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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떨리는 마음으로 반성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돌아왔다. 85년 대학 1학년 때 읽었던 황석영의 <죽음을 넘고 시대를 넘어>라는 책을 볼 때보다 더 가슴 아프고 절절하다. 시나리오를 1시간 20분 동안 읽는데 뇌가 아플 정도로 울었고, 가슴 아픈 장면을 읽으면서 주체할 수 없었다."

2006년 11월, 1980년 5월 광주와 다시 대면하고 있는 영화배우 박철민(40). 20일 오후 광주 첨단지구 <화려한 휴가> 금남로 세트장에서 촬영를 막 끝낸 박철민을 만났다.

그는 5·18을 주제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평범한 가장으로 살다 시민군이 된 서인봉 역으로 5월을 만나게 된 것을 "벅차다"고 말했다.

박철민은 광주출생으로 중학교 2학년 때 80년 5월을 목격하고 경험했다. 학교를 가지않아서 좋기도 했지만 무섭고 두려웠던 기억이었다. 대학생이 된 그에게 5월은 무엇인가 규명이 되어야 하는 분노와 행동으로 돌을 들게 했다. 90년대 초 대중 집회 사회자로도 잘 알려졌던 그는 사회성 짙은 마당극 등 많은 문화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런 박철민에게 5월을 소재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에 출연하게 된 감회를 물었다.

"새롭다기보다는 제가 대학시절 군사독재와 날카로운 대립 속에서 정치집회, 정치적 성향을 띤 문화공연을 했고 지금은 연기 활동을 열심히 하는 상황에서 여러가지 의미가 많다. 5월을 많이 기억했고 행동도 했는데 연기자로서 다시 광주와 만나게 돼 벅차다. 아직도 많은 부분이 시원하게 깨끗하게 밝혀지지도 (가해자가)대가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역사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본다."

"영령들에게 누가 되지 않은 영화되길..."

<화려한 휴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광주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의 평화롭던 '일상'을 공수부대의 군홧발에 무참히 짓밟히고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이야기다. 영화 <꽃잎>, <박하사탕> 등에서도 5·18을 다루기는 했지만 10일간의 광주항쟁를 전면적으로 다룬 영화는 <화려한 휴가>가 처음이다.

그러나 <화려한 휴가>에는 대학교 총학생회장이나 재야운동을 벌이던 사회운동가 등 지식인들의 영웅담을 담지 않았다. 영웅이 아닌 살아남기 위해 시민군이 된, 그래서 처절한 '전쟁'을 치러야만 했던 택시기사 등 소시민들의 삶을 담았다.

박철민은 "이 영화는 그 시대의 택시기사, 간호사, 껄렁껄렁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며 "아직도 아파하고 있는 광주가 폭력을 안 당했다면 이들이 회갑 잔치도하고 아름답게 즐겁게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당시 광주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화려한 휴가>는 아무 잘못도 없이 자신의 일상을 누군가에 의해 빼앗기고 짓밟히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되는지 보여주고 싶어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그는 관객들에게 "아무 준비도 없이 왔으면 좋겠다"고 당부하며 "실컷 웃다가 보면 가슴 절절함이 생기고 보고나면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절하게 까불대는' 인봉 역할을 맡은 박철민은 한 가지 상상을 한다. 말 그대로 '상상'으로 끝날테지만….

그것은 당시 광주를 짓밟은 가해자들이 참회하는 모습. 박철민은 "영화 시사회에 가해자들, 높으신 가해자분들이 와서 진심어린 눈물을 흘리면서 '잘못했다'는, 진성성 담긴 말 한 마디를 한다면 상처를 치유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익살스러운 연기를 자주 해왔던 그는 "희극적인 연기를 더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다듬어서 재미있게 하고 싶다"면서도 "악역은 너무 매력적이다, 더 중의적이고 이중적인 역을 더 해보고 싶다"고 했다.

다음은 박철민과의 일문일답.

"영화로 다시 광주를 만나 벅차다"

▲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서인봉 역으로 출연한 영화배우 박철민씨.
ⓒ 영화인 제공
- 학생운동과 90년대 대중집회에서 마당극도 많이 했는데, 연기자로서 80년 5·18를 다루는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새롭다기 보다는, 대학시절 이분법적으로 군사독재와 날카로운 대립 속에서 정치집회, 정치적 성향을 띤 문화공연을 많이 했고 지금은 연기 활동을 열심히하는 상황에서 광주항쟁을 그리는 영화를 만나게 돼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5월을 많이 기억했고 행동도 했는데 연기로서 다시 광주를 만나서 의미가 많다.

