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중앙일보> 11월7일자 30면 기사(위)와 22일자 3면 기사. 난자 채취의 부작용에 대해 상반된 설명을 하고 있다. ⓒ 중앙일보 PDF
최근 '난자매매' 사건을 다룬 제도권 언론의 보도태도가 공정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찰의 '난자매매' 브로커 수사 때만 해도 추상같은 잣대를 들이대던 신문·방송들이 황우석 교수 난자매매 사용 사건이 터지자 태도를 바꿨다는 것.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은 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익과 진실보도' 토론회에서 언론동호회 '모니터Y'와 함께 지난 한달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3사와 KBS·MBC·SBS 방송3사의 보도내용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신문과 방송 모두 경찰이 난자매매 조직을 적발했을 때만 해도 매매의 비윤리성과 부작용을 부각시키며 보도했다. 그러나 황 교수팀의 연구에도 매매된 난자가 제공됐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단어를 순화시키는 등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분석이다.

난자를 매매한 일부 여성들에게 '자궁의 상품화'라고 비난하던 언론들이 황 교수의 연구에 사용된 난자에 대해서는 거창한 대의명분을 부여했기 때문.

'조·중·동'의 이중잣대... 난자매매 비난하다 '황우석 감싸기'로 돌아서

<조선>은 11월 7일자 10면 기사에서 "국내에서도 여성의 난자를 사고 파는 행위가 버젓이 이루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장기 밀매 행위는 여러 차례 적발됐지만, 난자 매매는 처음"이라고 부각했다. <조선>은 경찰을 인용해 "(브로커들이) 난자 제공 여성에게 신체조건·미모·학벌 등에 따라 150∼500만원을 주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황 교수 연구에서 사용된 난자에 대한 시각은 전혀 달랐다. <조선>은 11월 22일자 1면 기사에서 "난자 기증자에게 교통비와 생계 차질 비용 등을 보상해주는 차원에서 150만원을 지급했다"는 노 이사장의 발언을 전했다.

양 위원은 "똑같은 돈을 받고 난자를 판매했는데, 어떤 사람은 돈이면 뭐든 하는 파렴치한 인간이고 어떤 사람은 숭고한 연구에 난자를 기증한 '기증자'가 됐다"고 비꼬았다. 경찰의 브로커 수사 때만 해도 난자 채취의 위험성을 부각시켰던 주류 언론이 황 교수의 연구를 위한 난자 채취에는 관대했다는 주장이다.

<중앙>, "거동조차 할 수 없었다" → "시간 지나면 좋아져"

<중앙>은 11월 7일자 기사에서 입건된 여대생과 주부의 사례를 들어 "이들이 시술 뒤 2∼3주 동안 고통이 심해 거동조차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며 '난소과(過) 자극증후군'을 설명했다. "난자를 인공적으로 채취할 경우 불임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모 대학병원 산부인과 교수의 경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황 교수 윤리논쟁과 관련, 난자채취 과정을 다룬 11월 22일자 기사에서는 난소과 자극증후군을 소개하며 "하지만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좋아진다"고 달리 보도했다. 한 병원 원장은 '과배란유도'를 "어차피 사멸할 난자를 활용하는 방법"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중앙> 독자들은 보름간의 시간적 간격을 두고 같은 문제에 대해 전혀 다른 설명을 듣는 셈이지만, <중앙>은 이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난자매매를 바라보는 <중앙>의 시각도 황 교수 연루설이 불거져 나오기 이전과 이후는 매우 크게 차이가 났다.

<중앙>은 11월 7일자 30면 사설에서 "난자는 고귀한 생명의 원천이자 모체다. 그런 만큼 돈을 주고 사고 파는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난자매매에 대해 "여성의 자궁을 상품화했다는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황 교수 사건이 터진 후에는 "황 교수가 책임질 일 아니다" (11월 23일자 송호근 칼럼), "연구는 계속돼야 한다" (11월 24일자 홍혜걸 칼럼)며 황 교수 감싸기에 바빴다.

11월 7일자에서 "난자매매를 제재할 법규가 미비해 대책이 시급하다"고 했다가 11월 24일자에서 황 교수 사건을 한국적 정서와 서구윤리 잣대의 충돌로 분석한 <동아>도 오십보백보였다.

황우석 사건 통해 '비겁함'과 '비열함'을 보여준 한국언론

SBS도 11월 6일 방송에서는 "주사를 통해 많을 경우 한번에 30개의 난자를 억지로 꺼냈다. 전문가들은 인위적 과배란이 난소를 과다하게 자극해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며 난자채취의 부작용을 강조했다

그러나 황 교수 관련보도 54건 중 난자채취의 위험성을 알리는 보도는 11월 30일 현재 "건강을 해친다"고 짤막하게 언급한 기사 1건에 그쳤다.

제도권 언론이 이 같은 논조를 유지하는 것은 황 교수에 대한 호의적인 여론을 의식한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됐다. 그러나 여론을 의식한 나머지 하나의 사실에 대해서도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언론의 본령이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최민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총장은 "조중동은 2002년 대선 이후 우리사회의 어젠더를 독점하는 힘을 잃었다. 이들이 어젠더를 독점하지 못하게 되자 포퓰리즘에 경도돼 지금 같은 보도를 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문석 위원은 "한국언론이 황우석 사건을 통해 보여줄 건 다 보여줬다"며 "기자정신은 '비겁함'이었고, 보도태도는 '비열함'이었다"고 언론인들을 질타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