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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비정규직 법안에 반대하는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가 지난 4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산 넘어 산이다. 쌀 비준안 처리 저지에 사력을 다했던 민주노동당에 다시 비정규직법안 처리를 앞두고 전운이 감돌고 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28일 "비정규권리보장입법 쟁취를 위한" 무기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권영길 대표를 비롯한 비상 지도부는 "여야 정당은 비정규직 양산을 불러올 정부법안만 고집하며 정기국회 내에 강행 처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며 "정부여당은 비정규직 양산법을 당장 철회하고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한 전향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민주노동당의 이 같은 '거리투쟁'에 대해 "또 농성이야"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9석 정당으로서 350만 농민, 890만 비정규직 노동자(정부 통계 550만명)의 입장을 담아내야 하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항변도 들린다.

비정규직법안 법안심사 "저지 않겠다" 입장 선회

▲ 지난 6월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 축조심의에 들어가자,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기자회견을 갖고 "국회가 법안을 일방 강행처리할 경우 앞으로 노사정 대화를 중단하고 즉각 강력한 총파업투쟁을 전개하겠다"고 경고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애초 민주노동당은 '거대한 소수정당'의 기치를 내걸고 의석수의 한계를 사회 제세력과의 연대에서 찾으려했다. 하지만 13% 출발 지지율은 최근 10% 안팎으로 떨어졌고 조승수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사기도 저하됐다.

하지만 이를 만회할 길 역시 가시밭이다. 민주노동당의 양대 세력이라 할 노동자·농민의 최대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쌀비준안과 비정규직법안. 전자는 이미 처리되어 정부의 사후 대책을 압박하는 수준에 있지만 비정규직 법안에서만큼은 '실적'을 내야 할 처지다.

지도부는 국회 앞 천막 농성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원내 협상에도 적극적으로 임해 실리를 챙기겠다는 계산이다. 환노위 소속의 단병호 의원은 "비정규직법안 심의에 참여해 논리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6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점거해 법안 심사를 원천 봉쇄했던 것과 사뭇 달라진 태도다.

이 같은 태도 변화에는 강기갑 의원의 '29일 단식농성'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실적 없이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그쳤다는 비판이 깔려 있다. 본회의장 몸싸움에 대한 기본적인 부정 여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김성희 부대변인은 "아픈 부분"이라며 일면 동의하면서도 "민생 문제만큼은 실질적 민주주의를 통해 합의되어야 한다"고 항변했다.

천영세 의원단 대표는 "농성이냐 대화냐,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문제"라며 "농성이 능사는 아니지만 거대 양당의 이율배반성에 대해서도 질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억울해 했다.

노동계의 투쟁동력이 이완된 것도 민주노동당이 져야할 몫이다. 한국노총이 자체 '양보안'을 내놓으면서 양대 노총 공조가 삐꺽거리고 있다. 한국노총의 안은 정부안과 민주노총의 '절충안' 성격으로 기간제 사용기간을 사유제한 없이 2년으로 하고, 불법파견을 고용의무로 바꾸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한국노총은 28일 이와 관련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었으나 연기됐다.

민주노동당은 한국노총안에 대해 "수용하기 어려운 안"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기간제 고용에 있어 사유와 기간의 제한은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쟁점이다. 정부는 사유제한을 두지 않고 3년으로 기간을 제한한다는 입장인 반면, 민주노동당은 출산·육아·질병·부상 등 합리적인 사유에 한해 1년을 고용하고 1년을 연장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기간제 고용기간이 지난 뒤 '지위'에 대해서도 입장이 다르다. 민주노동당은 바로 정규직으로 간주(고용의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기간제라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한국노총이 유연하게 나오는 고용의무냐, 고용의제냐의 문제도 민주노동당은 "큰 차이가 있다"며 불법파견이 드러났을 경우 바로 정규직이 되는 '고용의제'를 고집하고 있다. 고용의무는 해당 노동자가 고용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상태로, 고용은 여전히 사용주의 선택의 문제로 남는다.

파견제에 대해서도 입장차는 현격하다. 정부는 파견제를 전면 허용하자는 쪽이지만 민주노동당은 파견제 폐지, 노동계는 현행 26개 업무만 허용하자는 입장이다.

열린우리 "마지막 기회" 압박... 한나라 침묵 속 지연 속내

▲ 이목희 소위원장 등 우리당 의원들은 지난 6월 22일 소위 개의가 무산된 직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제 더 이상 비정규직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만큼 국회법상의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민주노동당이 법안 심사에 적극적인 의사를 보인 데에는 한나라당의 '지연 작전'이 결국 민주노동당의 과실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위기의식도 깔려 있다.

한나라당은 "노사 자율교섭을 지켜본 후 판단하겠다"며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을 지켜보고 있다. "야당이 서두를 필요가 있겠냐"며 정부안이 사실상 노동계에 요구를 상당수 수용한 결과라는 재계의 불만에 동조하고 있다.

임태희 원내수석부대표는 "당사자 해결 원칙"의 입장이라면서도 "애초 노동부안이 균형점을 잘 잡았는데 최종 단계에 가면서 노동계쪽의 요구를 수용하고 사용자측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민주노동당을 대해서도 "집단이기주의에 앞장서면 안된다"고 꼬집었다.

열린우리당이 "마지막 기회"라며 민주노동당을 압박하는 것은 그런 배경에서다. 노사협의의 다리역을 해온 이목희 의원(제5정조위원장)은 "이 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 처리되지 않았을 때 닥칠 비정규직 문제는 전적으로 민주노동당의 책임"이라고 단언했다.

이목희 의원은 이날 고위정책회의에서 "건실한 중소기업이 감내할 범위 내에서 비정규직 차별을 축소하고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직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노동계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대량해고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또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가 안되면 내년 지방선거, 대선 등 굵직한 정치일정을 앞두고 어느 정치세력도 예민한 이 문제를 처리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럼 다음 정권으로 넘어간다"고 엄포를 놓았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돌아가고 민주노동당은 정치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이 의원의 주장이다.

강기갑에 이어 "이번엔 단병호인가"

▲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민주노동당에서는 이번에는 "단병호 의원 차례냐"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온다. 지난 쌀비준안 통과 당시 강기갑 의원의 단식 농성에 이어 민주노동당에 제출한 비정규권리보장법안의 관철을 위해 단 의원의 단식 농성을 의식한 얘기다.

구체적인 투쟁전략과 관련해 민주노동당의 공식적인 입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 주요당직자는 "(단식이나 회의장 점거 등) 안해도 되는 상황이면 좋지만 지금의 상황이 그렇지 않다"고 말해 불가피한 선택이 도래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방석수 기획조정실장은 "법안심사에 과정에서 과연 의미 있는 진전이 있을지 낙관할 수 없다"고 말했다.

30일 열린우리당은 비공개로 당정 간담회를 갖고 비정규직법안 처리 방향에 대해 최종 조율할 예정이다. 이목희 의원은 "내일까지 노사 합의가 안 되면 당이 결정할 것"이라며 강행 처리를 시사한 뒤 "대중의 이익과는 떨어진 거리에서 반대하시는 분들에게 이야기한다"고 민주노동당을 겨냥했다.

열린우리당의 압박, 한나라당의 침묵 속에서 민주노동당은 '실리'와 '원칙'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더욱이 10.26 재선거에서 울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매서운 '심판'을 받은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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