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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한 해가 저물고 동이 트듯 새해 2007년이 다가오고 있다. 다사다난한 한해였다. 북한 핵실험, 여당과 청와대의 대립, 부동산 가격 폭등, '바다이야기', 저출산 고령화 문제 등 이러저리 헝클어진 실타래가 우리 사회에 흩어져 있다. 수년째 지속되는 취업난 속에 삶의 무게를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는 20대 청년은 위기다. 우리 시대 젊은이의 2006년 어느 날 밤과 아침을 살펴보았다.

#1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12월 16일 토요일 밤 11시, 중앙대학교 중앙도서관

@BRI@날카로운 겨울바람이 창을 때린다. 주말하고도 밤 11시. 모두 편함과 따뜻함을 좇는 그 시각. 대학 도서관의 불빛이 밝다. 도서관에 빈 자리를 찾아볼 수 없다. 만석이다. 책장 넘어가는 소리만이 정적을 다시 덮는다.

잠시 휴식을 취하러 나온 김승택(27)씨를 만났다. 김씨는 취업준비 중이라고 했다. 원하는 곳에 취직하기 위해서는 예전보다 두 배로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경기침체 때문이다. 김씨는 "올해 철저하게 취업준비를 못했다"고 말하고 "새해에는 꼭 취업에 성공하고 싶고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씨 옆에서 같은 또래인 홍 아무개(27)씨를 만날 수 있었다. 홍씨는 현재 종암경찰서 순경으로 재직 중인데, 경찰 진급 시험 공부 중이라고 했다. 홍씨는 "취객을 상대하는 일이 정말 힘들었다"며 올해 연말을 걱정했다. 그러나 홍씨는 "꿈꾸던 경찰이 돼 아직은 힘든 줄 모르고 일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홍씨의 내년 소망은 여자 친구가 생기는 것이다.

#2 16일 밤 12시, 중앙대학교 공과대학 제어공학연구실

▲ 파이팅을 외치는 홍진만씨.
ⓒ 임서영
도서관이 그 시각에 불을 밝히고 있는 유일한 대학 건물은 아니다. 대학연구실도 그 중 하나다. 연구실은 밤낮없이 돌아가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하는 학생들 역시 연구실 스케줄에 맞춘다. 이곳에서 막바지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홍진만(28)씨를 만났다. 홍씨 역시 새해의 가장 큰 소망으로 취업을 들었다.

취업고민에 빠져 다른 것은 생각조차 못할 것 같았던 홍씨가 기자에게 남긴 말은 의외로 세상일이었다. 홍씨는 "외교정책을 더 잘 세워 중국이 동북공정 같은 파렴치한 짓을 못하게 해 달라"고 했다. 우리 시대의 아픔과 고민에 대해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젊은이에게서 내일의 희망을 보는 건 성급한 일일까?

#3 17일 일요일 새벽 1시, 동대문역

1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동대문역은 하루 유동인구가 10만 명에 이르는 곳이다. 이곳에서 장애인의 휠체어 이동을 돕는 공익근무요원 이상윤(23)씨를 만났다. 이씨는 "동대문역에 유난히 계단이 많아서 하루 종일 리프트를 움직여야 하는 것이 고된 일 중 하나"라고 운을 뗐다.

동대문역엔 다른 역에 비해 노숙자나 취객이 많다는 이씨는 복무 2년 동안 이들을 다루는 '노하우'를 터득했다고. 이씨는 "나이가 어리면 형처럼, 나이가 많으면 아들처럼 그분들을 대하면 말이 잘 통한다"고 했다. 올해 포상을 못 받은 것이 아쉽다는 이씨는 자정을 넘긴 시각에도 동대문역사를 구석구석 살폈다.

▲ 동대문 시장의 새벽은 언제나 활기차다.
ⓒ 임서영
#4 17일 새벽 2시, 동대문시장

모든 새벽시장은 이 시간부터 진정으로 시작한다. 올 들어 가장 춥다는 날씨마저 새벽시장의 열기 앞에서 주춤했다. 동대문시장. 장사꾼과 손님이 뒤엉켜 몸을 움직일 작은 공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재래시장의 중심. 마침 그 위로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장사를 한 지 3년째. 지금은 휴대전화 케이스를 파는 손인봉(25)씨는 자판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열심히 살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된다는 손씨의 새해 소망은 "동대문 운동장을 헐면 절대 안 된다"는 것.

동대문운동장이 헐리면 손씨는 보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야 하기 때문. 오세훈 서울시장이 동대문운동장 철거를 재고해야 한다는 손씨는 "제발 이곳에서 장사를 계속하게 되길 소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 환하게 웃고 있는 손인봉씨.
ⓒ 임서영
#5 17일 새벽 4시, 용산역 앞 미니스톱 편의점

용산역 앞 한 편의점을 찾은 시각은 새벽 4시. 노숙자나 공사일을 하는 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중 하나다. 이곳에서 1년째 일하고 있는 김현욱(25)씨는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점장'이다. 김씨는 "야간 아르바이트생을 구하기 힘들어 이 시간엔 항상 내가 일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새벽시간에 다양한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 고되지만 내 일이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고. 올 한해를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는 김씨는 "가게를 하나 더 늘리고 아담한 집을 마련하는 것"이 새해 소망이라고 전했다.

#6 17일 새벽 6시, 노량진 수산시장

아침을 어느 곳보다 빨리 맞는다는 노량진 수산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활어를 공급하는 상인들과 싱싱한 생선을 사기 위해 나온 시민들로 어수선하기까지 하다. 6개월째 생선 장사를 한다는 이호상(24)씨는 "군 제대 후 큰아버지를 도와 일하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처음엔 생선냄새가 싫어서 일을 때려치우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이곳에서 돈을 벌어 자신의 사업을 하는 것을 새해 목표로 세울 만큼 이젠 적응이 된 상태다. 특히 이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세운 사업구상을 실천에 옮기는 일만 남았단다.

이씨는 "경제가 회복돼 젊은 사람들도 취직 걱정 안하는 세상이 왔으면 한다"며 다시 생선 상자를 집어 올렸다.

젊은이들이 맞이하는 밤과 새벽은 저마다 다르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그런 것처럼. 그러나 자신만의 꿈을 간직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꿋꿋이 노력하는 모습은 언제나 훌륭하다. 2007년 새해가 이들의 손으로 아름다워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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