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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태아를 상징하는 동자상엔 수많은 사람들이 돌탑을 쌓아 주었다.
ⓒ 김대호
내가 나로 있느니 네가 없느니
강물로 뛰어들어 모두 잊겠네
내가 나로 있느니 네가 없느니
물고기나 되어서 바다로 가리

- 이상은의 노래 '삼도천' 중에서


사람이 죽으면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맞이하는 강이 있다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요단강을 건너가면 다른 세상이 있다고 하고, 그리스로마신화에서는 비통, 증오, 시름, 불의 강을 건너 마침내 레테의 강을 건너면 세상의 모든 시름을 망각하게 된다고 한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양 삼국은 이승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강을 일컬어 삼도(삼도 지옥, 축생, 아귀)의 강(三途川)이라고 부른다.

강에 이르러 물을 마시면 이승의 모든 인연의 기억은 사라진다. 그곳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시는데 노자를 주면 저승으로 태워다 준다. 저승에서는 거울에 자신을 비추면 지은 죄업이 모두 보이고 그 죄에 따라 지옥이나 극락으로 갈 곳이 정해진다.

그러나 세상과 인연의 끈도 없고, 누구 한 사람 기념해 제사지내 주는 사람이 없으니 노잣돈도 없는 이들이 있다. 바로 흐르고(자연유산) 지워져(낙태) 형체도 없는 낙태아들이다. 이 아이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승과 저승의 사이에는 삼도의 강이 흐른다. 이 강가 모래밭에는 부모와 자식의 인연이 두텁지 못해 어려서 죽은 갓난아기와 햇빛을 보지 못하고 죽어 간 핏덩이들이 모래밭에서 고사리 손을 모아 탑을 쌓고 있다.

부처님을 공덕을 빌어 강을 건너려고 고사리 손으로 돌 하나를 들고 어머니를 생각하며 다시 돌 하나를 들어 아버지 이름을 부르며 탑을 쌓는다. 그러나 하나의 탑이 완성돼 갈 즈음이면 저승의 도깨비들이 나타나 호통을 치며 쇠방망이로 탑을 부숴버린다. 애써 쌓아올린 탑이 무너져 버리면 어린 영혼들은 그만 모래밭에 쓰러져 서럽게, 서럽게 울다가 지쳐 잠이 든다.

그때 지장보살님이 눈물을 흘리고 나타나 어린 영혼들을 감싸 안으면서 '오늘부터 나를 어머니라고 불러라'하면서 삼도의 강을 건네준다.

- 전남 보성군 대원사 '태안지장의 슬픈이야기' 중에서


불교에서는 사람의 몸은 아비와 어미의 결합(父精母血)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아버지의 씨앗은 두뇌에 깃들어 있는데 이를 '백(白)보리'라 하고, 어머니의 씨앗은 단전에 깃들어 있는데 이는 '적(赤)보리'라 한다. 사람이 생을 다할 때는 이 두 개의 씨앗이 다시 가슴 챠크라에서 만나 몸에서 떠나감으로써 육신의 사명이 다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낙태아들은 한 많은 이 세상의 업을 풀고 떠나려 하나 가슴(챠크라)이 지워져 떠날 몸이 없으므로 삼도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모래밭에서 하염없이 돌탑만 쌓고 있는 것이다.

부모를 용서하고 삼도의 강을 건너려는 염원을 담아 성글지 못한 여린 손으로 겨우 쌓은 돌탑도 도깨비가 부숴버리고, 서럽게 울다 지쳐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함부로 인연을 만들고 인연을 깨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는 않을 것 같다.

대원사에는 대웅전 오른편에 낙태아들을 위한 놀이터가 마련돼 있다. 지장보살이 아이를 안고 있고, 그 주변에는 빨간 모자를 쓴 동자상들이 수십여 개 옹기종기 모여 있다. 향로 밑으로는 이 아이들의 여물지 못한 발을 위해 앙증스러운 신발들도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 현장 스님이 만들어준 태아령(낙태아)의 놀이터.
ⓒ 김대호
왜 동자상들은 모두 빨간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일까?

빨간색은 어머니의 상징이다.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낙태아들의 영혼이 동자상에 깃들고, 빨간 모자를 매개로 지장보살을 어머니로 하여 쌓인 한과 업을 풀고, 새로운 환생을 준비하고 있음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

이 사찰에서 만난 한 스님은 "태양빛을 보지 못하고 이승을 하직한 태아의 영은 몸이 없으니 몸을 만들어 놀이터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며 "이 놀이터에 태아령들이 모여들면 지장보살이 모아서 극락세계로 데려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태아령'이란 부모와 인연은 맺어졌지만 이 세상의 햇빛을 보지 못하고 죽어간 어린 영혼들을 말한다.

지장보살은 지옥의 중생을 구제하기 전에는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저승의 어머니다. 그 중에서 태안지장보살은 태아령들이 부모를 대신해 이들이 고통과 원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어머니이다.

▲ [왼쪽사진] 부처님의 발 앞에 서있는 대원사 극락전, [오른쪽사진] 머리로 두드리는 목탁.
ⓒ 김대호
대원사의 현장 스님은 부모의 죄업을 씻고 어둠 속으로 스러져간 어린 영혼들이 구천을 헤매지 않고 천도시키기 위해 지난 1993년 6월에 태안지장보살을 봉안하고 태아령을 위한 100일 기도를 1년에 두 차례씩 봉행하고 있다.