26년이 흘렀는데 많은 부분이 아직도 시원하게 깨끗하게 밝혀진 것도 아니고 (가해자가)댓가도 치른 것도 아니고, 역사적인 문제를 다시 제기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 영화는 지식인들의 지도가 아닌 민중들이 항쟁을 만나는 이야기다. 양아치, 택시운전사, 간호원, 예비역, 민중들이 얼마나 절절하게 싸웠는지, 그 속에서 얼마나 여유가 있고 해학과 사랑이 넘쳤는지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많은 부분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했는데 개인적인 견해가 있나.
"저는 한편으로는 가해자들의 진심어린 참회만이 아직 상처받고 치유가 안된 상처를 어루만져 줄 것이라 생각한다. 광주시민들 대부분에게 (5월은) 처절하고 너무나 아픈 기억이고 씻기지 않은 상처다. 진정으로 참회하는 한마디가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런 상상도 한다. 시사회에서 높으신 가해자들이 진심어린 눈물을 흘리고, 잘못했다고 참회한다면 상처를 치유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이번에 맡은 역은 어떤 인물인가.
"까불대기도 하고 재간둥이, 감초인 서인봉 역이다. 처절하게 까불대다가 5월 26일 저녁 아내가 아이를 엎고 찾아와서 '돌아가자'고 해서 동지를 남기고 비겁하게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밤새 고민하다가 아이와 아내를 뒤로하고 27일 새벽 다시 도청으로 온다. 이름도 서인봉, '서 있는 사람 인봉', 해학적인 인물이다."

- 광주 출신인데 80년 5월을 어떻게 경험했나.
"당시 누나가 전남대학교에 다녔는데 관심이 많아서 미온적으로 참여했다. 누나를 통해서 '다른 세력, 군사세력이 집권하기 위해서 민주화 요구하는 학생을 탄압하는 것이다'고 피상적으로 들었다. 그 기간 내내는 여느 중학생처럼 학교 안가서 좋았고 차 안다니고 트럭이 다니면서 빵도 주니깐 좋았고, 굿도 생기니까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제가 보지는 못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군인들이 왜 그럴까하는 의문도 들었고, 무섭기도 했다. 아버지가 17일 고교생 지도나갔다가 공수부대에게 심하게 맞고왔다. 공무원증을 보여줬는데도…, 맞아서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었다. 큰 세력에 의해서 시민이 폭행당했다는 것 때문에 두렵고 무서운 기억이 가장 많다. 대학가서 황석영의 <죽음을 넘고 시대를 넘어> 등 기록지, 사진, 책들을 보면서 피상적으로 두려운 감정에서 '정말로 큰 세력에 의해서 우리가 의도적으로 조직적으로 광주의 의로운 기운이 폭행당했다'는 것을 느끼면서 하염없이 아팠다."

- 시나리오를 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나.
"대학시절 뭔가 규명이 되어야 하고 의로운 행동이 명예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돌도 들어보고 사회에 나와서 정신없이 살다보니깐 스스로 퇴색되기도 하고 변질된 것 같기도 했다. 그 동안 5월은 뒤로 멀리 멀리 갔었다. 주연은 아니지만 배역이 들어오면 기쁘다.

가슴떨리는 마음으로, 반성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왔다. 85년에 황석영의 책을 볼때 보다 가슴 아프고 절절했다. 기록으로 보았던 사건들이 살아서 가슴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나리오를 1시간 20여분동안 읽는데 뇌가 아플 정도로 울었다. 가슴 아픈 장면을 읽으면서는 주체할 수 없었다. 슬픔과 분노, 해학과 웃음이 뒤섞여 이 영화가 영화사에 또 다른 역할을 할 것 같다. 5월이 정리도 되고 규명도 되었지만 영화를 통해서 전면적으로 항쟁의 10일간을 기록해 가슴떨리게 할 것이다."

- 촬영이 막바지인데 촬영을 하면서 어땠나.
"인봉역은 웃어야하고 해학적인데 자꾸 울면서 했다. 새롭게 다가왔다. 어제(19일) 상무관(당시 죽은 이들의 관을 모아뒀던 장소)이라는 똑같은 장소에서 수백개의 관을 놓고 찍는데 이상한 기운 때문에 복받쳐서, 재미있는 인봉역인데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위로 받지못한 영령들이 우리를 응원도 하고 채찍도 하는 것 같았다. 상경(강민우 역의 김상경)이도 '어깨가 이상하다'고 말하더라. 서럽게 한을 가지고 떠난 분들의 기운이, 위로받지 못한 넋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촬영이)80년 5월의 끝자락인데 자신있다. 광주 출신 배우로서 5·18은, 알려진 것처럼 한 없이 처절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감, 거대한 세력과 나쁜 권력을 물리치고 도청을 차지했다는 해방감, 사랑, 항쟁기간 동안 은행과 수퍼 한 곳도 털리지 않았던 자부심, 거기에 민중들의 해학들, 농담들, 비유들이 묻어나 있다. 아름다운 기억들이 5·18관계자와 시민에게, 5월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분들에게 좋은 작품으로 남기를 바란다. 기대되고 벅차다."

"실컷 웃다보면 가슴 절절함이 남을 영화"

▲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서인봉 역으로 출연한 영화배우 박철민(오른쪽)씨.
ⓒ 영화인 제공

- 이 영화를 '정치적으로 보지말아달라'고 당부하던데, 제목은 공수부대의 작전명을 따랐다.
"'화려한 휴가'는 작전명인데 역설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해서 제목으로 결정한 것 같다. 시민들이 당하지 않았다면 즐거움을 누렸을 것 같다는 의미같다. 이 영화는 그 시대 택시기사, 간호사, 껄렁껄렁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직도 아파하고 있는 광주가 폭력을 안 당했다면 회갑 잔치도하고 아름답게, 즐겁게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당시 광주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에서, 광주에서, 대구에서 민중들이 살고 있었는데 광주시민들이 커다란 사건에 맞닥뜨리게 됐다. 이게 없었다면 슬프고 화나는 세상을 안만났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그대로 그리고, 이들의 농담과 사랑, 이별들을 말하는 영화다."

