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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헌법재판소가 신문법과 언론법의 핵심 5개 조항에 대해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신문법 17조의 언론사 1개 사가 시장의 30%, 상위 3개 사가 60%를 점유할 때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규정한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으며 따라서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신문 발전 기금 수혜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항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요즘 헌법재판소가 뉴스의 초점이 되곤 하는 것을 많이 본다. 정부의 정책이나 국회의 입법이 번번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뒤집어지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군사독재에 맞선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설치되었지만, 요즘 와서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역할을 하는 듯한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헌법재판소, 6월 항쟁의 결과물이었지만...

가장 극명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이 행정수도이전 논란이었다. 대통령 선거에서의 공약이었고, 국회에서 합의되어 통과된 법률로 추진된 국책사업이었지만, 9명의 '법률 원로'들이 모여서 '관습법'이라는 논리로 뒤집어 버렸다.

이 과정에서 형식상이라도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에서 만든 법률이라는 민주적 절차는 과감히 무시되었다. 이런 식이라면 아무리 국민들이 민주적 절차를 거쳐 합의한 사안이라도 '법률 원로' 9명이 간단히 뒤집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위기다.

물론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소수의 헌법적 권리를 보호하는 데 큰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헌법재판소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과연 소수의 헌법적 권리를 보호하는데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오히려 기득권을 보호하는 방패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장 극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소수를 생존의 위기에 몰아넣은 "안마사 자격증을 시각장애인에게만 허용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모든 판결이 그러하지만, 헌법에 일치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결하는 것은 법률에 대한 유권 해석의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보건복지부의 입법 미비에 대한 문제도 있지만, 헌법재판소의 안마사 자격증에 대한 판결은 시각 장애인이라는 소수의 생존권보다는 다수의 직업 선택의 자유권에 손을 들어준 것에 다르지 않다. 이런 판결은 굳이 헌법재판소가 아니라도 별다른 고민조차도 필요 없이 다수결로 손쉽게 결정할 문제일 수 있다.

이 뿐 아니다. 2004년에 선고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판결에도 양심적 병역 거부자라는 소수의 양심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고민과 배려보다는 한국의 안보 상황과 징병의 형평성이라는 케케묵은 잣대를 들이대 사회 변화를 거부하였다.

이 판결은 결국 헌법재판소가 순수한 헌법적 가치와 기준보다는 사회의 보수적 관념에 더 비중을 둔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헌법재판소가 우리 사회의 진보의 심각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번 신문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별다르지 않다. "발행 부수만을 기준으로 시장 점유율을 평가하고 서로 다른 경향을 가진 신문들에 대한 개별적 선호도를 합쳐 하나의 시장으로 묶고 있는 점, 신문의 시장 지배적 지위는 독자의 개별적, 정신적 선택에 의해 형성되는 것인 만큼 불공정 행위를 초래할 위험성이 특별히 크다고 볼만한 사정이 없는 점"에서 신문법 제17조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그간 시민사회나 언론계에서는 비슷한 시각과 논조를 가진 <조선>, <중앙>, <동아> 세 신문의 여론 독과점 현상이 다양한 여론의 형성과 언론 환경에 많은 악영향을 끼치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균형 잡힌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 결과가 국회에서 처리된 신문법이다.

비민주적인 언론 재벌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헌재의 구태의연함

무엇보다 보수신문이 거대 자본을 앞세워 신문고시를 어겨가며 신문시장을 독과점한 결과가 지금의 현실이다.

이를 고려할 때 헌법재판소가 판결문에서 신문법에 반발한 보수 신문들의 주장과 같은 논리를 답습한 것은 다양한 여론이 균형을 이루는 적극적 언론 자유가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는 사실에 눈감고, 비민주적인 언론 재벌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구태의연함을 보여준 것이라 할 것이다.

나는 요즘 도대체 헌법재판소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지를 모르겠다. 아니 이런 식으로 헌법재판소가 민주적 절차와는 하등 상관없이 최종 결정권을 가지게 된다면 국회가 왜 존재하는지, 국민들의 여론이 무슨 소용이 있는 지를 모르겠다.

헌법재판소는 소수의 헌법적 권리를 보호하기는 커녕 갈수록 보수적 가치와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수단이 됨으로써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이면서 사회적 갈등을 양산하고 있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존폐 문제를 심각히 고려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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