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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화스토리 작가이다. 90년 <들개이빨>(허영만 그림)을 시작으로 50여 편의 만화스토리를 집필하였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는 한국만화의 황금기였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허영만의 <오 한강> <카멜레온의 시>, 박봉성의 <신의 아들>, 이재학의 <검신검귀>, 고행석의 <구영탄 시리즈> 등이 쏟아져 나왔다. 주택가 골목길마다 만화방이 들어서 전국적으로 2만여 개가 넘는 만화방이 있었고, 권당 2~5만부가 유통되던 시기였다.

▲ <공포의 외인구단>
ⓒ 고려원미디어
경기가 좋다보니 만화제작은 선불금이 관행이었다. 출판사(자본주)들은 만화가에게 수억의 선불금을 지급했다. 덕분에 스토리작가나 데생맨, 배경맨들도 만화가에게 선불을 요구할 수 있었다. 서점 판매가 아니라 총판을 통해 만화방으로 배달하는 유통구조였고 서점 마진분이 작가에게 지급되었기에 인세는 책값의 30%나 되었다. 아무튼 좋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잘 나가던 한국만화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만화판 사람들의 표현대로 시장 자체가 없어졌다. 98년 정부가 일본만화의 수입을 허용한 순간 일어난 일이다.

출판사(자본주)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한국만화는 제작비를 선불로 줘야 하며 30%나 되는 인세를 줘야 한다. 그러다 종종 선불금을 떼이거나 손해를 보는 일도 발생한다. 그런데 일본만화는 불과 5%의 인세를, 그것도 '후불'로 주면 그만이었다. 더구나 일본만화에 비하면 한국만화는 경쟁력도 떨어진다. 100여 개의 만화잡지가 있고 5~6백만 부가 판매되는 만화잡지가 여러 개 존재하는 '망가천국'과는 경쟁 자체가 되지 않았다. 만화 원고료만 해도 수십 배나 차이가 난다. 그러니 출판사(자본주)들이 투자 위험 없는 쉬운 돈벌이를 두고 한국만화에 투자하려 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출판사(자본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본만화 수입에 매달렸다. 곧 일본만화의 붐이 일어났다. 골목마다 들어섰던 만화방이 사라졌고 학교 앞 문방구엔 2000~3000원의 덤핑 가격에 일본만화가 깔렸다. <슬램덩크> <드래곤볼> 등은 수백만부가 팔렸고, 사라진 만화방을 대신하여 등장한 대여점의 책장은 일본만화로 가득 찼다. 일본만화를 수입한 업자들은 돈 방석 위에 앉았다. 이후 그들은 일본만화 수입에 매달렸고 일본 출판사와 수입계약을 맺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만화시장이 개방되고 채 1년도 안 되어 일어난 현상이다.

그러자 좀 우스운 일이 일어났다. 일본 만화 출판사들이 한국만화 살리기 운동에 나선 것이다. 한국만화 시장이 지나치게 축소되면 비난 여론이 일어날 것이고, 자칫 일본만화 개방 정책에 변화가 오지나 않을까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일본만화를 수입할 수 있는 자들의 자격 조건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만화잡지를 일정부수 이상 발행하는 출판사만이 일본만화를 수입할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 <슬램덩크>
ⓒ 대원
99년경, 한국에 책 제작비용도 안 되는 1천 원짜리 만화잡지가 우르르 등장했던 것은 이런 까닭이다. 어쨌든 이 덕분에 대본소 만화시절 유명 만화가에게 고용되어 남의 그림을 그려주던 만화가들이 작가로 데뷔할 수 있었는데, 고료는 정상 고료의 3분의1도 안 되는 헐값이었다. 그런데 한국만화가 무너지는 것에 대해 한국정부가 전혀 개의치 않자, 일본 만화 출판사들이 시름을 덜었는지 그 자격 조건을 내세우지 않게 됐고 천 원짜리 잡지들도 곧 사라졌다.

지금 한국에선 대부분의 만화잡지는 사라졌고, 과거 20~30만부씩 발행되던 어린이 만화잡지들도 겨우 2~3만부가 팔린다고 한다. 마니아들을 대상으로 한 몇몇 순정만화 잡지와 스포츠신문 만화 시장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만화 시장이 무너진 것이 일본만화 개방의 탓만은 아니다. 몇몇 유명 만화가들이 다른 만화가들을 수십 명씩 고용하여 대본소 만화를 대량생산하는 공장시스템이 오래도록 계속되었고 스토리작가의 권리는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때문에 다양한 캐릭터를 가진 신예만화가들이 등장하지 못했고 질 높은 스토리도 나오지 않았기에 만화시장이 점점 줄어들었던 것이다.

만화계 일각에선 이런 공장시스템이 무너져야 한국만화가 산다며 일본만화 수입 개방을 찬성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한국만화 시장이 이토록 무참하게 무너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 <왕의 남자>
ⓒ 이글픽처스
스크린쿼터가 없다면 곧 한국영화도 무너질 것이다. 한국영화가 이만큼 발전한 것은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었기에 가능했다. 스크린쿼터 감시연대가 활동을 시작한 뒤, 극장주들은 스크린쿼터 일수를 지켜야만 했다.

극장주들은 한국영화를 틀어야만 했고, 극장 수입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관객이 찾는 한국영화를 만들어야 했다. 곧 한국영화에 대한 대자본의 투자가 이루어졌고 역량 있는 감독과 배우들이 등장하고 관객들이 호응하면서 한국영화의 붐이 일어난 것이다(그 전에는 자본주들이 한국영화에 투자했던 이유는 할리우드 영화를 수입하기 위한 자격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였다).

만일 스크린쿼터가 없어진다면 만화계에서 일어난 일이 영화에서 똑같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간단한 이치이다. 문화산업의 자본은 문화의 논리가 아닌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에 투자했던 삼성, 대우, 엘지 등의 대기업들이 몇몇 작품에서 손해를 보자 주저 없이 빠져나간 것이 자본의 논리다.

한국영화가 아무리 잘 나가도 아직은 대박 나는 영화보다 손해 보는 영화가 더 많다. '리스크'가 높은 것은 문화 산업의 본질적 속성이기도 하다. 극장주들은 리스크 없이 안정적으로 수익을 보장해주는 할리우드 영화를 상영할 수 있다면 굳이 리스크가 높은 한국영화에 투자를 할 이유가 없어진다.

또 할리우드 대자본이 마음만 먹으면 유통구조를 통해 얼마든지 한국 영화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 블록버스터 배급을 무기로 극장주가 한국영화 상영을 못 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도 있고, 더는 한국영화에 투자할 필요를 못 느끼도록 수입 가격 등에서 유리한 조건을 제시할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은 당장 경쟁력이 있으므로 만화처럼 한순간에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영화에 대한 투자는 줄어들 것이고, 한국 영화의 편수도 줄어들고 시나브로 관객들도 떨어져 나갈 것이다.

미국이 스크린쿼터 문제를 이토록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은 단지 돈의 논리만이 아니다. 문화는 의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라는 당의정 속에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의식을 침입하는 미국의 논리가 배어 있다.

사르트르가 "인류가 역사를 통해 쌓아놓은 문명적 가치와 도덕을 한순간에 야만으로 돌려버린 전쟁"이라고 말했던, 300만의 베트남 민중이 희생되었던 베트남 전쟁의 만행을 미화하고 포장한 <람보>를 보며 환호했던 80년대 초의 암울했던 시기로 되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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