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송경동 시인이 경찰의 소환장 발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담은 글을 8일 <오마이뉴스>에 보내왔다. 송 시인은 지난 8월 4일 포항에서 열린 '하중근 열사 살인규탄 결의대회'에 참석해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라'는 제목의 추도시를 낭송했고, 경찰은 '폭력시위 선동의 혐의가 있다'며 송 시인에게 소환장을 발부했다. 

이에 대해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문인인 정희성, 민영, 도종환, 김형수, 김해자 등과 문학평론가 염무웅, 구중서, 소설가 김춘복, 이인휘, 전성태 등 200여 문학인들이 경찰의 시인 소환장 발부에 대해 규탄하는 성명서를 지난 8월 29일 발표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 <편집자주>
▲ 포항남부경찰서가 송경동 시인에게 보낸 소환장
ⓒ 송경동

어제(7일) 다시 포항엘 다녀왔다. 건설일용노동자 하중근씨 장례식이었다. 8월 4일 추도 집회에서 추도시 낭송을 했다는 이유로 네 번째 소환장을 받아놓은 상태였다. 아내는 포항에 내려가는 내게 검정 예복을 챙겨주며 무척이나 근심어린 모습이었다.

아내는 10일 뒤면 아홉 살짜리 아이와 그 아이보다 더 말썽꾸러기인 마흔 살 난 남편을 두고 3개월의 일정으로 남미로 떠나야 하기에 걱정이 더했다. 소환장 불응 세 번 이상이면 체포영장으로 넘어간다면서 불심검문을 주의하라고 했다. 이게 무슨 꼴이람.

물론 잘 쓰지도 못한 시 하나를 폭력시위의 선동으로까지 높여준 경찰과 정부의 평가가 영광이기는 하다. 필화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던 선배 문학인들의 자랑스러운 전당에 내 부끄러운 이름 석자가 끼인다는 것도 면구스러운 일이지만 영광이다.

하지만 그런 영광과는 별개로 난 이런 터무니없는 경우를 인정할 수 없다. 문학이 폭력으로 읽히는 이 무지한 사회를 인정할 수 없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도 아니고, 시를 소환의 대상으로 삼는 이 한심한 정권과 시대를 인정할 수 없다. 민간인을 죽인 공권력이 책임처벌을 받기는커녕 추도시를 낭송한 시인을 소환하는 이런 코미디를 인정할 수 없다.

하기야 이 정부가 어떤 정부인가. 자국 영화를 지키기 위해 국민투표를 거쳐 세계문화다양성협약을 이끌어낸 나라들이 있는 반면, 이 정부는 잘 나가는 한국영화를 미국에 알아서 바치고, 대신 국민들에겐 도박을 문화사업이라 하여 보급했다. 그 문화사업으로 서민들의 호주머니에서 수 십 조원에 가까운 돈을 걷어 갔다고 한다. 그러니, 사실 나 같은 무명시인 한 사람의 자유쯤 걷어가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평택 황새울에서 구두 뺏기고, 머리 깨지고...

▲ 지난 8월 19일 오후 경북 포항에서 열린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포항지역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고 하중근씨의 영정사진을 들고 형산대교를 건너 포스코 본사로 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포항에 도착하니 새벽 5시, 곧바로 PC방을 찾아 들어갔다. 오전 10시까지 조시를 써야 했다. 뭐라고 써야 하나. 내가 만약 이런 억울한 죽음 앞에 섰다면 무슨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을까. 백주 대낮에 갈비뼈가 나가고 여기저기 타박상에 뒷머리를 두 군데나 맞아 터졌는데도 나의 죽음이 만약 의문이라면, 사과 한 마디 듣지 못하고 저 하늘로 가야 한다면 내가 고이 눈을 감을 수 있을까.

시인은 제사장이라고도 했던가. 고인의 분노가 고스란히 내게 전이되어 와 손이 떨려 왔다. "안녕"이라고 써두곤 한참을 눈을 감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그의 넋으로부터 시 한 편을 내려 받고는 출력이 가능한 PC방을 찾아 포항 시내를 몇 바퀴 돌았다.

