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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울림 공연 장면
ⓒ 산울림
'산울림'을 아는가? 산울림은 다른 말로 메아리이다. "나의 목소리는 산울림이 되어 번진다"라고 말을 한다. 우리 가요사상 '산울림' 하면 '아니 벌써'를 떠올린다.

'산울림'은 1977년 한국 대중음악 사상 가장 문제의 데뷔앨범으로 평가받는 '아니벌써'를 발표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서정성 짙은 록발라드에서부터 헤비메탈은 물론 동요까지 끊임없는 실험정신과 대중성을 잘 결합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 산울림이 벌써 30돌을 맞았다. 이에 미국에 있는 둘째 김창훈씨와 캐나다에 있는 셋째 김창익씨가 모두 귀국해 송년 공연을 연다는 소식이다.

▲ 노래하는 김창완 씨
ⓒ 산울림
이번 공연은 올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늦은 5시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리는데 '2005년 마지막 밤 산울림과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의 추억은 더욱 깊어집니다'라고 말한다.

또 '산울림'은 "이 공연엔 70년대의 그리움과 80년대의 순수함, 90년대의 풋풋함 그리고 2000년대의 설렘이 함께하는 공간이다. 통금이 있던 그 시절 한 해의 마지막 날만은 통금해제가 되고 젊은이들은 도시의 하룻밤에 해방구를 만들었다. 또는 '외박'이 암암리에 공인되기도 하였다. 물론 지금도 12월 31일은 새해를 맞이하는 다양한 축하행사로 새벽까지 떠들썩하다. '산울림'의 이번 송년 음악연에는 7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세대별 추억과 그리움이 오롯하게 담겨 있다"라고 말한다.

이번 공연에서 '산울림'은 기존 50여 곡의 히트곡 중 팬들에게 가장 사랑받고 있는 곡과 새로운 창작곡을 포함하여 30여 곡을 선물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니벌써',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산할아버지', '개구장이', '나 어떻해', '내게 사랑은 너무 써', '청춘', '초야' 등 록, 발라드, 동요 등 우리가 익히 들었고, 또 간절히 듣기를 원했던 노래들의 행진이 예고된 것이다.

우리의 을유년 한 해를 '산울림'과 함께 마무리하면 어떨까?

"들숨, 날숨 어떤 것에도 집착 안해"
[인터뷰] '산울림' 김창완

▲ 김창완
- 노래와 연기는 어떻게 하게 되었나?
"보통은 데뷔를 하기 위해 음반을 내는데 우린 취미생활 결산의 의미로 판을 내게 되었다. 그런데 의외로 대중들의 호응이 좋아 노래를 계속할 수 있었다. 연기는 1985년 황인뢰 감독이 어린이날 특집극 2부작 바다의 노래에 주인공인 록가수로 처음 발탁해주었다. 이후 드라마 음악을 열심히 했는데 감독들이 권유해서 이후로도 자주 출연하게 되었다."

- 음반이 13집까지 나왔고, 의외로 동요도 4집이나 있던데…
"처음 1집 음반을 낸 이후 기성가요를 흉내 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흉내 내지 않는 순수한 마음을 담아주자!', '어른들에게 동심을 찾아주자!' 하는 마음으로 동요집을 내게 되었다. 다만, 동요에 걸맞지 않은 깊이있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먼길'은 인생을 얘기했으며, '바람그리기'는 철학적 내용이 담겨 있다.

다만, 1집은 거세된 음악이었다. 시대상황이 표현하려는 의미를 전혀 담을 수 없게 했다. 한 곡도 심의에 통과하지 못해 부분 수정이 아니라 전면 개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반어적인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 즉 은유적인 표현이 오히려 긴 세월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요인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 가수, 연기자, 방송진행자를 무시로 넘나드는 비결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중 가장 천직이라 생각되는 것은?
"그 까닭 중 가장 큰 것은 어떤 것에도 천착하지 못하는 나의 성격일 것이다. 직업선택뿐 아니라 스스로 닦달하려는 것에서 달아나려고 했으며, 또 다른 나를 찾아 떠나곤 했다. 하나에 멈추지 않고, 하나의 사고방식에 매달리지 않으려 했다. 삶에는 호흡이 있는데 어떤 행위에도 들숨과 날숨, 그 어느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또 10년을 자전거를 타면서 발견한 것인데 자전거가 몸의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처럼 마음의 균형, 가치의 균형, 자연과 나 사이의 자리매김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자세로 살아가려 노력해왔는지도 모른다. 그 말로 대신하겠다."

