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후대의 사가들은 지금 이 시기를 길고 긴 반동의 터널로 들어가는 초입으로 기록할 것인가?' 지난 5·31 지방선거 직후 열린 한 토론회에서 진보학자가 던진 질문입니다. 이렇듯 진보민주진영 곳곳에서 허탈한 신음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진보민주진영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을 따갑게 느끼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정의가 넘쳐나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갈망은 여전한 데, 보수진영에서 던진 '개혁피로증'이라는 반론은 고개를 꼿꼿이 치켜들고 있습니다. 우리시대, 민주주의와 진보의 희망은 있는 것일까요. <오마이뉴스>는 진보민주진영의 고민과 전망, 새로운 사회의 대안에 대한 담론을 모으기 위해 심층 기획 글을 내보냅니다. <편집자주>
▲ 북핵저지시민연대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방한한 지난 19일 오후 외교통상부 청사 앞에서 UN의 대북제재를 지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누가 나에게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나는 비합리, 몰상식이라고 대답한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 지역감정, 부정부패 등의 다양한 원인보다 나는 몰상식과 비합리가 만들어내는 광기와 증오, 무지와 적대가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치이념을 보자. 소위 보수라는 사람들에게 전세계 모든 우파들이 갖고 있는 민족주의가 없고, 역으로 진보라는 사람들에게 진보주의의 핵심인 평화주의가 없다. 행태는 어떤가. 중요한 정치적 이슈를 놓고 합리적으로 토론하고 결론을 도출하기보다는, 정파의 이익을 위해 무조건 우기고, 필요하다면 진실도 왜곡한다.

사태가 이렇다 보니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게' 한국 정치고, '억울하면 출세해야 하는게' 한국 사회다. 잘 나신 분들이 그렇게 외치는 글로벌 스탠다드의 합리성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 정치, 이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한국정치가 희망을 찾으려면 무엇보다 이성을, 상식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이성과 상식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몰상식과 비합리를 가져오는 사유와 대결해야 한다. 사람들을 무지와 몽매로 몰아넣는,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신화와 대결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신화는 세상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합리적 사고가 부족하던 시절, 신화는 사회를 통합하는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지배를 재생산하는 도구였다. 쉽게 말해 왕은 하느님이나 용의 아들이어야 했다. 그런데 세계 최첨단을 달리는 21세기 한국에 아직도 전근대사회에서나 통하던 신화가 있고, 그 신화가 현실을 재단하고 있다. 마치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비현실적 관념이 살아있는 인간을 광기와 증오로 몰아넣고 있다.

광기와 증오의 정치를 넘어

한국 사회를 떠도는 가장 강력한 신화 중의 하나는 절대선으로서의 미국이라는 신화이다. 미국신화에 기반한 친미반북주의는 한국 기득권세력의 탄생신화이고, 존재증명이며, 지배논리이다. 그래서 친미반북주의에는 친미와 반공이라는 말 이외에는 아무런 일관성이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논리는 정말 무섭다. 친미·반북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환경문제가 나와도 자신과 다르면 빨갱이이기 때문이다. 상식은 없어지고 광기와 증오만 남게 되는 것이다.

신화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한국의 우파는 정의하기가 힘들다. 소위 우파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적용하면 우파라고 할 때는 민족주의의가 빠지면 안된다. 그런데 우울하게도 현재 한국의 우파에는 민족주의가 없다. 한국의 우파집회에 성조기가 등장하는 이 코메디를 외국의 우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난감한 일은 이것만이 아니다. 새로운 우파에게도 이런 황당함은 여전하다. 뉴라이트는 한국 정치에 좌우를 막론하고 자유주의가 부족하다는 주장을 하며 등장했고 나는 이들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자유주의가 없었다. 누구나 알듯이 자유주의는 국가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태동되었고, 따라서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주의에 대항하여 적극적으로 싸운다. 이게 글로벌 스탠다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은 역으로 자유주의를 공격했다. 예를 들어 한 교사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개인적으로 거부했을 때, 이들은 그 교사를 위해 싸우기는커녕 그 교사를 비난했다. 자유주의자라고 자청하는 사람들이 실천적 자유주의자를 비판하다니. 이건 아니다.

