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8일 광화문 사거리에서 특수교육진흥법 장례식 퍼포먼스가 열렸다.
ⓒ 김지숙
▲ 특수교육진흥법 장례식 퍼포먼스.
ⓒ 김지숙

올해 들어 최악의 황사가 찾아와 건물 형체조차 희미하게 보인 8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는 장애인 당사자·교사·학부모 등 1천여명이 모여 아주 특별한 장례식을 치렀다.

장례의 대상은 지난 1977년 장애학생의 교육을 '진흥'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태어난 '특수교육진흥법'. 이 법은 태어난 지 30년 만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이날 치러진 장례는 문상객들이 고인의 죽음을 다행스러워 하는 호상이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열린 '특수교육진흥법' 장례식 퍼포먼스의 내용이다.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공동대표 윤종술, 아래 장애인교육권연대)는 이날 낮 12시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후문 앞에서 '전국 장애인 교육 주체 총력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이같은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들이 특수교육진흥법에 사망선고를 내리고 장례식을 치른 것은 "30년 전 제정된 특수교육진흥법이 '진흥'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장애 학생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27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애인교육권연대 활동가들은 특수교육진흥법을 폐기하고 장애인교육권연대에서 지난 2년간 준비해 온 '장애인교육지원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식농성 중 지난 6일(25일차)에는 두 명의 장애자녀를 둔 경남지역의 김동해씨가 가슴통증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실려 가기도 했다. 김씨는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 날도 특수교육진흥법 장례식에서 상주로 나섰다.

예비 특수교사 "교수들이 '헛짓'이라고 하더라"

▲ 이날 결의대회에는 장애인당사자, 교사, 학생, 학부모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 김지숙
또 이날 결의대회에서는 현재 특수교육관련 학과에 재학 중인 예비특수교사 500여명도 참석해 교육부를 향해 장애인교육지원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이다. 그런데 각 학교에서는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위해 목숨걸고 싸워가는 이 현실에 대해 관심도 없고 너무 모른다. 일부 교수들은 오히려 '나서지 말라, 지금 부모들이 하고 있는 것은 다 헛짓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장애학생이 차별받는 현재의 교육 현실에 대해서는 외면하면서 특수교사가 되겠다고 발버둥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노력과 과정들이 필요한 것 같다."


이는 '장애인교육권쟁취를위한학생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구대 조민제 학생의 말이다. 조씨는 특수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도 부모, 장애인당사자와 함께 장애인교육지원법이 반드시 제정될 수 있도록 연대해 나갈 것을 밝혔다.

"사회가 우리에게 준 것은 '교육' 아닌 '투쟁'"

지난달 13일부터 단식농성이 진행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에는 매일 같이 전국에서 올라온 많은 부모들과 시민사회단체, 예비특수교사 등이 방문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본업을 포기하고 인권위에 상주하고 있는 부모들도 있고 매주 휴가를 내고 인권위를 찾는 사람도 있다.

이날 결의대회에서 경북 지역의 김형중씨는 "노무현 정권에 사기당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스팔트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니 속아도 단단히 속은 것 같다"라며 "장애학생 4명 중 1명만 교육받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우리에게 준 것은 '교육'이 아니라 '투쟁'"이라고 말했다.

대전 지역에서 올라온 또다른 부모는 "우리가 무엇을 잘못해 이런 날 아스팔트 위에 앉아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국회의원과 장관,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아 부모들이 직접 장애인 교육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자 이렇게 나왔다"고 밝혔다.

이어 이 부모는 "우리가 차가 다니는 도로 위에 이렇게 앉아 있으니 경찰들은 이 행렬이 빨리 끝나길 바라고 있다, 만일 장애인교육지원법이 제정돼서 우리 아이들의 교육이 보장된다면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며 "부모가 죽더라도 아이가 이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고 떳떳이 살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날 '특수교육진흥법'의 장례 행렬은 광화문 사거리에서 인권위 앞까지 계속되었으며 오후 6시경 마무리되었다.

한편, 장애인교육권연대는 지난 5일 교육부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뒤 교육부 측에 면담 요청서를 전달했으나 일부 교육부 관계자들만 인권위 농성장을 방문했으며 아직까지 장관 면담 요청에 대한 답변은 없는 상태다.

'특수교육진흥법'과 '장애인교육지원법' 무엇이 다른가

장애인교육권연대 등이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특수교육진흥법은 1977년 처음 제정된 '낡은' 법이다. 제정 이후 10여 차례 개정되었으나 교육 대상이 '초중등' 학생에만 집중돼 있어 장애 대학생, 장애 성인 등 교육을 필요로 하는 사람 모두에게 교육을 지원하고 있지 못하다.

특수교육진흥법은 특수학급 설치, 치료교사 배치 등 대부분의 사항이 ‘권고사항’에 머물러 있어 ‘법’은 존재하나 강제력이 부족해 알맹이는 빠지고 껍데기만 있는 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장애인교육권연대는 지난 2년간 교육 전문가와, 부모, 장애인 당사자 등의 의견을 수렴해 장애인교육지원법(장애인의교육지원에관한법률)안을 마련해 오는 4월 입법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특수교육진흥법은 지난 1994년 전면 개정 댕시 장애인 의무교육을 법에 명시했으나 실제로 장애인교육권연대가 교육부의 2005년 특수교육실태조사서의 내용을 재구성한 자료에 따르면 장애학생의 교육 수혜율은 25.4%로 장애학생 4명 가운데 1명만이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수교육진흥법은 '교육지원' 내용을 '특수/직업/치료' 3가지로 규정하고 있으나 장애인교육지원법은 이외에도 교육 대상자의 장애정도와 유형에 따른 교육매체 및 설비, 보조원, 가족지원 등까지 포괄하고 있다.

특히 장애인교육지원법은 학령기 장애학생의 교육 지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현행 특수교육진흥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영유아 시기부터 성인기까지 장애인의 전 생애주기별 교육지원 내용을 담아냈다는 것이 특징이다.

덧붙이는 글 |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에도 실렸습니다. www.withnews.com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의 기자입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장애인의 차별적 문제를 언론을 통해 변화시키려고 ...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