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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일 한 장애인 활동가가 '답답해 미치겠어요!'라는 팻말을 들며 집회에 찹여하고 있다.
ⓒ 선대식

전국이 폭염에 시달리고 있던 지난 8월 7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청 앞. 섭씨 33도의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성람재단 비리척결과 사회복지사업법 전면 개정을 위한 공동투쟁단'(공투단)의 농성은 계속되고 있었다. 농성 13일째.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문명동(뇌성마비 1급)씨는 "시설 수용 장애인도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며 농성 참여 이유를 밝혔다.

현재 공투단에는 사회복지시설 민주화와 공공성 쟁취를 위한 전국연대회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인권단체연석회의 등 전국적 규모의 장애인 인권단체 10여곳이 참여하고 있다.

과연 '성람재단 사태'의 본질은 무엇일까. 뙤약볕 아래서 13일째 지속적으로 농성을 강행하고 있는 이들은 대체 무엇을 알리고 싶은 것일까.

국내 최대 복지법인, 그러나...

성람재단은 ▲서울정신요양원 ▲문혜·은혜 장애인요양원 등 13개 시설을 거느리고 한해 100억원 이상의 정부보조금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사회복지법인이다. 이 법인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미 4년 전부터 시작됐다.

2003년 2월 노조가 결성된 이후 시설 내 일상적 폭행, 성추행, 강제노동 등의 인권침해와 횡령 등의 비리가 폭로됐고 급기야 2004년에는 조태영 전 이사장이 과실치사, 사기, 횡령 등의 이유로 고발당했다. 관할 종로구청은 당시 비리 사실을 확인하고 1억4000여만원을 환수조치 했다.

그러나 재단의 전횡은 계속됐고 결국 지난 6월 이 복지시설을 운영하면서 27억원을 횡렴한 혐의로 조태영 전 이사장이 구속됐다. 조씨는 지난 달 28일 재판에서 9억 5000만원의 국고를 횡령한 혐의로 징역 5년을 구형받은 상황이다.

하지만 조씨는 수사과정 중 퇴임하면서 자신의 아들을 이사로, 친구를 이사장직 대행으로 취임시켜 이들이 현재 법인을 관리하고 있다. 시설인권연대 등은 "구속된 비리 이사장의 친인척으로 구성된 이사회는 하루 빨리 해임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애인시설 비리가 끊이지 않는 까닭

▲ 성람재단 비리와 관련해 인권단체들의 종로구청 앞 농성이 8월 7일로 13일째를 맞았다.
ⓒ 선대식
성람재단과 같은 장애인시설의 인권유린, 비리 문제는 사실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96년 에바다 농아원 사태 이후 여러 장애인시설에서 인권유린과 비리문제가 드러났다. 최근에는 김포의 한 시설에서 원장이 원생들을 성폭행, 살해하고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사회적 충격을 주기도 했다.

시설비리 문제를 오랫동안 취재해온 <함께걸음> 최희정 기자는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96년 평택 에바다 사건 이후에도 구조적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아 시설 비리문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장애인시설 비리가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로 복지 시스템과 사회인식, 운영문제를 꼽는다. 장애인 수용시설은 현재 전액 국가보조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설인권연대 김정하 활동가는 "시설비리가 끊임없이 자행되는 가장 큰 이유는 비리 이사진의 존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재단 측이 복지시설을 사유재산으로 인식해 이사진 전원을 친인척으로 구성하기 때문에 이사진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 활동가는 "시설 민주화와 공공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족벌세습 운영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비리를 결코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지난 1일 집회에 참여한 장애인 활동가들의 모습.
ⓒ 선대식
▲ 성람재단 산하 서울정신요양원 전경.
ⓒ 월간 <함께 걸음>

