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지난 16일 프랑스 학생들이 스트라스부르에서 새 노동법에 반대하는 데모를 벌이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파리=연합뉴스) 이성섭 특파원 = 역대 프랑스의 학생 시위는 정부를 굴복시키거나 타격을 준 강력한 힘을 발휘해 왔다.

이런 전통을 근거로 이번에 반(反) 최초고용계약(CPE) 시위를 초래한 도미니크 드 빌팽 현 총리가 낙마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드골 대통령의 퇴진을 불러온 1968년 혁명이 있은 지 20여년만인 1986년부터 지난 20년간 4~5년 마다 주기적으로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1986년에는 알랭 드바케 교육장관이 대학 개혁법안을 내놓자 수십만명의 학생들이 거리에서 저항했다. 경찰의 검문을 피하던 한 학생의 죽음으로 시위가 가열돼 법안이 철회됐다.

4년 뒤 리오넬 조스팽 교육장관의 개혁 시도에 반발하는 고등학생들이 파리에서 10만여명을 동원했다.

1994년엔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의 최저임금안(CIP)에 수십만명이 맞서 CIP가결국 포기됐다. 대권을 꿈꾸던 발라뒤르는 학생 시위에 이어 다른 부정 스캔들이 겹치면서 이듬해 대선 1차 투표에서 탈락했다.

1999년 가을엔 클로드 알제그르 장관이 대학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하다 학생 시위를 불렀고 2003년에는 뤽 페리 교육장관이 대학 재정자율화 계획을 추진하다 학생들의 반발에 부딪혀 이후 개각에서 경질됐다.

지난해엔 프랑수아 피용 교육장관이 대학입학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를 개혁하려다 포기했다.

AFP 통신은 정치 평론가들의 말을 빌려 "빌팽 총리가 강력한 반발을 불러 일으킨 청년 실업 정책과 판단 실수로 팽팽한 줄타기 곡예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가 불의의 일격을 당했고 취임 10개월만에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는 진단이다. 이에따라 그의 2007년 대선 야망 뿐 아니라 총리직 유지 능력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 되고 있다는 것이다.

르 피가로는 지난 2개월간 홀로 나아간 빌팽 총리가 개혁에 미래를 걸고 버티면서 대선전의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고 보도했다.

비판론자들은 빌팽 총리가 고압적인 자세로 너무 서두르고 있어 학생, 근로자, 좌파 정계가 연대한 이례적인 반발을 초래했다고 지적하면서 18일 대규모 시위로 그의 입지가 아주 좁아졌다고 분석했다.

또 그가 개혁의 중요성 강조하면서 지나치게 큰 '도박'을 하며 난관을 극복하겠다는 결의를 반복해온 만큼 만약 CPE가 철회된다면 그의 퇴진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는 전망도 나온다.

CPE가 예정대로 시행돼 수개월내 성과를 낸다면 빌팽 총리는 보상을 받을 것이지만 청년들의 반발을 초래한 후유증은 남는다.

이번 사태로 인한 명백한 승자는 사회당이라고 AFP는 진단했다. 사회당은 내부 이견을 완화시키면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목소리를 낼 황금의 기회를 맞았다.

빌팽 총리의 대선 라이벌인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도 반사 이익을 얻고 있다. 사르코지 장관은 CPE에 대한 말을 아끼고 있다. 다만 측근들을 통해 지나치게 모험적인 측면이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leess@yna.co.kr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른 언론 빠른 뉴스' 국내외 취재망을 통해 신속 정확한 기사를 제공하는 국가기간뉴스통신사입니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