- 젊은 층에서도 이웃집 친절한 아저씨로 인기가 있다던데…
"친절한 아저씨란 이야기는 상당히 가공된 이미지이다. 실상은 예민하고 까다롭다. 친근한 이미지란 인상이 부담이 되기도 하며, 그런 이미지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연기란 선택되기 때문에 거부만 할 수 없는 것인데 편안한 이미지가 본인에겐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 말에 기자는 "그것이 다른 면으로 보면 뛰어난 연기자임을 뜻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덧붙여 보았다. 그러자 그는 "연기는 연기일 뿐이다. 본질과는 상관없다. 또 이미지 극복은 내면의 일이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 벌써 30년이라는데 뒤돌아본 이야기는?
"한 그룹이나 가수가 긴 시간 활동력을 갖는다는 건 개인의 역량뿐 아니라 가요의 문화적 역량이 튼튼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가수나 어떤 연기자도 대중을 이끌지는 못한다. 그들은 다만 작품을 통해서 대중의 토양 위에 꽃을 피울 뿐이다.

30년이나 매해 꽃 피운다는 것은 땅의 비옥함을 나타낸다. 또 비옥한 땅에서 꽃을 피우는 데는 통시적인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얻어내려면 어느 수를 넘어서야 한다. 그를 통해 질적인 변화를 끌어내야만 가능할 것이다."

- 김창완 씨의 <미리 쓴 나의 유언장>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다. "쉰은 유치원생이다. 이들은 정장을 하고 주말을 기다린다. 그들은 모든 것을 새로 경험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새로운 것은 없다. 당신이 처음 입은 양복이 체크무늬 양복이었다면 체크무늬 양복을, 감잎 물들인 한복이었다면 그 빛의 한복을 다시 입으리라. 그들은 인생을 새로 쓰고 싶어한다. 하지만, 종이는 바랬고, 잉크의 색은 묽다" 무슨 뜻인가? 자신에게 들려주는 말인가?
"50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인생관, 가치관이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는 믿음이 있다. 그것은 사람이 원래 불완전한 존재라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이다. 정지했을 때만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따라서 쉰이란 우리의 불안정한 것을 확인할 기회, 잠시 정지한 기회이다. 나도 이제야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서 이 글은 나 자신을 위한 글이기도 하다."

- 애주가란 소문이 있던데 이에 대한 자랑이나 변명은?
"술 깨는 유일한 방법은 '후회'이다. '후회스러운 일을 왜 하는가?'라는 생각이 술을 깨는 방법이라는 믿음이다. 또 술이라는 게 변명거리로 좋다. 나는 인생으로부터 늘 달아났다. 맞서 싸우거나 끌어안기보다는 항상 회피하고 도망가는 것으로 일관했다. 이에 대한 변명으로 술을 마신다. 많은 후회가 있지만 몇몇은 추억도 있다. 물론 자랑거리는 없다."

- '바가지를 모르는 아내'라고 한 적이 있던데…
"어머니는 나를 낳았고, 아내는 나를 키웠다고 해야 맞다. 자유롭고 아직 철없는 남편으로 살 수 있게 해준 것은 마음그릇이 큰 아내의 덕이다. 참 고맙다는 생각뿐이다. 죽으면 비로소 아내 가슴에 묻히고 싶다."

- 부자간 땅끝마을까지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다는데…
"자전거 여행은 유학에서 돌아온 뒤 추억만들기로 제주도에 간 것이 처음이다. 땅끝마을까지 1박 2일의 자전거 여행은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었다. 앞에서 내가 자전거를 타는 일이 균형이라고 했는데 물론 혼자 타는 것은 균형이지만 둘이 타는 것은 조화이다. 그것은 같이 노래하는 기분이었다."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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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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