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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원 공연 무대도 예외는 아니다. 이곳에서도 버즈의 'Reds Go Together', 윤도현의 '애국가', 싸이의 'We Are The one' 등 온갖 월드컵 응원가가 불려진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월드컵이 절정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논란마저 잠재우는 거대한 열기가 온 세상을 뒤덮고 있다. 바야흐로 축제인 것이다.

축제가 뜨거워질수록 음악도 널리 울려퍼진다. 그리하여 TV를 틀었다하면 다른 노래는 들리지도 않는다. 온통 응원가다. 뉴스와 버라이어티 쇼, CF를 막론하고 버즈의 'Reds Go Together', 윤도현의 '애국가', 싸이의 'We Are The one', 노 브레인의 '일어나라 대한민국'만 울려 퍼진다.

대한민국 시합의 결정적 장면에서, 경기가 끝난 후의 하이라이트 영상에 깔리는 그 음악들을 들으며 우리는 흥분하고 감격한다. 광장과 술집에 모여 함께 소리 높여 응원가를 크게 외치며 범국가적 축제의 새벽도 붉게 물들인다. 가슴에서 솟구쳐 오르는 흥을 노래로 뿜어낸다.

응원가 아니었으나 응원가로 뜬 곡들

TV로 시합을 보면 경기가 끝난 후 승리에 열광하거나 쓸쓸히 객석을 나서는 사람들의 위로 흐르는 곡이 있다. 'Go West'의 독일어 버전이다. 일 디보의 'Time Of Our Lives'가 이번 월드컵의 공식 주제가지만 'Go West'에 눌린 느낌이다. 이 노래는 원래 'YMCA'로 유명한 빌리지 피플의 원곡이지만, 1992년 영국의 신스 팝 듀오 펫 샵 보이스가 리메이크하면서 축구의 대표적인 송가가 됐다.

이 노래가 애초부터 축구응원가로 만들어진 곡은 아니다. 마초적인 스타일과 과장된 액션을 트레이드 마크로 했던 빌리지 피플은 사실 게이 뮤지션들이었다. 그들은 당시 게이 커뮤니티의 이상향이었던 캘리포니아를 그리며 'Go West'를 불렀다.

그런 사연을 가진 이 노래를 펫 샵 보이스가 한 게이 페스티벌에서 연주했고 자신들의 앨범 < Very >에 정식으로 담았다. 그 후 'Go West'는 당시로서는 첨단 영상의 뮤직 비디오에 힘입어 원곡보다 더욱 널리 알려졌다.

게이들의 송가였던 이 노래를 축구의 송가로 만든 사람들은 다름아닌 축구팬들이었다. 노래의 곳곳에 등장하는 웅장한 코러스, 그리고 'go west'라는 말에 담겨있는 '전사하다'는 의미, 단순하지만 흥분을 고조시키는 멜로디, 이런 요소들에 팬들은 주목했다. 영국을 중심으로 축구장에서 울리던 이 노래는 점점 여러 나라로 퍼졌다. 그리고 축구를 상징하는 노래로 자리잡았다.

축구의 역사가 깊은 영국에는 팀마다 고유의 응원가가 있다. 찬송가를 개사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Glory! glory, Man United', 뮤지컬에서 빌려온 리버풀의 'You'll Never Walk Alone'등 경우에 따라 다양하게 등장하는 응원가들의 공통점은 모두 팬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선택되고 불려진다는 것이다. 'Go West'와 마찬가지로.

대기업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한 응원가

▲ 독일월드컵 한국-프랑스 경기 시작 전 서울광장에 모인 응원 인파가 한국팀을 열렬히 응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우리에게도 이런 응원가가 있었다. '젊은 그대', '그대에게' 같은 노래들은 물론이고 '오! 필승 코리아'도 사실 K리그 팀의 응원가였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오! 필승 코리아'로 SK텔레콤과 윤도현이 대박을 쳤다. 월드컵 열기를 타고 응원가 시장이 생긴 것이다. 그것도 보통 시장이 아니다.

억 단위는 우습고, 누구는 그때 몇 십억을 벌었네 하는 얘기가 오고 간다. 당연하게도, 그래서 지금 모두가 이 대박 특수를 노리고 달려든다. 거대 이동통신사들은 일찌감치 인기 가수를 섭외, 응원가를 취입하게 하고 자신들의 로고송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공식응원가인양 홍보했다. 그리고 심지어 자사가 주관하는 응원 장소에서는 경쟁사의 노래를 틀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만들어질 때 아름다울 수 있는 응원가마저 대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객관식 문제의 답을 고르듯 월드컵에 맞춰 등장한 응원가 세트 중에서 하나를 골라 불러야 하는, 아니 부를 것을 강요당하는 상황이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탄생하여 주류로 진입하는 게 아니라 방송을 중심으로 한 홍보 시스템에 의해 전국에 뿌려지는, 한국 대중음악 소비구조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우리 시합 때 마다 들리는 수만의 합창에 전율하면서도 씁슬한 마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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