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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3일 개시된 한·미 FTA 협상을 둘러싸고 시민사회의 반대 여론이 비등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미 FTA의 실체적 득실논쟁은 정작 정부의 홍보논리에 묻혀 제대로 파헤쳐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권경애(변호사)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통상센터 팀장이 한·미 FTA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기고문을 보내와 전문을 게재합니다. 한·미 FTA의 올바른 이해에 도움이 되길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왼쪽)과 롭 포트먼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2일 워싱턴의 국회의사당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공식 협상 개시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정부는 지난 3일 한미 FTA협상 개시를 선언하였다. 정부는 한미 FTA체결의 전제조건으로 쇠고기 수입재개와 스크린쿼터 축소를 요구하였고, 우리 정부는 이 둘을 협상 개시의 진상물로 바쳤다. 한미 FTA는 2004년만 해도 정부의 FTA추진 계획상 중장기적 과제였으나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대사가 자신의 임기 내에 체결하겠다고 선언한 후에 급물살을 타고 있다.

미국의 통상협정 체결 일정상 미 의회의 검토기간 90일을 경과한 후인 5월에야 본협상이 시작된다. 미 행정부 무역촉진권한법상 2007년 6월까지 의회 비준을 받아야 하므로 내년 3월에는 협상을 타결하여야 한다. 실질적인 협상기간은 11개월 정도이다. 한-칠레 FTA도 협상개시부터 협상완료까지 3년이 소요되었다. 한-싱가폴 FTA도 협상 전 약 1년 동안 산·관·학 공동연구회가 구성되어 제반 문제를 검토하는 과정을 거쳤다. 쌀 하나의 품목만 협상하는데도 1년이 걸렸다.

미국은 GDP 10조 달러 이상으로 우리나라의 21배 규모 거대 경제대국이다. 사전에 공동연구가 진행된 바도 없고 협상일정도 너무 촉박하며, 국민이 협상개시를 합의한 바도 없이 졸속으로 진행되는 협상이다.

미국의 일정에 맞추어 졸속으로 진행되는 협상

정부는 FTA는 세계적 추세인데 이에 대응하지 못하면 해외시장을 잃게 되고 국가경제가 침체할 것이라고 한다.

세계 무역협정은 FTA가 대세를 이룬다는 말은 맞다. 세계의 지역자유무역협정은 186개. 세계교역의 50%가 지역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다자간 통상질서인 WTO가 1995년 출범한 후 협상에 난항을 거듭하자 부시 정권은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그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미국 외의 나라, 특히 미국에 정치·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개발도상국 등은 미국과의 양자간 협상에서는 다자간 협상을 통해 그룹별 대응을 하여 미국의 압력과 요구를 완화시킬 수 있었던 그나마의 이득조차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WTO의 틀 속에 평등한 무역질서를 형성하자는 주장을 포기해서는 안 되지만, 적절한 현실대응 전략 없이는 공허한 외침이 될 수 있다. 지금으로서 최선의 방법은 정확한 FTA로드맵 설정이다. 어쩔 수 없이 FTA협정을 체결하는 대상국을 늘려야 한다면 우리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국가와 우선적으로 체결하여 국가 경제 체질을 강화시킨 후에야 강대국과의 무역경기장에 출장해야 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도 선진국 미국, 캐나다와 개도국 멕시코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10년을 분석하면서, 거대경제권과의 FTA는 선진국의 거시경제적 변동에 상당한 취약성을 보일 것이므로 FTA다변화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연구자료(2004년 11월)에 의하더라도, 기술지수가 94.9인 미국과의 FTA는 4.73%의 사회후생 증대효과가 있으나 산업생산효과는 오히려 -27.37%라고 보고한다. 반면에 중국의 기술지수는 51.7로 사회후생효과와 산업생산효과가 각각 22. 99%, 27.78% 증대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우리나라보다 기술력이 낮은 나라와 우선적으로 FTA를 체결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한·중·일 FTA, 한·인도 FTA, 한·아세안 FTA 등 동남아 국가와의 FTA를 우선적으로 체결하여 동아시아의 경제협력체제를 구축한 후에 미국과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 유리한 것이다.

정부가 한·미 FTA를 서두르는 것은 미국의 압력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경제협력 관계가 강해지고 중국과 인도의 경제성장으로 동아시아의 정치·경제적 종주국의 위치에 위협을 느낀 미국으로서는 한국과의 정치·경제적 동맹관계를 강화하여 동아시아의 전초기지 역할을 담당하도록 할 필요가 절실하다.

미국은 한국에 정치군사적으로는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도록 하고 경제적으로는 FTA 협상을 진행하도록 압력을 가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한국 내 반미감정을 무마하고 협상을 무사히 완료하여야 한다는 미국을 안심시키려고 마치 우리가 먼저 협상개시를 원한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50억 달러 대미 흑자 규모 감소 정부조차도 인정

▲ 한-미 FTA 개시 선언을 하루 앞둔 2일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외교통상부 주최로 열린 '한-미 FTA 공청회'가 농민·사회단체 회원들의 저지로 무산됐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주한 미상공회의소 2005 정책보고서에는 미국의 국제무역위원회나 국제경제연구원의 연구에 의하면 한·미 FTA로 미국의 대한국 수출은 43~54% 증가하는 반면 한국의 대미 수출은 21~23% 증가한다고 전한다. 우리의 수출량 증가폭의 2배 이상 미국의 수출량이 증가하여 FTA 발효 후 4~5년 후에는 현재 한국의 대미무역흑자 규모는 100억 달러에서 적자로 돌아설 것이다.

