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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로게로게로~"

어른들은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수도 있겠다. 케이블 방송에 익숙지 않은 어른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 말이 무슨 의미냐고? 그 답은 애니메이션 <개구리 중사 케로로>에 숨어있다. 외계 행성의 개구리가 지구를 침략하러 왔다나?

<개구리 중사 케로로> 끊임없이 시도되는 '지구 침략'

▲ <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한 장면. 왼쪽 상단의 녹색 개구리가 '케로로'다.
ⓒ 투니버스
외계 행성 '케론성'의 지구침략군 선봉소대장 케로로 중사(일본명 '군조', 단행본 만화에서는 하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야심차게 지구에 쳐들어오지만, 만화 편집자인 '홍미나(이하 투니버스판 기준)'의 딸 '한별'과 아들 '우주'에게 곧바로 사로잡히는 신세가 된다.

'케로로 소대'는 포로로 잡혔음에도 치열하게 지구 침략을 위해 머리를 싸매지만, 어디까지나 머릿속 생각일 뿐이지,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 지구 방위의 선두주자인 '한별'에게 번번이 덜미를 잡히기 때문이다. 단행본 만화의 인물 설명대로 이때부터 '케로로'는 '한별'에게 '절대 복종'하게 된다. 그저 집안의 권력자인 '홍미나'에 의해 '마음을 치유하는 애완동물'로 인정받아 그녀의 아량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된다.

집안의 실질적인 가정부로서, 건담 프라모델만이 유일한 낙이자 취미인 '케로로'는 '한별'의 위력 앞에서도 끊임없이 '지구 침략'에 도전하면서, 좌충우돌 '지구 적응'을 시작한다.

그 외에도 그의 부하 소대원들인 '타마마 이등병'과 '기로로 하사', 그리고 '쿠루루 상사', '도로로 병장'이 등장하는 가운데, 이들 소대원과 '홍미나'의 가족, '우주'를 짝사랑하는 대부호의 딸 '나라' 등이 얽히고설켜 '절대복종'과 '짝사랑'의 관계를 이룬다. 나름대로 상당히 복잡한 편이라, 단행본 만화의 첫머리에는 늘 인물관계에 대한 설명 페이지가 있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 뭐가 재밌다는 걸까?

▲ 단행본 만화 <개구리 하사 케로로>
ⓒ 서울문화사
'케로로'와 그의 소대원들은 늘 비장한 목소리로 '지구 침략'을 의논한다. 자신들의 엽기적인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며, 지구 침략의 첫걸음 차원에서 '한별'을 공격하지만, '한별'은 가끔 곤란에 처하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이들에 대한 방어는 식은 죽 먹기.

각종 최신형 무기와 기발한 기술로 거창하게 지구 침략을 이야기하지만, 우리의 시선으로는 어이없을 정도로 소소하면서도 촌스러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재미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바로 '불균형'이다. 이 기묘한 '불균형'이 침략 대상인 우리에게는 재미있는 유머로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만화평론가 이명석씨의 이야기대로 '현지인과의 우정'으로 정의된 '케로로'의 지구 적응 역시 엉뚱한 재미가 풍부하게 살아있다. 귀여움에 집중한 캐릭터의 매력이 이 엉뚱한 재미를 살리는 측면도 있다. 물론 '한별'과 귀여운 침략자 '케로로'의 근무 태만이 지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 자체부터 재미있는 것이 사실이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 어린이들은 그래서 열광하는 것이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 그래서 한편으로는 위험하다

만일 어른들이 <개구리 중사 케로로>를 본다면, '케로로'를 포함한 그의 소대원들의 머리에 쓰인 모자부터 주목할 것이다. 그렇다. 과거 구 일본군의 모자다. 게다가 제국 해군기를 향해 구 일본군 특유의 거수경례를 하는 것도 꽤 불편하다.

무엇보다 불편한 것은 구 일본군의 복장을 착용한 '케로로'가 근무태만 속에서 지구인과 우정을 나눈다는 대목이다. 이명석씨는 그런 장면을 통해 "군국주의 부활의 음모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지만, 구 일본군의 만행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런 장면들이 '왜곡'으로 보일 수도 있다. 시각에 따라서는 심각한 왜곡이다.

게다가 단행본 만화는 늘 첫머리에 '홍미나'나 '한별'의 시원한(?) 비키니가 좋은 재질의 종이에 컬러판으로 비치고 있다. 만화 속에서도 속옷 노출이나 비키니 착용 장면들이 꽤 많이 등장한다. 어린이들이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무엇보다 일본 만화 특유의 일본적인 색채가 다른 만화 못지않다. 안 그래도 일본 만화가 범람해 한복보다는 기모노가 더 친숙할지도 모르는 우리 아이들이 이 만화를 통해 우리 문화에 익숙해지기에 앞서 그들의 문화를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물론 이것은 <개구리 중사 케로로>만의 문제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만화라는 장르의 문화적 파급 효과를 깨닫지 못하는 어른들의 무지에서 비롯한 문제다. 이래도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고 고민하지 않을텐가?

만화를 통해 '일본'을 강조하는 일본 만화들

내가 자주 언급하는 일본 만화의 특성은 '일본적인 것'을 재미있게 각색해 많은 사람이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일본군 모자는 많은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신선조 무사들을 기묘한 기상현상 속에서 현대로 이끌어 '엇박자 개그' 스타일의 재미를 이끄는 만화 <질풍신뢰>나 미야모토 무사시를 등장인물로 설정해 무게감 있게 되살린 <베가본드> 등만 봐도 알 수 있다. <월명성희 굿바이 신선조>나 <바람의 검심>이 이끌어낸 힘도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의 청소년들은 신선조 무사들을 여전히 열성적으로 받아들이며, '오타쿠'로 뭉치고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일본 만화를 봐도 알 수 있다. 주제와는 상관없이 기모노 의상이 각종 축제를 통해 자주 등장하며, 온천욕을 즐기는 장면은 일본 만화에서 가장 흔히 등장하는 장면이 됐다. 만화의 문화적 파급 효과를 일찍부터 깨달았던 것이다.

한때는 우리에게도 <영심이>나 <두치와 뿌꾸>처럼 우리의 소소한 일상사를 재미있게 살려낸 성장 만화가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지만, 방송사의 만화에 대한 안이한 인식과 어린이 대상 만화의 제작 중단 속에서 우리의 만화는 잊혀지고 있다. <영심이>나 <두치와 뿌꾸>처럼 잘 만들어진 만화는 방송에서 재탕을 넘어 삼탕의 길을 걷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우리는 왜 <개구리 중사 케로로>처럼 어린이들이 열광할 만한 만화를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만화 그 자체를 '해로운 것'으로 인식하며, 보지 말 것만을 강권하는 어른들의 꽉 막힌 감성이 그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어른들은 이제 만화를 보지 말 것을 강권하기보다, 좋은 만화에 관심을 표하며, 좋은 만화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구리 중사 케로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인의 마음만큼은 확실하게 침략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와 한겨레신문의 제 블로그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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