- <꽃잎>도 5월을 다룬 영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꽃잎>에도 참여를 했었는데, <꽃잎>은 5·18의 역사가 한 어린 소녀를 한 없이 아프게 하는 그런 부분을 우회적으로 다룬 것에 비해 <화려한 휴가>는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 차이일 것이다. 아프고 처절한 분노도 있지만 서로 나눠먹는 것, 더불어 사는 것, 절대절명의 순간에도 익살이 보이고 서로 힘을 주고 보듬아 주는 장면이 많다."

- 관객들에게 '이 영화를 이렇게 봐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것은.
"아무 준비도 없이 왔으면 좋겠다. 80년 5월의 넉넉함, 해방광주의 따뜻함, 쓰러져가는 잔인함, 너무 슬픈 것들이 뒤섞여서 실컷 웃다가 보면 가슴 절절함이 생긴다. 10일간의 기록이나 사진을 보고 오면 또 다른 감동과 재미도 있을 것이다. 자신하는 것은 80년 감동과 아픔, 뜨거운 외침을 만나 볼수 있지않을까 생각한다."

- 이번 역할도 익살스런 캐릭터를 맡은 것 같은데 이후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은.
"마당극 할때 슬픈 배역을 맡았는데도, 신나고 웃음을 주다보면 더 슬퍼지기도 했다. 우선은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자체가 속성인것 같다. 이것을 좋아하고 자신있어 하니까, 잘 할 것 같아서 그런 역을 맡기는 것 같다. <혈의누>에서는 너에게 그런 면이 있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악역을 잔인하게 하기도 했다.

매력이 있고 향기가 느껴지면 가리지않고 할 것이다. 희극적인 연기를 더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좀 더 다듬어서 재미있게 하고 싶다. 악역은 너무 매력이 있다. 악인의 감정이 있어서인지 모르지만 집중도 되고 재미있다. 더 중의적이고 이중적인 역을 해보고 싶다."

- 극단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도 있는 것 같은데.
"연기를 시작한 곳이 '무대'이고 '마당'이니까, 연극을 더 열정적으로 하고 싶다는 뜻이다. 내년 초에도 작품을 할 계획이다. 연극은 '쌩'으로 만날수 있고 영화는 간접적이지만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다.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연극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극단으로 가고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 존경하는 배우나 닮고 싶은 배우는.
"변희봉 선배님이나 임현식 선배님이다. 재미있고 대중에게 친화적이다. 또 개인적으로 서너달 부대끼면서 안성기 선배가 왜 존경받고 인기가 있는지 알았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려는 모습을 닮기위해서 노력할 생각이다. 부정적인 것 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보려는 안성기 선배는 이제 종교가 됐다. 정말 개구장이 같은 천진난만한 맑은 모습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싶다."

"5·18의 의미 되새기는 계기 될 것"
<화려한 휴가>, 막바지 촬영

공수부대의 작전명을 그대로 따온 <화려한 휴가>(제작 기획시대)는 80년 5·18을 소재로, 당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목포는 항구다>로 성공적인 첫 발을 내딛은 김지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안성기·김상경·이요원·이준기가 주연을 맡았다.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화려한 휴가>에는 실제 역사적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안성기는 택시 회사 사장으로 공수부대의 과잉진압에 맞서 시민군을 조직하고 이끄는 박흥수로 분했다. 김상경은 박흥수의 회사에서 택시 운전사로 박신애(이요원 분)를 짝사랑하는 강민우로 분했다. 박신애는 박흥수의 딸로 항쟁 기간동안 간호 요원으로 활동한다.

강민우의 동생으로 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절친한 친구가 공수부대에 의해 죽게되자 항쟁에 앞장서게 되는 강진우 역은 이준기가 맡았다. 송재호·박철민·나문희·박원상 등이 조연을 맡아 당시 시민들의 아픔과 웃음, 해학을 풀어나간다.

20일 광주 첨담지구 금남로 세트장에서의 마지막 촬영을 마친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지훈 감독은 "가장 큰 마음은 광주시민에게 누가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면서 "배우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작품에 임해서 아주 크게 동화된 것 같아 예상보다 200~300% 더 잘 나올 것같다"고 기대했다.

주연을 맡은 김상경은 "만약 내가 정치색이 강한 총학생회 회장이라면 대단히 부담이었을 것"이라며 "정치적이라는 편견을 가졌는데 지식인 몇몇의 이야기가 아니고 일반 시민들이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5·18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편하게 보고 다시 한번 역사책을 펴보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한편 <화려한 휴가> 촬영은 구 전남도청에서 막바지 촬영이 진행중이며 내년 상반기에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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