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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관문인 불이문/해탈문까지 통과하였으니 이제 진정한 부처의 세계로 들어왔다고 믿어도 될까요? 뜻으로 보자면 불이문 안쪽 모두는 부처의 세계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이해하기엔 어려움이 많습니다. 특히 한국불교는 여러 가지 불교사상이 종합된 통불교(通佛敎)인지라 각 사상에서 강조하는 많은 부처와 보살을 어떻게 조화롭게 모셔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불이문 안쪽 하나의 건물에 많은 부처와 보살을 모시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건물에 한 분의 부처를 모시고 또 다른 건물에 다른 부처를 모셨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물론 다양한 건물 속에 많은 부처를 모신 것은 꼭 이런 이유가 아니라 다른 많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많은 건물 안에 별도로 부처와 보살을 모시게 되자 각각의 건물은 한 분의 부처와 한 분의 보살 세계를 상징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렇게 본다면 20평이나 30평 정도의 작은 건물 하나가 부처와 보살의 우주를 상징하게 되는 것입니다.

작은 건물 하나가 부처나 보살의 세계를 상징한다면 밖에서 건물을 한 번 쳐다보고서 여기는 어떤 부처나 보살의 세계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건물의 주인을 알려주는 대웅전, 극락전 등이라는 현판을 달았습니다. 이제 건물에 달린 현판과 그 건물의 주인의 관계를 하나씩 밝혀볼까 합니다. 이번에는 먼저 주요 부처의 세계를 상징하는 건물과 그 건물의 이름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대웅전/대웅보전

대웅전(大雄殿)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건물은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는 건물이자 석가모니불이 주재하는 세계를 상징합니다. 대웅(大雄)의 말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큰 영웅’으로 살아있을 때 이미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불교의 경전에 많은 부처가 등장하지만 실제로 사람의 몸으로 부처가 된 유일한 분이죠. 그래서 석가모니불은 시간적으로는 영원한 현재를 상징하고 공간적으로는 바로 이곳이자 중앙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석가모니불이 계신 대웅전이라는 건물 또한 우주에서 현재와 중앙이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 보면 보통 가운데에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그 좌우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혹 석가모니의 제자를 대표하여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가 좌우에서 모시기도 합니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고 이름을 붙일 경우 석가모니불 좌우에 보살이나 제자 대신 삼계불이나 삼세불을 모시는 경우를 말합니다. ‘아미타불-석가모니불-약사여래’ 또는 ‘연등불-석가모니불-미륵불’을 모십니다. 부처의 뒤에 그려진 후불탱화는 석가여래가 영취산에서 제자들에게 <법화경>을 설법하는 모습을 묘사한 영산회상도나 삼존여래탱화를 많이 걸어둡니다.

대적광전/비로전/화엄전

이런 현판을 달고 있는 건물은 청정법신불로 알려진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모시고 있으며 또한 비로자나불의 세계를 상징합니다.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불을 청정법신불로서 영원한 부처이자 침묵의 부처이며 광명의 부처라고 합니다. 비로자나불은 태양이 만물을 비추듯이 모든 우주를 비추며, 형상도 없고, 소리도 없으며, 전혀 설법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무수히 많은 부처와 보살 그리고 신들이 나타나 비로자나불의 세계를 찬탄하고 그곳을 아름다운 연꽃으로 장엄(莊嚴)하며 비로자나불 대신 이들이 설법을 합니다.

비로자나불의 세계는 모든 사물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한 송이의 연꽃으로 피어나 서로 다투지 않고 어울리며 세계를 아름답게 장엄하기 때문에 연화장(蓮華藏)세계라고 부릅니다. 이 연화장세계는 위엄이 넘치고, 진리의 빛이 가득하며, 고요가 깃든 세계이므로 그런 뜻에 따라 대적광전(大寂光殿)이라고 부릅니다. 때로는 비로자나불의 이름을 직접 따서 비로전(毘盧殿)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비로자나불은 <화엄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처이므로 화엄전(華嚴殿)이라고도 부른답니다.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만 모시기도 하지만 대체로 비로자나불을 중심에 모시고 좌우측에 보신불인 노사나불, 화신불인 석가모니불의 삼신불(三身佛)을 모시며, 때때로는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두어 다섯 부처를 모시기도 합니다. 후불탱화로는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모니불’을 함께 그린 삼신불탱화를 주로 걸어둡니다.

극락전/무량수전/아미타전

건물의 이름만으로도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아미타불은 아주 오래 전에 법장(法藏)이라는 비구였다고 합니다. 법장(法藏)비구는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48가지의 원(願)을 세우고 수행한 결과, 아미타불이 되어 서방 극락정토에 머물게 되었다고 합니다. 법장비구의 원(願)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18번째 원으로 누구든지 “아미타불게 귀의합니다.”라는 뜻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라는 염불만 제대로 외우기만 하면 자신의 세계인 서방 극락정토에 태어나도록 하였습니다.