이 사찰의 동자상 상당수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쌓아놓은 돌탑으로 둘러싸여 있다. 아마도 어쩔 수 없는 사연으로, 혹은 무지하여 낙태를 선택한 어미 아비들의 참회의 눈물일 것이다. 무덤 없는 아이들을 위한 독다물(돌무덤)일 수도 있고, 비바람에 추울까 싶어 덮어준 이불일 수도 있고, 여린 손을 대신해 삼도의 강 돌탑을 대신 쌓는 것일 수도 있다.

대원사 티벳박물관의 무량수 선생은 "15년 전 자신이 낙태한 아이를 위해 참회의 기도를 올리던 한 여자가 있었는데 그 기도가 어찌나 정성이던지 지장보살상이 보름 동안이나 피눈물을 흘려 신문에 크게 보도된 적이 있다"며 "부모가 기억해주지 않으면 이 세상에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무량수 선생은 "맺지 못한 인연이라도 부모니까 기억에서 지워버리지 말고 구천을 헤매는 아이들이 삼도의 강을 건널 수 있도록 향 한 촉, 초 한 등이라도 하나 피워주는 가슴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장수멸죄경에 따르면 세상에는 세상을 살면서 아무리 뉘우쳐도 용서받지 못한 죄가 5가지 있으니 아버지를 죽인 죄, 어머니를 죽인 죄, 태아를 죽인 죄,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낸 죄, 대중의 화합을 깨트린 죄라고 한다.

이중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르는 것이 스스로 자신을 지킬 힘도 선택의 권한도 없는 연약한 존재인 태아다.

▲ [왼쪽사진] 성인 5명이 들고 돌려야 하는 대형염주가 나무에 걸려 있다. [오른쪽사진] 근엄한 부처가 아닌 오수를 즐기는 편안한 느낌의 부처
ⓒ 김대호
지난해 평균 사망자 24만여명... 여기에 120만명에 이르는 낙태아들 수치는 빠져

우리나라 2005년 한 해 평균 사망자는 24만6천명에 이르는데, 이중 6만5천명이 암으로 사망하고 뇌혈관 질환이 3만2천명으로 그 뒤를 잇는다. 반면 한 해에 태어난 아이는 43만8천명이다. 그러나 이 통계에 빠져 있는 죽음이 있으니, 연간 120만명에 이르는 낙태아들이다. 태아 4명 중 3명이 햇빛을 보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는 것이다.

낙태수술은 예리한 칼날 같은 집게로 태아를 잘게 자르고 진공청소기 같은 호스로 빨아들여 폐기물로 처리한다. 태아는 3개월이 지나면 사람의 형상을 갖추고 혼자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집게가 자궁으로 들어가면 위협을 느끼고 이리저리 몸을 피해다니다가 결국 최후를 맞이한다고 한다. 사람이 폐기물로 처리된다는 것은 너무나 아프고 슬픈 일이다.

▲ [왼쪽사진] 신기하게도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상. [오른쪽사진] 가슴을 쓸어 내리는 어머니상.
ⓒ 김대호
대원사 입구에는 부모 공덕불이 모셔져 있다. 앞면은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상이 뒷면에는 맺힌 가슴을 쓰다듬는 어머니상이 모셔져 있다. 자연의 이치인지 신의 섭리인지 혹은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상의 눈에는 선명한 눈물자국이 남아 있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부모은중경>이라는 경전에는 부모의 열 가지 은혜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부모의 은혜를 이야기하기 전에 내가 부모로서 행해야 할 열 가지를 지키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나 또한 부모 된 자로 부끄러움이 앞선다. 그래서 대원사에서는 훈풍도 눈이 시리다.

부모 된 자라면 마땅히 생각해 보라. 잉태하여 보호하였는가? 고통을 참고 낳았는가? 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었는가? 쓴 것은 삼키고 단것은 삼켰는가? 마른자리 누이고 젖은 자리 누웠는가? 젖을 먹여 길렀는가? 더러움을 씻어 주었는가? 먼 길 떠난 자식을 염려했는가? 자식을 위해 나쁜 일도 감수했는가? 끝없이 사랑하였는가?

▲ 대원사 티벳박물관.
ⓒ 김대호

덧붙이는 글 | 천봉산 대원사는 전남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831번지에 소재한 사찰로 약 1500년 전 백제 무녕왕 3년(AD503년) 아동화상에 의해 창건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5교 9산 중 열반종의 8대 가람으로 교세를 크게 떨쳤으나, 고려시대에는 조계산 송광사 16국사 중 제5대 자진원오국사가 극락전을 중심으로 선원과 승방을 크게 중창하여 정토신앙과 참선수행을 함께 하는 선정쌍수의 대가람으로 중흥시켰다.

조선영조 7년 탁오대사가 중창하였으나 26년 뒤인 1757년 큰 화재로 소실되고 영조 35년 현정선사가 다시 중창, 12아자를 가진 대가람으로 면모를 유지해 오던 중 한국전쟁으로 극락전만 남기고 20여 전각이 소실되고 말았다.

대원사의 문화유적으로는 지방유형문화재 제35호인 자진원오국사부도와 제87호로 지정된 극락전이 있으며, 특히 극락전 안벽에 그려진 관세음보살과 달마대사의 장엄한 모습은 한국사찰 벽화의 백미로 손꼽힌다.

1990년 중창불사로 선원, 요사, 주지산, 일주문 등이 복원되었다.


태그:#대원사, #보성군, #현장스님, #티벳박물관, #낙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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