더욱 난감한 것은 이들이 민주주의마저 무시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불확실성의 제도화'이다. 즉 선거에서 누가 이길지 모르기 때문에 정치보복도 할 수 없고, 대화와 타협도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의 우파에겐 내일이 없다. 같은 보수들에게 조차 비난 받은 한나라당의 대안없는 반대를 보면, 그리고 어디선가 간헐적으로 튀어나오는 '다음정권에서 보자', '전쟁불사'라는 발언을 들으면 나는 무섭다. 신화가 현실을, 증오가 이성을 잡아먹고 있는 것이다.

우파가 우파다워야 우파다. 우파는 민족주의자여야 하고, 또 자유주의자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우파는 근대적 합리성도 체득하지 못한 채 전근대적 미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빨리 북한을 개방시켜 유라시아로 진출해야하는 자본의 이해마저 대변하지 못하는 우파는 우파의 본분을 버렸다. 우리 정치에 희망이 없는 것은 합리적인 우파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북한 물신주의와 계급 물신주의를 넘어

▲ 통일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19일 오후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회담을 앞두고 대북제재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한국의 우파가 우파가 아니듯 불행히도 좌파도 좌파가 아니다. 여기서 먼저 소위 한국의 좌파를 정의해야한다. 우파가 볼 때 국민 대다수가 좌파겠지만, 사실 한국에서 좌파는 민주노동당을 둘러싼 소수세력이다. 그런데 이 좌파도 시대의 희망이 되기보다는 우파처럼 신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북한 핵문제가 터지면서 민주노동당이 서글픈 코미디를 보여주고 있다. 진보정당이 평화주의를 포기한 것이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점은 이 코미디에 뿌리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라는 신화가 민주노동당 내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신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해 북한 물신주의자들은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비판하지만 김일성이 독재자임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물론 공과에 관한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독재자는 독재자다. 일단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게 상식적이다.

이렇게 상식적인 수준에서 출발하면 북한이 인권탄압을 하고 있고, 북한 정권에는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북한 핵문제가 북한 정권의 실수이며, 북한이 이러한 벼랑 끝 전술 말고 다른 전술을 택하는 것이 북한 인민을 위해서는 보다 나은 방법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들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회의 모든 문제를 북한의 주장을 따르는 좌파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우파도 웃기는 일이지만, 진보주의를 자처하는 정당이 평화주의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민주노동당의 또 하나의 신화는 계급이다. 사회를 분석하고 사회적 약자를 조직하는데 있어 계급보다 중요한 개념은 없다. 이건 분명하다. 그러나 계급은 머릿속에 있지 않고 혁명하자고 해서 그대로 하지도 않는다. 당장 대형마트를 가보자. 한 직장 안에 여러 개의 고용형태와 다양한 의식형태가 존재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계급신화는 항상 이상적이고 단일한 계급만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계급신화는 엘리트주의와 결합되어 있다. 계급 물신주의자들은 계급의 이름으로 진리를 독점하고 대중을 지도하려하지만, 엘리트주의가 만들어낸 계급 속에는 불행하게 현실에 존재하는 계급이 없다.

민주노동당의 가장 큰 불행은 이 두 신화가 동거한다는 점이다. 소위 NL과 PD라는 정파대립을 통해서 이들은 선순환이 아니라 오히려 악순환을 하고 있다. 이 이론들이 민족과 계급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우리사회에 제기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이론도 변해야 한다. 그런데 철지난 이야기들이 서로를 악화시키는, 다시 말해 민족이 강조되면 역으로 계급이 더욱 강조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참으로 난감하다.

맹목적 세계화를 넘어

사실 위의 우파와 좌파가 갖고 있는 신화는 흘러간 옛 노래이다. 아무리 죽어라 틀어봐야 LP판은 언젠가는 망가질 수밖에 없다. 이 흘러간 옛노래보다 무서운 것은 현재의 신화, 즉 세계화라는 신화이다. 이 신화는 과거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설명할 뿐 아니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대연정을 하고 있는 파괴력있는 신화이다.

