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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한편을 읽고 독후감을 올린다는 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 기사의 댓글란이 작아서 이렇게 기사로 올리게 되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합니다. 임 기자님은 제가 본인의 기사에 대해 다소 비판적 시각으로 썼더라도, 그저 기사에 달린 다양한 관점의 댓글 중 하나라 여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돼지는 아주 총명하고 사근사근하며 배변도 특정 자리에만 하는 깨끗한 동물이라고 합니다.
ⓒ farmsanctuary.org
돼지는 잡아먹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제가 지금부터 하는 얘기들은 불편할 뿐일까요? 임 기자의 기사를 읽으며, 여러분들 가슴 속에서도 사진 속 온갖 돼지인형들의 그 사랑스런 모습들과 그들을 처참하게 가두고 죽여서 해체해 먹는다는 사실이 서로 불협화음을 내고 있지만, 무시하고 계실 뿐이라고 저는 짐작합니다.

▲ 동물은 그의 사체에 각 부위별로 이름이 붙여짐으로 해서 더욱 '부재하는 대상'이 되어버립니다. 미토 출판사의 <육식의 성정치> 표지
ⓒ 김효진
인종차별, 성차별, 아동 학대의 문제와 동물권 옹호 등 반폭력 운동을 벌여온 캐럴 아담스는 그의 책 <육식의 성정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도살을 통해 동물은 '부재 지시대상'이 된다. 동물의 이름과 신체는 '고기'로 된 이후에는 부재하게 된다. 동물이 고기라는 음식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동물은 고기를 먹는 행동에서는 부재하는 존재가 된다."

"동물의 죽은 몸이 고기에 대한 우리의 언어에서 부재하듯이, 남성의 문화적 폭력에 대한 묘사에서 여성은 부재하는 지시대상이다."


여성을 부재 지시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뼈저린 아픔을 동반하는 폭력이듯, 동물을 부재 지시대상으로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성폭력과 육식은 서로 별개 형태의 폭력으로 나타나지만, 부재 지시대상 속에서 서로 교차지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흔히 여성이나 창녀를 고깃덩어리로 묘사하기도 하고, 유혹하는 암퇘지의 이미지(<플레이보이>의 '어슐러 햄드레스')로 '섹시한'(섹스해보고 싶은-필자의 해석) 여성을 표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황금돼지 이미지 역시 돼지라는 동물 그 자체보다 '재물'이나 '횡재'를 바라며 물신화한 부재 지시대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 귀여운 인형이나 저금통의 모습에서만큼은 영혼이 말살된 채 물건처럼 생산되고 있는 돼지의 모습이 금방 떠올려지지는 않습니다.

▲ 콘크리트 바닥으로 된 철장 안에서 서로 부대끼며 스트레스로 동료의 꼬리를 물어뜯기 때문에 아예 꼬리를 잘라버립니다. 그 과정에 마취는 물론 하지 않지요.
ⓒ factoryfarming.com
그러나 임 기자는 여지없이 그 예쁜 돼지(인형)들이 좁고 질퍽한 곳에 가두어져 3일에 한번씩 항생제를 맞으며 스트레스로 미쳐 살다가, 결코 안락사가 아닌 참혹한 도살방법에 다량의 독성 호르몬을 뿜고 죽여져 상 위에서 지글지글 익혀지는 모습을 연상하게 해주었습니다.

저처럼 살아있는 동물과 그것으로 만들어진 고기를 함께 떠올릴 때 들리는 '불협화음'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사람들이 아직 많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불협화음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불협화음이 아닌 것으로 여기도록 사회화된 것이지요.

이 대목에서 모 참치 회사의 '끔찍한' 광고가 생각납니다. 소와 닭이 인간들에게 맛있게 먹혀지는 '참치가 되어싶어~'라고 노래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간판에 앞치마를 입은 돼지가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을 그려놓고 돼지고기를 팔거나,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개의 모습을 그려놓고 보신탕을 파는 가게들은 동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저버렸다는 점에서 개선해 주었으면 합니다.

▲ 종자용 암퇘지들은 몸을 돌릴 수도 없이 아주 작은 철장에서 따로따로 길러집니다.
ⓒ factoryfarming.com
결국 임 기자는 먹은 것이 치밀어오를 것처럼 구역질나던 똥돼지의 현실에 대한 기억을 억누르고 잊을 수 없는 맛의 음식이란 기억으로 대체하는데 '성공'하고 말았습니다. 그 기사에는 어느새 '황금돼지에 똥을 발라놓으면 최고겠네요' '똥황금돼지 3인분만 주세요. ㅋㅋ'이라는 댓글도 달렸습니다.

