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 부근에 설치된 월드컵 홍보 사진에 반월드컵 스티커가 붙어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신통하다. 거의 '자기검열' 수준으로 월드컵에 대한 비판적 의견은 무시해오던 주요 언론매체들이 지난 월요일(5일)을 기점으로 월드컵을 '다시 생각하자'며 사회적 월드컵 올인 현상을 문제 삼고 나섰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서울 도심의 월드컵 조형물을 스티커로 공격(?)하려 한다는 '반(反)월드컵 게릴라 작전' 관련 기사뿐 아니라, 비이성적 월드컵 광풍을 비판하는 사설까지 등장하니 조금 어리둥절하면서도 반가웠다. 게다가 방송사까지! 그것도 그들의 간판 뉴스에!

그러나 적이 의심스럽다. 혹시 이것마저도 '월드컵'이라면 무엇이든 가져다 진열하려는 저들의 상술은 아닌지. 또 심히 염려스럽다. 어느 기자의 표현대로 "우리는 월드컵 열풍도 전하지만 반대 움직임도 전달했다! 봤지?"하는 식으로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는 아닌지. 그리고 이 비상식적, 몰이성적 월드컵 광풍을 창조한 주인공이 바로 그들, 언론매체라는 부끄러움을 가리려는 것은 또 아닌지.

사실 몇몇 신문의 비판 기사는 그 진정성이 엿보인다. 예를 들어 경향신문은 월드컵 첫 경기인 토고전이 열리는 13일이 4년 전 양주군 효촌리의 두 소녀 미선이, 효순이가 우리를 떠난 날이라고 회고하며 함성을 내지르기 전에 잠시라도 그들을 추모하는 순간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 당시 '월드컵 치매'에 걸려 그들을 모른 척(?) 했던 우리의 모습을 나무라면서.

그러나 또 다른 몇몇 신문들은 역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지난 5일은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한·미FTA 협상이 시작된 날이지만 이들은 FTA보다는 가나와의 평가전을 1면에 내걸었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보다 더 중요하다.

신문과 방송의 동침

사실 작금의 월드컵 광풍에서 정말 '오버'하는 매체는 방송 쪽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비판이 지난 몇 달간 있었다. 보스니아전 직후, 평가전에 불과한데도 전체 50분 중 25분, 날씨를 포함해 32꼭지 중 16꼭지를 축구에 쏟아 부은 MBC '축구데스크'를 보라.

그런데 신기하게도 신문사들은 언론의 본분을 내팽개쳐버린 방송사를 비난하지 않았다. 정치적으로나 경영상으로나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이들인데도, 또 신문은 여론을 등에 업을 수 있었는데도 월드컵에 대해서만큼은 이들 신문사는 '자정'했다. 왜? 신문 역시 월드컵에서 따먹을 게 많기 때문에.

그래서 그랬나 보다. 지난 3월, 서울시가 월드컵 기간에 서울광장을 SK텔레콤에게 넘겨 사실상 서울시민을 재벌에게 팔아넘겼다는 비난이 인 적이 있는데, 그 SK텔레콤컨소시엄의 멤버들은 KBS SBS <조선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등의 방송사와 신문사였다. 이들은 연합군이 되어 본선도 아닌 평가전에서부터 시민들을 펜스 안에 몰아넣고 판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서울광장의 이미지를 국민에게 살포하면서 바로 이것이 월드컵의 참맛이고 유일한 애국의 길이라고 가르치며 우리를 부추기고 있다. 동참하지 않으면 '국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자본과 미디어의 야합

