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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17일 APEC 정상회의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을 하고있다.
ⓒ Bloomberg/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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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공개] 한·미 정상회담 대화록 ①... 부시 '위폐 전략'은 예고됐었다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지난 3일자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졸속 추진은 남은 임기 안에 무엇인가 업적을 남겨보려는 노무현 대통령의 조급증이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정씨는 비판의 근거로 "2005년 5월까지 한·미 FTA는 입에 오르내리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행담도' 문제로 물러나기 직전인 2005년 5월까지 청와대 내에서 동북아시대위원회 기조실장과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내면서 FTA 로드맵을 챙겨왔다.

실제로 최근 <오마이뉴스>가 지난해 6월 1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의 모든 내용을 담은 정상-오찬회담 대화록을 단독 입수해 검증한 결과, 한·미 정상은 2시간여에 걸친 회담에서 한·미 FTA의 'F'도 입밖에 꺼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2005년 11월 경주 정상회담에서야 FTA 등장

FTA 같은 핵심현안의 경우 통상 양국 정상이 '운'(韻)을 떼는 개시 발언에 이어 양국 정부의 실무적인 협상이 개시된다. 따라서 정씨의 지적대로 적어도 지난해 6월까지는 한·미 FTA 문제가 전혀 청와대에서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단, 지난해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이른바 한·미 FTA의 4대 선결요건 가운데 하나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해서만 언급했을 뿐이다.

한·미 FTA가 처음 언급된 것은 그로부터 5개월 뒤인 11월 17일 경주 정상회담이었다. 양국 정상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경주에서 약 4시간 동안 함께 했는데 FTA 문제는 한·미간의 경제통상 문제를 논의한 오찬회담에서 처음 거론됐다.

반기문 장관은 정상회담 직후 가진 브리핑에서 두 정상이 한·미 FTA를 언급한 대목을 이렇게 단 한줄로 설명했다.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한·미 양국이 서로에게 매우 중요한 무역 및 투자상대국으로서 경제통상 유대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양측은 또한 FTA 체결이 양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만큼 앞으로 이 문제도 긴밀히 협의해 나가겠다고 했다."

딱 한 줄뿐이었다. 그렇다면 6월 백악관 정상회담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던 'F'자가 11월 경주 정상회담에서는 왜 느닷없이 나타난 것일까?

바로 11월 17일 경주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한·미간의 '동맹 동반자관계를 위한 전략협의체'(Strategic Consultation for Allide Partnership)가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5개월만에 갑자기 왜?

▲ 지난 1월 19일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를 가진 반기문 외교부장관과 라이스 미 국무장관. 경주 한미 정상회담의 산물인 장관급 전략대화는 한미 안보경제 현안을 일괄타결하는 '마스터키'였다.
ⓒ 연합뉴스
양국은 이날 한·미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한·미 동맹과 한반도 평화에 관한 공동선언'에서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양자, 지역 및 범세계적인 상호관심 사안을 협의하기 위해 동맹 동반자관계를 위한 전략협의체(SCAP)라는 명칭의 장관급 전략대화를 출범시키기로 합의하였다"면서 "양 정상은 2006년 초에 첫번째 전략대화를 개최하는데 합의하였다"고 발표했다.

노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연 기자회견에서 "이 전략대화에서는 동맹의 미래발전방향 등 폭넓은 의제에 관해서 심도있는 협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반기문 외교부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이 아시아에서 전략대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일본, 중국, 호주 등"이라며 "전략대화를 통해서 한·미 동맹의 미래발전방향을 제시하는 한편 한반도는 물론 지역 및 국제무대에서의 협력을 가일층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즉,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는 양국 '정상 차원'에서 논의할 한·미 동맹의 미래발전방향 등 폭넓은 의제에 관한 심도있는 협의를 '장관급'에 미룬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한·미 양국은 지난 1월 19일 사상 처음으로 미국 워싱턴에서 반기문 외교부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간의 장관급 전략대화를 개최했다.

반 장관과 라이스 장관은 제1차 전략대화 공동성명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관하여 양국 정부의 양해사항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단지 이 문제만이 아니었다.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는 한·미간의 현안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마스터키'였다.

한국 정부는 제1차 장관급 전략대화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에 참여를 결정한 사실이 나중에 공개되어 파문을 일으켰다. 또 정부는 지난 2년간 금수조처가 내려졌던 미국산 쇠고기를 3월말께 수입을 일부 재개하기로 지난해 말에 이미 결정했을 뿐만 아니라, 스크린쿼터를 대폭 축소하는 조치를 1월 26일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미국으로서는 한·미 FTA의 4대 선결요건으로 발목을 잡아온 두가지 메가톤급 현안을 한꺼번에 해결한 셈이었다. 미국에게 '벼락 같은 축복'을 안긴 두 사안은 당연히 한국 정부로서는 국민 건강과 국내 영화계 침체를 우려해 섣불리 결단을 내리지 못했던 '뜨거운 감자'였다.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는 양국 현안 한꺼번에 해결하는 '마스터키'

그런데 한국 정부가 느닷없이 이 '뜨거운 감자'를 삼킨 배경은 뭘까? 그리고 무엇이 한국 정부를 그렇게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급하게 움직이도록 압박한 것일까?

<오마이뉴스>가 11일 보도한 2005년 6월 한·미 정상회담 대화록은 이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부시 대통령이 그자리에서 제기했던 '북한산 위폐'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관련기사 참고)

미 재무부는 같은 해 9월 15일 "북한이 마카오 소재 중국계 은행인 방코델타아시아(BDA)를 통해 위조달러 지폐를 유통시키고 불법 국제거래 대금을 세탁해 왔다"는 발표를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이때까지도 북한에 '분명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부시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결과는 제4차 북핵 6자회담에서 채택한 공동성명의 이행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제5차 6자회담의 일정조차도 잡지 못하는 표류로 이어졌다.

이는 북핵문제만 가닥이 잡히면 북·미 간 현안은 일괄타결될 것이라는 안일한 정부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었다. 그 때문인지 지난 연말연시에 일괄타결된 것은 북·미 안보 현안이 아니라 한·미 안보·경제 현안이었다. 그래서 정부가 외교·안보정책의 실패 때문에 경제·통상정책까지 접고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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