임 기자는 심지어 '돼지를 좀더 큼지막하게 키우기 위해 사금파리 조각으로 돼지의 불알을 째던 농부의 마음이 되어, 황금돼지가 될만한 대통령 후보에 관심을 가져달라'고까지 합니다. 옛 농부들은 칼도 아니고 왜 둔탁한 사금파리 조각으로 돼지의 살에 손을 댔을까요?

'황금' '돼지' '대통령'…. 제 머릿속에서는 이 모든 말들이 조화가 되지 않고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대통령 후보 간에 분명한 차이들은 있고, 저 역시 각각에 대한 선호가 분명한 편입니다. 하지만 저는 국민의 수준이 대통령 수준의 반을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과문해서인지 지금의 대통령에 대해 체계적인 평가를 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대통령에 대한 평가기준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국가현실과 환경에 대한 분석과 함께 이뤄져야 하겠지요.

저는 세상이 진보해가기를 바랍니다. 노대통령이 진보적이라 생각지는 않지만, 올바른 기준으로 그가 잘 하고 못한 것, 그의 한계와 가능성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다면, 이후에 아무리 진보적인 인물이 대통령을 하더라도 제대로 일을 하고 평가받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박' 터뜨려줄 '황금돼지 대통령'을 바라기 전에, 먼저 역대 대통령에 대한, 대통령 자리에 대한, 국민에 대한, 그리고 국가 현실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평가를 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이런 무거운 부탁은 시민단체와 학자들께 우선적으로 드려야겠지만, 우리도 모두 고민해볼 수 있는 문제라 생각합니다.

어떤 여성의 몸이 성적 대상으로 보여지려 할 때 그의 실제 이름이 '여성의 신체'임을 상기시키고, '고기'를 찾기 전에 그것의 실제 이름이 '동물의 사체'임을 기억해낸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대통령'이란 이름도 더 이상 실제와는 무관한, 우리가 신비화하고 씹어대는 또 하나의 '부재 지시대상'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불협화음'의 실체를 파악해내야 합니다. 억지로 크게 키우기 위해 돼지 불알에 잔인하게 사금파리를 들이대는 것처럼 반자연적인 욕구로 불협화음을 키우지 않기를 바랍니다.

12띠라는 것이 있어 새해가 돌아올 때마다 그 해의 띠동물들에 대해 관심이 많아집니다. 하지만 그 동물의 처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을 보기는 힘들고, 오직 신비화된 모습만을 부각시키며 나아가 더욱 '맛있게' '많이 먹어주자'는 얘기들뿐이라 연말연시는 제게 기분이 좋지 않은 시기이기도 합니다. 무엇인가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소외시킨다면, 이웃이나 가족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으며, 나도 그리 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인간에게는 그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문할 권리가 부여되어 있는 것일까요?
ⓒ KARA
제가 늘 하는 얘기지만, 육식동물일지라도 다른 동물을 평생 가둬키우다 잡아먹지 않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학자 플루타르크는 <육식에 대한 에세이>에서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만약 당신이 스스로 육식가라고 생각한다면, 우선 당신은 잡아먹을 대상을 직접 죽여야 한다. 그러나 당신의 선천적인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정말 신체적으로 동물을 따라잡을 수 있는 날렵한 네 다리를 갖고 있지도 않고, 동물을 죽이거나 자를 수 있는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도 없고, 동물의 생살을 뜯을 수 있는 뾰족한 부리도 없습니다. 그래서 폭력을 행사하기 위한 시설과 도구를 필요로 하지요.

이제 여러 가지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굳이 건강에도 좋지 않고 환경파괴와 기아의 주범이 되는 육식을 위해, 고통을 주는 사육도살 방식으로 고기를 대량생산하는 것을 더 이상 '자연의 섭리'라며 고집하거나 용인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존한다면, 바람직한 상생(相生)의 길을 모색할 수 있으며 꼭 그래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3일전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 제 나이 또래의 지인이 결국 유명을 달리하였습니다. 생전에 그렇게 고기를 좋아하여 그 부인은 아침부터 상에 고기를 올리고 푸짐하게 차려준다고 하였었지요. 새해에는 모든 분들 고기 두 번 먹을 것 한번으로 줄여가시고, 정부에서는 축산규모를 줄이며 좋은 환경에서 양질의 축산을 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꿔나가기 바랍니다. 이것으로 저의 새해 덕담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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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생명들과 더불어 평화로운 숨을…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모르고, 인권,생명,생태란 시대적 화두를 풀어갈 수 있는가? ♥ 좋아하는 문구 : 세상을 본다 = 다른 이들의 아픔을 느낀다/ 단순한 거짓말, 복잡한 진실/ 특이성을 생산해 배치와 관계망을 바꿔나가기/ 소수자되기는 성공주의와 승리주의의 해독제/ 더불어 숨쉬고 더불어 자라기/ 분자혁명.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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