▲ 26일 저녁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축구대표팀 평가전에서 붉은악마 응원단이 대형 태극기를 펼쳐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디어가 이렇게 월드컵을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월드컵 기간에 한몫 보려는 상업자본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4년 전 3개 지상파 4개 채널이 안면몰수하고 한국팀의 경기를 동시에 중복 중계하는 식으로 돈을 자루에 쓸어 담고, 직원들에게 1000만원에 이르는 포상금을 지급하게 된 배후에는 자본의 엄청난 광고물량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때와 다를 바 없이 자본과 미디어의 동맹이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들의 '짝짝꿍'이 일찍 시작되었다. 그 이유는 별다를 것 없다. 사실 한국축구는 해외원정 월드컵에서 이제까지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더구나 이번 월드컵은 독일에서 열리니 스위스와 프랑스에겐 사실상 홈구장이다. 당연히 16강조차 불투명하고 이는 이른바 '월드컵 특수'의 단축을 의미한다. 바로 상업자본이 염려하는 바다.

방송사의 걱정도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토고전이야 밤 10시 시작이니 시청자 붙들기에 어려움이 없지만, 새벽 4시로 예정된 스위스전과 프랑스전은 골칫거리이다(사실 광고 좋아하기는 둘 다 똑같지만 방송이 신문보다 더 오버하는 이유도 이것 아닐까 싶다).

결국 수익 극대화 작업을 가로막는 이러한 요인들을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월드컵 열풍을, 즉 월드컵 특수를 극대화시키는 동시에 하루라도 일찍 일으켜 세워 그 기간을 최대한 늘이는 것이다.

FIFA '요건 몰랐지?'

이제 FIFA의 상업화는 말릴 재간이 없다. 이제 중계권료라는 것은 그냥 집에 있는 TV 수상기를 갖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우리의 거주공간(TV)뿐 아니라 일상공간(멀티미디어 휴대폰), 직업공간(인터넷), 이동공간(DMB), 그리고 거리응원공간(전광판)까지 분할하여 따로 값을 매긴다.

또 실시간 중계뿐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5분, 10분, 40분, 24시간 지연 중계하는 준실시간 중계(near live), 그리고 월드컵 동영상을 따로 가격을 매겨 계약한다. 오직 하나의 콘텐츠를 가지고 우리의 일상을 시와 공으로 분할하여 쪼개 파는 상술의 극치를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기업으로부터 받는 엄청난 스폰서십도 있다. FIFA는 이번 월드컵에 15개 다국적기업을 공식스폰서로 선정하여 각각 추정액 5000만∼7000만 달러를 받았다. 또 2007∼2014년까지의 다년 계약을 별도로 추진하여 현대자동차, 소니, 아디다스, 코카콜라, 비자, 아랍에미리트항공 등 6개사로부터 1억9500만 달러에서 3억500만 달러에 이르는 돈을 받고 이들을 '최고등급파트너'로 삼았다.

이처럼 FIFA가 중계권료와 스폰서십 계약을 독점하다보니 2010년 월드컵 개최지인 남아공은 경제적 수익을 바랄 수 없는 상황에 처했고, 결국 국회 체육위원장이 나서서 FIFA의 수익독점을 비난하기에 이른다.

뻔뻔스런 애국

그러나 국내기업의 상업주의는 FIFA의 뺨을 쳐버렸다. 혹자는 월드컵은 원래 상업적이니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을 거라면 너무 비판하지 말라고 짐짓 점잖게 타이르려 든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의 '월드컵 장사'는 그야말로 독보적, 세계 최고 수준이다. 외국의 기업들도 월드컵 마케팅을 하지만, 이는 선수단 지원과 관객과 참여자에 대한 편의제공 수준이다. 이 땅의 그들처럼 국민을 응원시키겠다고 나서지는 않는다.

이 땅의 상업자본은 응원분위기를 뻥튀기하고 '국민'을 꼬드기기 위해 '국민배우' 안성기, '국민가수' 윤도현, '국민여동생' 문근영을 등장시켰다. 4년 전 SKT는 한석규를 내세워 '대∼한민국' 동작을 외우게 하더니 이번엔 KTF가 문근영을 내보내 응원 전엔 체조도 하셔야 한다며 '국민체조'를 하라고 우리를 들볶는다. 통신사에 이어 월드컵 판에 뛰어들어 눈부신 전쟁(錢爭)을 치르고 있는 업계는 바로 은행업이다. 정리해고의 선두주자인 은행들이 태극기를 치켜들고 (외국인들까지 등장시켜) 애국을 호소하는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다.