시설, 공공 재산인가 사유재산인가

공투단은 "행정관청의 무원칙한 대응이 시설문제를 오히려 키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성람재단 문제가 4년 동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이유에는 종로구청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종로구청은 관내에 위치하고 있는 성람재단에 대한 정부보조금을 직접 집행하고 있다. 공투단은 "재단의 비리혐의가 명백한 상황에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성람재단 이사진 전원해임과 민주 이사진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종로구청 담당자의 의견은 다르다. 정일두 종로구청 사회복지과 팀장은 공투단의 요구에 대해 "법원의 확정 판결이 난 후에나 행정처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재단 이사 11명이 비리혐의로 구속된 이사장에 의해 선임됐기 때문에 비리혐의에 대한 개연성을 인정한다"면서도 "심증은 있지만 정확한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현 이사진을 해임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사회복지사업법 제40조에 따르면 시장, 군수, 구청장은 시설에서 회계부정이나 불법행위 기타 부당행위 등이 발견된 때 그 시설의 개선, 사업의 정지, 시설 장의 교체를 명하거나, 시설의 폐쇄를 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사 해임과 관련된 명확한 규정은 없는 실정이다.

공투단은 이 문제가 법률 해석 차원에서만 다뤄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강성준씨는 "전액 국고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사회복지시설은 공공의 재산"이라며 "공공성 확보를 위해 당연히 비리 이사장에 의해 선임된 이사진을 해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사진 해임과 관련해 종로구청과 공투단의 입장차는 궁극적으로 재단 시설이 사유재산이냐 아니냐다. 마치 사학법 논쟁과 비슷하다. 종로구청은 이사진 해임을 위해서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공투단은 "시설운영비 100%가 국고에서 지원되는 상황에서 장애인시설을 사유재산으로 볼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 사유재산이 아니라 공공의 재산이기 때문에 공공성 유지를 위한 이사진 해임은 얼마든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 지난 1일 성람재단 비리와 관련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 선대식
인권단체 "개방형 이사제 도입 필요"

정부는 지난해 8월 30일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눈에 띄는 부분은 '이사추천제' 도입 조항. "국가나 지자체로부터 국고보조를 받는 시설을 운영하는 법인에 대해 관할 관청이 이사 1인을 추천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인권운동사랑방 강성준 활동가는 "법인운영의 투명성을 위한 상징성을 높게 평가할 수 있지만 이사진의 의사결정이 다수결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는 무의미한 조항이다"고 말했다.

공투단은 정부안보다 한발 더 나아간 개정안을 마련 중이다. 현재 초안 검토가 끝난 상황이다. 개정안 작성에 참여중인 염형국 변호사는 "사회복지사업법을 전면 개정해 국민의 혈세로 자신의 배를 불리는 자들이 설 땅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밝혔다. 이어 "수용자 인권확보, 자립생활 우선 지원, 개방형 이사제 도입이 개정안의 중요한 내용"이라고 밝혔다.

개방형 이사제 도입은 이사진의 과반수를 노동자대표, 자치단체 등이 추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염 변호사는 "족벌세습 운영과 비리은폐를 막기 위해서는 개방형 이사제의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개방형 이사제 도입은 사회복지법 개정안의 핵심 쟁점 조항이 될 여지가 크다. 사학법의 경우처럼 법안처리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시설지원'보다 '자립지원' 우선돼야

공투단은 성람재단 사태를 국내 장애인 시설 문제 해결의 상징적 사건으로 보고 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김영희 공동대표는 "시설수용자는 주는 대로 받고 입히는 대로 입는 자유밖에 없다"며 "장애인도 한명의 주체적 인간으로 살고 싶어 한다"고 주장했다.

'2005년 장애인생활시설 생활인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시설에 입소했다는 비율이 77.9%에 달했다. "시설확충에만 국가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장애인들에게 원치 않는 집단생활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이 인권단체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박경석 집행위원장은 "시설 비리 문제는 장애인을 수용시설 내에 가둬놓는 것에서 출발한다"면서 "시설 비리의 근본적 대안은 국가복지정책이 '시설 지원'에서 '자립 지원'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확한 발음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달할 수는 없지만, 또 농성장까지 이동하는데 수 시간이 걸리지만, 그리고 언론과 여론은 무관심하지만 오늘도 장애인들은 종로구청 앞에 모인다.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비단 성람재단을 향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해 있다. 그리고 또 외친다. "우리를 가두려 하지 말라"고.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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