▲ 국보 제13호 전남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 김성후
아미타불이 계신 공간이 서방 극락정토이니 그 공간을 상징하는 건물에 극락전(極樂殿)이라는 이름은 당연할 것입니다. 아미타불은 무한한 빛이란 뜻의 아미타바(Amitabha) 또는 무한한 생명이란 뜻의 아미타유스(Amitayus)이므로 그 뜻을 한자로 옮기면 무량광불과 무량수불이 됩니다. 그래서 그 이름과 뜻에 따라 건물의 이름을 미타전이나 무량수전이라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극락전 내부를 보면 보통 중앙에는 아미타불을 모시고 그 좌우로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과 중생에게 지혜와 광명의 빛을 비추어주는 대세지보살을 모십니다. 대세지보살 대신 지옥에서 하늘나라까지 모든 중생을 교화하는 지장보살을 모시기도 합니다. 후불탱화로는 극락정토를 묘사한 극락회상도나 극락구품탱화, 아미타탱화 등을 주로 걸어둡니다.

약사전/유리보전

아미타불이 서쪽의 극락정토를 관장하고 있다면 약사여래는 동쪽의 정유리광(淨琉璃光) 세계를 주재하고 계십니다. 약사유리광여래(藥師瑠璃光如來)를 줄여 약사여래, 약사불 또는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 부르는데 이 부처는 우리들의 병을 없애주는 부처입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고, 무지(無知) 때문에 깨달지 못하는 고통 속에 헤매는 병 속에서 헤매는 중생을 불쌍히 여겨 그 고통과 병을 없애주려는 부처입니다.

약사여래도 아미타불처럼 전생에 12가지의 원(願)을 세워 수행한 결과 부처가 되었다고 합니다. 12가지의 원을 요약해 보면 모든 중생이 부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도록 하고, 그들에게 두루 광명을 비추고, 불구자를 모두 정상인이 되게 하며, 몸과 마음이 편안하여 위없는 깨달음을 얻게 하고, 배고픔을 없애주고, 나쁜 왕이나 강도 등으로부터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겠다는 등이 있습니다.

약사여래가 계신 건물이니 그 이름을 따서 약사전이라고 부르며 동쪽의 정유리광 세계를 상징하므로 유리보전(琉璃寶殿)이라고 합니다. 약사전에는 약사여래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태양처럼 빛나는 지혜를 갖추고 중생을 교화하는 일광보살이, 오른쪽에는 달처럼 청정한 모습을 갖추고 중생을 교화하는 월광보살을 주로 모시며 후불탱화로는 보통 동방약사 유리광회상도를 걸어둡니다.

미륵전/용화전/자씨전

이 건물은 56억 년이 지난 다음 이 땅에 태어나 부처가 될 존재인 미륵불(彌勒佛)을 모시고 있는 건물입니다. 미륵은 아일다(Ajita, 阿逸多)라는 브라만의 아들로써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을 하였으며, 석가모니로부터 미래에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은 뒤 도솔천(兜率天)이라는 하늘나라에 태어나서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생보처보살이란 한 번의 생만 지나고 나면 다음 생에 부처가 되는 보살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미륵은 한편으로 보살이요 또 한편으로 부처가 되는 특이한 존재입니다.

▲ 국보 제62호 전북 김제 금산사 미륵전
ⓒ 김성후
도솔천이라는 하늘나라는 일생보처보살이 머무는 상징성이 있는데 왜냐하면 석가모니도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도솔천 내원궁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도솔천에 태어나고자 하는 믿음을 가지면 이를 미륵상생(上生)신앙이라 하고 미륵이 이 땅에 태어나 교화를 펼쳐주길 믿으면 미륵하생(下生)신앙이라고 합니다. 미륵하생신앙은 간혹 혹세무민(惑世誣民)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후삼국시대의 궁예가 그 대표적 인물로 스스로 미륵의 화신이라고 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습니다. 바로 미래에 태어나는 미륵은 민중들에게 희망과 구원 그리고 메시아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미륵이 머무는 건물이라서 미륵전이라는 이름이 있으며, 미륵이 미래에 이 땅에 내려와 용화수(龍華樹)라는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가르침을 펼치기 때문에 펼치므로 용화전(龍華殿)이라고 합니다. 간혹 미륵을 중생을 아주 자비로운 마음으로 대한다는 뜻으로 자씨(慈氏)라고 부르기 때문에 자씨전이라고도 합니다. 미륵전에 걸리는 후불탱화는 보통 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에서 설법하여 중생들을 극락으로 이끌어주는 장면을 묘사한 용화회상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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