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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연개소문>, <대조영>, <주몽>의 공통점은 삼족오 깃발이 나온다는 점이다. 이들 드라마 때문에 새삼스럽게 고구려의 삼족오가 주목을 받고 있다. 각종 캐릭터 상품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다만, 단순히 삼족오를 신화화 하는데 함몰되거나 태양 속 홍염의 모습을 흉내낸 것이라는 실증적 해석보다는 문화심리적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까마귀에 사람들의 어떤 마음이 실려 있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까마귀하면 불길하게 생각하는데 왜 고구려 사람들은 긍정적이다 못해 신격화 했을까? 오늘날에도 삼족오는 받들지만, 까마귀는 꺼림칙하다고 멀리한다. 이렇게 같은 까마귀인데 다를 수 있을까? 그러나 가만히 따져보면 모두 다른 맥락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삼족오는 고구려의 까마귀 문화만도 아니다. 적어도 한민족이나 동이족은 까마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본의 창세 신화의 실제 인물로 여겨지는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의 이름에 까마귀 오(烏)가 들어 있다. 까마귀는 15세기 '가마괴'로 표기했다. '가마괴'의 '괴'는 '고이'의 준말이다. '고리'가 '고이'의 고어이다. '고리'는 새라는 뜻을 지난 옛말이다. 꾀꼬리의 15세기 표기는 곳고리다. 왜가리, 딱따구리, 병마구리에서 가리, 구리는 모두 새의 뜻이다.

일명 동이족을 '코리족'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그만큼 새와 밀접할 것으로 여겨진다. ´구려´나 ´고려´의 기원도 ´코리´, ´고리´에서 왔다고 지적된다.

고구려의 대무신왕은 북부여와 전쟁을 벌였는데 북부여 대소왕이 머리하나에 몸이 둘인 붉은 까마귀를 대무신왕에게 보냈다. 대소왕의 신하가 ´까마귀는 검은색인데 이 까마귀는 붉은 색으로 변했고, 머리 하나에 몸은 둘이니 이것은 두 나라가 합병될 징조´라고 했다. 그러자 대소왕이 기뻐하며 고구려에 이 붉은 까마귀를 보냈던 것이다. 그러자 이를 받은 대무신왕이 더 기뻐하며 검정은 북방의 빛이고, 남방의 빛은 붉은 색이니 이는 고구려에게 상서로운 일이라고 했다. 결국 대무신왕은 대소왕을 죽이고 북부여를 통합한다. 대무신왕은 주몽의 손자다. 대무신왕은 까마귀를 통해 상서로운 길운을 점쳤는데,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역사가 달라졌다. 문제는 해석이자, 심리이다.

중국 고대 신화에 따르면 까마귀는 태양의 화신이다. 태양이 10개나 떠 많은 사람들이 타죽고 산천초목이 타들어갔다. 요임금이 예(羿)로 하여 태양을 떨어뜨리게 했다. 태양이 떨어져 폭발한 뒤에 해가 떨어진 자리에는 거대한 황금색 삼족(三足)의 까마귀가 화살에 꽂혀 있었다. 이는 북방민족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전한의 회남왕 유안의 회남자(淮南子)에서는 까마귀가 태양에 살고 있으며, 다리가 세 개이고 이따금씩 땅에 내려와 불로초를 먹는다고 했다. 이 삼족오는 태양의 본질로 남성의 원리라 했다. 일단 태양이 남성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삼족 중에 하나는 남성의 가운데 성기를 상징한다. 이 삼족오는 결국 고구려의 상징으로 천손임을 강조하며 세상의 중심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자긍심을 나타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고구려 고분군인 쌍영총, 무용총, 지신총, 각저총, 내리 1호분 등에 삼족오가 있다. 고려 시대 상감청자 중 표형주자의 일상문이나 조선시대 불화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가 까마귀를 불길한 새로만 여기는 사이 일본에서는 삼족오를 신사에 모시는가 하면, 축구 응원단의 상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규모 캐릭터 산업을 만들어 냈다. 일본에서는 까마귀가 신성한 새로 산신으로 보고 신의 사자로 모시는 사당도 있다.