자본의 응원, 자본의 애국이다. 그러나 태극기와 민족을 들먹이는 이들이 과연 평소 애국애족적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이 응원과 애국의 깃발을 치켜들고 앞장서는 모습을 볼 때면 살짝 열이 오르고 속이 쓰린 것이다.

'꿈은 안 이루어진다'

'꿈은 이루어진다'. 4년 전 붉은악마가 카드섹션으로 선보였는데, 이제는 기업의 광고에 등장한다. 꿈이란 수면 중 일어나는 일련의 시각적 심상이라 한다. 그 특성으로는 꿈꾸는 '나'는 현실의 '나'와는 단절되어 있고, 또 꿈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불합리하고 근거 없는, 괴기한 것이라 한다. 결국 꿈이란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업은 우리에게 '꿈은 이루어진다'며 주문 외우듯 한다. 이는 고단한 현실을 덮어 버리려는 마약에 다름 아니다.

자신들의 꿈을 이미 이룬 자본이 꿈을 이루지 못한 우리에게 곧 이루어질 거라면서 계속 최면을 걸고 있다. 4년 전 이들은 월드컵을 통해 횡재했다. 수십조에 이르는 이른바 경제효과는 이들이 독식했다. 우리에겐 추억뿐, 모든 건더기는 이들이 다 주워 갔다.

월드컵 보러 집 나간 이성을 기다리며

월드컵 상업화의 구조를 들여다보자. 월드컵은 1994년 미국을 찍고 나와 상업화됐다. 본격적 세계화의 시점이다. 포화상태에 이른 미국시장의 대안을 찾던 미국기업은 서구 중심의 '화이트 올림픽'에서 모든 대륙을 열광시키는 월드컵으로 눈을 돌렸다. 미국에서 축구를 싫어하는 것은 매우 지당하고 대단히 미국적인 것이었지만, 이들은 월드컵을 통해 시장개척에 나섰다.

그 효과는 만점짜리다. 그래서 1986, 1990, 1994월드컵을 통틀어 스폰서로 참여한 미국기업은 총 11개 중 단 4개였지만, 이번 월드컵의 공식스폰서 중 미국기업은 전체 15개 중 7개다(그 외 일본 2, 네덜란드 1, 한국 1, 아랍에미리트 1, 주최국 독일 3). 이들은 우리의 일상을 점령하려 하고 있다. 월드컵을 이용해 시장을 확장하려는,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침투하려는 미국 기업들의 장삿속은 그래서 얄밉기만 하다.

그러나 지금의 월드컵광풍은 그런 얄미움보다는 이성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자본과 미디어가 오직 월드컵만 살포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는 '불꺼진 사회(black-out-society)'가 될 위기에 처했다. 영어의 'black out'은 정전, 소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일시적인 의식의 상실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군사적 개념이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는 본격적 미사일 공격에 앞서 먼저 핵공격으로 적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무력화시키는 교란 전술이다.

5일 시작된 한미FTA 협상은 초고속으로 진행될 것이다. 월드컵은 한국사회를 '블랙 아웃'시킬 것인가. 월드컵이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의식을 상실하고 방어신경이 무력화된 우리는 과연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월드컵은 자본의 블랙 아웃 선제공격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긴 대추리 사람들의 비극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또 지방선거는 끝났지만 시장, 구청장에서부터 시의회, 구의회까지 한 정당이 싹쓸이 한 우리 동네는 앞으로의 4년을 놓고 걱정도 많고 그들의 취임 전에 할 얘기도 많다. 우리는 지금 할 이야기가 이렇게도 많단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정희준 기자는 동아대학교 스포츠과학대학 교수이자 문화연대 체육문화위원장입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