그런 와중에 구두도 한 켤레 사 신었다. 여름 내내 1만 5천원자리 샌들 하나로 버텼다. 구두가 필요한 근사한 자리 같은 곳에 설 일이 거의 없는 인생이라 그런대로 버틸 만 했다. 하지만 고인을 보내는 자리에 샌들을 신고 올라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생각하니 전에 신던 구두는 지난 5월 4일 평택 대추리 황새울 벌판에서 잃어 먹었다. 아니 빼앗겼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당시 대추초교를 지키다 경찰이 던진 벽돌에 맞아 머리가 깨졌다. 그냥저냥 버텨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구토 증세가 몰려 왔다. 머리에 붕대만을 감은 채 아무런 응급처치도 못 받은 상황이었다.

병원으로 가야겠다고 허겁지겁 뛰어나오는데 울타리를 지키고 있던 경찰 간부가, 외쳤다.

"저 새끼 연행해"

누가 봐도 환자인 내 꼴도 소용이 없었다. 도망칠 기력도 없는 나를 여섯 명의 전경이 번쩍 들고 갔다. 병원으로 데려다 달라는 말도, 내 발로 걸어가겠다는 말도 모두 소용이 없었다. "내 신발, 신발 벗겨졌잖아" 외쳐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저만치 멀어져가는 구두를 보며, 난 머리가 깨진 것보다 더 억울하고 분했다.

4월엔 가수 정태춘 선배, 화가 이윤엽과 함께 목이 졸린 채 연행되는 과정에서 그 들에서 안경을 또 하나 잡아먹기도 했다. 여하튼 평택에서 잃어버린 구두를 포항에서 다시 샀다. 나처럼 머리 정도 깨지거나 연행 당한 정도가 아니라 끝내 운명해 간 한 사내의 조시 낭독을 위해 구두를 다시 사면서 내 인생도 참 기구하다는 처량한 마음이 들었다.

추도시를 낭송해서 폭력시위가 됐다고?

▲ 시위 도중 사망한 고 하중근씨 사건과 관련해서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는 포항지역 건설노동자들에게 경찰이 물을 뿌리며 진압을 시작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간신히 출력을 하곤 형산강 로터리 대열에 합류했다. 장례는 조용히, 조촐하게 치러졌다. 모두가 힘써 싸웠으되 아직 고인의 죽음은 의문에 쌓여 있고, 정당한 사과 한 마디 못 들은 상태다. 작년 겨울 전용철 열사 등 농민들의 죽음 때도 경찰과 정부는 오리발 내밀기 뿐이었다.

시민사회와 전 국민들이 사실을 알고 분노하기 시작했을 때에야 간신히 경찰청장이 해임되고,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이루어졌다. 이번도 역시 마찬가지다. 명백하고 너무도 분명한 공권력에 의한 타살임에도 경찰은 증거를 대 보라고 발뺌한다. 자숙하기는커녕 오히려 추모집회들에 과도한 공권력 폭력을 일삼고, 구속과 소환을 남발한다.

정부는 아예 나 몰라라다.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정부의 사과는 이루어지지 않고, 입만 열면 박정희 시절부터 내내 들어 왔던 폭력 행위 엄단, 법질서 구현을 위해 강력히 대처하겠다는 소리로 협박할 뿐이다.

노무현 정권 초기 시절, 정규직의 양보와 비정규직 우대를 얘기하며 마치 비정규직을 대신해서 정규직과 싸우기라도 할 듯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들이 모두 노동자들의 내부 단결을 깨기 위한 전술이었고, 포즈였다는 것도 금세 밝혀졌다.

지금 감옥에 갇힌 양심수의 80% 이상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결국 이 정부는 아무런 죄 없는 건설일용 노동자 하중근 열사의 머리를 깨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나서 이젠 시인에게 소환 명령을 내렸다. 시인이 추도시를 낭송해서 폭력시위가 선동되었다고 한다. 나 같은 외부세력들이 개입해 무지한 노동자들이 폭력시위를 일삼는다는 이야기다. 모두 웃기는 얘기다. 그 말들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확장과 정당한 생존권 보장을 위해 맨 앞에 서서 싸우고 있는 포항 건설일용노동자들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내가 내려가 추도시를 낭송하기 전에 이미 포항건설일용노동자들은 포스코 본사를 점거했다. 무수한 충돌이 있었다. 무슨 말인고 하면, 그들은 이미 선동의 대상을 넘어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하찮은 시 한편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은 평생을 일용공 노동자로 살아오며 느낀 착취와 차별로 인해 스스로 의식화 되어져 있고 선동되어져 있다는 말이다. 어떤 지식인도 사회학자들도 말하지 않는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를 구체적으로 없애기 위해 싸우는 그들이 우리를 지금 의식화시키고 있는 선생들이라는 말이다.

