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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으로 잘 알려진 신영복(59) 교수가 지난 24일(토) 늦은 5시 건국대학교 사회과학관에서 ‘청년에게 바란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민주동문회 회원을 대상으로 한 이번 강연은 재학생을 포함, 약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시간 가량 진행됐다.

신영복 교수는 "존재론적 세계관이 갖고 있는 저급한 기계론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관계론적 세계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자본주의는 개별적 존재를 근간으로 경쟁력을 강조해온 '강철의 역사'였다"며 "이런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자본주의의 문제(빈곤, 무지, 질병, 오염, 부패)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주의는 실패했다!

그는 현재의 운동진영이 "상당한 정도의 좌절감을 갖고있지 않은가?"라고 운을 뗀 후 그 원인을 "운동주체가 갖고 있는 사상의 불철저성"과 "후기 자본주의의 사활적 공세"에서 찾았다.

87년 6월 항쟁 이후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주장했던 사람들이 "지배층으로 흡수"되면서 "시민운동과 개량화"에 빠졌다면 '민족민중 민주주의'를 주장했던 사람들은 "목표가 불분명해지면서 '파편화'되어갔다"는 것. 이에 대해 신교수는 '사회 기본구조에 대한 철저한 검토와 분석'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가 내놓은 '생산력의 비약'은 인정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실패했다"며 "자본주의는 '빈곤, 무지, 질병, (환경)오염, 부패'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본주의는 물질적 낭비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낭비'가 이루어지는 사회"라며 "사람들간의 관계를 황폐화"시키고, "개인의 정체성을 자신이 구매한 상품에서 찾게 하는 문제"를 낳고 있다고 얘기했다.

화이부동(和而不同)

신교수는 한국 사회의 모순이 경제를 비롯한 정치, 문화의 '종속성'과 민족역량을 낭비하게 하는 '분단구조'에서 비롯된다며 남한이 갖고 있는 '개방성'과 북한이 갖고 있는 '주체성'을 조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이 '대륙적 소화력'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지양한 새로운 페러다임을 추구하고 있다면, 우리는 '공존과 다양성'을 중요한 가치로 삼아 "상대방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통일과정도 '같음'만을 요구하는 '동(同)'의 논리보다는 '화(和)'에 기반해 "다름의 인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래 '화이부동(和而不同)'은 논어에 나오는 얘기로 '군자는 어울리되 동화되지 않고, 소인은 동화되면서 화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신교수는 "'화(和)'는 상대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것으로, '동(同)'은 상대방을 자신이 흡수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그는 "인간적 논리와 가치를 세울 수 없다면, (우리는) '동(同)'의 논리를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보진영에 대한 언급에서도 "어느 하나의 세포만 커지는 것을 '암'이라 한다"며 "진보진영간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대는 노자가 얘기하는 '물(水)의 철학'이자 약한 자들의 전략, 전술이다"라는 것이 그의 설명. 조직의 역량을 양적 개념이나 수(數)의 개념으로만 파악해 자신만의 영향력을 확산시키는 것은 "막연한 '동(同)'의 논리"와 같다는 것이다.

존재론에서 관계론으로

신영복 교수는 통혁당 사건으로 20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강연 중간에 자신의 감옥생활 경험을 털어놓아 참석자들의 이해를 돕기도 했다. 그 중 한 대목.

"대전교도소, 일명 모스크바라고 불리는데요. 저 개인이 소장할 수 있는 책이 3권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열독허가가 없는 책을 50권 정도 갖고 있었습니다. (교도 당국이) 요시찰인이라고 불쑥 여기저기 뒤져보는데 저한테는 안 나옵니다. 친구들 빌려주고, 그 다음에는 누구한테 누가 주고, 누구한테 누가 받고… 이런 식으로 돌립니다. 재소자들이 다 해줬습니다. 책을 숨겨놓거나 분산하는 실력이 대단하지요. 관계가 가진 힘이 엄청납니다."

그는 "물질은 존재가 아닌 관계"라고 말한다. 원자물리학의 가설체계나 생명공학의 유전인자 분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는 것. "예를 들어 생명공학 부분에서 최근 밝혀진 바에 의하면 약 3만개의 유전인자가 14만개의 유전정보를 구성하고 있다"며 생명체도 결국은 "지속성과 관계성의 다이내믹스"라고 주장했다.

교도소에서 50권의 이동문고를 만들어낸 역사도 결국 '관계'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었던 셈. 신교수는 "어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사람과 관계를 가져야 한다"며 "최고의 관계는 정서적, 감성적으로 친밀한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 황폐화' 현상도 인간관계를 상품 교환관계로 대치시키는 자본주의 사회의 존재론적 구조에서 원인을 찾는다. "상품의 목적은 사용가치가 아니고 교환가치에 있다"며 "팔리기만 하면 된다는 상품생산사회 의식"이 확산되고, "판매와 구매가 분리됐듯이 개인과 개인, 부문과 부문의 관계가 분리"된 채 누적되어온 데 (황페화의) 원인이 있다고 했다.

도로와 길

"목표달성에 졸속적으로 매진하거나 '동(同)'의 논리로 성급히 내포와 외연을 확대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신영복 교수는 참석자들에게 "현재 하는 일 자체를 소중히 하라"고 당부했다. "도로는 짧고 고속일수록 좋지만 길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이라며 "속도와 목표가 과정 자체를 잔혹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엄혹 할수록 과정은 즐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역의 64괘 중 마지막 괘는 '화수미제(火水未濟)' 괘로 미완성을 뜻한다"며 "작은 실수에 대한 반성과 이 후 다시 시작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길을 걷다 보면 사람도 만나고 코스모스도 만난다"며 "길은 삶 자체를 의미한다"는 게 그의 얘기다.

"작기 때문에 연대가 필요합니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신영복 교수는 이 말과 함께 현실에 기반한 사상적 토대를 쌓고, 거기에 근거해 최대한의 창의성과 예술성을 부여할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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