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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검은 두 눈망울을 제외하고 온 몸을 차도르로 칭칭 감은 이슬람 여성을 바라보면 신비스럽다.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에 등장하는 공주처럼 그녀는 수많은 비밀과 사연을 담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르카'(베일)라는 고루한 전통에 얽매여 사는 그들이 답답하고 안타까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루가 다르게 빨리 변하고 있는 요즘, 그들은 왜 베일 벗기를 거부하고 있을까?

베일이 과거의 문화유산일뿐이라면 벗어버리면 그만 아닌가? 그러나 이슬람 문화와 베일의 관계는 그렇게 무 자르듯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관계다.

비유하기엔 좀 그렇지만 명절 스트레스로 고민하는 한국 여성에게 외국여성이 그렇게 괴로우면 명절 당일 시댁엘 안가면 될 것 아니냐고 묻는 경우와 비슷하다. 그만큼 이슬람 문화와 여성, 베일의 관계는 미묘하고도 복잡하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가부장제도와 남성중심주의의 사고방식이 자리하고 있다.

풍습이었던 베일착용, 암묵적 인습으로 굳어진 배경은?

▲ 전통 베일 복장을 한 이슬람 여성의 한 가운데 현대적인 옷차림을 한 이슬람 여성이 눈에 띈다.
ⓒ 프로네시스
터키문학을 전공한 오은경 교수가 펴낸 <베일 속의 이슬람과 여성>은 그간 베일에 싸여있던 이슬람 문화와 여성의 관계를 비교적 쉬운 문체로 꽤 진지하게 파헤친 책이다.

이 책은 이슬람 문화권 국가에서 여성이 베일을 쓰게 된 동기와 역사, 의미 등을 다루고 있다. 아울러 이슬람 문화의 특징과 역사도 함께 아우르고 있다. 이슬람 역사를 알지 못하고서는 베일문화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 중동 국가들의 풍습이었던 베일착용이 종교적 신념을 거쳐 사회의 암묵적인 인습으로 굳혀지게 된 배경이 흥미롭다. 이것은 이슬람에서 여성의 지위의 변천과도 꽤 깊은 관계가 있다.

무함마드가 활동했던 당시만 해도 여성은 독자적인 경제력과 권력, 발언권을 행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예언자가 된 이후 이슬람에서 여성은 비천하고 하찮은 존재로 전락하고 만 것.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그 후로 베일 착용은 이슬람에서 여성이 갖추어야 할 미덕이자 의무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슬람에서 베일 착용은 대단히 중층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앞서 말했듯 이슬람에서 여성은 아무런 경제력도 없고 생활력이 없으므로 남성의 보호받고 보살핌을 받아야하는 존재로 인식되어있다. 따라서 보호대상으로서 베일착용을 강요당한다. 또 이슬람에서는 여성은 남성의 성욕을 자극하는 대상으로 여기고 사회의 문란함을 없애고 기강을 바로잡는 구실로 여성에게 베일을 씌웠다.

여성을 감시하고 구속하는 베일

반면, 상류층 여성으로서 자신의 높은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고자 베일을 쓴다는 의미도 있다. 이는 부유계층에서 베일을 쓰기 시작했던 과거의 풍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노예나 창녀계급의 여성은 베일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현실은 베일 착용의 또 다른 속성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의 베일 착용은 남성의 보호 하에 있는 여성인지 아닌지의 여부에 따라, 남성은 자신이 접근할 수 있는지 아닌지의 여부에 따라 남성은 자신이 접근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결정하였고 따라서 베일은 당시 사회의 성문화 질서유지에 매우 큰 역할을 하였다.'(69쪽)

저자는 이 같은 베일 착용을 두고 '시선의 권력'이라 표현했다. 가부장 권력이 절대적이었던 당시로서는 베일만큼 효과적인 통제 기구도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스스럼없이 남성위주사회에서 일종의 '권력'이라고 표현한 것. 그러나 사회가 근대로 접어들면서 베일을 향한 권력은 양분화되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띤다. 바로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베일 벗기기'작업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는 서구 열강의 세력이 그것이다.

이 과정에서 베일을 지키기 위한 이슬람 원리주의와 베일을 벗기기 위한 서구 세력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치열하게 오고간다. 결국 '베일'을 쓰고 안 쓰고의 문제는 문명의 차이에서 오는 몰이해도 아니었으며 여성의 권익신장에 관한 문제는 더더욱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결국 바로 자신들의 '권력'에 관한 문제로 귀결되었다.

베일을 쓰느냐 벗느냐, 그것이 문제다

저자는 특히 서구 세력 중에서도 세계경찰을 자칭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미국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놓고 있다. 문명의 화해와 인권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인종차별 등 오만을 일삼는 미국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오늘날 서구의 문화상대주의 태도 역시 자신들의 지배문화가 타당하고 보현적인 것임을 입증하기 위해 취하는 폭력적 행위를 은폐하는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들과 이해관계가 없을 때는 그 문화를 용인하지만 이권을 침해하면 가차 없이 인권을 내세워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 것이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는 태도로 일관하며 세계경찰로서 독점권을 휘두르는 미국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151쪽)

베일 쓰는 행위에도 이처럼 많은 권력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쩌면 서구중심의 교육을 받으며 자란 우리에게 이슬람 문화는 너무나 왜곡되어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된다.

이 책에는 베일 외에도 할례, 하렘 등 이슬람 여성의 삶을 짐작케 하는 여러 문화가 소개되어있다. 아울러 이슬람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도 전반적으로 소개되어 있어 이슬람을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분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내용은 꽤 알차다. 문체도 쉬운편이라 이슬람 문화를 알고자 하는 이에게 부담 없이 추천할 만 하다.

덧붙이는 글 | 베일 속의 이슬람과 여성/ 오은경 지음/ 도서출판 프로네시스/ 9천원


베일 속의 이슬람과 여성 - 문화사 이야기

오은경 지음, 프로네시스(웅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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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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