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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광렬 박사가 2002년 1월 10일 차병원 웹사이트에 올린 2001년 논문의 보도자료.
ⓒ 차병원 홈페이지
차광렬 차병원그룹 회장이 2001년 미국의 한 의학전문지에 발표한 논문을 놓고 미국 과학계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브루스 플램 박사(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어바인캠퍼스 임상교수)는 차 회장의 논문을 황우석 교수 사건에 빗대서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24일 <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에 기고했다.

문제가 되는 논문은 차 회장이 미국의 로저리오 로보 박사(미국 컬럼비아대), 다니엘 워스 변호사와 공동으로 의학전문지 <저널 오브 리프로덕티브 메디신 (Journal of Reproductive Medicine, 이하 JRM)> 2001년 9월호에 발표한 '기도가 체외수정 및 자궁내 배아이식술(IVF-ET)의 성공에 영향을 주는가? 무작위적인 임상시험 사례'.

논문에 따르면, 차 회장은 1998년 12월부터 1999년 3월까지 서울 강남차병원에서 불임치료를 받는 일부 여성환자들의 사진을 미국과 캐나다, 호주의 각기 다른 개신교 종파 신자들을 이끌고 있는 다니엘 워스 변호사(논문 제2저자)에게 보내주고 이들로 하여금 사진속 인물들이 임신에 성공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게 했다.

3개국의 '기도 그룹'과 차병원 연구팀은 상대방 중 누가 기도를 하고 임신했는지 여부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각각 작업을 수행했고, 차 회장과 워스는 99년 봄 뉴욕 어퍼웨스트사이드의 한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만나 각자의 자료를 비교했다고 한다.

차 회장은 기도를 받은 불임환자 그룹의 임신성공률(88명 중 44명, 50%)이 그렇지 않은 그룹의 그것(81명 중 21명, 26%)보다 2배 가량 높은 결과가 나오자 이 사실을 컬럼비아대 의대 산부인과 과장으로 있던 로저리오 로보 박사에게 알렸다.

로보 박사의 검토를 거친 논문은 2년 뒤 JRM에 발표됐고, 이 논문은 곧바로 미국 의학계와 종교계의 관심을 끌었다. 컬럼비아대가 2001년 9월 28일, JRM 논문의 보도자료를 발표하자 논문은 같은해 10월 2일자 <뉴욕타임스>에도 인용 보도됐다.

그해 10월 3일 <연합뉴스>와 이튿날 <조선일보>, <동아일보>, <국민일보>도 <뉴욕타임스> 기사를 앞다투어 소개했다. JRM 논문은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2001년 올해의 아이디어'에 뽑히기도 했다. 이를 두고 2001년 9·11 테러로 정신적 공황에 빠진 미국인들이 '기도의 힘'을 입증한 논문에 그만큼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는 분석도 나왔다.

'신앙의 힘' 과학적 입증 방법 없으니...

JRM 논문에는 "이번 조사결과는 아직 예비자료 정도로 해석해야 하고, 향후 연구가 이번 결과를 입증 못할 수 있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그러나 차 회장이 개신교 계열 월간지 <빛과 소금> 2002년 2월호에 쓴 글을 보면, 그 자신도 '기도의 힘'이 통계적으로 입증된 것에 크게 고무된 듯하다.

"연구진은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더욱 구체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일련의 추가 연구를 시행할 예정이다. 예를 들어 환자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겠다는 것을 알리고 동일한 연구를 수행하거나, 환자에게 기도하는 일련의 행위에 동참하는 등의 연구를 추가로 진행할 예정이다."

차 회장은 "대체 의학의 한 분야인 기도가 시험관 아기 시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밝힌 최초의 연구 결과"라며 "기도를 보조 수단으로 의술적인 부분에 접목시켰다는 점에서 의학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신이 인간과 자연의 일상사에 간섭할 수 있다"는 발상에 기댄 논문은 과학계의 비난에 직면했다. 다른 학자가 "같은 연구를 했는데 임신성공률이 오히려 떨어졌다"는 논문을 발표한다고 해도 차 회장의 논문에는 이를 반박할 논거가 없다. 설령 타인의 기도를 받은 불임 환자들이 임신의 기적을 입었다고 해도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 논문은 처음부터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논문의 학문적 가치도 논란거리가 되지만, 논문이 나온 뒤 공동저자들이 보여준 행보에도 미심쩍은 대목이 많다.

미 보건복지부 산하 임상연구안전국(OHRP)은 JRM 논문에 과학계의 비난이 쏟아지자 2001년 11월 논문의 윤리규정 위반 여부를 조사했다. 같은 해 12월 OHRP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로보 박사가 공동저자로 기재된 논문은 컬럼비아대 부속병원 기관윤리심사위원회(IRB)를 통과하지 못했다.

로보 박사는 컬럼비아대학에 "연구가 끝난 지 6∼12개월 후에야 차 회장으로부터 연구에 대한 얘기를 전해 듣고, 논문 작성과 발표 등을 도와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는 OHRP가 조사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미국 ABC방송의 토크쇼 <굿모닝 아메리카> 등에 '대표저자(leading author)' 자격으로 출연해 논문을 적극 홍보했다.

