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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기자, <플루토>는 언제쯤 다룰 생각이야?"

요즘 들어 아는 분들이 필자를 보면, 꼭 남기는 한 마디다. <플루토>는 서브타이틀부터 도발적이다. '우라사와 나오키X데즈카 오사무'라니, 만화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이 서브타이틀에서 눈을 떼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거장들이 아니던가.

데즈카 오사무가 상상의 세계를 빌려 현실을 이야기 했다면 우라사와 나오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지독한 리얼리스트다. 그가 표현한 ‘상상의 세계’에는 언제나 정교하고 현실적인 풍경과 캐릭터가 등장한다. 하찮은 역할을 맡은 조연도 개성을 불어넣어 살아 숨쉬게 하는 능력을 우라사와 나오키는 가지고 있으며, 그의 능력을 뛰어넘는 작가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플루토>가 (어디에) 연재되면서, 작가에게 불만을 가진 일부 팬들도 있다. 팬들의 불만은 <20세기 소년>의 연재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플루토> 연재를 시작하는 작가에 대한 투정일 수도 있다. <플루토> 역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스케일 큰 작품이라는 것이 벌써 감지되고 있으니 <20세기 소년>의 결말을 보는 것도 그만큼 힘들어 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그 불만은 잠시 접어두어도 되지 않을까. 우라사와 나오키가 작품에 치여 어슬픈 결말로 마무리 하는 작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플루토>, 그 장대한 서사시의 시작을 지켜볼 우리는 어쩌면 만화의 역사에 빛날 작품을 읽는 행복한 독자일 수도 있다. 그를 믿어보자.

<플루토>, '아톰'을 죽이다

▲ <플루토> 단행본의 표지.
ⓒ 서울문화사
<플루토>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답게 미스터리로 그 출발을 장식한다. <플루토>는 의문의 ‘로봇 살해 사건’이 터지는 것으로 독자의 흥미를 잡아 끈다.

<플루토>의 세계는 <우주소년 아톰>보다 훨씬 진화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 A.I >에서 그려낸 세상과도 비슷하다. <플투토>에 등장하는 로봇은 인간과 비슷한 모습에 감수성까지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인간과 함께 생활하고 인간을 위해 인간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

그런 ‘이상향’에 혼란을 준 것이 바로 ‘로봇 살해 사건’이다. 스위스의 산길 안내 로봇이자 ‘역전의 용사’인 ‘몽블랑’의 죽음을 시작으로, <플루토>는 '아톰'까지 서슴없이 그 '살(殺) 로봇'의 향연으로 끌어들인다.

<플루토>는 2003년부터 발간된 만화다. 2003년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바로 '아톰'이 탄생한 해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아톰'을 기념하기 위해 이 작품을 시작했고, 이야기의 틀도 <우주소년 아톰>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지상 최대의 로봇'에서 빌려왔다.

10만 마력의 힘을 발휘하는 아톰 앞에서, 무려 100만 마력의 힘을 사용하면서 로봇을 파괴하는 존재가 바로 '플루토'였던 것이다. 10만 마력과 100만 마력, 어쩌면 실감이 가지 않을 수치일지도 모르지만, 사랑스러운 만능 고양이로봇 '도라에몽'이 최대 129.3마력을 낼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보자. 엄청난 존재인 것이다.

'플루토(Pluto)'는 저승의 신 '하데스'의 로마식 명칭이며, 명왕성을 일컫기도 한다. 그 명왕성이 태양계로부터 퇴출되자, <탐정학원 Q>의 '킹 하데스'와 더불어, 새롭게 그 의미가 부각되는 일도 있었다. <플루토> 역시 그런 동기로 인해 스토리 자체에 탄력이 붙는다. 울타리의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가 바깥으로 밀려난 존재, 그런 존재가 인간의 사랑을 받는 로봇들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그 '반란'의 이면을 대단히 현실적으로 그려놓는다. '플루토'가 시도하는 '세계 7대 로봇'의 제거는, 한마디로 이라크 전쟁과 연관이 있다. '아톰'을 비롯한 세계 7대 로봇은, '대량 학살 로봇'을 제거한다는 이유로 강대국의 잘못된 군사행동의 선봉 노릇을 했다. 그 결과, 주인공인 로봇형사 '게지흐트'는 늘 악몽에 시달린다. '아톰' 역시 자세히 보면, 그 스스로의 운명을 직감한 듯, 달관과 체념의 눈빛이 읽힌다.

결국 우라사와 나오키는, 데즈카 오사무와 아톰의 이름을 빌려, 그 이전보다 더욱 적나라한 현실에 대한 지적을 실천하는 것이다. <플루토>는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하다.

로봇과의 공존 속에서 집어내는 '인간'과 '영웅'

이유야 어쨌건 '아톰'이 살해당했다. 게다가 그 '아톰'이 평화의 사자를 자처하면서, '대량학살로봇 척결'의 외피를 둘러쓴 침략전쟁의 선봉에 섰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그 설정 하나로 <플루토>에 빛을 내기 시작한다. '플루토'의 정체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우라사와 나오키 특유의 설정과 엄연한 현실이 혼합되면서, <플루토>에 대한 호기심을 증대시킨다.

영웅은 복잡한 존재다. 영웅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며, 찬사도 함께 하지만 반드시 시기와 질투, 반감 등에 휩싸인다. 그 화려한 능력에 대한 질투와 집중되는 '관심'에 대한 반감이 같이 작용하는 것이다. 거기에 '영웅'의 존재로 인해 '인간'의 주체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웅이 맞이하는 끝은 비극이 더 많았다. 한니발의 코끼리 떼로부터 로마를 구해낸 스키피오도 결국 탄핵의 대상이 됐다. 스키피오의 탄핵은 '영웅'의 존재가 로마의 공화정을 위태롭게 할지도 모른다는 카토의 끈질긴 우려의 결과였다.

그런 이유로 <플루토>에서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선악의 잣대를 쉽게 적용하기 어렵다. '몽블랑'을 죽이고 심지어 '아톰'까지 죽였지만, '플루토'를 내세운 집단도 나름의 이유와 변명이 있다. 어떤 길이 인간과 세계를 위한 더 근본적인 길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로봇(영웅)의 압도적인 능력은 인간을 마비시키고 종속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플루토>는 도발적인 서브타이틀과 엄청난 미스터리의 설정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로봇 '플루토'의 출현은 그런 의미에서 더욱 와닿는다. <플루토>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공세로 이루어지는 작품이다. 영웅의 존재를 인정하고 로봇과 함께 하는 평화의 세상을 지지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을 감수하면서까지 본분을 넘어선 로봇을 제어할 것인가.

시대가 지날수록, 발전하는 시대상 앞에 인간과 현실의 본질에 대한 고민과 혼란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플루토>는 데즈카 오사무가 만들어낸 평화의 대사 '아톰'을 죽이면서까지, 그 고민을 호소하며 미래를 빌려 현실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고단한 현실에는 늘 영웅을 연출해내는 이면이 있다. 그리고 그 영웅의 빛과 어둠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플루토>를 통해,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독자들에게 그 영원한 숙제를 되풀이해서 던지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신문>의 제 블로그에도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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