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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시드니의 불꽃놀이.
ⓒ 윤여문
@BRI@대망의 2007년. '지구의 아침'을 여는 호주 시드니의 송구영신 불꽃놀이는 한 편의 장엄한 드라마였다. 시드니 하버를 불태워 버릴 것 같은 불꽃과 1백만 명이 넘는 인파가 질러대는 환호성으로 일대 장관을 이룬 것.

'큰 옷걸이(Great coat-hanger)'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하버 브리지의 개통 75주년(The Diamond Jubilee)을 맞아 예년보다 2배나 많은 예산을 투입해서 지상 최대의 불꽃놀이를 펼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꽃놀이 현장에 붉은악마의 뿔을 매단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월드컵 경기장도 아닌데 어찌된 영문인지 궁금했다. 디지털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불꽃놀이 현장으로 나가보았다.

잔디밭과 부두 난간에 걸터앉은 1백만 명

▲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부두를 꽉 메운 시민들.
ⓒ 윤여문
호주의 상징물이 된 오페라하우스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1149m) 아치형 다리인 하버 브리지가 마주보고 있는 천혜의 항구 시드니 하버에 당도해 보니 여기저기에 다이아몬드가 그려진 깃발이 매달려 있었다.

12월 30일 오후, 전화로 연결된 클로버 무어 시드니 시장은 "특히 올해는 하버 브리지 개통 75주년을 기념하면서 '에메랄드 빛 시드니의 다이아몬드 밤(A Diamond Night in Emerald City)'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기자에게 밝힌 바 있다.

무어 시장은 이어서 "사상 최대의 불꽃놀이 행사가 2개 파트로 나뉘어서 준비됐다. 밤 9시에 펼쳐지는 어린이를 위한 불꽃놀이는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를 주제로 꾸며졌고, 어린이들이 귀가한 후에 열리는 미드나이트 불꽃놀이는 신년 카운트다운과 함께 하버 브리지 75주년을 기념하는 '다이아몬드의 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오즈(Oz)는 호주의 애칭이고, '다이아몬드의 밤'은 은혼식(결혼 25주년), 금혼식(50주년), 다이아몬드식(75주년)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75살 된 하버 브리지의 생일을 결혼기념일에 비유한 것.

400만 명 남짓한 인구가 살고 있는 시드니에서 매년 1백만 명 안팎의 군중이 화려한 신년 불꽃놀이를 구경하기 위해서 운집한다. 네 명 중에 한 명꼴인데, 거기엔 20만 명에 육박하는 국내외 관광객도 포함된다.

잔디밭과 부두 난간에 걸터앉은 100만 명의 인파가 이른 해거름부터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각종 파티를 즐기는 셈인데, 시드니의 송구영신 불꽃놀이는 CNN이 2006년까지 10년 연속 1위로 선정한 세계최고의 불꽃놀이다.

반전 시위대와 국경 없는 의사회

▲ 반전 시위를 펼치는 젊은이들.
ⓒ 윤여문
바로 하루 전에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교수형에 처해진 탓일까? 새해를 맞는 불꽃놀이 행사장에서 반전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미국, 영국과 함께 이라크 전쟁을 주도적으로 이끈 호주 정부와 존 하워드 총리를 비판하는 전단을 나눠주면서 구호를 외쳤다.

바로 옆에서는 시드니 시청이 2007년 불꽃놀이 행사와 함께 마련한 '국경 없는 의사회'를 지원하는 자선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바로 옆에서 반전시위를 하던 사람들이 '국경 없는 의사회' 헌금예약서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다.

