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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뒤 처음 제자들에게 가르친 내용은 중도(中道), 사성제(四聖諦) 그리고 팔정도(八正道)입니다. 석가모니의 모든 가르침은 팔만대장경 속에 있다고 하는데 그 방대한 내용의 핵심을 꼽으라면 바로 이 중도(中道),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 세 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각
ⓒ 김성후

중도

석가모니가 말한 중도(中道)는 사람들이 깨달음을 구하는 삶의 자세에 대한 설명으로 사람들의 모든 생활에 적용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세상을 둘로 나누어 바라보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젖어있죠. 있음(有)과 없음(無), 양(陽)과 음(陰), 부유함과 가난함, 잘함과 못함 등 둘로 나눈 다음 두 개의 범주로 나누고 그 안에 모든 것을 집어넣어버립니다.

중도라 함은 이분법적 사고에 의해 둘로 나눈 그 어느 쪽에도 치우지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석가모니는 이렇게 다양한 이분법적 기준을 말하지 않고 고행(苦行)과 쾌락(快樂)이라는 양 극단을 피하는 중도를 이야기합니다. 그는 중도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비구들아, 출가자들은 두 가지 극단에 빠지면 안 된다. 그 두 가지란 무엇인가? 하나는 육체의 요구대로 자신을 맡기는 쾌락(快樂)의 길이고 또 하나는 육체를 너무 지나치게 학대하는 고행(苦行)의 길이다. 비구들아, 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깨달았다. 중도는 눈을 뜨게 하고, 지혜를 생기게 하며, 열반으로 인도한다.”

앞에서 본 것처럼 이분법적인 분류 기준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고행과 쾌락이라는 둘을 기준으로 삼았을까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는 석가모니가 살아온 삶에 비추어 볼 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는 비록 작은 나라였지만 왕자로 태어나 당시 일반인들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최고의 쾌락과 호사를 맛보았었습니다. 그 다음엔 궁궐의 담을 넘어 출가를 한 뒤 뼈와 살가죽만 남을 정도로 고행을 통한 수행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행과 쾌락이라는 이 양 극단 사이에 존재하는 중도야말로 참된 진리임을 깨달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석가모니가 말한 중도는 좁게는 고행과 쾌락의 양 극단을 피하는 것으로 그 범위가 한정되어 있지만 넓게 볼 때 사람들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인 이분법적 생각의 양 극단을 피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

위에서 말한 중도(中道)는 사람들이 깨달음을 구하는 삶의 자세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었다면 사성제(四聖諦)는 사람들의 삶의 문제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네 가지 방법이자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성제의 첫 번째 진리는 우리들의 삶은 고통이 계속 이어진다는 고제(苦諦)입니다. 세상은 사실 모든 것이 괴로움입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즉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 모두 다 괴로움이며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고, 얻으려고 하나 가지지 못하는 것 등 우리들 삶은 모두 고통의 연속이라는 것입니다.

고통의 원인이 뭔가 찾아보니 바로 우리가 집착하는데서 생긴다는 집제(集諦)가 사성제의 두 번째 진리입니다. 집착은 바로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타오르는 욕망의 작용인 갈애(渴愛) 때문에 생깁니다. 남들보다 많은 즐거움, 맛난 음식, 좋은 소리, 많은 재물, 명예 등 욕망이 추구하는 것은 끝이 없습니다. 이렇게 많은 욕망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무지(無知)하기 때문입니다.

사성제의 세 번째 진리는 고통은 없앨 수 있다는 멸제(滅諦)입니다. 고통의 원인이 욕망으로 인해 집착하는 것임을 알았으니 그 욕망과 집착을 없애면 고통도 따라 없어지겠죠. 욕망의 타오르는 불길을 꺼버리면 바로 열반의 경지에 들게 됩니다. 이제 석가모니는 열반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사성제의 마지막은 고통을 없애는 길인 도제(道諦)입니다. 바로 열반으로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고통을 없애는 길이자 열반으로 가는 길은 고통과 쾌락의 양 극단을 피하는 중도(中道)이며 중도를 실천하는 방법은 여덟 개를 제시하는데 이를 팔정도(八正道)라 합니다.