사실, 삼족오 이전에 우리가 알고 있는 까마귀와 달리 여러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북유럽의 신화에서 최고신 오딘(Odin)의 양 어깨에 2마리의 까마귀가 있었다. 그 까마귀는 지혜, 기억을 상징했다. 세상의 동정을 살피는 오딘에게 까마귀는 풍요의 상징이기도 했다. 까마귀는 깃이 검기 때문에 옥토를 의미했다. 노자에게 검은 현은 생명의 창조가 시작되는 곳이다. 고대 그리스 종교에서는 까마귀는 앞일을 예언하는 존재였다. 북아메리카 인디언이나 켈트족, 게르만족 사이에서는 까마귀가 세상의 창조자였다.

이러한 인식은 시베리아나 북태평양 전반에 걸친다. 아랍에서는 까마귀를 징조를 알리는 새다. 오른쪽으로 날아가면 길조, 오른쪽으로 가면 흉조다. <삼국유사>에서 까마귀는 신령한 새, 부처의 사자라 했다. 신라의 21대 소지왕은 까마귀를 따라가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을 사전에 적발해 냈다. 까마귀는 효의 상징이자 영민한 동물로도 간주되었다.

삼족오도 이러한 까마귀의 긍정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왜 불길한 새라고 인식하게 되었던 것일까? 까마귀나 삼족오에 대한 문화적 정신분석이 필요한 부분이다.

삼족오는 북방 민족의 상징이다. 본래 북방 민족들에게는 조류에 대한 신앙이 있다. 새는 하늘과 땅을 오가는 존재이다. 인간은 땅을 딛고 하늘을 이고 살지만, 하늘을 날지는 못한다. 그런 면에서 하늘을 나는 새는 인간의 부러움을 받았다. 새는 하늘과 땅을 연결 시켜주는 존재이다. 하늘의 뜻을 인간에 전해주는 신성한 존재라고 믿을 수 있었다. 고대인들은 신성스런 존재는 경외와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까마귀를 예를 들면 신의 뜻을 전달해주는 존재로 보인다. 노자가 말하듯이 자연은 인간에게 자애스럽지 않다. 언제나 인간의 마음과 소망, 기대에서 벗어난다. 가뭄과 홍수, 질병과 기근을 낳는다. 또한 인간의 생명과 삶을 좌지우지 한다. 까마귀는 그러한 징조를 나타내주는 존재이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 까마귀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조류 신앙에서는 이러한 새를 통해 죽은 다음 하늘로 올라가고자 했다. 조류 신앙은 하늘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다. 특히 까마귀 등은 사람을 먹음으로써 천상으로 이동시켜주는 존재가 된다.

제사를 지내고 나면 잿밥 등을 울타리 곁에 놓는데, 이 밥이 까마귀밥이다. 까마귀가 저승에 있는 조상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까마귀는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사자이다. 이렇게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새인 까마귀는 당연히 경외감을 갖게도 하지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농경 사회에 들어 갈수록, 기마 유목적 성향에서 정착민이 될수록,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을수록, 조류 신앙-신령성은 사라지고 공포의 대상이 될 뿐이다. 합리성이 발달할수록 조류 신앙은 사라지고 하늘과 땅에 대한 신성성은 사라진다. 이러한 까마귀에 대한 심리, 삼족오에 대한 문화적 심리는 지금 고구려 드라마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어찌되었든, 전적으로 삼족오 혹은 까마귀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는 그것을 해석하고 의미 부여하는 우리들에게 달려 있다. 지금 삼족오에 대한 주목도 마찬가지이고, 역사 자체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저 혼자 자유스러워서는 새가 되지 못한다.
새가 되기 위해서는 새를 동경하는
수많은 다른 눈이 있어야 한다."
-최승자, <기억의 집>, "희망의 감옥"에서

덧붙이는 글 | 데일리안에 보낸 글을 고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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