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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막상 6자회담이 열리면, 일본이 납치문제를 제기하여 북한의 심기를 건드리고 회담을 결렬시키는 데 일조한다.

언뜻 보면, 일본의 납치문제 이슈화는 미국의 6자회담 전략을 방해하는 요인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정작 회담의 의제가 되어야 할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그로 인해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납치문제 이슈화가 미국의 전략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이라면, 미국이 일본에게 진작 경고를 보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미국은 일본을 전혀 제지하지 않고 있다. 일본이 6자회담에 초를 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그런 일본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납치문제 이슈화가 미국·일본의 교감의 산물이라는 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미국의 눈치를 보기에도 급급한 일본이 미국과의 사전 교감 없이 납치문제를 제기하여 6자회담을 망가뜨릴 리는 없기 때문이다. 일본이 경제대국이 되었다지만, 미국 앞에서만큼은 여전히 ‘고개 숙인 남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본다면, 이제까지 일본이 6자회담을 전후하여 매번 납치문제를 제기한 것은 일본 자체의 전략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미국과의 고도의 교감 하에서 진행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납치문제는 미국·일본의 공동 작품인 것이다. 이번 11월에 6자회담이 재개되려 하자, 일본이 지난 2일부터 또다시 납치문제 공방을 개시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한편으로는 북한에게 6자회담에 복귀하라고 요구하고, 또 한편으로는 일본을 앞세워 납치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회담 결렬을 유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6자회담에 대한 미국의 실질적 전략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와 관련된 2가지의 전제를 짚고 넘어가기로 한다.

첫째, 미국은 북한이 어떤 경우에도 핵을 폐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는 그 순간 미국 자신은 북한을 무혈점령할 것이고, 그런 미국의 의도를 북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확보하고 있는 미국이 ‘북한의 국력이 언론 보도 이상으로 강력하다’는 점을 대략적으로나마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북한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그것은 북한을 자국의 동맹국으로 끌어들여 중국 견제에 활용하는 것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얼마나 유리한 조건으로 이 계약을 성사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북한에 핵이 있느냐 없느냐는 미국의 실질적인 관심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동맹국들 중에도 핵이 있는 나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북한에 핵이 있느냐 없느냐’보다도 ‘북한이 미국의 진정한 동맹국이 될 수 있느냐 아니냐’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어떤 조건으로 북한과의 새로운 계약을 성사시키느냐 하는 것이 미국에게는 최대의 관심사라 할 수 있다. 미국도 북한을 원하고 북한도 미국을 원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양국 모두 서로 자기 자신이 주도권을 잡으려 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혼란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둘째, 미국은 자신이 중동 문제와 동북아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중동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6자회담을 가급적 지연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중동 문제가 해결된 다음이라야만 좀 더 유리한 조건으로 북한과의 위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어떻게든 신속하게 미국과의 담판을 끝내려고 하는 데 반해 미국이 직접 접촉을 기피하면서 북한의 요구를 계속 외면하고 있는 것은, 중동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북한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없다는 계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입장에서는 중동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기 전까지는 6자회담이 계속 현상유지로 운영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6자회담 구도 자체가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역량이 동북아에 집중되는 한편, 중동 문제에 대한 역량은 자연히 감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어떻게 해서든 북한을 6자회담에 묶어 두되, 중동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6자회담을 가급적 현상유지로 운영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중동 문제가 해결된 후에 좀 더 후련한 심정으로 북한을 대해야만, 북한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내면서 북한을 동맹국으로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과 미국이 내심으로는 타협을 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난국이 계속되는 것은 이 같은 미국측의 속사정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스스로 6자회담을 계속 지연시키는 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북한에게 6자회담 참가를 독려하는 미국이 자기 스스로 회담을 방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국 입장에서는 자기 자신은 6자회담에 애정을 갖고 있다는 국제적 이미지를 조성하되, 누군가의 힘을 빌려 6자회담을 지연시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6자회담을 지연시킬 악역을 누군가 대신 맡아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 같은 악역을 맡기기에 가장 적합한 나라는 바로 일본이다. 한국은 겉으로는 미국의 수하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북한과 동족이라는 점 때문에 깊이 믿을 수는 없다는 것이 미국 지도부의 정서다. 그래서 한반도와 감정이 좋지 않은 일본을 이용하여 북한을 자극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회담 결렬을 유도하되 회담 자체의 파행은 막자는 미국의 선택이 된 것이다.

사실 납치문제 제기는 일본의 국익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도 북일수교를 희망하고 있는 마당에 납치문제를 자꾸 제기하는 것은 북일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처럼 자국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납치 문제를 자꾸 이슈화시키는 일본의 이상한 행동을 이해하려면, 일본 뒤에 미국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일본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이 미국의 압력에 의해 좌절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일본은 6자회담 지연의 책임을 떠맡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6자회담을 지연시키기 위해서 내세울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카드는 바로 납치문제다. 북한의 심기를 자극하여 회담 결렬을 도출하는 데에 있어서 그만한 카드가 현재로서는 없기 때문이다. 납치 문제는 북한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카드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주 무기인 인권 문제와도 연관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한편 자국의 6자회담 전략에 활용할 수 있는 적절한 카드인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본다면, 납치문제를 제기하는 일본에게 말 못할 속사정이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중동 문제와 동북아 문제를 동시에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늙은 제국’ 미국의 고민이 담겨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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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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