팔정도는 첫째 바른 견해인 정견(正見), 둘째 바른 생각이라는 정사유(正思惟), 셋째 바른 말이라는 뜻의 정어(正語), 넷째 바른 신체적 행동인 정업(正業), 다섯째는 바른 생활을 뜻하는 정명(正命), 여섯째 올바르게 부지런히 노력하는 정정진(正精進), 일곱째로 바른 생각을 유지하는 정념(正念)이며 마지막으로 바른 선정을 말하는 정정(正定)입니다.

팔정도를 한 마디로 줄인다면 바로 “어떤 죄도 짓지 말고 착하게 살아가는 것, 자기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 스스로는 바른 마음을 닦고 사물을 제대로 바라보는 지혜를 갖추며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고 남에게는 나쁜 말, 나쁜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니 위의 표현이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계정혜(戒定慧)라는 세 가지 공부

석가모니의 착하게 사는 방법을 정리해보면 계·정·혜(戒·定·慧)라는 세 가지 공부 즉, 삼학(三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계(戒)는 도덕적으로 지켜야 할 내용이며, 정(定)은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는 공부, 혜(慧)는 사물을 바로 바라보는 지혜를 뜻합니다.

팔정도를 이 삼학(三學)에 대입하기도 하는데 계(戒)와 관련된 팔정도의 내용을 보면 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 정(定)과 관련된 팔정도의 내용은 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 혜(慧)와 관련된 팔정도의 내용은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가 될 수 있습니다.

계(戒)를 삼학(三學) 중 맨 앞에 둔 이유는 바로 불교 공부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불교 공부는 “죄를 짓지 말고 착하게 살아가는 것, 자기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는 자기 자신이나 남에게 해로움을 끼치는 행동이야말로 나쁜 죄라고 합니다.

그는 죄란 사람의 마음과 행동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쁜 생각과 나쁜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가르침을 펼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10가지 지켜야할 계(戒)를 만들었습니다.

①생명을 죽이지 말고, ②훔치지 말고, ③음행하지 말며, ④거짓말하지 않고, ⑤중상하지 않으며, ⑥욕하지 않고, ⑦어리석은 말을 하지 말 것이며, ⑧탐내지 말 것이며 ⑨나쁜 뜻을 품지 않고, ⑩그릇된 견해를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술을 마시거나, 아무 때나 먹거나, 오락을 즐기거나, 몸을 꾸미거나, 돈을 받는 행위 등은 하지 말라고 하였으며 불교 경전에는 더욱 많고 상세한 계율이 등장합니다.

정(定)이란 마음을 가다듬고 욕망을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석가모니는 목이 마를 때 물을 찾는 것처럼 항상 무언가를 추구하는 욕망인 갈애(渴愛)를 가장 나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갈애는 내 몸이 아닌 바깥에 있는 어떤 대상을 추구하는 것을 말하는데, 사람은 내 몸 밖에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으며 그렇다고 또 없앨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밖에 있는 것들은 그대로 두고 대신 그것을 원하고 추구하는 마음을 다스려 욕망을 없애도록 하는 방법을 선택하였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가 바로 정(定)입니다. 석가모니는 마음이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잠시도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원숭이와 같다고 하였는데 정(定)이란 이렇게 날뛰는 마음을 한 곳에 집중시켜 어떠한 동요나 흔들림도 없도록 하는 공부입니다.

혜(慧)란 지혜(知慧)의 줄임말인데 그 개념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지식(知識)은 “검증되고 참인 믿음(Justified True Belief)”라고 개념을 분석하여 설명을 했지만 지혜란 그렇게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지혜란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과 공부를 통해서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지에 도달한 상태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가 깨달았던 경지를 제대로 이해하기도 힘든 마당에 그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데 어찌 제가 감히 설명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경지 또한 우리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표현되어야 하기 때문에 석가모니가 말한 “선정(禪定)에 들어 있는 수행자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직관한다”라는 내용을 가지고 간단하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 말을 풀이해보면 석가모니에게 있어 마음을 가다듬는 정(定)이란 사물들을 실제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공부입니다. 이 공부를 통해 사물들을 실제 있는 그대로 직관하여 사물들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갖는 것 그것을 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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