내 시가 진정 노동자들의 친구가 되었으면

▲ 지난 8월 11일 오후 고 하중근씨 사망사건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며 경찰청앞 집회를 시도하는 포항지역 건설노동자들이 저지하는 경찰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소환의 대상이 아니다. 우선 소환을 생각한다면 먼저, 하중근씨의 넋을 소환해야 한다. 난 대리인이었을 뿐이다. 부끄럽지만 시를 쓴 것은 그였다.

만약 그럼에도 끝까지 나를, 나의 시를 소환하고 싶다면 미안한데, 억울한 죽음 앞에 바친 추도시 말고, 얼마 전에 낸 내 시집 <꿀잠>의 시들을 소환해 주었으면 좋겠다. 평소엔 관심도 없다가 급히 쓴 시 하나를 가지고 폭력 운운하는 게 자존심 상한다. 문학에 대한 평가를 해주려면 그 정도 예의는 갖춰 달라는 말이다.

그리고 '폭력행위 등'은 너무 쪽팔린다. 필화를 겪었던 선배 문인들에게도 미안한 일이고 문학인들의 자존심으로 봐도 너무 약하다. 이왕 걸어줄 바엔 국보로 걸어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폭력'을 선동한 게 아니라 '다른 세계를 꿈꾸었기에' 굳이 건다면 국보가 내용적으로도 더 어울린다. 내가 여기에서 말한 다른 세계란, 착취가 일상화된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좀 더 진일보한 사회체제를 꿈꾼다는 뜻이기에 더더욱 맞다. 이런 꿈을 가두기에, 이런 표현을 가두기에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은 좀 약하지 않겠는가.

잠도 자지 못하고, 아침 점심도 거른 채 쓸쓸한 장례식을 종일 쫓아 다녔더니 나중엔 뱃가죽이 붙어 버렸다. 사실 시낭송 하나가 무슨 힘이 그렇게 들겠는가 하지만 그게 아니다. 나의 경우 추도시를 쓰려면 거의 하루를 굶으면서 써야 한다.

뱃속에 뭐가 들어가면 도무지 글이 받아 써지지 않는다. 짧은 낭송이지만 중간쯤 읽어 내려가다 보면 온 몸에 마비 증세가 온다. 딱 하나 입과 혀만 빼고 오는 그 마비 증세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만큼 체력 소모가 크다.

시 한 편 읽고 내려오면 한동안 정신이 멍해져서 아무 곳에나 눕고 싶어질 정도다. 더더욱 내 머리를 온통 차지하고 있는 죽은 이의 넋을 쫓아 보내려면 최소 며칠이 걸린다. 그래서 늘 추도시 낭송을 한 날은 폭주를 하게 된다. 내가 마시는지, 그 넋이 마시는지 모를 정도다.

어제(7일)도 꽤 마셨나 보다. 포항에서 만난 지역 후배가 아니었다면 거의 노숙을 해야 할 참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집이다. 나는 아마도 가중처벌이 될 거라 한다. 한 번 시낭송도 미운데 4번째 소환장을 받고도 또 그의 장례식장에 가서 선동시를 읽었으니 말이다.

▲ 송경동 시인
하지만 아무래도 난 괜찮다. 내 보잘 것 없는 시 한 편이 정말 경찰의 표현대로, 그들 건설일용노동자들에게 힘이 되었다면, 평생을 모멸과 차별 속에서 살아 온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면. 아무래도 난 괜찮다. 더 많은 이들이 그들 비정규직의 대명사, 사회양극화의 이쪽 맨 끝 건설일용노동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해 모이셨다는 그 많던 사회원로 분들은, 시민사회단체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그 비정규직들이 외롭게 싸우고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백주대낮에 공권력에 의해 타살을 당했는데 아무런 철퇴의 말이 없는 이 사회가 쓸쓸하다.

덧붙이는 글 | 송경동 시인은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삶이 보이는 창> 편집위원 등으로 일하고 있다. 시집 <꿀잠>을 펴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