▲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의 간호사와 의사.
ⓒ 윤여문
'국경 없는 의사회(Doctors Without Borders)'는 전쟁 희생자들과 가난으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나라의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치료하는 국제적인 민간의료구호단체다. 중립·공평·자원의 3대 원칙과 정치·종교·경제적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라는 기치 아래 설립된 '국경 없는 의사회'는 199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붉은 악마의 뿔 판매하는 한국 유학생들

▲ 우린 친구들입니다
ⓒ 윤여문
불꽃놀이를 좀 더 좋은 앵글로 담기 위해서 오페라하우스 쪽으로 걸어가다가 폴로네이시안 차림의 게이&레즈비언 그룹을 만나서 몇 컷 찍었다. 야자수 아래 모인 그들은 동성애자의 인권을 주장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바로 그 다음, 거리 곳곳에서 목격한 붉은 악마의 뿔이 어디서 나왔을까 하는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장면을 발견했다. 한국 유학생들이 행사장 곳곳에서 그걸 판매하고 있었던 것. 어떤 곳은 붉은 악마의 뿔을 사기 위해서 긴 줄을 서고 있었다.

▲ "붉은 악마 사세요"
ⓒ 윤여문
▲ '붉은 악마' 한국인 유학생.
ⓒ 윤여문
한 학생에게 사정을 물었더니 "시드니 시청의 허락을 받아서 용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한국축구 대표팀이 16강에 오르지 못해서 엄청난 재고로 남아 있던 붉은 악마의 뿔을 불꽃놀이 축제용으로 팔고 있는데 인기 짱!"이라면서 환하게 웃었다.

특히 붉은 악마의 뿔은 어린이와 연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가설 판매대를 설치하고 음료 등을 파는 상인들도 행인의 눈길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반짝거리는 뿔을 머리에 매다는 재치를 발휘했다.

취재를 끝내고 귀가하면서, 일부러 다시 찾아가서 만나본 유학생들은 장사 대신에 행사장 질서 유지를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판매 시작 2시간 만에 준비한 물건이 완전매진됐습니다. 그래서 판매를 허가해 준 시드니 시청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봉사활동을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 붉은 악마를 사랑해요~
ⓒ 윤여문
▲ 졸리운 붉은 악마.
ⓒ 윤여문
2007년의 슬로건은 다이아몬드의 영원성

▲ 하트(사랑)를 주제로 펼쳐진 2006년 시드니의 불꽃놀이.
ⓒ 윤여문
시드니 신년 불꽃놀이 특징 중의 하나는 카운트다운이 끝나면서 하버 브리지 가운데에 '올해의 기원(슬로건)'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동안 등장한 상징들을 살펴보면 화해, 영원, 하모니, 자비, 스마일 등이 있다.

1년 전, 2006년의 새날을 밝혀준 시드니의 불꽃놀이의 주제는 '사랑'이었다. 2005년 12월에 발생한 '시드니 인종폭동'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마련한 하트였던 것. 이렇듯 매년 바뀌는 상징은 카운트다운 직전까지 비밀에 붙여진다. 그래서 하버 브리지 중간에 붉은색의 ?마크가 계속해서 나타난다.

▲ 2007년의 상징은 무엇일까? 붉은 물음표가 인상적이다.
ⓒ 윤여문
2007년의 테마는 '다이아몬드'였다. 하버 브리지 개통 75주년을 함의(含意)하면서 다이아몬드의 영원성을 주제로 삼은 것. 그래서일까. 다이아몬드 문양이 화려하게 등장하면서 007영화의 주제곡이었던 'A diamond is forever'가 울려 퍼졌다.

2007년 시드니 신년 불꽃놀이를 총 지휘한 웨인 해리 총감독은 "그야말로 지구남반부의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면서 "에메랄드 빛 시드니의 다이아몬드 밤이 영원히 빛을 발하여 지구의 평화가 무궁하기를 빈다"고 말했다.

빈 하늘로 차올라서 한순간 빛나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불꽃과 영원성을 자랑하는 다이아몬드는 상징성 측면에서 서로 길항(拮抗)한다. 그러나 그게 뭐 대수이겠는가. 불꽃만큼이나 뜨거운 열정으로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순간이 영원으로 이어지는 것 아닐까.

"한국의 독자여러분, 뜨거운 불꽃처럼 활기찬 2007년 맞으시기 바랍니다."

▲ 2007년의 상징은 하버 브리지 개통 75주년을 의미하는 다이아몬드. <시드니모닝헤럴드> 인터넷판.

태그:#시드니, #2007년 시드니 신년 불꽃놀이, #붉은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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