이후 미 보건복지부는 정부 예산이 들어간 연구가 아니라는 이유로 조사를 종결했고, 컬럼비아대학도 웹사이트에 올려진 논문의 보도자료를 삭제했다.

논문 제2저자 상습 사기죄로 2004년 11월 수감

▲ 차광렬 차병원그룹 회장이 미국의 로저리오 로보 박사(미국 컬럼비아대), 다니엘 워스 변호사와 공동으로 의학전문지 <저널 오브 리프로덕티브 메디신 (Journal of Reproductive Medicine, 이하 JRM)> 2001년 9월호에 발표한 논문.
그러나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차 회장을 위해 '기도 그룹'을 조직한 워스가 이듬해 10월 미 연방대배심에 사기죄로 기소되고, 2004년 5월에는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그는 같은 해 11월 23일 상습적으로 사기를 벌인 죄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연방교도소에 수감됐다.

워스는 초능력을 연구하는 초심리학(超心理學) 석사학위와 변호사 자격증을 소지했고, '힐링 사이언스 리서치 인터내셔널'이라는 단체의 지도자였다. 그러나 이 단체를 이끈 워스가 사기꾼으로 밝혀진 상황에서 그가 차 회장의 논문 연구를 위해 충실한 자료를 제공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워스의 과거 행적이 알려지며 논란이 다시 가열되자 로브 박사도 2004년 JRM에 자신의 이름을 논문에서 빼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JRM은 로브 박사의 요구를 수용할 뜻을 비쳤지만, JRM 홈페이지에 있는 논문(www.reproductivemedicine.com/Features/2001/2001Sep.
htm)에는 그의 이름이 아직도 남아 있다.

로브 박사가 JRM 논문의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린 배경에도 뒷말이 무성하다. 차 회장이 1999년 3월 '차-컬럼비아 불임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차병원과 컬럼비아대학이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로브 박사가 "논문을 같이 발표하자"는 차 회장의 요청을 쉽사리 뿌리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JRM의 입장에서도 미국의 저명한 산부인과 의사이자 JRM의 편집자문위원으로 몸담고 있는 로브 박사의 이름이 포함된 논문을 무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논문의 공동저자 3명 중 2명이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제1저자인 차 회장은 "논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차 회장은 2004년 11월 JRM에 편지를 보내 "워스가 데이터를 변형·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푼의 연구비도 받지 않은 워스가 인위적인 결과가 나오도록 연구에 개입할 이유가 없다는 게 차병원의 설명이다.

<오마이뉴스>는 차 회장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고자 했으나, 차병원측은 24일 "차 회장이 미국에 머물고 있다"고 답변해왔다. 대신 JRM 논문이 발표될 때 컬럼비아대에서 줄기세포 연구를 하고 있던 정형민 차병원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 소장이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정 소장은 "과학자들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논문에 많이 놀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 내부에도 논쟁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 소장은 "10∼20명이 아니라 수백 명을 상대로 실시한 연구였고, 통계 처리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차 회장이 조사결과를 있는 그대로 발표하기로 결정했다"며 "차병원이 지금껏 수백 편의 논문을 발표했지만 논문이 취소된 전례는 없다"고 말했다.

황우석 교수와 차 회장의 공통점은?

하지만 브루스 플램 박사는 차 회장의 논문과 황우석 사건 사이에 다음과 같이 몇 가지 두드러진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1. 두 개의 연구가 모두 한국에서 시행됐다.
2. 선임저자들은 미국의 권위 있는 대학교수였다.
3. 논문의 진실성이 의심받자 선임 저자들이 실제로는 논문 작성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4. 미국측 저자는 결함이 있는 연구에 신뢰성을 부여하고 미국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 동원된 것으로 보인다.
5. 두 연구 모두 인간 배아와 관련되어 있고, 중요한 과학적 성과를 입증하려고 했다.


플램 박사는 "<사이언스>가 논문을 취소하는 등 의혹에 신속히 대응한 반면, JRM은 의혹에 답변도 하지않고 있다"며 "황 교수가 야망에 눈이 멀었다면 차 회장은 신앙에 눈이 멀었다"고 둘을 싸잡아 비난했다.

그러나 정 소장은 "두 사건을 비교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황우석 사건으로 어려움을 겪는 한국 과학자들이 마치 모두 사기꾼인양 몰고 가려는 것 같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정 소장은 "차병원이 2004년부터 LA의 대형병원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는데, 이것에 대한 태클(tackle)이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차 회장은 포천중문의대와 차바이오텍의 설립자로, 지난해 10월 17일 미국 LA에 대규모 줄기세포연구단지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밝혀 주목을 받기도 했다. 포천중문의대가 지난해 2월 22일 황 교수에게 명예의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등 차 회장과 황 교수는 줄기세포 연구에서 '경쟁속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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