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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B의 유럽 투어 다큐멘터리 <온 더 로드 투>
ⓒ 다음기획
지난 1월 일이다. YB의 유럽 투어 다큐멘터리 <온 더 로드 투>를 보기 위해 종로의 한 극장을 찾았다. 객석은 텅 비어 있었다. 다큐멘터리에서 YB의 공연과 마찬가지로.

YB의 유럽 투어 당시 국내 언론은 이 투어가 성공적이라고 보도했다. 그 보도를 그대로 믿은 건 물론 아니었다. 현지에서 전혀 인지도 없는 밴드의 공연이 만원사례를 일으키는 일은 영화에서조차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니까.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지 교포들로 가득 메워진 마지막 런던 공연이 오히려 낯설어 보일 정도로, 그들의 유럽 공연은 황량 그 자체였다.

실패한 공연을 탓할 생각은 전혀 없다. 중요한 건 실패한 투어를 통해서 무엇을 깨달았느냐, 그리고 어떻게 극복하느냐일 테니. 거듭되는 텅 빈 객석에서 혼자 담배를 피는 윤도현의 표정은 아마도 이후에 뭔가를 보여줄 듯 싶었던 것이다.

자우림은 '일탈', 크라잉 넛은 '말달리자', YB는?

▲ YB의 새앨범 < Why Be > 사진
ⓒ 서울음반
최근 YB의 새앨범 < Why Be >가 나왔다. 윤도현 밴드에서 YB로 개명하고 내놓은 이 앨범은 그러나, '그 때 그 표정'이 주던 느낌이 들어있지 않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 Why Be >는 윤도현 밴드에 대해서, 정확히 말하면 윤도현에 대해서 늘 지적되던 문제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변한 건 밴드의 이름뿐이다.

록이 마이너 장르인 한국에서 윤도현만큼 폭넓은 인지도를 갖고 있는 뮤지션은 없다.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바야흐로 '국민 록커'로 올라선 그는 록에 대해 우호적인 10대, 20대 뿐만 아니라 30~40대 그리고 그 이상의 연령층에게까지 자신의 이름과 얼굴, 목소리를 알렸다. 그러나 알리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노래다.

생각해보면 일곱장 앨범을 내는 동안 쌓아온 지명도와 인기에 비해 히트곡은 이상하리 만큼 없는 게 바로 윤도현이다. TV프로그램이나 라이브 무대에서 객석을 뜨겁게 만드는 노래들은 대부분, 아니 절대적으로 리메이크 곡들이다. '담배가게 아가씨' '불놀이야' '돌고 돌고 돌고' 같은 선배들의 명곡 말이다.

자작곡으로 밴드의 외연을 넓혀오지 못했다는 얘기다. 록계의 조영남이랄까. 잠깐, 조영남에게는 '도시여 안녕' '화개장터'가 있지 않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겠다. 물론 윤도현에게도 자체 히트곡이 있다. '사랑 Two' 말이다.

하지만 외부 작곡가의 곡이다. '사랑했나봐'를 비롯, 잘 나가는 작곡가들의 곡으로 도배한 솔로 2집은 록 뮤지션으로서 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앨범은 아니니, 여기선 얘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 YB는 자작곡으로 밴드의 외연을 넓혀오지 못했다.
ⓒ 다음기획
히트곡이 없으면 평론가들의 호평이라도 받아야 할텐데, 애석하게도 그렇지도 않다. YB의 앨범이 발표될 때마다 처음에는 우호적인 평론가들도 점차 그들에게 등을 돌려온 게 현실이다.

대중성과 음악성, 어느 것도 갖추지 못했다는 얘기다. 물론 팬들이 있다. 그것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의 위치와 지명도에 비해 밴드의 '자작곡'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게 문제다.

밴드는 자체적으로 음악을 생산하고 연주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단위다. 자작곡으로 활동하고 승부해야 한다는 의무를 갖고 있는 단위기도 하다. 그런 노래들은 예술로서, 정치적 표현 수단으로서 대중음악의 역사를 자리매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롤링 스톤> < NME > 같은 권위있는 음악 저널들이 록 밴드들에게 집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돌 그룹과 록 밴드가 구분되는 최우선 지점이 바로 창작력인 것이다. 지금 한국을 대표한다는 밴드들은 그런 힘을 기반으로 오늘의 자리에 올랐다.

자우림에게는 '일탈'부터 '하하하쏭'이 있고, 크라잉 넛에게는 '말달리자'와 '밤이 깊었네가', 델리 스파이스에게는 '차우차우' '고백'이 있다. 그러나 그들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으며 활동하고 있는 YB는 무슨 노래로 오늘에 이르렀던가. '오! 필승 코리아'?

YB가 국민 밴드로 남으려면...

< Why Be >엔 두 곡의 리메이크 곡이 담겨 있다. '아리랑'과 '뱃놀이'다. 누구나 알고, 라이브에서 연주될 때 누구나 반응하는 곡이다. 객석의 호응도 쉽게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리메이크 곡들과 마찬가지로. 딱 거기까지다. 앨범의 자작곡들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국민 밴드'라는 호칭에 걸맞는 완성도를 들려주지 못한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들은 계속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행사장을 누빌 것이요, CF도 찍을 수 있을 테니. 밴드가 갖춰야 할 능력과 상관없이 그런 대우를 받는 YB는 심하게 말하자면 핸들링으로 골을 넣어 MVP에 오른 축구 선수 같다는 생각이 든다. YB는 지난해 유럽 투어에 이어 미국에 앨범을 발매한다고 한다. 미국은 록의 중원이다.

위치에 걸맞는 '국민 히트곡' 하나 만들어내고 큰 뜻을 도모한다면 모를까. 한국 대중들을 울리고 흥분시킨 자작곡 없이 중원에서 작은 호령 소리라도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 YB가 해야 할 일은 좁은 국내시장에서 벗어나 해외시장의 문을 두들기기보다는 위치에 걸맞는 '국민 히트곡' 하나쯤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아니, 그런 노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부터 좀더 닦아야 하는 게 아닐까. 큰 뜻을 도모하는 이들에게 옛 현인들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을 남기지 않았던가.

▲ 국민 밴드라면, '국민 히트곡'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 스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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