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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우석 교수팀 연구원이 실험하는 장면.
ⓒ 연합뉴스 전수영
오 마이 난자!

우리나라의 TV를 통해 여성의 생리대 광고를 시작한 것은 1995년부터다. 여성의 몸에서 매월 정기적인 생리적 출혈이 있는 것을 ‘재수 없다’, ‘불결하다’라고 생각하는 시청자들 때문에 방송광고심의위원회에서 금지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한국에 진출한 외국 생리대회사의 압력을 계기로 생리대 광고를 시작하게 되었다는데, 대개 여성의 사회정치적 권한이 낮은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남성의 성적 대상물, 눈요깃감은 될지언정 그가 가진 복잡하고 오묘한 생명현상, 생리현상은 천대를 받기 일쑤다.

지난 2003년 11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총회장 임태득 목사는 총신대 채플 시간에 “여자가 목사 안수 받는 것은 턱도 없다! 어디 기저귀 찬 여자가 감히 강단에 올라와!”라고 말해서 화제가 되었다. 그는 자기 발언이 문제가 되자 닷새 후에 “이 사건을 밖으로 알리기보다는 내부에서 기도하자”는 내용의 메일을 보냄으로써 개신교 여성들의 분노를 촉발했다.

월경하는 여성을 부정하다고 여겼던 구약의 레위기를 신봉해서였을까. 그는 ‘월경중인 여성은 더럽다. 모든 여자는 더럽다. 따라서 여자는 목사는 물론 중요한 역할은 절대로 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2005년 3월 호주제가 폐지되기 전까지 호주제폐지에 가장 극렬하게 반대했던 정통가족수호연합회의 회장 백모씨는 라디오 토론에 나와 아기의 씨앗은 남성에게서만 나오거나 남성의 역할이 훨씬 크다고 우겼다. 인기패널 모씨는 TV토론에 나와 아기의 씨앗은 남자에게서만 생산되는 것이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여성의 생명현상

그러나 알고 보면 여성은 생식기관(새 생명 생산 공장)을 통해 종의 재창조 작업을 하며 신의 역할을 대행하고 있다. 흔히 가임여성의 중요한 생리현상으로 월경을 꼽지만 더 중요한 활동은 수정란의 착상을 돕기 위해 정기적으로 두터워지는 자궁벽을 매달 쓰레기로 처리하여 내 보내는 월경이 아니라 바로 난자를 성숙시키고 배출시키는 난소의 주기적 작용이라 할 것이다.

남성의 정소와 여성의 난소는 모두 반쪽짜리 씨앗을 생산해내는 씨앗공장이며 남성의 정소가 밖에 설치되어있는 것과는 달리 여성의 난소는 몸 깊숙이, 자궁양쪽에 아주 안전하게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한쪽의 난소에서는 두 달에 걸쳐 공들여 한 개의 난자를 성숙시킨 뒤 좌우 교대로 한 달에 하나씩을 배출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국소적인 난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뇌의 시상하부와 뇌하수체 전엽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며 난포자극 호르몬, 황체형성 호르몬을 만들어내면서 시계의 톱니바퀴 맞물려 돌아가듯 정교한 조절작용에 의해 몸 전체가 관련하여 일어나는 일이다.

성씨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가문의 대잇기에 집착했던 우리의 전통문화는 사실 알고 보면 남자에게만 씨앗이 있어 한줄기 대잇기가 가능하다고 보는, 난자의 존재를 부정했기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몸 깊은 곳에서 반쪽의 씨앗을 생산해내는 여성의 오묘한 생리현상, 생명현상은 21세기가 되도록 한국 땅에서는 소중하게 여겨지지 못했다.

외국의 과학자들은 배아줄기세포를 성공시키는 나라는 여성인권 후진국일 것이라고 오래전부터 예견해왔다고 한다. 실험에는 엄청난 양의 난자가 필요하게 될 터인데, 앞서가는 나라에서는 ‘건강한 생명을 가진 여성’으로부터 난자를 채취하느라 ‘여성의 건강’을 해치게 되는 일을 쉽게 허용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 있었던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의 발표로 황우석 교수 연구팀에 제공되었던 난자는 모두 119명에게서 138회에 걸쳐 채취된 2221개로 드러났다. 그러나 줄기세포팀장이었던 류영준 연구원이 2004년 ‘치료 목적으로 적출된 인간 난소로부터 회수한 미성숙 난자의 인공 수정 및 체세포 핵이식에 활용’이라는 석사 논문을 썼다는 것을 보면 난자 공장인 난소를 적출한 것을 논문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이용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한 번에 난자 30개를 채취하다니...