미국 제조업의 수입액을 고려한 평균관세율이 1.5%, 우리나라는 7.2%여서 관세철폐에 따른 제조업의 대미 수출증대 효과는 미미하다. 우리나라가 높은 관세율을 유지하고 있는 농수축산업은 FTA로 2조원 가량의 손해가 예상된다. 쌀을 포함시키면 그 손해 예상규모는 8조원에 이른다. 경쟁력이 취약한 서비스업 개방의 피해는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다. IMF에 준하는 구조조정으로 우리 사회는 몸살을 앓을 것이다.

정부도 한·미 FTA협상체결로 50억 달러 정도의 흑자 규모 감소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대(對)세계수출은 증가할 것이고 한·미 FTA로 미국과의 경제동맹관계가 공고해지면 동북아의 허브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정부는 우리나라 3대 교역상대국이고 우리나라 무역량의 17~19%를 차지하는 경제대국 미국과는 수출 적자를 기록하지만 전체 수출은 증가할 것이라는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 더 이상한 일은 정부의 장밋빛 전망의 근거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손해의 산정은 구체적인 수치에 근거하나 이익에 대한 전망은 그저 추상적인 가정을 근거로 한다.

정부가 제시하는 논리는 궁색하기 그지없다. 외국인 직접투자가 증가하면 선진기술을 배울 기회가 증가하고 고용과 생산이 증가한다, 장기적으로는 서비스업에서 경쟁력 강화의 효과가 생길 것이다, 미국의 경제동맹은 한국을 동북아 허브로 성장시킬 것이다, 중국 일본 등 거대경제권과의 FTA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다, 그래서 전세계무역에서는 결과적으로 이득을 볼 것이라는 것이다.

대미 FTA 체결한 멕시코에서 고용증대는 없었다

▲ 한·미 FTA 협상이 개시되자 미국 내 재계 인사들이 일제히 환호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일 미국 무역대표부 홈페이지에 게재된 미 재계인사의 한·미 FTA 지지 발언 요약문. 이 가운데에는 우리 정부가 협상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농산물 부문 개방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하는 발언도 포함돼 있다.
ⓒ www.ustr.gov
미국의 FTA는 투자에 따른 일체의 이행의무부과를 금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외국인투자기업에게 기술이전, 고용창출, 고용승계, 중간재의 자국산 사용, 환경보호 등의 이행의무를 부과할 수 없다.

NAFTA의 예에서 볼 수도 있듯 자유무역지대 역내국 간의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증가할 가능성도 희박하거나 증가효과가 긍정적이라고 예상하기 어렵다. 캐나다와 미국 간의 외국인직접투자는 오히려 감소했다. FTA로 관세 등 무역장벽을 우회하기 위한 직접투자의 필요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멕시코는 무역량과 외국인직접투자가 증가하였으나 산업구조는 왜곡되고 특별한 고용증대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수출산업과 농업의 고용희비현상이 보일 뿐이다. 직접투자기업의 환경유해보조금지급금지 등의 의무부과도 없어서 멕시코에는 환경유해산업의 집합장이 되었다.

정부는 역외국 일본이 대미수출을 겨냥하여 한국 내 직접투자가 확대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이도 거짓이다. NAFTA 역내국인 멕시코에 비교해 볼 때 물류비용이나 임금수준 등 우리나라의 투자유인효과가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90%가 중소기업에 고용되어 있다. 한·미 FTA는 IMF과정에서처럼 특히 서비스업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예상되고 중소기업의 도산을 초래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는 이미 IMF를 거치면서 대기업의 수출이익 증대가 노동자의 소득증대와 중소기업의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는 선순환구조를 상실하였다. 한미 FTA는 이 구조적 왜곡을 심화시킬 것이다. 그러면 비정규직은 증가하고 양극화는 심화되고 우리나라 경제는 '고용 없는 경제성장'으로 뿌리내릴 것이다.

미국과 같은 경제대국과 경제권이 통합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재정, 통화정책, 무역정책 등 경제정책 전반의 통합도 수반한다. 말이 좋아 정책공조이지 경제는 미국의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손아귀에 완전히 넘어간다는 의미이다. 아무리 우리에게 한·중·일 FTA, 한·인도 FTA가 필요하더라도 미국의 정치군사적, 경제적 판단과 다르면 체결할 수 없다. 거대경제권과의 FTA 체결에 결코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없다.

미국이 동북아에서 사업할 수 있는 거점을 제공하고 그 이익을 향유하겠다는 것도 어리석은 환상이다. 미국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겠는가. 미국은 기업소득의 100% 본국 송금을 조건으로 내걸 것이다. 또한 다국적 기업의 노하우가 축적된 그들은 이번 론스타의 외한은행 매각 매입과정에서처럼 조세협약 등 온갖 법적 제도적 방법을 활용하여 기업활동이익을 한국 내로 순환시키지 않을 것이다.

통상협상 절차의 실질적 민주화가 필요하다

실정이 이러한 바에야 국민이 나설 수밖에 없다. 국회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상시적인 보고를 받아야 하고 시민사회단체는 이해당사자들이 협상단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강력히 요구하여야 한다.

지난 7년간의 한미투자협정이 스크린쿼터를 지키고자 하는 영화인들의 고단한 싸움으로 좌초된 사례가 있다. (그 때문에 미국은 한·미 FTA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스크린쿼터 문제의 해결을 주장하였지만) 문화산업인들의 줄기찬 노력이 미국의 의도를 무산시켰다. 우리 영화인들의 이런 역량은 세계를 놀라게 했고 우리나라 문화인들은 세계문화다양성협약의 산파역할을 하였다.

스크린쿼터축소 과정에서 국회 문화관광위에 사전 협의도 통보도 없었던 저 오만방자한 통상관료들의 밀실외교는 시민사회의 역량에 의해서만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의 통상과정상의 절차적 실질적 민주화를 이루려는 노력은 평등한 세계무역질서를 창조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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