세계화는 객관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문제는 세계화가 아니다. 문제는 세계화를 미국식 세계화 혹은 신자유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게 세계화가 신화인 이유이다. 세계화는 신자유주의이고, 경쟁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세계화신화는 미국신화의 신버전이며, 기득권 집단의 새로운 탄생신화이다.

적어도 두 가지는 명확하다. 세계에는 참 많은 나라들이 있고, 이들의 세계화 전략은 다양하다는 것이다. 북구 방식이 있고, 네델란드 방식이 있고, 스위스 방식 등등이 있다. 어느 것이 우리에게 더 적합할지는 논쟁에 부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현실에 맞는 세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명확한 것은 현재 상태의 세계화를 진행시킨다면, 보다 정확히 말하여 한미FTA 식의 세계화를 진행한다면 특단의 보완정책이 없는 한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양극화 구조가 정착되면 다시 되돌리기가 너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한미FTA에 있어 더 큰 문제는 위의 인식이 없다는 것을 넘어 무모하다는 점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자료에는 '세계화는 대세이고, 경쟁은 국가를 발전시킨다'는 주장 이외에 구체적인 지표가 없다. 심지어 과장과 거짓말이 난무하고 있다. 이렇게 신화는 현실에서 너무 몰상식하다. 무지가 만들어내는 맹목적 돌진, 국가의 중대사를 토론이 아니라 광고이미지로 해결하려는 이 무모함에 조순 전 시장 같은 보수주의자마저 반대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한미FTA에 임하는 정부의 입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배우 이준기에게 했던 "자신감을 갖자"는 말로 요약된다. 자신감, 좋은 애기다. 그러나 만약 자신감이 모든 것을 가져다 준다면 우리는 월드컵에서 열 번은 우승했을 것이다. 그러나 철저한 준비와 운이 겹쳐 우리는 단 한번 4강에 들 수 있었다. 인간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구호가 '상식이 통하는 사회'였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래를 위하여

▲ 민주노동당은 지난 24일 오후 국회 본청계단에서 `정부에 북핵사태 평화적 해결 촉구하고 전쟁정당 한나라당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누군가 나에게 한국 정치에 희망이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없다고 대답한다. 적어도 현 정당구조로 대변되는 한국 정치에는 희망이 없다. 그리고 희망을 찾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신화에서 우리가 벗어나야 한다고 대답한다. 신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우리는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현실은 이렇다. OECD 최고의 자살율, 10%가 넘는 절대빈곤층, 50%가 넘는 비정규직, OECD 평균의 3배가 넘는 대기오염, 그리고 불안정한 군사적 대치, 이것이 우리가 처해져 있는 현실이다. 아이들은 아토피과 비인간적 교육에 신음하고, 어른들은 전세값과 취업과 실직을 걱정한다. 최악의 경우 전쟁이 일어날 수 도 있다. 심화되는 사회적 양극화와 구조적인 전쟁위기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이 현실에서 출발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세력의 출현이다. 미국을 절대악이나 선이 아니라 국가이익을 가진 패권국가로 보는 시각, 사회적 양극화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국민의 고통을 해결하려는 시각, 그리고 우리식의 세계화가 가능하다는 시각을 가진 세력이 등장한다면 한국 정치에는 희망이 있다.

그럼 우리에게 이런 세력이 있는가? 나는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에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안에 신화론자들 때문에 목소리는 못 내지만 합리적인 세력들이 있다. 그리고 정치권 밖에는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왔던 사회운동세력이 있으며, 무엇보다 21세기의 현실을 살아가는 시민들은 이미 합리적이다.

나는 이들을 합리적 신진보세력이라 부르고 싶다. 합리적인 신진보세력들에 의한 정당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한국 정치에는 희망이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위해서는 국민들이 먼저 나서서 합리적 세력의 형성을 촉구해야 한다.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노사모는 시민이 정치의 주역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시민들이 주도가 되어, 인물이 아니라 새로운 정책을,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선택할 능력과 권리를 인정하지만, 또한 책임을 묻는다. 이제 우리는 누구보다 우리 자신을 위해 선택을 해야 한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