 등 상급단체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강수였다.

노동계는 사측이 이번 사태를 의도적으로 조장한 측면이 있다고 보고 있다. 사측이 생산목표달성과 성과급을 연동한 적이 없었다는 점, 신년휴가를 앞두고 휴가 직전 성과급 미지급을 통보한 점, 충돌이 예상되는 시무식을 강행한 점 등이 그렇다.

현대차노조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사측이 제시한 생산목표를 달성한 해가 없으며 목표달성 여부와 관계없이 성과급은 지급되었다고 한다.

2006년 또한 목표달성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현대차그룹 전체의 매출은 9.4% 증가했고 자동차부문 매출도 7.7% 증가하는 등 전체적인 경영성과는 만족할만한 수준이었다는 것. 특히 이런 성장이 유가상승·달러화 하락·치열한 글로벌 경쟁 등의 조건에서 이루어진 점을 고려하면 평균수준 이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것.

이에 대해 노조측은 사측이 합의 파기를 통해 집행부 교체시기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고있다. 사회적으로 민주노총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는 점도 고려됐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왜 현대차 사측은 노조의 격한 반발이 예상되는데도 성과급을 미지급하기로 했을까?

사측은 '정몽구 구속'으로 수세, 노조는 '선물 비리'로 수세

▲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4월 28일 오전 1차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먼저, 기본적으로는 노조에 대한 그룹 회장과 경영진의 부정적 인식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현대차노조는 1987년 설립 이후 20여년 동안 해마다 예외없이 파업을 벌여왔다. 통상적인 임금협상시기 이외에도 91년 성과분배투쟁, 95년 양봉수 열사 투쟁,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 등 격렬한 투쟁을 벌여 왔다. 이들 투쟁들은 대부분 사측이 노조를 인정하지 않거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에 의해 장기화되거나 격렬한 양상을 띠었다.

현대차 사측은 노조의 정치파업으로 생산손실이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비정규직법안 저지 투쟁' '한미FTA 저지와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 투쟁' 등으로 총 10회 이상 파업을 벌였다는 것.

사측은 지난 해 노조의 정치파업으로 인해 자동차 2만7000여대의 생산 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가 정치파업만 하지 않았어도 생산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 톱5'를 목표로 경쟁에 들어간 지금 국내생산의 안정화와 생산성 확대를 위해 현장에 대한 통제력을 확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난해 현대차그룹은 노사의 역학관계가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초반에는 현대차그룹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았다. 정몽구 회장이 비자금 관련사건으로 구속되면서 노조로부터도 수세에 몰렸다. 그 결과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복직과 현대차의 임금협상 양보 등 노조가 상대적으로 승기를 잡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말 현대차노조 집행부에서 비리사건이 터졌다. 창립기념 선물 비리사건이 터지면서 조기선거로 집행부가 위축된 것. 사측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노사의 힘 관계에서 확실한 우위를 잡겠다고 나섰다는 것이 노동계의 진단이다.

산별노조 교섭 앞두고 노조 길들이기?

▲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들은 지난 해 5월 복직 등을 요구하고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신축공사장 타워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더 큰 흐름에서의 분석도 있다. 현대차노조를 포함한 민주노총의 각종 정치파업을 차단해 보겠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조합원에게 경제적 손실을 줘서 앞으로 정치파업을 차단한다는 것.

지난해 6월 금속노조로 산별 전환한 현대차는 산별노조의 주력 사업장이 되고 정치파업이 더 잦아질 가능성이 높다. 노동 진영의 투쟁영역이 비정규직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양극화, 한미FTA 등 정책 전반으로 확장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기업별 교섭을 해온 현대차 노사도 올해 처음으로 산별교섭을 하게 된다. 사측이 산별교섭에 응하지 않을 경우 이에 대한 마찰도 클 것으로 보인다. 이런 예상 속에 올해 처음으로 맞이하는 산별노조의 교섭과 투쟁을 앞두고 임·단협 이외의 문제에 대한 노조의 투쟁을 봉쇄하겠다는 의도를 사측에서 했을 수 있다.

특히 산별교섭에서 금속노조는 대기업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대기업은 협력업체에 대해 납품가 인하를 강요해왔다. 이 때문에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대공장에 비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고 임금도 상대적으로 낮았다. 산별교섭에서 노조는 대기업에 대해 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상대적 고임금을 받고 있는 대공장 노조가 해당 사업장의 문제를 넘어 노동현안과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발전에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과 산별노조는 이런 문제들을 시정하기 위해 협상과 투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의 성과급 미지급은 민주노총과 산별노조의 선봉부대 역할을 해온 대공장 조합원들에게 이런 활동을 차단하기 위한 차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리'로 타격받은 노조, 성과급까지 못 받으면...

▲ 현대차노조는 2006년 산별노조로 전환했다. 사진은 울산 현대차공장 안에 있는 노조 사무실 건물 모습.
ⓒ 윤성효
노조가 이번 사태에 대해 강경하게 나온다는 여론도 있다. 여기에는 현대차노조는 물론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내부의 역학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이다.

박유기 현대차노조 위원장은 지난해 산별 전환에 성공하면서 '통합 금속노조' 초대 위원장감으로 거론되었다. 그런데 지난해 말 납품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었다. 여기에 성과급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할 경우 무능하다는 비판까지를 들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박 위원장은 '친 중앙파'로 분류되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 현대차노조가 사측에 밀리면 금속노조 위원장 선거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중앙파의 입지가 위축될 것을 우려해 강경하게 나온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 관계자는 "한 때 박 위원장이 통합금속노조 위원장 출마가 거론된 적은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볼 때 차기는 몰라도 당장 출마는 어렵다"며 "금속노조 출마 문제 때문에 이번 사태에 대해 강경하게 나온다고 보면 안된다"고 밝혔다.

금속노조측은 "노조를 무력화해서는 직원의 자발적인 생산협력을 끌어낼 수 없다"면서 "물론 도요타처럼 극단적인 노조의 무력화와 직원의 높은 충성심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정리해고를 단 한 차례도 시도하지 않은 도요타의 경영철학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매운동까지... 노사 모두 피해입을 상황

이번 사태가 장기화되면 현대차 노사 양측 모두 피해를 크게 입을 수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 불매운동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노사 공멸로 치달을 위기에 놓인 것이다.

현대차 노사 양측이 한발씩 물러나 협상을 벌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노동당 울산시당은 10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무식 때 벌어진 노사간 몸싸움 등에서 노조의 무리한 대응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1차 책임은 회사 측에 있다"며 "노사는 자존심 대결로 가지 말고 한 발 물러서서 현안에 집중해 협상하라"고 촉구했다.

현대차는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하기 위해서 외형적 성장과 함께 노사관계의 근본적인 전환을 고민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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