1년에 4회를 제공한 여성도 있고 부작용으로 입원했던 여성에게 다시 채취하고 그 후유증으로 또 입원을 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138회에 걸쳐 2221개를 얻었다면 평균 1회당 16개 이상을 채취한 셈인데 한 번에 30개를 채취당한 여성의 이야기도 주변에서 들리는 것을 보면 이들이 난자채취에 얼마나 집요하게 매달렸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79명중 14명이 과배란 후유증을 앓았다고 하는데 시술을 받은 여성의 18%에게서 후유증이 나타났다면 이는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의 생명이야기>(효형출판)에서 황우석 박사는 그의 실험실 연구원들이 하루에 다루는 난자의 수가 대략 1000개라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실험실이 얼마나 바쁘게 돌아가는지, 연구원들이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를 독자에게 전하기 위해서 쓴 것이겠지만, 하루에 1000개의 난자를 다룬다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공개한 것을 보면 당시만 해도 황우석 교수는 여성의 몸에서 난자를 채취한다는 사실 자체에 어떠한 도덕적인 부담도 갖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책에는 송아지를 낳은 소가 배출된 태반을 먹으려는 것을 황우석 교수가 막자 어머니가 만류하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황우석 교수는 소가 초식동물이기 때문에 태반(동물성 먹이)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교과서적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 글을 보면서 황우석 교수의 '자연(自然)'에 대한 몰이해에 잠깐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본능은 개체의 생존, 혹은 개체의 재생산과 보존하는 일을 방해하는 일이 없다. 자연은 스스로(自) 그러한(然) 것이니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다니?

누구나 애정을 가지고 자연을 들여다보면 ‘아하 그렇구나. 그래서 그런 거로구나’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 때가 한 두 번이 아닐 것이다. 나는 한의사가 되고 난 후에 인간의 몸을 포함하여 생명을 가진 것들의 아름다움에 더더욱 놀라게 되었다. 세상에... 우주의 마음 씀씀이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한 치의 실수가 없다.

생장염장 무위이화(生長斂藏 無爲而化)라 하였으니 동식물의 1년 삶의 작은 사이클이나, 탄생부터 사망까지 전체 삶의 커다란 사이클을 관통하는 이치인 나고, 자라고, 거두어들이고, 쉬는 것이 애써 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리 되는 것은 우주가 보이지 않게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어린이와 젊은이가 아름다운 것처럼 늙어 돌아가는 것도 우주가 공을 들이는 아름다움이다. 자연에 대한 몰이해에서 출발하거나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면서 건강을 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난치병환자를 고칠 수 있다는 희망 외에도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세포치료 응용기술을 실용화하면 국내 수입이 연간 6천억 원에, 40억 달러 이상의 수입대체효과가 있을 것이라느니 1억2천만 명의 환자가 치료대상이 되어 연간 3000억 달러 규모로 예상되는 줄기세포 치료시장이 형성되느니, 엄청난 의료산업을 창출할 것이니 했던 ‘김칫국’ 때문에도 더 큰 실망을 안겨준 듯 하다. 그러나 그들이 6천억 원, 40억 달러, 3천억 달러를 이야기하며 희망에 부풀어 있을 때, 여성의 난소에 10일간 과배란촉진제를 놓고 마취를 한 뒤 난자를 20-30개씩 채취함으로써 여성의 몸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나 두었는지 의문스럽다.

신이 있다면 한국민들이 애처롭게 보였을 것

세계줄기세포 허브에 등록했다는 2만여 명의 환자들은 이미 사과메일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는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나는 세계줄기세포 허브가 한국 땅에서 실패한 것이 고맙기만 하다. 세계줄기세포 허브가 한국 땅에 존재하는 한 그 수많은 난자의 공급처는 십중팔구 한국의 여성이 될 것이었다. 아니, 한국의 여성이 아니더라도 여성의 몸, 인간의 몸이 의료산업의 도구, 국가적 돈벌이의 도구가 된다는 것은 찬성할 수 없다.

다행히 골수를 소량 채취하여 성체줄기세포를 만들면 이미 분화가 결정된 세포이어서 악성물질로 발전될 위험도 없다고 하니 그런 식으로라도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성공도 세계에 시장이 얼마만큼의 규모인 ‘의료산업’인지, 얼마나 돈벌이가 잘 되는 국가적 사업인지 떠벌이지 말고 조용히, 저렴한 가격으로 환자들에게 실용화될 수 있도록 집중해 주기를 희망한다.

하늘에 신이 있다면 내려다보고 우주의 뜻, 신의 뜻을 집단적으로 팽개쳐버렸던 한국민이 애처롭게 보였을 것이다. 황우석교수의 실험이 사기극으로 밝혀진 지금,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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